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6. 완벽한 하루인 줄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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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6. 완벽한 하루인 줄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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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6. 완벽한 하루인 줄 알았는데
2022.04.24.
“그런데 뒤의 손님께서는 어떤 일로 방문하셨을까요.”
마담이 영업용 미소를 띠며 대공에게 인사했다. 대공은 대답하지 않았다. 수상한 로브와 대답조차 안 하는 모습에 마담의 손이 진열장 아래로 내려갔다.
가드 호출 벨을 누르려는 모습에 올리비아가 서둘러 말했다.
“내가 아는 분이에요.”
눈치 빠른 마담은 눈을 깜빡했다.
어젯밤 제도를 떠들썩하게 만든 맹세를 받은 공녀가 처음으로 가족과 태자가 아닌 다른 남자의 선물을 고른다며 왔다. 그리고 마침 나타난 아는 분이라면…….
단번에 이해한 마담이 올리비아를 향해 의미 모를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대공을 향해 정중히 예를 갖추었다.
“……네. 그러면 저는 새로운 차를 내오겠습니다. 사람을 모두 물릴 테니 필요하시면 종을 울려 주십시오.”
무언가 단단히 오해하는 듯한 모습에 당황한 올리비아가 말할 새도 없이 마담이 나갔다.
대공이 기다렸다는 듯 로브를 벗었다. 말문을 막는 화려한 얼굴이 올리비아를 향해 장난스레 웃었다.
“이렇게 도움받는 게 좋으면 어떻게 하죠? 나 정말 계속 곤경에 빠져야 하나?”
“그게 무슨!”
저도 모르게 반박하던 올리비아가 아차 했다. 드레스 자락을 잡은 올리비아가 예를 갖추었다.
“올리비아 마델레이네, 대공 전하를 뵙습니다.”
“그 인사는 덜어도 좋을 것 같은데.”
“예법입니다.”
“맹세를 바친 아가씨께는 예법 위의 특권을 드리고 싶은데. 아가씨는 어때요?”
올리비아는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예법 없는 인사는 친밀한 관계를 증명하는 특권이었다. 신분에 관계없이 서로를 존중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아홉 살 때부터 본 레오포드에게조차 들어보지 못한 말에 올리비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예리하게 그 모습을 바라본 대공이 자연스레 화제를 돌렸다.
“나한테 할 말 있는 거 아니었어요?”
아차. 그제야 올리비아는 제가 하려던 말을 깨닫고 눈을 가늘게 떴다.
“아까 그 말씀 무슨 뜻으로 하신 거예요?”
“어떤 말을 말하는 건지?”
“저 반지요. 청혼용 반지인데 왜 저한테!”
올리비아는 차마 말을 끝까지 맺지도 못했다. 대공은 오히려 신기하다는 듯 올리비아를 향해 물었다.
“그러니까요. 어떻게 알고 딱 그걸 마음에 들어 하죠?”
장난일까 아니면 진심일까. 능청스러운 말에 올리비아는 습관처럼 대공의 기색을 살폈다.
대공이 시선을 피했다. 새까만 머리카락 사이 언뜻 본 귀 끝이 붉었다.
진심처럼.
불쑥 떠오른 생각에 올리비아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저었다. 대공이 웃는 소리가 들렸지만 창피함도 느끼지 못했다.
말도 안 되는 가정이었다.
상대는 무려 대공이었다. 그의 장난에 제가 괜히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일 거다.
낯이 뜨거워지는 걸 애써 억눌렀다. 심장 박동이 거세게 울리는 것을 무시하며 올리비아는 더 장난처럼 대꾸했다.
“그런 장난 함부로 하시다가는 그대로 식장에 들어가시게 될 거예요.”
제국에 단 한 명뿐인 대공인 데다, 부유하고 심지어 전쟁 영웅으로 명예도 드높였다. 일등 신랑감의 등장에 황제도 황녀를 내세웠던 게 어제였다.
제 진심이 칭찬으로 닿길 바라며 올리비아가 뿌듯하게 웃었다.
그런데 다시 저를 바라본 대공의 얼굴이 어쩐지 묘했다.
탐색하듯 바라보는 붉은 눈에 올리비아는 제 말을 곱씹었다.
분명 칭찬인데, 잘못 전달되기라도 한 걸까. 슬그머니 걱정이 되던 찰나 대공이 다정하게 웃었다.
“……그걸 바라고 하는 말인데요.”
“……저한테요?”
“네. 아가씨한테요.”
명쾌한 대답 앞에서 올리비아의 가슴이 뻐근하게 부풀었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대공과 눈을 마주하자마자 올리비아는 입을 다물었다.
