053. 붙일 수 없는 균열과 더 닿고 싶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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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 붙일 수 없는 균열과 더 닿고 싶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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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 붙일 수 없는 균열과 더 닿고 싶은 마음
2022.08.31.
대공 전하의 비상한 감 덕분에 저도 파수꾼 신세였지만.
목전에 비칸데르령을 두고 돌아서야 했던 윈스터는 속으로 쓴웃음을 삼켰다.
몇 년 전, 농담 삼아 대공 전하의 감이 짐승 같다고 말했던 건 이번 일로 완전히 취소였다. 그런 것 같은 게 아니었다.
에드윈 로웰 비칸데르, 제 주군의 감은 그야말로 짐승 그 자체였다.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제가 성벽에 다다르기 무섭게 마델레이네 공작가와 황가의 출입 금지와 영지 근처의 경계를 명하신 걸까.
제이드 마델레이네의 잘난 얼굴이 일그러졌다. 날 선 기세에 윈스터는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대공께서 무슨 자격으로 내 동생을 못 보게 한다는 거지?”
이제 예의 따위는 집어치운 모양이었다.
짧아진 말을 들으면서도 윈스터는 마치 신기한 말을 들었다는 것처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동생이라. 마델레이네 경께 에셀라 마델레이네 공녀를 제외하고 동생이 있는 줄 몰랐네요.”
형형하게 뜬 자수정 빛 눈동자가 허를 찔린 듯 커다래졌다. 현실을 부정하듯 고개를 젓는 모습이 우스웠다.
“선을 넘었습니다, 경.”
“…….”
“아가씨께서 전하의 맹세를 받은 순간부터, 선은 마델레이네 경이 저희 아가씨께 넘고 있는 겁니다.”
“…….”
“이제 두 분, 하등 볼 관계가 아니지 않습니까.”
폐부를 찌르듯 날카로운 관계 정리였다.
제이드가 이를 악물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윈스터는 느긋하게 말했다.
“……만약 아가씨께서 마델레이네 경을 보고 싶어 하신다면 모를까.”
우습게도 보랏빛 눈동자 위로 어렴풋한 기대가 올라왔다. 윈스터는 그 기대를 단숨에 박살 내는 방법을 알았다.
“물론 그런 일은 없겠지만.”
대답을 마친 윈스터가 유유히 술집을 나섰다. 기다렸다는 듯 기사 한 명이 윈스터 곁으로 다가와 보고했다.
“황녀는 아직도 카탕타입니다.”
“뭐? 그거밖에 안 왔어? 엊그제 출발했다며?”
윈스터는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리 제이드가 쉬지 않고 왔다고 해도, 황녀가 아직도 카탕타 자작령까지밖에 못 왔다니. 거기는 제도에서 고작 4시간 거리에 떨어진 곳이었다.
“황녀의 멀미가 심하다고 합니다.”
진지한 기사의 대답에 윈스터는 입매를 굳혔다. 황녀의 마차는 흔들림이 거의 없는 최고급이었다. 그런 걸 타고도 겨우 카탕타령까지 가는 데 멀미를 하다니.
파 보면 파 볼수록 황녀는 대단하다고 알려진 공식 행보와 너무 달랐다.
그렇다면 황녀 대신 그 일들을 해낸 사람은 누구일까.
넘겨짚지 않으려 해도 그 후보는 자꾸만 한 사람으로 좁혀졌다. 윈스터는 저 멀리, 대공성이 있는 곳을 쳐다보았다.
* * *
그 시각, 카탕타 자작저는 한바탕 태풍이 분 뒤였다.
중년에 접어든 카탕타 자작은 안절부절못하며 가장 좋은 손님방 앞을 바라보았다. 황궁의 기사 두 명이 지키고 선 손님방에는 예기치도 못한 귀한 손님이 자리하고 있었다.
“여보, 황녀 전하께 인사라도 정식으로 드려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이 얼떨떨한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는 건 카탕타 자작 부인도 마찬가지였다.
제도와 네 시간 떨어져 있는 영지에 자리한 카탕타 자적저는 대대로 중앙 귀족과는 연이 없는, 평범한 시골 귀족이었다.
가끔 귀족 회의에 참석하는 게 카탕타 자작과 자작 부인의 자랑거리 중 하나였다.
그런데 이 카탕타에 성녀처럼 고귀한 황녀님이 오다니……!
“갑작스러운 방문을 이해해 주니 고마워요, 자작. 잠시 지나가는 길인데 피로감을 느껴 하루 묵었으면 좋겠던 찰나였어요. 지고하신 폐하의 명을 수행하러 가는 길이니 내가 여기에 묵는 건 비밀로 해 주길 바라요.”
