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8. 이제, 가족이 생길 것 같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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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 이제, 가족이 생길 것 같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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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 이제, 가족이 생길 것 같거든요
2022.06.05.
“하지만 공녀님. 태자 전하께서 늦게라도 티아제 궁에 들른다고 하셨는데.”
돌아간다는 올리비아의 말에 소프론 남작 부인이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올리비아는 잠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황녀와의 대화가 생각보다 길어져 지금도 늦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어둑한 사위가 보이기는 하는지 부인이 올리비아의 시선을 피했다.
“저녁 시간이 늦어서 말이죠. 다음에 다시 연락을 드리고 오겠어요.”
단호한 올리비아의 말에 부인은 더 이상 권유하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숙이며 배웅을 할 뿐이었다.
마차 앞에 있던 대공이 당연하다는 듯 손을 내밀었다. 어느새 이 에스코트가 익숙해졌다. 올리비아가 마차에 오르자 대공은 날랜 동작으로 그 앞에 앉았다.
문이 닫히고 마차가 출발했다. 창문 밖으로 익숙한 풍경들이 지나갔다.
“후원은 어떠셨어요?”
“아가씨 말대로 근사한 곳이더라고요. 더 못 보는 게 아쉬울 정도던데요?”
“저도요.”
올리비아는 살짝 웃으며 바깥을 바라보았다. 오늘이 제 궁과 마지막 날인 줄 알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는데. 한 번 더 와야 한다니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언제 레오포드를 다시 보러 오면 되려나.
날짜를 헤아리던 올리비아는 빤한 시선을 느끼고 대공을 마주했다. 대공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올리비아의 손에 들린 서류 봉투를 보고 있었다.
올리비아가 장난기 번진 얼굴로 봉투를 살짝 흔들자 대공이 푸스스 웃었다.
“재밌는 거라도 들고 온 모양이네요?”
“네. 승리의 증표랄까요?”
올리비아는 일부러 콧대를 세웠다. 지참금으로는 부족한 면이 있었지만 그래도 제 마음에 드는 재산이 생겼다. 그리고 대공이라면 쓸모를 막론하고 제 승리를 좋아해 줄 것 같았고.
“대단한데요?”
예상이 들어맞는다는 건, 기대가 충족된다는 건 이렇게 달콤하고 몽글거리는 느낌이었다.
진심으로 저를 추켜세우는 말에 올리비아는 저도 모르게 환하게 웃었다. 그 미소를 본 대공은 잠시간 말을 잇지 못했다. 머리카락에 가려진 대공의 귀 끝이 붉게 달아오른 것을 올리비아는 보지 못했다.
“……뒤에서 열심히 응원한 나한테는 뭐 없어요?”
“흠. 글쎄요. 전하께서는 모든 걸 다 갖고 계시지 않나요?”
올리비아는 고심하듯 대공을 바라보았다.
보석이야 제가 선물한다고 해도 대공이 먼저 거절했다. 이제는 값비싼 선물을 사 줄 여유도 없었다. 대공도 잘 알고 있을 텐데.
눈을 가늘게 뜬 채 탐색하듯 대공을 보던 올리비아가 무언가를 깨달은 듯 눈이 커다래졌다. 대공이 빙그레 웃기도 전에 올리비아가 봉투를 꼭 껴안았다.
“그러셔도 이건 안 돼요.”
아직 이 폐광산은 보여 줄 수 없었다. 그 삭막한 폐광산을 어떻게 할지는 구상조차 제대로 못 했다. 사람을 거주시키기에는 메말랐고, 관광 자원으로서는 상품성이 없고. 좋은 생각이 나기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릴 듯했다.
올리비아는 진심으로 말했는데 대공은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속눈썹이 느리게 얼굴에 음영을 드리웠다.
제가 너무 칼같이 말했나.
올리비아가 곰곰이 제 말을 되짚어 보던 찰나, 대공이 시원스레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설마 내가 아가씨의 승리를 빼앗을까요.”
눈매가 나른히 휘어 웃고 있는 모습을 보니 올리비아는 조금 겸연쩍었다. 혼자 작게 아니면 말고, 중얼거리기도 했다.
대공은 얼굴에 담뿍 웃음을 담은 채 무릎 위에 팔꿈치를 대었다. 그리고 올리비아 쪽으로 몸을 기울인 채 턱을 괴었다.
“물질적인 거 말고 다른 거를 좀 바라고 싶은데.”
올리비아의 얼굴이 밝아졌다. 물질적인 게 아니라면 제가 해 줄 수 있을지도 몰랐다.
“말씀만 하세요.”
