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27. 지참금 (27/151)


#027. 지참금
2022.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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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참금?”

단어를 곱씹던 황녀가 눈을 치켜떴다.

비칸데르 대공의 청혼이 제가 아닌 올리비아한테 향했다는 사실이 머리를 번뜩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니까 지금 저 반쪽짜리가 황녀인 자신을 농락하고 있는 것이었다.

황녀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이내 새빨갛게 얼굴이 달아오른 황녀는 들고 있던 장부를 갈기갈기 찢었다. 지금 뭐라도 찢지 않으면 분한 속이 타 버릴 것 같았다.

찢어진 종이가 값비싼 테이블 위로 팔랑팔랑 떨어졌다.

하지만 올리비아는 잔잔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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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습니다. 전하. 원본은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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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가져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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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께서 제 지참금을 마련해 주신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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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닐 시에는?”

황녀는 코웃음을 치며 독기를 가득 담아 올리비아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잘만 말하던 올리비아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초록색 눈이 빤히 황녀인 자신을 마주 보았다. 황녀는 이를 악물었다.

감히. 자신을 저렇게 같은 높이에서 마주 보다니. 그것도 늘 제 명령을 수행하던 올리비아 마델레이네가.

하지만 분한 기분과 동시에 불길한 상상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만약 올리비아가 저 장부를 누설하기라도 한다면. 그래서 만약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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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한 일이 아니라는 게 정말이니, 레이나.’

 
황제의 진노를 생생하게 상상할 수 있었다.

등골이 오싹해졌다.

늘 저를 귀히 여겨 주는 아버지였지만. 제가 사랑 받을 수 있었던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능력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신임을 살 수 있었던 일 대부분의 처리는 올리비아가 담당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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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원한다고?”

황녀가 이를 악 물고 중얼거렸다. 그제야 올리비아가 부드럽게 눈을 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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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습니다. 미네르 영토 정도면 어떠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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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치도 않게!”

황녀가 벌컥 화를 내었다.

올리비아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다. 예상했던 바였다. 황녀의 금고를 부유하게 만드는 재산 중 다섯 번째로 풍요로운 미네르 영토를 내줄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먼저 부른 미네르보다 훨씬 떨어지는 영토라면 어떨까.

올리비아는 크게 욕심을 부리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이러다 황후라도 개입되면 하나도 얻지 못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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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하비엘 지대는 어떠십니까?”

올리비아가 물었다. 주민 수가 적은 하비엘 지대를 받고 모든 것을 묻는다면 황녀도 괜찮다 답할 줄 알았다.

하지만 올리비아가 놓친 게 있었다.

황녀는 이 상황 자체만으로도 정신이 없었다. 머릿속이 엉킨 것 같은 황녀에게는 하비엘 지대가 어떤 곳인지 중요치 않았다.

그저 자신보다 제 재산을 속속들이 아는 올리비아라면 분명 손해 보려 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만 가득했을 뿐이었다.

황녀는 여유로운 척 웃으면서 머릿속으로 재산 목록을 떠올렸다. 올리비아가 일을 하나하나 처리할 때마다 황제가 제게 준 영토들은 모두 다 담배나 포도 등 귀한 작물이 나거나 비옥한 땅으로 수익이 좋은 곳들이었다.

일이 왜 이렇게 된 걸까. 하지만 일이 왜 틀어졌는지 확인하는 것은 나중 문제였다. 황녀는 피해를 최소화해야 했다.

가장 쓸모없지만 올리비아의 입막음을 할 수 있는 곳.

문득 황녀의 머릿속에 번개처럼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던 입가가 부드럽게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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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참금으로 가져가기에 적합한 곳이 하나 있네요.”

여유가 생긴 듯 황녀가 다시 귀족적인 화법으로 말했다. 황녀가 연극처럼 극적인 손짓을 하며 우아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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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녀도 잘 알고 있는 곳이에요. 백수정 광산. 기억하겠죠?”

백수정 광산.

황녀의 명령으로 다녀왔던 북부 인근의 폐광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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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폐광산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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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은근한 황녀의 말에 반박을 하려던 올리비아는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황녀가 눈을 반짝이며 박수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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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처리하면서 나에게 다시 한번 질문을 한 건 그 폐광산이 처음이잖아요.”

폐광산에 관심이 있었던 게 아니라 높은 보안 등급으로 처리된 관련 기록을 알기 위해 물었던 것이었다.

철저하게 관리되었던 황가의 다른 재산들과 달리 폐광산은 언제 어디에서 복속되었다는 기록조차 없었다.

올리비아가 알 수 있는 것은 십여 년 전 황가의 재산으로 등록되었다는 것과 황족만이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정보뿐이었다.

하지만 황녀는 바쁘다는 이유로 그 정보마저 확인해 주지 않았다. 결국 올리비아는 저명한 아카데미의 지질학자들과 함께 북부 인근의 폐광산으로 떠났었다.

황가의 재산임에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지 오래된 곳. 광산의 입구 부근만 가도 스산한 북부의 찬 공기들이 서로 부딪히며 소용돌이 같은 바람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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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광물의 맥이 끊긴 지 오래입니다.”

