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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9. 목줄이 풀리기 시작한 황제의 개 (39/151)


#039. 목줄이 풀리기 시작한 황제의 개
2022.07.13.


통유리창 너머로 어둠이 넘실거리는 늦은 밤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끝없이 줄지었던 보석상과 구두 장인들의 행렬에 지쳤던 올리비아는 피곤함도 잊은 채 감탄했다.


“……이걸 하루 만에 꾸몄다고요?”

고급 부티크를 연상케 하는 드레스 룸은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마담 플루토의 부티크에서 배달 온 드레스들은 행어에 걸려 있었고, 섬세히 세공된 유리 진열장은 오늘 구매한 보석과 구두를 채워 넣기에 적합했다.


“말했잖아요. 소벨은 유능하다고.”

벨벳 소파에 앉아 있던 에드윈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아까 물건을 고를 때 이 많은 물건을 어디에 놓냐는 우스갯소리에 에드윈이 똑같은 말을 했던 게 떠올랐다.

농담인 줄 알았는데 진심이라니. 대공저의 스케일이 남달라서 올리비아가 피식 웃었다.

소벨은 덤덤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조금 더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곧 비칸데르령으로 가실 것을 감안해 최대한 서둘렀습니다.”

아. 올리비아는 눈을 깜빡였다.

황제로부터 혼인 허락만 받는다면 비칸데르령으로 떠난다는 당연한 사실이 어쩐지 새삼스러웠다. 고작 며칠 새에 이 대공저에 정이 든 모양이었다.

대공저를 떠난다 생각하니 묘한 섭섭함이 올라왔다. 올리비아는 에드윈의 반대편에 앉으며 말을 돌렸다.


“그런데 정말 오늘 궁에 가 보지 않아도 괜찮았어요?”

“연락을 드리고 가도 문을 안 열어 주는데요, 뭐. 대신 내일 오후에 찾아가겠다 편지를 보냈으니 내일 오후에 가죠.”

내일이라. 올리비아는 날짜를 따져 보았다.

오전부터 귀족 회의가 있는 날이었다. 회의 날 오후면 황제가 휴식을 취하기 위해 정무를 삼간다는 건 파다한 사실이었다.


“날을 잘 골,”

그러다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에 올리비아가 순간 말을 멈춘 채 에드윈을 바라보았다.

허공에서 시선이 얽히는 시간이 길어지던 찰나, 에드윈의 눈매가 짓궂게 휘어졌다.


“왜 그렇게 빤히 보실까. 사람 설레게.”

“왜 에드윈이 귀족 회의에 참석하지 않는지 문득 궁금해져서요.”

다분히 유혹적인 어조에도 올리비아가 무덤덤하게 대답하자, 에드윈의 얼굴에 실망감이 번졌다. 하지만 올리비아는

영지가 멀어 참석이 어려운 귀족들도 많았지만 고위 귀족이라면 누구나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하는 귀족 회의. 제국의 단 한 명밖에 없는 대공이 귀족 회의에 참석하지 않다니.

생각할수록 이상한 와중에 에드윈은 별거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뭐, 매번 전쟁을 도느라 그렇죠.”

“이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전쟁도 끝났는데.”

전쟁 영웅이 된 에드윈의 명성이 하늘을 찔렀다. 지금이라면 제도에서 입지를 다지기에도 좋을 텐데. 스스럼없이 말하던 올리비아가 아차, 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렇게 잘 알면 공녀가 직접 나서지 그래.”

 
성가시다는 듯 내뱉던 레오포드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떠올랐다.

우스운 일이었다. 전 약혼자. 이제는 아무것도 아닌 관계. 하지만 아직도 레오포드가 했던 말은 올리비아의 뇌리에 깊이 남아 있었던 모양이었다.

아무리 제게 다정한 에드윈이라도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다. 저도 모르게 에드윈의 눈치를 보던 올리비아의 눈이 커다래졌다.

붉은 눈이 진지하게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귀족 회의에 참석했으면 좋겠어요?”

“그냥, 궁금해서 했던 말이었어요.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말아 줄래요?”

올리비아는 농담처럼 제 말을 얼버무리려 했다. 물밑에서 일을 하는 건 익숙했지만 이렇게 의견을 피력하는 건 낯설었다. 하지만 에드윈은 조심스러우면서도 집요하게 올리비아를 마주 보며 다시 물었다.


“그러지 말고 내게 알려 줘요. 내가 귀족 회의에 참석한다면, 비칸데르가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요.”

비칸데르가 얻을 수 있는 거라.