“좀 더 친근하게 불러 주기?”
“네?”
“그렇잖아요. 원래 관계는 말에서 티가 난다는데 아가씨는 아직도 나를 보면 어렵게 대하고, 매번 꼬박꼬박 호칭 부르며 거리감을 유지하고.”
불만을 토로하는가 싶더니 숫제 하소연이었다. 올리비아가 피식 웃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은 대공이 아주 조금 더 올리비아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러니. 한번 불러 볼래요?”
“…….”
“설마 내 이름을 모르는 건 아니겠죠?”
“……그럴 리가요. 그날 이후로 전하의 이름을 아주 잘 알게 되었는 걸요.”
“이름을 밝힐 수 있어 영광입니다. 에드윈 로웰 비칸데르입니다.”
장난기 가득한 눈으로 제게 말했던 이름.
에드윈 로웰 비칸데르.
올리비아는 저도 모르게 대공의 이름을 중얼거리다 아차 했다. 눈앞의 눈치 빠른 남자는 이미 웃고 있었다.
“뭐라고요? 그렇게 작게 말하면 잘 안 들리는데.”
이미 다 들은 얼굴로 뻔한 거짓말을 한다.
이름을 부르는 게 뭐 대수라고. 올리비아는 별거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다시 한번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왜 안 불러 줘요?”
“……아까 불렀잖아요.”
“난 못 들었는데?”
대공은 눈을 커다랗게 뜨며 언제 그랬냐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별거 아닐 텐데. 고작 이름 하나 부르는 게 이렇게 긴장될 일일까.
잠시 생각을 하던 올리비아가 아, 하고 작게 감탄했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이름을 허락받는 일이 없었어서 이러는지도 몰랐다.
문득 지난번 거리낌 없이 레오포드의 이름을 부르던 마리아 에텔이 떠올랐다. 이름을 부른다면 이제 저는 정말 대공과 친밀한 관계가 되는 거겠지.
묘한 기분이 가슴을 훅 스쳤다.
올리비아는 잠시 대공을 마주했다. 불타는 루비처럼 반짝이는 붉은 눈이 기대를 가득 담고 올리비아를 바라보았다.
“어차피 저희는 혼인을 할 관계니까.”
“그렇죠. 혼인할 관계에 이름 부르는 건 아주 당연한 일이고.”
“안 하면 더 어색해 보일 수도 있으니까.”
굳이 핑계를 붙이는 작은 얼굴이 점점 상기되었다.
톡 건드리면 터지려나. 대공은 힘주어 제 두 손을 마주 잡았다. 간신히 분위기를 만들었는데 성급하게 굴면 아가씨는 토끼처럼 도망갈지도 몰랐다.
귀엽기도 해라.
순진한 초록색 눈망울이 조금 흔들렸다. 드디어. 붉은 입술이 조금씩 벌어지려던 참이었다.
“전하.”
걸걸한 목소리가 마차 안에 끼어들었다. 올리비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느리게 열리던 입술이 쏙 다물어졌다.
치밀어 오르는 화를 간신히 누르면서 대공은 마차의 마부석 쪽을 바라보았다.
“뭐야.”
잇새로 새어 나오는 목소리가 묵직했다. 토끼 눈이 된 올리비아를 최대한 배려한답시고 참았지만, 저도 모르게 감정이 흘러 나간 모양이었다.
하하. 대공이 어색하게 웃었다. 마부가 난처한 듯 말했다.
“대공저 앞에 마차가 한 대 서 있는데 확인해 보셔야 할 듯싶습니다.”
“마차?”
어떤 마차이든 간에 가만두지 않겠다고 벼르며 창문 바깥을 본 대공의 생각은 더욱 굳건해졌다. 올리비아도 궁금한지 창문 쪽을 바라보려고 했다.
대공이 커튼을 친 건 그때였다. 올리비아가 눈을 깜빡였다.
이게 무슨.
“달빛이 너무 강해요.”
“네? 갑자기요?”
“밤이 깊어 가니까요. 밤공기도 찬데 커튼을 치는 게 낫겠어요.”
뜬금없는 소리였다. 밖에 있는 게 뭐기에 하는 궁금증보다도 대공이 이러는 게 더 재미있었다.
어느새 이름을 불러 달라는 조름은 쏙 들어갔다. 올리비아는 일부러 바깥이 궁금한 척을 했다.
커튼을 잡고 놓지 않던 대공은 출발하라며 마부를 재촉했다. 다시 마차가 빠르게 속력을 낼 때였다.
“올리비아!”