자작은 황녀의 말을 되새기며 전율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다시 오지 않을 기회였다. 카탕타가 황족과 연을 맺을 기회라니!
자작은 큰 용기를 내며 성큼성큼 손님방 앞으로 걸어 나갔다. 무심한 기사들의 눈빛에도 굴하지 않았다.
“……저, 식사라도 하셔야 할 것 같은데. 황녀 전하께 한번 여쭤봐 주시지요.”
“황녀 전하께 올리는 식사는 저희 쪽에서 알아서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자작님.”
기사는 정중히 선을 그었다.
“아니 그래도. 아까 뵐 때 얼굴이 너무 하얗게 질려 계셨는데. 혹시 몸이라도 어디…….”
“그 또한 저희 쪽에서 확인하겠습니다.”
뭔가 시도하려 할수록 밀려나는 느낌에 결국 자작 부처가 힐끔거리면서도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였다.
“아악!”
방 안에서 들려오는 날카로운 비명 소리에 두 사람의 눈이 커다래졌다. 이 방 안에는 분명, 황녀와 시녀들밖에 없을 텐데……!
“잠, 잠깐만! 전하!”
자작과 자작 부인은 단숨에 방문 앞으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허사였다. 기사들이 이미 재빠르게 두 사람을 막아선 뒤였다.
“이게 뭐 하는 짓입……!”
성녀만큼이나 고운 마음씨를 가지고 계신 황녀 전하다. 제 저택에서 전하의 안위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는 건 절대로 안 될 일이었다. 자작이 기사들을 밀쳐 내며 노려보려던 순간이었다.
자작은 주춤, 뒤로 물러나며 말을 삼켰다.
기사들이 서늘한 눈으로 자작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대로 숨 막히는 대치가 이어졌다.
머지않아 문이 열리고 안에서 남색 머리의 귀부인이 나와 부드럽게 웃었다.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 잠시 나와 보았습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부인, 여기는 괜찮은데. 안은 괜찮으십니까? 비명 소리 같은 게 들렸는데.”
“아, 들으셨군요.”
루하스 남작 부인이 잠시 곤란하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자작님의 인망을 믿고 말씀드리자면…….”
비밀을 공유하듯 작은 목소리에 자작 부처가 침을 꿀꺽 삼켰다.
“저희 시녀 중에서 예민하면 가끔 소리를 지르며 발작하는 아이가 있답니다. 황녀 전하께서 너그러이 살펴 주시는 거죠. 워낙 제 사람이라면 끔찍이 여기시는 분이시니.”
아, 그렇게 이야기를 들으니 자작과 자작 부인의 얼굴에 서렸던 걱정이 사라졌다. 더불어 작은 기대가 엿보였다.
발작하는 시녀까지 품을 정도로 너그러운 황녀님의 사람이 되면 어떨까.
“다행입니다. 저희는 황녀 전하께 무슨 일이라도 생기신 건 아닌가 해서.”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재미있는 농담을 들었다는 것처럼 루하스 남작 부인이 엷게 웃었다. 그 태연한 모습에 자작과 자작 부인도 따라 웃었다.
“그런데 혹시…….”
“네?”
“여기 무위켄 영지로 갈 수 있는 정리된 도로는 없을까요?”
루하스 남작 부인의 질문에 자작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쪽으로 가봤자 비칸데르 대공령밖에 없지 않습니까. 어차피 반고리관 튼튼한 기사들이 오가는데 돈 들여 정비할 필요는 없어서 안 해 두었습니다. 대신 아래쪽으로 난 여름 정원이 더 자신 있으니 전하께도 잘 말씀드려 주십시오.”
뿌듯하다는 듯 웃는 자작을 보면서 루하스 남작 부인은 지끈거리는 두통을 참았다.
또 한 번 난리를 칠 황녀의 모습이 안 봐도 뻔했으니까.
.
.
.
“아악!”
“전하, 고정하시옵소서. 목 다 상하십니다.”
알록달록하게 화려한 방 안, 어쩔 줄 몰라 하는 시녀들 사이로 황녀가 눈을 번뜩였다.
“아니, 이 위대한 프란츠에서 길조차 제대로 정비하지 않다니! 이게 무슨 제국의 망신이야!”
소리를 지르던 황녀가 눈살을 찡그렸다. 비포장도로를 달리느라 울렁거렸던 속이 다시 요동쳤다.
물조차 게울 정도로 난리 났던 하루였다. 황녀 된 도리로 아무 곳에나 묵을 수 없어 간신히 찾아온 곳이 이 자작령이었는데.