저 남자는 어째서 나를 저렇게 보는 걸까.
받는 올리비아가 부끄러워질 만큼 간지러운 시선. 그 눈빛에는 올리비아가 바랐던 모든 게 들어 있었다.
다정한 애정.
처음부터 제게 친절했던 남자였다. 이 모든 게 신호 같은 거였을까. 아니면 어느 순간부터였을까.
묻고 싶은 말이 수없이 차올랐다. 하지만 정작 올리비아가 꺼낸 말은 하나였다.
“……저는 태자 전하의 약혼녀인데요?”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대공이 눈매를 늘어뜨렸다. 시무룩한 강아지 같은 얼굴에 올리비아는 괜히 제가 잘못한 느낌이었다.
“그러게요. 하지만 저 반지도 마음에 들지 않나요?”
“물론 반지는 마음에 들지만…….”
무심코 대답하던 올리비아가 함의를 깨닫고 대공을 노려보았다. 대공이 얼른 손바닥을 들어 보였다.
“알겠어요. 그런데 여긴 무슨 일로 왔어요?”
“전하께 드릴 선물을 고르려고요.”
“내 선물 고르고 있었어요?”
대공이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조금 미안해진 올리비아가 사실대로 말했다.
“제가 어제 드린 보석 핀이 사실 동생이 준 선물이었거든요. 제가 정말 아끼는 거라서요.”
“설마 주었던 선물을 도로 뺏어간다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니겠죠?”
“정확히 그 말씀을 드리려고 했는데. 대신 다른 선물을 드리고요.”
대공이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서운함이 가득 묻어나는 태도에 올리비아는 저답지 않게 변명을 덧붙였다.
“물론 처음부터 다른 걸 드렸으면 좋았겠지만 아시다시피 상황이 급박했거든요.”
“……보석을 돌려받으실 방법이 하나 있기는 한데.”
“어떤 게 마음에 드세요?”
올리비아는 냉큼 진열장을 확인했다. 물론 대공의 반지는 제외한 채. 커프스단추라면 아무래도 흑요석이나 다이아몬드가 괜찮을까.
그때 대공이 진열대 한편을 가리켰다.
“저거는 어때요?”
대공이 가리킨 건 에메랄드 목걸이였다. 푸르른 여름의 녹음처럼 짙지만 화사한 색깔. 촘촘하게 엮인 백금 체인 사이에 에메랄드가 알알이 빛나는 목걸이는 매혹적이었다.
올리비아는 목걸이와 대공을 번갈아 보았다.
“어…… 음. 직접 착용하시게요?”
“아가씨 거예요.”
혼란스러운 눈빛에 대공이 단호히 말했다.
“내가 보석 핀을 돌려주는 대신 아가씨는 저걸 선물로 받아 줘요. 그거 아니면 안 줄 거예요.”
“제가 드려야 하는 상황인데 되레 선물을 받으라고요?”
“뭐든 한다면서요.”
대공이 뻔뻔하게 나왔다. 올리비아는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반박하려다 말았다. 어차피 대공이 말하는 대로 들어주려고 했다. 하지만 저 색깔은……. 올리비아는 고개를 저었다.
“마음에 안 들어요? 그러면 옆에 있는 핑크 다이아몬드는 어때요?”
“마음에 안 드는 게 아니라.”
올리비아는 말끝을 끌며 대공을 힐끔 봤다. 나른하게 웃고 있는 얼굴은 언제까지라도 기다려 줄 것 같았다.
사교계에 나 있는 제 약점 같은 말을 털어놓는 건 어려웠지만 그래도 저 남자라면.
올리비아는 별거 아니라는 듯 가볍게 말했다.
“저는 화사한 색깔은 잘 안 어울려서요.”
“그게 무슨.”
대공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올리비아는 말간 얼굴로 어깨를 으쓱였다.
“저도 알아요. 안 어울리는 거 아니까 어두운색으로 골라도 될까요?”
올리비아가 진열대를 바라보는 사이, 대공은 올리비아를 찬찬히 살폈다. 회색 드레스는 질이 좋았지만 단순했고 귀걸이와 목걸이는 없었다. 간편하게 입는 게 취향인 줄 알았는데.
입이 썼다. 아릿하게 상한 속내를 삼킨 채 대공은 가볍게 말했다.
“어제 했던 말이지만 아가씨 주변의 사람들은 미적 감각까지 없는 모양이군요.”
“네?”
올리비아가 대공을 돌아보았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얼굴에 더 화가 났다. 분노가 겨누는 방향이 빤해서 더 화가 났다. 귀한 것도 못 알아보더니 귀한 이까지도 못 알아보는 황가의 멍청한 자식.