 
폐광산을 탐색한 지질학자들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러니 황녀의 제안은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광산으로서의 가치도 없고, 앙상한 나뭇가지들만 겨우 있는 메마른 땅. 그곳에는 사람이 터를 꾸릴 수 있는 그 어떤 기반도 없었다.

하지만 쉬이 거절의 말이 떨어지지 않는 것은 왜일까.

올리비아는 입술을 떼다가 다시 다물었다. 황녀가 종알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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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생각해 봐요. 공녀. 내 영토들은 죄다 북부와는 상당히 멀잖아요? 관리하기에는 북부와 인접한 그 광산이 가장 좋지 않겠어요?”

올리비아의 머릿속에 그림처럼 광산의 모습이 떠올랐다. 더 이상 조사할 게 없다며 학자들이 떠나고 난 뒤 마지막으로 들렀던 광산의 모습이 어딘가 기묘했던 게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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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녀. 빨리 결정해요. 나는 제법 좋은 조건이라고 생각하는데.”

가만히 있는 올리비아를 보며 황녀는 꾀듯 말했다. 갈급한 마음이 드러날 것만 같은데도 올리비아의 무표정한 얼굴에서 읽을 수 있는 정보는 없었다.

만약 이걸 거절한다면.

황녀는 제 재산들을 떠올리려고 애썼지만 딱히 쓸모없는 재산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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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네게 쓸모 있는 날이 있을 거다.”

 
황제인 아버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 폐광산을 받을 때만 해도 시큰둥했었는데, 이런 식으로 활용할 수 있을 줄이야.

올리비아가 고개만 끄덕인다면, 이 폐광산은 그야말로 제 쓸모를 다하는 것이었다.

황녀는 힐끗 테이블 위에 찢어진 종잇조각들을 노려보았다.

르칼르의 목걸이를 찾는다고 그렇게 애쓰지만 않았더라도 이렇게 꼬리를 잡힐 일은 없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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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할게요.”

황녀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작게 스친 목소리는 분명 승낙이었다.

멍청하다고 생각은 했는데 이렇게까지 멍청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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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명의를 변경해 줄게요.”

올리비아가 무어라 말을 하기도 전에 황녀는 입술을 비틀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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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생각했어요. 공녀. 비록 내가 공녀의 혼인을 축하할 입장은 아니지만, 우리의 정이 여기에서 끝나는 건 아니잖아요.”

지금이야 어이없게도 대공비 자리를 운운하고 있지만 올리비아는 본질적으로 제 오라버니를 사랑했다. 제 오라버니가 달콤한 말을 속삭인다면 제게 다시 잘못을 빌러 올지도 모른다.

그때야말로 오늘의 치욕을 잊지 않고 철저히 밟아 줄 것이다.

황녀는 번뜩이는 눈빛을 숨기며 다시 우아한 얼굴로 웃었다.

그러는 사이 올리비아의 마음속에 후회와 고민이 뒤섞여 소용돌이처럼 휘몰았다.

제가 지금 무슨 말을 한 걸까.

다시 번복하고 싶은 마음이 치솟았다. 하지만 황녀는 올리비아가 한마디 말할 틈을 주지 않았다. 사용인을 부르자 금세 바깥에 대기하던 시녀들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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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블러 백작을 불러요. 공증할 재무 관리인까지 함께.”

유블러 백작은 황녀의 재정 관리인이었다. 오늘따라 황녀가 일을 철저히 할 모양이었다.

올리비아는 다 찢어진 장부 조각들을 바라보다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신경이 쓰이는 곳이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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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제가 여길 두 번째 오지만 여긴 아무 것도 없다니까요?”

 
지질학자 중 한 명이 불평과 동시에 아차 한 얼굴로 입을 가렸을 때부터. 아니 어쩌면 광산에 제대로 된 기록이 없을 때부터.

그도 아니면.

올리비아는 순간 찬바람이 불던 광산 입구를 떠올렸다. 마지막으로 광산을 떠나기 전, 처음으로 어딘가에서 청량한 바람이 불어왔던 것 같기도 했을 때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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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녀 전하. 유블러 백작이 도착했습니다.”

루하스 남작 부인이 보고하는 목소리와 함께 올리비아의 상념이 깨졌다. 황녀는 참을 수 없다는 듯 환하게 웃으며 백작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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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불려온 유블러 백작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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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녀 전하. 정말 이 백수정 광산을 공녀님한테 하사하신다는 말씀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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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니까요. 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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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기 인장이 찍혀 있는 것 보이십니까?”

유블러 백작은 백수정 광산의 서류를 가리켰다. 다른 재산과 달리 기록 없이 황가의 인장만 찍혀 있는 게 어딘가 꺼림칙했다.

좀 더 알아보고 일을 진행하면 좋을 텐데 황녀는 눈을 부릅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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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작. 지금 내 지시를 무시하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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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아니오라.”