황녀는 경멸스럽다는 눈으로 방을 훑었다. 귀족답지 못하게 천박하고 알록달록한 이 방. 황녀가 제일 싫어하는 촌스러운 방이었다.
“……길만이라도 제대로 정비를 해 놓았으면 바로 비칸데르령에 다다랐을 텐데.”
황녀는 제가 늘 다녔던 길들을 떠올리며 이를 악물었다. 여름 궁전으로 유명한 남부의 휴양지, 어머니인 황후의 별장이 있는 가을이 절경인 동부, 타국과 인접해 있는 서부까지.
황녀가 갔던 곳들은 모두 깨끗하게 정비된 도로들로 이어져 있었다.
“전하, 누워 계시지 않으시고.”
잠시 자작에게 이야기를 듣고 온다던 루하스 남작 부인이 방으로 돌아왔다. 걱정 어린 유모의 얼굴에 황녀는 다시 앓는 소리를 냈다.
“유모, 어떻다던가요. 정비된 길이 있기는 하다고 하던가요?”
“……그게.”
한 줄기 실낱같은 기대는 유모의 어두운 얼굴과 함께 사라졌다. 황녀가 악! 소리를 내지르며 분통을 터트렸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분해서 가만있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전하, 이곳은 방음이 제대로 되지 않는 자작저입니다. 부디 조금만 화를 가라앉히신다면…….”
“하나같이 다 최악이야! 어떻게 내가 화조차 마음대로 낼 수 없다는 말이야!”
“……송구합니다. 전하.”
황녀가 매섭게 루하스 남작 부인을 노려보았다. 달리 도리가 없다는 얼굴은 며칠 전 제게 어떻게든 방법을 구해 오겠다고 했던 당당함과는 생판 반대였다.
하루라도 빨리 가야 하는 비칸데르 대공령까지 가지도 못하고, 속만 뒤집어졌다.
그 폐광산을 찾아오겠다는 마음은 급하고, 아직 그 반쪽짜리한테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마법 인장을 되돌릴 수 없다니.
이 모든 문젯거리가 뒤섞여 두통이 몰려왔다. 자꾸만 바짝바짝 목이 말랐다.
“……하, 진짜. 그 반쪽짜리. 보기만 하면 가만 안 둘 거야. 하긴, 천한 것답게 정비 안 된 길로도 잘 갔나 보군.”
그 귀한 것을 들고 이리 먼 곳까지 도망가다니.
잇새로 터져 나오는 사나운 말에 시녀들은 모두 듣지 못한 척했다. 늘 그래 왔던 것처럼.
.
.
.
“……어머.”
하지만 자적저의 하녀들은 달랐다. 마침 아랫방에서 시녀들이 묵을 방을 정리하던 하녀들은 저들끼리 눈을 끔뻑이며 입을 틀어막았다.
분명 윗방에는 성녀처럼 착하신 황녀 전하께서 묵는다고 했는데.
알려진 것과 다른 천박한 언행, 살기를 내포한 험악한 분위기.
저들이 알고 있는, 성녀 같은 황녀 전하에 대한 소문과는 정반대였다. 서로를 바라보는 하녀들의 입이 근질거렸다.
이내 삽시간에 자작저에 재미있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스스럼없이 자작저를 ‘최악’이라고 말했던 황녀에 대한 소문은 미처 주워 담을 수도 없이 퍼져 버렸다.
* * *
마델레이네 공작가의 식당. 식사를 마친 콘라드는 우아하게 입을 닦으며 말했다.
“……한결 나아졌군요. 고맙습니다, 부인.”
어딘가 거슬리던 음식 맛까지 돌아왔다.
“별말씀을요, 소공작님.”
모닉 자작 부인은 예의 그 덤덤한 얼굴로 감사를 받아들였다.
다 가신들 덕분이었다. 장부와 중요 어음 결제는 바이샨 자작이, 뒤숭숭한 저택의 분위기와 식사 등 미묘한 변화는 모닉 자작 부인이 정리했다.
올리비아가 내정을 맡기 전까지 도움을 주었던 그들은 마델레이네를 다시 콘라드가 알던 공작저로 되돌렸다.
이제 다시 마델레이네 공작저는 제 궤도를 되찾았다. 희미한 고양감이 차오르던 때였다.
“식사 관리와 여름의 공작저 장식의 주제는 에셀라 아가씨한테도 말씀드렸습니다. 아가씨께서 워낙 영민하시니 큰 탈은 없을 겁니다. 허락만 해 주신다면 저도 자주 와서 확인하겠습니다.”
그런데.
모닉 자작 부인이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잠시 할 말을 고르듯 찻잔을 들어 차 한 모금을 마셨다.
