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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6. 네 탓이 아니야 (36/151)


#036. 네 탓이 아니야
2022.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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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방에 혼자 있는 건 처음이었다. 에셀라는 불안한 마음을 누르면서 두 손을 맞잡았다. 그러쥔 핑크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오늘따라 차갑게 느껴졌다.

목이 바싹 말랐다. 따뜻한 차라도 마시고 싶은데. 무뚝뚝해 보이는 집사가 가져다준 차는 이미 식은 지 오래였다.

이곳에 온 지 시간이 제법 된 것 같은데 문은 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저도 모르게 기대를 담고 문가를 바라보던 에셀라의 머릿속에 문득 차가운 목소리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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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하면 들여보내.”

 
그 말이 맞는데. 계속 에셀라는 문을 바라보게 되었다. 에셀라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기대하지 말자. 이곳에 들어온 것만으로 제게는 과분한 일이었다. 그러니까. 언니를 볼 거라고 기대하지 말자.

에셀라는 계속해서 대공의 말을 곱씹었다.

어둠이 깃들어 갈 무렵, 에셀라는 베로니카와 샐리의 도움으로 마델레이네저를 빠져나와 비칸데르 대공저에 도착했다. 굳게 닫힌 대공저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저 외출 중이라는 언니가 오길 기다릴 뿐이었다.

어슴푸레하던 하늘이 어둑해질 때였다. 마차 한 대가 문 앞에 멈추었을 때, 저 차가운 목소리가 에셀라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무심코 올려다본 마차의 창문에는 비칸데르 대공이 비쳐 보였다.

숨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남자. 동시에 사람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오싹한 남자.

평소의 에셀라라면 바짝 얼어붙어 있었을 거다. 하지만 무슨 용기였을까. 에셀라는 손에 든 핑크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꽉 쥐며 대공을 향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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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에셀라 마델레이네가 위대한 영웅 비칸데르 대공 전하를 뵙습니다. 언니한테 제가 왔다고 말만 전해 주세요.”

 
늘 우아함과 침착함을 잊지 말라고 교육받은 것은 어디로 갔는지, 에셀라의 입에서 나오는 목소리가 형편없이 떨렸다.

에셀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대공이 한쪽 입꼬리를 비틀어 웃었다. 저를 바라보는 붉은 눈이 섬뜩하게 번뜩였다. 사람을 우악스레 누르는 기운에 에셀라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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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렇게 멍청한 말만 계속할 거라면 그대로 내쫓고.”

 
그 말이 끝이었다. 에셀라가 더 말을 하기도 전에 대문이 열리고 마차가 떠나갔다. 뒤에서 덤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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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말에서 내린 갈색 머리 기사가 저를 바라보며 물었다. 사람을 얼어붙게 만들던 대공보다 훨씬 편안한 기운에 에셀라가 조심스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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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를 보러 왔어요. 언니한테 제가 왔다고 전해 주시면 안 될까요?”

 
오늘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몰래 나왔으니 앞으로 저는 집에만 있어야 할지도 모르니까. 언니를 보고 꼭 말해야 했다.

하지만 에셀라의 굳센 마음과 달리 갈색 머리 기사는 저를 빤히 보다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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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녀님이 오셨다는 걸 굳이 올리비아 아가씨께 알려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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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게 무슨…….”

 
아가씨라니. 언니는 마델레이네 공녀인데.

그 잘못된 호칭을 지적하기도 전에 갈색 머리 기사는 고저 없는 말투로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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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께서는 공녀님이 온 걸 아신다면 분명 만나려 하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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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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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께서는 착하시니까요. 그걸 아는 공녀님은 아가씨를 배려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찾아오셨고요.”

 
순간 에셀라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얼얼했다. 남인 주제에 무엇을 안다고 저렇게 무례한 건지. 에셀라는 당장이라도 벌컥 화를 내고 싶었지만 입술이 덜덜 떨렸다.

에셀라는 그저 언니한테 사과를 하고 싶었다. 정말 이제까지 너무 많이 잘못해서. 언니한테 울면서 용서를 빌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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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녀님이 이곳에 왔다는 것만으로도 아가씨께서는 선택지가 좁아지십니다. 볼 건지 말 건지를 결정하는 것을 떠나서 ‘지금 당장’ 볼 건지 말 건지를 결정하게 되니까.”

 
그런데 언니에게 자신을 만나고 싶은지 물어보지 않고 찾아온 것조차 잘못이 될 줄은 몰랐다. 사실만을 덤덤히 말하는 기사의 목소리에는 책망조차 없었다.

사과를 하겠다고 오면서 고민한 적도 없는 부분이었다. 언니가 저를 만나고 싶은지 아닌지. 그게 지금인지 아닌지. 그런 것 따위는.