순간 올리비아의 머릿속에 매년 늘어나던 세금이 떠올랐다. 보석 채굴을 빌미로 큰 폭으로 늘어나던 세금은 제국의 부유함을 지탱하는 원천 중 하나였다.


“……광물 세금에 대해 발언할 수 있을 거예요. 에드윈은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까지 모두 폐하께 바치고 있잖아요.”

올리비아의 심장이 콩닥거렸다. 안 그러려 해도 에드윈의 표정을 계속 살피게 되었다. 제 말이 영 터무니없게 들리지는 않을까. 잔뜩 긴장하던 찰나였다,


“사실 세금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네요. 비칸데르는 너무 부유하거든요.”

나직한 에드윈의 목소리에 올리비아의 심장이 쿵, 떨어졌다. 괜히 말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갈 때, 에드윈이 과장되게 드레스 룸을 돌아보았다.

그 시선이 텅 비어 있는 진열장에 닿았을 때, 에드윈이 덤덤하게 말을 덧붙였다.


“……뭐, 올리비아의 배포가 더 커진다면 모를까.”

올리비아의 초록색 눈이 반짝였다. 이건 명백한 도발이자 거래였다. 그리고 올리비아는 이 거래를 받아들일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었다.


“제가 대공저에서 나갈 세금을 걱정해서 맘껏 사치하지 못한 건 어떻게 아시고.”

“그렇다면 말이 달라지겠죠? 이젠 회의에 참석하는 걸 고려해 봐야겠군요.”

고려한다는 그 말 한마디에 올리비아는 고개를 푹 수그렸다. 자꾸만 입꼬리가 올라가고 맥박이 빠르게 뛰었다.

처음으로 황녀의 명령을 해결했을 때보다 더한 성취감이 올리비아를 뒤덮었다. 드레스나 구두, 혹은 감정을 이야기하는 대화 이외에 새로운 세계를 접한 기분이었다.

발갛게 상기된 얼굴 위로 의기양양함이 번지는 것을 확인한 에드윈이 올리비아 모르게 조금 웃었다. 그러다 기민한 눈이 통유리 너머를 꿰뚫듯 바라보았다.


“뭐 있나요?”

올리비아가 궁금하다는 듯 에드윈을 따라 통유리 너머를 바라보았다. 꽃이 수그러든 정원에 특별한 것은 없는데.


“아니요. 달빛이 너무 시린 듯해서요. 이만 내일을 위해 잠자리에 들겠어요?”

기꺼운 권유였다.

올리비아가 배시시 웃으며 에드윈의 손에 제 손을 올렸다. 동시에 소벨은 소리 나지 않게 커튼을 쳤다. 저 멀리 대문 앞에 서 있는 마델레이네가의 마차가 절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주 단단히 말이다.

* * *



“이번 귀족 회의 참석을 고려하고 계신다고요?”

대공저의 응접실. 대공은 뭐 문제 있냐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소벨에게 이야기를 건네 들을 때만 해도 안 믿었는데. 윈스터는 짜게 식은 눈으로 대공을 바라보았다.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황제와 대립각을 세우길 바라는 대공가의 가신들이 그토록 회의 참석을 설득했을 때는 귓등으로도 안 들으시더니.

대공이 느른히 웃었다.


“생각해 보니 우리가 굴러서 번 돈으로 황제의 배만 불리는 건 별로더라고.”

윈스터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옆에 있던 하워드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백수정 광산과 한 걸음 멀어지는 결정이실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황녀를 다시 공략해 보려고.”

대공의 입매가 비스듬히 올라갔다.


“광산은 계속 지켜보되, 황녀의 행적도 다시 조사해. 황가에서는 죽어도 그 가치를 모를 테니. 언젠가는 다시 비칸데르의 몫이 되겠지.”

하워드의 머리가 바쁘게 돌아갔다. 이제까지 황녀의 행적은 대체로 원만했다. 황녀의 재산이며 관리하는 영지는 깨끗한 편이었다.

하지만 대공 전하가 특별히 주시할 것을 명령한 이상 황녀의 행적은 다시 제 손에서 낱낱이 분쇄될 것이었다.

늘 그렇듯, 비칸데르 대공은 승리를 낚아채게 될 것이니까.

* * *

기껍게 잠자리에 들었던 기분은 아침이 되어서도 쭉 이어졌다. 올리비아는 오늘 하루 전체가 근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갑자기 황궁에서 날아온 회의 참석 편지만 아니었더라도 말이다.


“오전 회의에서 혼인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신다니. 회의 통보가 참 빠르기도 하네요.”

“오전 회의요?”