“……에셀라 아가씨께서 티 파티에 관심을 두고 계신 줄은 몰랐습니다. 워낙 사교계 일정에는 관심 없으셨던 분이라, 소공작님께는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그게 어떤…….”
콘라드는 저도 모르게 바로 물었다. 모닉 자작 부인은 그럴 줄 알았다는 내심을 삼키고 별거 아니라는 듯 설명했다.
“크게 중요한 일은 아닐 겁니다. 제 여식도 사교계에 전혀 관심 없다가 데뷔탕트를 앞두고 관심을 갖더군요.”
여상한 말에 콘라드는 태연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속은 의연할 수 없었다.
에셀라가 사교계에 관심을 갖다니.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쿵 떨어지는 마음에 콘라드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하긴, 무슨 대화를 해야 알 수 있겠지. 에셀라와 정상적인 대화를 해 본 게 언제더라.
콘라드는 곰곰이 생각을 하다 막막하게 차오르는 숨을 삼켰다.
어느 순간부터 에셀라는 달라졌다. 아버지가 참석하는 저녁 식사에는 속이 불편하다며 자리하지 않더니, 점점 저와의 대화도 줄여 갔다.
에셀라와는 며칠 전,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던 제이드가 떠날 때 잠시 이야기를 한 게 다였다.
“에셀라, 요즘 무슨 일 있어? 얼굴 보기가 힘드네. 저녁도 거르고.”
“그냥 요즘 속이 불편해서요.”
상냥하고 해맑은 에셀라. 사랑스러운 막내는 여전히 다정했지만 냉정하게 대화를 끊어 낼 줄 알게 되었다.
짧은 대화가 끝나자마자 볼일이 끝났다는 듯 에셀라는 제 방으로 올라갔다.
콘라드는 그 모습을 지켜만 보았다.
무엇이 불편한지도 물을 수 없었다. 아니, 사실은 듣고 싶지 않았다. 사랑스러운 막내 에셀라의 그 말이 제가 믿어 왔던 모든 것을 단번에 전복시킬 것만 같았다.
분명 가신들의 도움이라면 공작저가 제 궤도로 돌아올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제 생각이 틀렸다는 것에 대한 반증이 곳곳에서 나왔다. 좀 전까지만 해도 만족스러웠던 식사의 끝맛이 이상하게 썼다.
콘라드는 아슬아슬하게 웃는 낯을 유지했다. 그 속내가 얼마나 씁쓸한지는 그만 아는 사실이었다.
* * *
한편 비칸데르 대공성의 늦은 밤.
“대공가에 재정 관리를 맡는 가신이 따로 있나요?”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마지막까지 아가씨의 잠자리를 고치던 베서니는 아가씨를 돌아보며 스스로를 가리켰다.
“대공가의 재정 관리를 맡는 가신은 따로 없습니다. 제가 마법 인장까지 관리하니, 저라고 해도 괜찮을 겁니다.”
그 말에 아가씨가 환하게 웃었다. 방긋 웃는 얼굴은 처음 대공성에 왔을 때보다 한결 편해 보였다.
영민하게 반짝이는 초록색 눈을 마주하면서 베서니는 불쑥 올라오는 그리움을 꾹꾹 눌렀다.
“그러면 베서니. 제 부탁 좀 들어줄 수 있어요?”
“또 무슨 재미있는 일을 꾸미시게요?”
그토록 아가씨를 적대시하던 디안이 결국 아가씨 편에 섰다. 대공성을 뒤흔들던 근래의 일을 떠올리며 베서니가 호기심 어린 눈을 했다.
그 말에 올리비아는 책상 서랍 깊숙이에 넣어 두었던 문서 하나를 꺼내며 흔들었다.
“대공 부부의 재산은 공동 소유라면서요. 에드윈한테 깜짝 선물이라도 하고 싶은데. 도와주시겠어요?”
장난스레 웃는 뺨이 발그레했다.
깜짝 선물이라니. 얼마나 깜짝 놀라게 하려고 할까. 마주 웃던 베서니의 얼굴이 일순간 창백해졌다. 눈치채지 못한 듯 올리비아는 봉투에서 문서를 꺼내 몇 장 넘겨 보았다.
“제 지참금이에요. 물론 지금은 큰 가치가 없지만 제가 꾸민다면 나아지겠죠? 미리 에드윈 몰래 공동 재산으로 등록하고 싶어요.”
들뜬 목소리가 먹먹하게 멀어졌다. 베서니는 호흡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올리비아의 손에 들린 문서를 바라보았다.
한시도 잊어 본 적 없는 서류였다.
백수정 광산.
그토록 되찾고 싶었던.
공주님의, 로웰의 마지막 보물의 소유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