백작은 등 뒤로 땀을 흘렸다. 분명 제 감은 한 번 더 확인할 것을 이야기하지만 앞에 있는 황녀는 확인하는 동안을 기다려 줄 것 같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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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히 진행하세요. 내가 친애하는 공녀에게 하사하는 선물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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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전하.”

결국 백작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황녀의 명령에 따르는 것이었다.

백작이 서류를 작성했다. 그리고 올리비아에게 펜을 내밀었다. 올리비아는 느리게 제 이름을 작성했다. 황녀는 빼앗듯 서류를 받아 들자마자 빠르게 서명했다.

뒤에 서 있던 재무 관리인이 황녀의 문양이 새겨진 마법 인장을 찍으며 공증을 마무리했다.

그제야 살겠다는 듯 황녀가 개운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이만 나가보겠다는 백작과 재무 관리인에게도 너그러이 칭찬할 정도였다.

하지만 둘이 나섰을 때, 황녀는 다시 표독스러운 얼굴로 올리비아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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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모두 공녀의 뜻대로 되었군. 이제 만족하나요?”

올리비아는 쉽사리 대답할 수 없었다. 광산이 제 것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서류의 끝을 만지작거렸다.

이 묘한 감정이 아쉬움 때문인지 아니면 제 소유의 광산이 생겼다는 얼떨떨함 때문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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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정도의 자비를 보인 만큼 공녀도 그 원본을 내 앞으로 가져오길 바라요.”

장부의 원본을 가져오는 즉시 불쏘시개로 만들어 버려야지. 황녀는 이를 으득 갈았다. 단시간 내에 이렇게 마음을 졸이게 만든 원흉을 흔적도 없이 태워 버려야 마음이 편할 듯싶었다.

하지만 올리비아는 대답 대신 자리에서 일어났다. 황녀가 눈썹을 까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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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하지 마십시오. 전하. 저는 신의를 아는 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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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공녀가 신의가 있었다면 내게 이러지는 않았겠죠.”

황녀가 비아냥거렸다. 하지만 이제 목적을 이룬 올리비아는 살며시 웃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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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께서 걱정하시는 일 없게끔 장부를 다 처분할 예정입니다.”

황녀가 의심 어린 눈으로 올리비아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장부를 처분할 예정이라는 건 사실이었다. 황녀는 계속해서 공녀라고 저를 지칭했지만, 저는 이미 공작가를 나왔다.

정식으로 제 이름이 빠질 때까지는 수일이 걸리겠지만, 그 이전에 장부나 재산은 정리해야 했다.

정리가 끝난다면 다 태워 버려야지.

물론 황녀에게는 말하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올리비아는 한 손으로 서류를, 다른 한 손으로는 드레스 자락을 잡은 채 황녀를 향해 예를 갖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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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황녀 전하.”

당연하게도 황녀는 올리비아의 인사를 받지 않았다. 고개를 숙인 상태가 계속되었다.

마침내 황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꼴도 보기 싫다는 듯 진저리를 치던 황녀가 응접실을 나서는 소리가 들렸을 때에서야 올리비아가 몸을 들어 올렸다.

황녀를 마주한 뒤 처음으로 모욕감이나 비참함 대신 다른 감정이 들었다.

입가가 저절로 올라갔다.

명명하기 힘들 정도로 낯설고 근사한 기분이었다.

* * *

올리비아는 다시 마차를 타고 티아제 궁으로 향했다.

덜컥 서류가 하나 생겼다. 지참금으로 가져갈 재산이 생긴다면 대공한테 당장 자랑이라도 하고 싶었는데. 정작 생긴 재산의 실물 가치는 영 꽝이었다.

하지만 이미 거래는 끝났다.

이 백수정 광산과 부근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올리비아는 골똘히 생각했지만 딱히 답이 나오지는 않았다.

달리던 마차가 점점 속력을 늦췄다. 티아제 궁이었다. 마차가 멈추고 문이 열릴 때에서야 올리비아는 날이 제법 어둑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제야 올리비아는 덜컥 대공이 걱정되었다. 혼자 궁에 있으면서 뭘 했을까. 성급한 마음 탓일까 아니면 황녀와의 대면에서 긴장이 풀린 탓일까.

바깥으로 걸음을 내딛기 무섭게 다리가 휘청였다. 마차의 문을 향해 휘젓던 손이 마차 문 대신 단단한 무언가를 잡았다. 동시에 시원하고 청량한 향이 훅 끼쳤다. 올리비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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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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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

올리비아가 자세를 곧추세웠다. 대공은 올리비아가 놓은 팔을 보며 아쉽다는 듯 느른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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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좋아 보이네요.”

올리비아는 빙그레 웃으며 대공이 입을 맞췄던 손을 들어 보였다. 부끄러움 반, 으스대는 마음 반으로 올리비아가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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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요.”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은 이렇게 벅차는 일이었다.

갖고 싶은 것을 가지는 것도.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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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이 되었다니. 내가 더 좋네요.”

대공이 화사하게 웃었다. 그 순간 올리비아는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쿵, 쿵. 건강하게 뛰는 맥박이 귓전에서 더 크게 울리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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