권태로운 에드윈의 목소리에 피식 웃던 올리비아의 눈이 커다래졌다. 회의 시각까지는 고작 1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지금부터 급하게 준비를 해서 마차를 타고 간다 해도 회의가 시작하는 시간을 맞추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심장이 선뜩해지는 올리비아와 달리 에드윈은 편지를 흔들며 남 일처럼 굴었다. 다급해지는 건 올리비아 혼자였다.


“에드윈, 빨리 준비해요. 첫 회의 참석인데 늦으면 어떻게 해요.”

“올리비아는 준비하려면 조금 걸리지 않나요?”

“네?”

올리비아가 눈을 깜빡였다. 에드윈이 편지의 한편을 가리켰다.

마델레이네 공녀도 참석하라는 명령에 올리비아의 머리가 새하얘졌다. 드레스며 화장이며 에드윈의 배는 시간이 걸릴 텐데. 어떻게 하나, 초조해지던 찰나였다.


“걱정하지 말아요. 올리비아. 늦으면 뭐 어때요.”

“그래도.”

“늦는다면 늦게 통보한 황제의 탓이죠,”

에드윈은 스스럼없이 황제의 탓으로 돌렸다. 황족 모욕죄가 될 만한 말을 하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에드윈의 모습에 올리비아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별거 아니라는 듯 아무렇게나 편지를 두던 에드윈이 빙그레 웃으며 올리비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원래 주인공은 가장 늦게 등장하는 법이잖아요.”

으스대듯 말하는 에드윈의 말이 무슨 뜻인지 올리비아는 알 수 없었다.


“그러니 올리비아. 마저 차를 마셔요. 식은 차는 별로 안 좋아하잖아요.”

이상하게도 에드윈의 목소리에는 묘한 힘이 있었다.

뭐든지 잘될 거 같다는 바람 같은 힘.


“……그러면 차만 마시고 준비할게요.”

결국 올리비아는 다시 에드윈의 앞에 앉았다. 잘했다는 듯 에드윈의 눈매가 달큼하게 휘어졌다.

* * *

한편 그 시각, 황제 궁의 대회의장에는 묘한 기류가 맴돌았다.


“아직 오지 않았군.”

당연했다. 회의 참석 통보를 조금 전에 했으니까. 하지만 황제는 안타깝다는 얼굴로 빈자리를 바라보다 마델레이네 공작을 향해 말했다.


“공녀와 이야기가 제대로 안 되었나 보군.”

“……송구합니다. 폐하.”

마델레이네 공작이 고개를 숙이자 좌측의 귀족파에서 누군가 으스대듯 말했다.


“아무래도 마델레이네 공녀는 마음이 들뜬 모양입니다. 정숙지 못하게 대공저에 있다는 소문이 떠도는 것도 믿기지 않았는데. 폐하께서 친해 초청한 회의에도 늦다니. 원.”

에텔 후작이었다. 황제는 재미있다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아직 태자와 마리아 에텔의 약혼을 공표하지 않았는데 벌써 에텔 후작은 꼭 제 딸이 태자비라도 된 것처럼 목이 뻣뻣했다.

옆에 있는 귀족파의 수장인 엘킨 공작 또한 그를 말리지 않았다. 황후의 오라비인 엘킨 공작의 머릿속에는 귀족파의 영애를 태자비로 추대하려는 원대한 계획이 그려져 있는지도 몰랐다.

귀족파는 너무 욕심이 많았다.

그러니 태자비로 올리기에 가장 좋은 영애는 역시 마델레이네의 첫째 공녀였다.

사생아라는 딱지가 붙어 귀족파에게 흠집 잡히기도 쉬우면서 황제파에게 힘을 실어 줄 수 있는 유일무이한 존재.

동시에 제 개가 그토록 바라는 여자.

황제는 웃음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 년간의 유예에 대한 논의는 마지막으로 미루고 먼저 회의를 시작하지.”

“예. 그러면 첫 번째 안건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헤페르티와의 협약은 내달…….”

대신의 말을 들으면서 황제는 즐거운 눈으로 저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혼인에 대한 명확한 답을 듣고 싶다며 대공이 보내온 편지가 수십 통이었다. 그토록 바라는 혼인을 미끼로 삼았으니 분명 허둥지둥 달려오겠지.

혼인을 허락하는 줄 알고 기대하는 얼굴 위로 일 년간의 유예를 명한다면 대공의 그 화려한 얼굴이 어떻게 일그러지려나.

상상만으로도 유쾌해졌다.

.
.
.

하지만 회의의 안건들이 다 논의될 때까지 대공은 나타나지 않았다.

열리지 않는 문을 바라보던 황제가 슬며시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럴 리가 없는데.