제 이름을 부르는 커다란 목소리가 익숙했다. 올리비아는 저도 모르게 대공의 손을 잡아 내렸다. 손이 순순히 내려가고, 다시 커튼이 펄럭이며 창밖이 보였다.
“제이드…….”
올리비아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대공저의 견고한 대문 앞에 반짝이는 은발의 남자가 서 있었다.
부정할 수도 없게, 대공저 앞에 있는 마차는 마델레이네 문양이 찍혀 있었다.
달빛에 제이드의 얼굴이 보였다. 날 선 얼굴이 올리비아와 마주하는 순간 대공이 다시 커튼을 쳤다.
“못 본 걸로 해요. 그냥 지나쳐도 괜찮아요.”
마음을 다독이듯 다정한 말 위로 다시 한번 제이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와. 올리비아.”
대공은 상관없다는 듯 저를 향해 상냥하게 웃었지만 올리비아는 바깥의 제이드가 신경 쓰였다.
왜. 도대체 왜 이 늦은 밤에 대공저까지 왔을까.
이제까지 찾지도 않았으니 저를 데리러 온 것도 아닐 텐데.
올리비아가 쓴웃음을 삼키며 대공을 바라보았다. 쳐다만 봤는데도 대공은 올리비아의 뜻을 알아챈 모양이었다. 나직이 한숨을 쉰 대공이 입술을 뾰로통하게 내밀었다.
“정말 마델레이네 경과 이야기하게요?”
“앞으로 찾아오지 못하게 내쫓아 버리려고요.”
반은 사실이었고, 반은 다른 목적도 있었다. 올리비아가 덤덤하게 말했다.
대공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눈에 훤했다. 하지만 제이드로 인해 또 상처를 받기에는 이미 날카로운 말들로 무뎌진 지 오래였다.
“뭐. 아가씨가 원한다면.”
대공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마차를 세웠다. 훌쩍 마차에서 내린 대공이 올리비아를 등진 채 날카로운 눈으로 제이드를 바라보았다.
“타이밍을 더럽게도 못 맞추는군. 부단장.”
“……전하를 뵙습니다.”
서리처럼 냉랭한 말에도 불구하고 제이드는 주눅 드는 대신 올리비아한테 시선을 고정했다.
순식간에 다정히 낯을 바꾼 대공이 올리비아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대공의 손을 잡은 올리비아가 무표정하게 제이드를 바라보았다.
순간 제이드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어떻게…… 올리비아가 나를 저렇게 바라볼 수 있지?
가슴 한편이 훤히 빈 것처럼 시렸다. 이 느낌은 지난번 승전 연회 마지막 날, 올리비아가 저를 지나쳤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었다.
“……제 삶에서 마델레이네를 지울 거예요.”
하지만 제이드는 이를 악물었다. 거짓말일 거다. 올리비아가 마델레이네에 얼마나 집착하는지는 제가 더 잘 알았으니까. 그러니 그렇게 괴롭혔어도 마델레이네저를 나가지 않았겠지.
“떨어져 있을게요. 급하면 바로 소리 질러요.”
마지막까지 제이드를 향해 서늘한 시선을 보낸 대공이 저만치 물러났다.
마치 가족처럼 올리비아를 싸고도는 모습이라니. 대공을 노려보던 제이드는 문득 혼란을 느꼈다.
가족처럼.
이 보편적인 수식어가 낯설게 느껴졌다. 가족이라면 감싸 주어야 한다. 그렇다면 눈앞에 있는 올리비아는 제게 무엇인 걸까?
제이드는 더 생각하지 않았다. 대신 응어리처럼 뭉친 답답함을 토로하기 위해 벌컥 화를 냈다.
“너 도대체 여기에서 뭐 하는 거야?”
“…….”
“마델레이네를 지운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만 하고 사라지면 다야? 내가, 내가.”
올리비아를 보자 이상한 안도감이 들었다. 그 때문인지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제대로 생각이 나지 않았다.
에셀라는 너를 봐야겠다며 여길 오려다가 근신당했어. 네 하녀는 에셀라 옆에서 같이 울고 있어. 그러니 집으로 와.
이 간단한 말이 혀끝에서 나오지 않았다. 올리비아가 느리게 고개를 든 건 그때였다.
“……영지를 관리하는 장부는 제 왼쪽 서랍 두 번째 칸에 있어요. 아직 에셀라가 장부를 보기는 어려울 거예요. 집사와 데릭 남작과 함께 이야기하세요. 날짜별로 관리하는 품목이 달라요. 이건 편지로 보내 둘,”
올리비아는 지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하. 자신이 집안에서 맡았던 일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내세우면 이 상황에 대한 면죄부라도 될 거라고 생각한 걸까.