어떻게 남이 더 언니를 생각할 수 있을까. 가족인 저보다.

에셀라의 고개가 스르르 숙어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기사가 느리게 다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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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께서 나올 거라는 기대 자체를 하지 마십시오. 그러신다면 차 정도는 드시고 가실 수 있을 겁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에셀라가 할 수 있는 답은 하나뿐이었다. 에셀라는 고개를 힘없이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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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게요.”

 

.
.
.

에셀라는 몇 번이고 문을 바라보았다. 굳게 닫힌 문은 애초에 열린 적도 없던 것처럼 그대로였다. 실망감이 차곡차곡 쌓여 갔지만 에셀라는 그럴 때마다 제 자신을 향해 중얼거렸다.

기대하지 말기로 하고 들어온 거잖아. 언니가 안 올 수도 있어.

심장을 묵직하게 때렸던 가정은 점점 사실이 되었다.

에셀라는 식은 찻잔을 살그머니 손바닥으로 감싸 보았다. 차가운 느낌이 오히려 마음을 다독였다. 그래. 어차피 지금 언니를 만난다고 했어도 제대로 말을 하지 못했을 거였다.

고작 미안하다는 말밖에 못 했겠지.

언니한테 해서는 안 될 말을 해서 미안하고, 엄마의 죽음을 언니 탓으로 몰아갔던 게 미안하고, 아버지와 오라버니들이 언니를 함부로 대하는 것을 막아서지 못해서 미안하고.

내가 언니와 논 다음 날마다 언니가 혼나는 것을 알면서도 놀러 갔던 것도.

사 층의 다락방 아래에서 언니가 오기만을 기다렸던 것도.

불현듯 에셀라의 눈이 커다래졌다. 찻잔을 잡고 있던 손에서 힘이 풀어졌다.

그때 언니는 고작 여덟 살이었다. 충분히 유령을 무서워할 나이. 저만 해도 지금 이 낯선 방이 불안한데. 왜 언니가 유령을 무서워할 거라고는 생각도 안 했던 걸까.

머릿속에 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늘 한 걸음 물러난 자리에서 웃고 있던 얼굴.

언니는 어떻게 늘 웃는 얼굴이었을까. 힘들었을 텐데 표 내지 않는 게 익숙해서였다면…….

제가 허투루 넘겼던 일들 중에서 언니한테 상처가 되었던 일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목 안쪽이 날카로운 무언가로 할퀴어진 느낌이었다. 코끝이 따끔거리고 먹먹하게 울렸다. 바보같이 대공저에서 혼자 이렇게 울 수는 없는데.

에셀라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언니를 볼 낯이 없었다.

나중에, 나중에 다시 와야 했다. 제가 생각한 얄팍한 미안함 말고 진짜로 언니를 생각하는 편지를 써서 보내야 했다.

에셀라가 문가로 다가가던 순간이었다. 문이 열리는 동시에 낯익은 얼굴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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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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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셀라.”

믿기지 않는다는 듯 예쁜 초록색 눈을 동그랗게 뜬 사람은 바로 올리비아였다. 이게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자 에셀라의 입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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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제가 있잖아요. 언니한테 미안한 게 너무 많은데. 지금 이렇게 찾아온 것도 그렇고.”

볼썽사나울 정도로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스스로도 무슨 말을 하는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두서없는 말이었다.

올리비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저를 바라보았다. 저렇게 감정을 헤아릴 수 없는 표정은 처음이라서 에셀라는 왈칵 겁이 났다.

금방이라도 뒤돌아서 언니가 갈 것만 같아서. 에셀라는 덜컥 심장이 내려앉았다. 그래서 정리조차 못 한 채 하고 싶었던 말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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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한테 사과를 하러 왔어요. 갑자기 와서 미안해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언니한테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되었어요.”

에셀라가 눈을 질끈 감았다. 머릿속에 제가 했던 말들이 뒤엉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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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때문에 정말……. 우리 엄마가 죽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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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대지 마! 더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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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때문이었어. 엄마가 갑자기 사라진 게. 다 언니 때문이었다고!”

 
함부로 비난했고, 함부로 재단했다. 어떻게 언니한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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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오라버니들이 언니한테 하는 것을 보고서 넘겨서도 안 되었고.”

한 번이라도 제가 언니 편을 들었다면 어땠을까. 베로니아의 티 파티에 언니와 간다고 했다면. 아버지가 언니의 주스를 본 척도 하지 않을 때마다 대신 아버지에게 갖다 드렸으면.

지나간 일들이 유리 조각처럼 깨 부서져서 마음에 박혔다.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이 울컥울컥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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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나 대신 황궁에서 힘들었어도 안 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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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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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만 무서운 사 층 다락방에 있었어도 안 되었고.”