혼인을 누구보다 바랐던 대공이 갑자기 마음이라도 바꾼 걸까.

황제의 침묵을 틈타 귀족들의 수군거림이 퍼졌다. 가장 앞장선 사람은 단연 에텔 후작이었다.


“다망한 대공 전하라면 시간 감각이 없으실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옆에 있다는 공녀라도 시간을 지켰어야 했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에텔 영애라면 절대 그러지 않을 텐데 말이죠.”

은근히 공녀를 까 내리는 말들이 이어졌다. 동시에 에텔 영애를 추켜세우는 귀족들이 늘어났다. 에텔 후작이 수탉처럼 가슴을 부풀리는 게 우스울 지경이었다.

황제는 쯔, 혀를 찼다. 앞으로 일 년간 에텔 후작 때문에 골치 꽤나 썩을 듯싶었다.

대공이 오지 않는 것만으로도 속이 부글부글 끓던 황제는 결국 탁, 황좌의 팔걸이를 내리쳤다. 제법 커다란 소리에 귀족들의 시선이 모두 황제를 향할 때였다.


“지고하신 태양,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근사한 목소리는 황제에게 쏠린 시선을 단숨에 앗아갔다. 황제가 억지로 입매를 올리며 문가를 바라보았다.

비칸데르 대공.

허둥지둥 달려올 거라 예상했던 놈은 더없이 여유로운 얼굴로 저를 마주하고 있었다. 그것도 공녀와 파트너처럼 복장까지 맞춘 상태로.


 


“……늦었군, 대공. 회의가 시작했던 한참 전부터 그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제야 오다니.”

“그러게 말입니다. 폐하께서 보내신 참석 통지가 조금 전에야 도착했지 뭡니까. 폐하께서도 일부러 늦게 보내신 건 아닐 테니 양해해 주시죠.”

비꼬는 말투는 오히려 황제를 탓하고 있었다. 귀족들 앞에서 정곡을 찔린 황제가 하, 노여운 목소리를 냈다.


“그래서 대공. 지금 하고픈 말이 뭔가. 설마 나를 탓하는 건가?”

“그럴 리 있겠습니까. 폐하. 첫 회의는 이렇게 늦었지만, 다음 회의 때부터는 이르게 도착할 수 있게 제대로 통지를 받고자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다음 회의라니.

황제는 움찔한 것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탁한 숨을 뱉으며 웃었다.

전쟁터를 전전하게 하면서 이제껏 대공의 회의 참석을 막은 건 황제였다. 대공이 제도에 기반 세력을 만들지 못하게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으니까 말이다.

오늘만 해도 대공이 전전긍긍하며 혼인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오는 것만 바랐을 뿐이었는데.


“……바쁜 대공을 매 회의에 부를 수야 없지.”

“전쟁도 끝난 마당에 바쁠 일이 뭐 있겠습니까. 이제 저 역시 비칸데르의 가주로서 폐하의 곁을 지키겠습니다.”

비칸데르의 가주.

대공이 스스로를 가주라 칭하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귀족들이 눈앞에 벌어진 상황에 웅성거리는 사이, 황제가 이를 악물며 날 선 눈으로 대공을 바라보았다.

지금, 제 개가 저를 향해 이를 드러냈다. 더 이상 황제의 개가 아닌 대공으로 살겠다고.


“……대공이 그토록 바라는 건 귀족 회의에 참석하는 게 아닐 텐데.”

이건 경고였다.

계속 이런 식으로 군다면 절대로 백수정 광산을 얻을 수 없을 거라는 경고. 이 경고가 먹히지 않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제 공무의 시작은 헤페르티와의 협상이 좋겠습니다. 폐하.”

대공의 입매에 위험한 미소가 걸렸다.

순간 황제는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제 개의 목줄은 영원하다 생각했다. 늘 손아귀에 있다고 생각을 했는데 손가락 사이로 쏟아지는 모래알처럼 놈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백수정 광산이 통하지 않다니. 이게 무슨 일이람. 어떻게든 황녀와의 혼인으로 확실하게 놈을 묶었어야 했는데.

뒤늦은 후회에 입에서 쓴맛이 났다. 하지만 황제는 이게 끝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았다.


“……그 문제는 차차 하지. 오늘 급한 것은 대공과 마델레이네 공녀의 혼인에 대한 문제니까.”

황제의 목소리가 나직하게 떨어졌다. 동시에 에텔 후작의 눈 역시 심상찮게 번뜩이며 올리비아를 향했다.

지금이 기회였다.

제 귀한 막내딸을 태자비 자리에 올릴 완벽한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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