제이드는 머리를 쓸어 올리며 올리비아의 말을 끊었다.
“그런 건 됐어.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인수인계예요.”
지독히도 건조한 목소리였다.
제이드는 눈을 깜빡이며 올리비아를 바라보았다. 평소의 올리비아와 달랐다. 그러니까.
“말씀드렸잖아요. 저는 이제 마델레이네로 가지 않는다고.”
웃지 않는다.
“그러니 추후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지금 확실히 전달할게요.”
한마디 다정하게 해 준 적 없어도 늘 웃던 올리비아가.
“너, 미쳤어?”
제이드는 반사적으로 올리비아의 어깨를 붙잡았다. 아. 올리비아가 눈가를 찡그렸다.
이것도 이상했다. 올리비아는 이렇게 아픔을 티 내는 아이가 아니었다. 늘 강한 애였다. 제가 심술을 부려도 다 받아 줄 만큼 튼튼한 아이였는데.
어느새 손에서 힘이 풀렸다. 그 틈을 타고 올리비아가 뒤로 두 걸음 물러났다. 초록 눈이 적당한 경계를 담고 제이드를 바라보았다.
말도 안 돼. 제이드는 혼란스러웠다.
제이드는 늘 화에 휩싸여 살아왔다. 동생인 줄 알았던 올리비아 때문에 어머니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는 그 순간부터 늘 마음속에 커다란 불이 타올랐다.
그래서 전쟁터에 나갔다. 잡념이 없어지길 바라며 갔던 그곳에는 올리비아와 닮은 애들이 너무 많았다.
전쟁에서 공을 세우고 집으로 돌아가 가족의 일원이 되길 바란다며 전쟁터까지 둥둥 떠내려 온 귀족의 사생아들. 버려진 것을 알고 시니컬하게 공을 세우고 한밑천 잡겠다는 녀석들.
그들에게서 제이드는 늘 올리비아를 봤다. 그런데.
저건 제가 알던 올리비아가 아니었다.
늘 바보처럼 웃으면서 무언가를 바라듯 저를 보는, 그런 애가 올리비아였는데.
“……끈질기고 독하게 이제까지 버텨 놓고, 고작.”
“고작이요?”
여상한 목소리가 제이드의 말을 눌렀다. 제이드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마델레이네 경.”
“그렇게 부르지 마! 너도!”
너도 마델레이네잖아.
이 짧은 한마디가 목에 걸린 가시처럼 나가지 않았다. 반사적으로 제이드는 올리비아를 보았다. 늘 아무렇지 않은 척 욱여넣던 체념이 올리비아의 얼굴에서 보이지 않았다.
“……저는 끈질기고 독하게 버틴 게 아니에요.”
올리비아의 초록색 눈을 마주하는 순간 제이드의 말문이 턱 하고 막혔다.
늘 무언가를 바라던 저 눈빛이 공허했다. 감히 제가 무언가를 엿본 느낌이었다.
“저는 그냥, 제 가족한테 최선을 다한 것뿐이에요.”
가족. 제이드의 얼굴이 희게 질렸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올리비아가 가만히 마차를 바라보았다.
“언젠가는 봐 주겠지.”
“…….”
“언젠가는 내 노력을 알아봐 주겠지.”
“…….”
“언젠가는 내 편이 되어 주겠지.”
모든 말들이 비수처럼 제이드를 찔렀다. 숨을 쉴 때마다 폐부가 아팠다. 이상한 느낌이었다. 제이드는 세게 주먹을 쥐었다.
멍하니 마차를 보던 올리비아가 느리게 웃었다.
“언젠가는, 가족으로 받아들여 주겠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인 것 같은데. 제이드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입 안쪽 살을 세게 깨무는 것밖엔 없었다.
깨질 것처럼 아슬한 웃음의 끝에서 올리비아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어요.”
“…….”
“이제, 가족이 생길 것 같거든요.”
메마른 목소리 위로 잔잔한 생기가 퍼졌다. 하지만 표정을 확인하기도 전에 올리비아가 돌아섰다. 그리고 대공저의 대문으로 다가갔다.
철옹성처럼 닫혀 있던 문이 올리비아를 향해 활짝 열렸다. 그 앞에 있던 대공이 올리비아한테 다가간 순간.
제이드는 다리의 힘이 빠진 듯 휘청였다. 눈앞이 아득하게 물들었다.
말도 안 돼. 제가 보이는 우스꽝스러운 모습보다도 저 안으로 들어간 올리비아가 더 신경이 쓰였다.
동시에 올리비아의 목소리가 주문처럼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런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어요.”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