대공은 이를 으득 악문 채 낮게 중얼거렸다.
“……잠깐 전문가를 불러야겠네요.”
대공이 가볍게 종을 울렸다. 기다렸다는 듯 문이 열리고 마담이 들어왔다. 로브를 벗고 있는 대공을 마주한 마담의 눈이 잠깐 흔들렸다.
“위대하신 영웅, 대공 전하를 뵙습니다.”
“눈치가 빠르니 입도 무거울 거라 믿어.”
“감사합니다. 필요한 게 있으십니까?”
“공녀님께 어울릴 화사한 색감의 목걸이를 다 꺼내오게.”
“저는 그런 거 안 어울린다니까요?”
올리비아가 말했지만 대공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신이 난 듯 보석을 꺼내오는 마담도 마찬가지였다.
“세상에. 역시 공녀님께 어울릴 줄 알았어요!”
투명하게 반짝이는 핑크색 다이아몬드를 가져온 마담이 입에 발린 칭찬을 했다.
보석이 화사할수록 자신은 더 칙칙해 보일 텐데.
올리비아는 입이 바짝 말랐다. 목적지를 잃은 손이 불안하게 꼼지락거렸다. 대공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올리비아는 더 고개를 숙였다.
마담이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전하께서는 어떠세요?”
“……예상한 것보다.”
잔뜩 잠긴 목소리에 올리비아는 눈을 꼭 감았다. 새까만 시야 너머로 레오포드의 비아냥이 들렸다.
“내가 말하지 않았나? 그대한테 화사한 색은 정말 별로라고.”
“더 잘 어울려서 놀랐네요.”
레오포드의 목소리 위로 단단한 목소리가 덧씌워졌다. 올리비아는 느리게 눈을 떴다.
진열대에 기대선 대공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잘 어울려요. 지금 입은 어두운 계열도 화사한 계열도 전부 다.”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간질거렸다. 이런 이상한 기분은 처음이었다. 올리비아는 조심스레 거울을 훔쳐보았다.
분명 레오포드가 안 어울린다고 했는데. 에셀라의 핑크 목걸이조차 안 어울린다고 했는데.
힐끗 본 거울 속 제 모습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조금은 괜찮은 것도 같았다.
제 말이 맞지 않냐는 듯 대공이 어깨를 으쓱였다.
뒤에 있던 마담이 연신 보석을 가져왔다. 맑은 가넷, 루비와 사파이어 등이 계속 올리비아의 목을 장식할 때 대공이 진지하게 말했다.
“하나라니. 내가 잘못 말했네요. 저거 다 선물하면 안 될까요?”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합니다, 전하.”
딱 자르는 올리비아의 말에 대공이 시무룩해졌다.
어머. 마담은 속으로 비명을 삼켰다. 공녀를 바라보는 대공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 * *
대공은 가는 길 에스코트를 자청했다. 흐뭇하게 웃던 샐리가 먼저 출발한 뒤 마차를 탄 올리비아는 핑크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만지작거렸다.
“약속대로 보석 핀은 오늘 중으로 가져다줄게요.”
대공이 유려하게 눈매를 휘었다. 기분 좋다는 티가 폴폴 났다. 피식 웃던 올리비아가 멈칫했다.
문득 아까 대공이 한 말이 떠올랐다. 청혼용 반지를 제게 주고 싶다는 말.
대공의 친절이 좋고, 다정함이 기꺼운 건 사실이었지만 대공이 청혼의 목적으로 제게 잘해주는 거라면 이제는 끊어야 했다.
저는 태자비가 되어야 하니까.
떳떳하게 레오포드의 옆에 서야 가족들도 저를 바라봐 줄 것이니까.
목걸이를 만지던 손이 뻣뻣하게 굳었다. 가슴 한 켠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이제 대공을 볼 일이 없을 거라는 가정이 이렇게 섭섭할 줄 몰랐는데.
더 가까워지기 전에 올리비아가 조심스레 입술을 떼었다.
“전하.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뭔데요?”
“아까 말씀하신 반지 때문인데요.”
“드디어 가지고 싶은 생각이 들었나요?”
기대듯 앉았던 대공이 자세를 바로 했다. 느슨하게 풀린 붉은 눈동자가 달콤하게 빛났다.
“되게 늦었는데 아가씨가 원한다니까 한 번 더 생각해 보죠.”
거드름 섞인 말투와는 달리 동작은 빨랐다. 품에서 반지 케이스를 꺼내는 대공을 보며 올리비아가 서둘러 말했다.