말을 하면 할수록 눈을 떠서 언니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에셀라의 목소리가 점점 녹녹해졌다.

울면 안 되는데. 아직 할 말이 너무 많은데.

문득 에셀라는 눈을 떴다. 이 모든 게 마지막이면 언니의 얼굴이라도 보고 싶었다. 고개를 들어 올리비아를 마주 보는 순간, 에셀라는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언니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렸었는데. 지금 언니는 제가 본 이래로 가장 예쁘게 반짝거리고 있었다.

마치 이곳에 있는 게 가장 편안한 것처럼.

그리고 그 사실을 알아채자마자 에셀라는 입술을 잘근 씹었다. 정말 세게 깨물었는데도 아프지 않아서. 에셀라가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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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떡해.”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떨림 가득한 탄식이었다. 에셀라의 콧날이 붉어지더니 이내 보라색 자수정 눈동자 위로 투명한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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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미안해요. 진짜, 진짜 미안해.”

에셀라가 끅끅 울음을 삼키며 드레스 소매를 잡아당겨 얼굴을 닦았다. 멍하니 에셀라를 바라보던 올리비아가 에셀라의 팔을 잡은 건 결코 충동만은 아니었다.

에셀라가 놀란 얼굴로 올리비아를 바라보았을 때, 그제야 올리비아의 어지럽던 마음이 아주 조금 정리되었다.

에셀라가 무슨 말을 하는지 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올리비아는 느리게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동그라니 예쁜 에셀라의 이마를 툭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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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갑작스러운 딱밤에 에셀라가 울던 것도 멈추고 올리비아를 올려다보았다. 올리비아는 부러 엄한 얼굴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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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은 정말 네가 잘못한 거야. 에셀라.”

아주아주 많이 속상했다. 한참이나 에셀라의 말이 떠올라 저를 괴롭혔지만 올리비아는 애써 꾹꾹 욱여 삼켰다. 제 말을 들어 주지 않던 에셀라의 태도까지도.

그때가 떠오른 건 에셀라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에셀라의 눈에 다시 눈물이 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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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다른 거는.”

올리비아는 잠시 말을 끊었다. 에셀라가 제게 했던 말 외에 에셀라가 미안하다고 했던 것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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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건, 네 탓이 아니야. 에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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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에요. 그것도 다…….”

에셀라가 고개를 저으며 다시 말했다. 올리비아는 에셀라의 어깨를 가볍게 잡았다. 울어서인지 에셀라의 몸이 뜨거웠다. 꼭 어렸을 때처럼. 그래서 올리비아는 더 분명하게 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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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셀라, 네 탓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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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네 탓이 아니야. 꼬마야.”

 
에셀라의 얼굴 위로 공작 부인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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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하고 착하고, 한없이 우아한 분. 잔뜩 운 얼굴로도 절대로 올리비아를 탓하지 않았던 분.

크면서 알았다. 가장 쉽게 탓할 수 있는 저를 두고 남편인 마델레이네 공작을 탓했던 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에셀라가 밉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에셀라한테 모든 잘못을 뒤집어씌우고 싶지는 않았다.

공작 부인이 그렇게 알려 줬었으니까.

그러니까 공작이 저를 미워하는 것도, 콘라드와 제이드가 저를 멸시하는 것도. 사 층의 무서운 다락방에 있었던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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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네가 말한 거에 대해서 사과했으니까. 괜찮아.”

모든 건 다 공작의 탓이었고 콘라드와 제이드의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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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울지 마.”

울지 말라고 했는데. 그 말을 듣자마자 에셀라가 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 둥근 얼굴 위로 눈물방울이 계속 흘렀다. 저렇게 울면 머리 아플 텐데.

반사적으로 눈물을 닦아 주려다 올리비아는 멈칫했다. 아주 오랫동안 에셀라를 보듬어 준 적이 없었다. 에셀라한테 다가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올리비아는 어색하게 어깨를 토닥였다. 한 번, 두 번. 에셀라의 눈이 커다래졌다.

갑자기 에셀라가 올리비아를 껴안았다. 낯선 온기가 올리비아를 감싸고, 동시에 울던 에셀라가 제 등을 토닥였다.

늘 어리다고만 생각했는데 저를 끌어안은 에셀라의 품이 따뜻해서.

저를 토닥이는 이 손길이 어색해서.

올리비아는 저도 모르게 에셀라를 마주 안았다. 따끈했던 온기가 아주 오랜만에 손바닥 가운데서부터 바깥으로 퍼져나갔을 때.

에셀라만큼이나 올리비아의 얼굴이 젖어 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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