“그거 때문이 아니라 잘해주시는 것 때문에요.”
빤한 눈빛에 올리비아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청혼 때문이라면 잘해주지 않으셔도 돼요.”
대공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그가 무슨 말인가를 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였다.
안다. 지금 제 행동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분명히 대공도 어이가 없을 거다. 그렇게 잘해줬는데.
풀 죽은 올리비아의 어깨가 처졌다. 동시에 덤덤한 목소리가 들렸다.
“제가 잘해드리는 건가요?”
남자는 진심으로 묻고 있었다. 올리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게 너무 잘해주셨잖아요.”
올리비아는 이렇게 후한 다정을 맛본 적이 없었다.
낯간지러운 칭찬도. 다정한 눈빛도. 배려하는 몸짓도. 상냥한 말투도. 심지어 선물까지 줬다.
진심으로 고마웠다.
감사를 담은 눈빛의 올리비아를 마주한 대공의 얼굴이 순간 일그러졌다 원래대로 웃었다. 올리비아는 어쩐지 대공이 상처받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나는 아가씨께 더 잘해드릴 예정이에요.”
“……왜요?”
“더 잘해드리고 싶은 마음도 꾹꾹 누른 채, 최대한 부담스럽지 않게 다가가고 있었거든요.”
봄볕처럼 다정한 말이었다. 감히 제가 저런 다정을 맛본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대공이 푸스스 웃었다.
“그러니 잘해주지 말라는 말만은 하지 말아요. 알겠죠?”
올리비아의 입이 까끌했다. 한참 만에야 올리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공이 엷게 미소 지었다.
어느새 마차는 대문 앞까지 도착했다. 마차에서 내린 대공이 올리비아 옆을 눈짓했다. 언제 두었는지 새 보석 상자가 하나 더 놓여 있었다. 놀란 올리비아가 말하기도 전에 대공이 먼저 말했다.
“그건 동생분 거예요. 소중한 동생분께도 잘 보이고 싶거든요.”
빙그레 웃은 대공이 마차를 출발시켰다. 대문이 열리고 올리비아가 탄 마차가 정원을 가로질렀다. 올리비아는 창문 밖으로 대공을 바라보았다.
멀어지는 대공의 웃는 얼굴이 선명했다.
* * *
저택으로 들어선 올리비아는 대공이 두고 간 상자를 열었다. 분홍색 다이아몬드 목걸이. 제가 걸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어쩐지 마음이 들떴다. 정말 완벽한 하루 같았다. 아이들에게 꽃도 받았고 이렇게 선물도 받았다.
“샐리.”
올리비아는 먼저 저택으로 보낸 샐리를 불렀다. 하지만 샐리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한쪽에 시녀들이 잔뜩 몰려 있었다. 에셀라의 방문 앞이었다.
걱정 어린 얼굴로 서 있던 시녀들도 올리비아를 발견했다.
“에셀라 아가씨께서 아가씨를 찾으십니다.”
“에셀라가 돌아왔어?”
아직 오려면 삼 일은 남았었는데 무슨 일이지. 무언가 안 좋은 예감이 들었지만 올리비아는 고개를 저었다.
안 좋은 일이 뭐 있을까. 외가인 하엘퀸 후작저에서 행복하게 놀다 왔을 텐데.
에셀라의 방으로 들어간 올리비아는 조금 놀랐다.
저녁 무렵인데도 불을 켜지 않은 방이 어두웠다. 번져가는 노을빛 사이에 에셀라가 침대에 앉아 있는 게 보였다.
기척을 느꼈는지 에셀라가 문 쪽을 향했다. 머리카락에 가려진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불안한 기시감에 에셀라를 부르려던 올리비아가 멈짓했다.
이건 아버지 응접실에 처음 들어갈 때 느껴본 감정이었다.
“언니.”
쇳소리 섞인 목소리가 들렸을 때, 올리비아는 들고 있던 상자를 테이블에 올려놓은 채 에셀라에게 다가섰다.
“무슨 일이야.”
저건 운 목소리였다. 잔뜩 진이 빠진 목소리.
올리비아는 주먹을 꽉 쥐었다. 누가 감히 천사 같은 에셀라를 울릴 수 있다는 말인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말해 봐. 무슨 일,”
“언니 때문에 정말…….”
느릿하게 에셀라가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올리비아는 자리에서 멈췄다. 늘 행복에 젖어 웃던 에셀라의 눈빛이 푹 꺼졌다.
“우리 엄마가 죽었어?”
떨리는 목소리가 올리비아를 향했다.
올리비아의 심장이 쿵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