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5. 행복과 불행은 동시에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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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5. 행복과 불행은 동시에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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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5. 행복과 불행은 동시에 찾아온다
2022.04.20.
공식적인 티 파티에 참석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에셀라는 장미 차가 담긴 잔에서 입술을 떼었다. 진한 장미 향이 부담스러웠다.
테이블 위에 흐르는 대화들도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오늘도 여전히 아름다우세요. 황녀 전하.”
“지금 착용하신 핑크 다이아몬드 목걸이 좀 보세요. 구혼자인 웰튼 왕국의 왕자께서 보내신 거라죠?”
“너무 잘 어울리십니다, 전하.”
“그런가요?”
과한 찬사에야 황녀는 만족한 듯 빙그레 웃으며 목걸이를 만졌다. 벌써 1시간째 같은 대화의 반복이었다.
에셀라는 초대장을 떠올렸다. 언니의 연회 사진을 보여 줄 테니 참석해 달라는 편지에 고민하며 온 티 파티에서 언니 이야기는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언니 이야기를 꺼내려고 하면 미묘한 시선들과 함께 대화가 뚝 끊어졌다.
가족들한테 혼날 것을 감수하고 온 티 파티였는데. 오히려 피로감이 느껴졌다. 지금이라도 갈까. 에셀라가 고민할 때였다.
“그 정도로 예쁜 줄은 몰랐는데. 마델레이네 공녀는 어떻게 생각해요?”
“네. 아름다우십니다.”
담백한 답변은 그게 다였다. 황녀는 당황함을 숨기며 차를 들었다. 황녀를 따라 영애들이 어색하게 웃었다.
황녀는 악의 어린 눈으로 에셀라를 노려보았다.
공작의 사랑만 받고 자랐다더니 에셀라 마델리이네는 눈치가 없었다. 아까도 올리비아의 드레스를 헐뜯으며 자연스레 만들어 가던 분위기를 한 번에 무너뜨렸다.
“잘못 알고 계시네요. 언니는 모든 색깔이 잘 어울려서 어떤 옷을 입어도 아름답죠.”
그뿐이 아니었다.
“현재 공작저 예산은 물론 공작령 영지의 예산까지 언니가 정리하거든요. 거기에 태자비 궁까지 재정 서류가 매일 집으로 오다니. 정말 언니가 관리였으면 그토록 청렴하고 일 잘하는 관리가 있었을까요?”
에셀라는 모든 대화에서 올리비아, 그 사생아 편을 들었다.
대화가 올리비아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로 흐를 때마다 말을 끊더니 이제는 대화에 참여하겠다는 의욕조차 없었다.
마델레이네 집안의 피가 섞인 것들은 하나같이 저런가.
“그런데 전하.”
갑자기 에셀라가 레이나를 바라보았다.
“초대장에 말씀하신 연회 사진은 언제쯤 볼 수 있을까요?”
“연회 사진이라. 하긴. 공녀는 사진이 목적이었죠?”
레이나가 리베오른 후작 영애한테 눈짓하는 사이 에셀라가 가볍게 말했다.
“감사하게도 황녀 전하께서 먼저 언니의 사진을 보러 오라고 제안해 주신 덕분이죠.”
초대장 추신에 적힌 그 한마디에 에셀라는 외가인 하엘퀸 후작저를 떠나 황궁으로 왔다. 가족들한테 혼날 각오까지 하고.
하지만 정말 언니의 사진이 보고 싶었다. 기사에는 온통 언니와 언니에게 맹세를 바쳤다던 대공 이야기뿐 사진은 볼 수 없었으니까.
올리비아를 떠올리던 에셀라가 빙그레 웃었다. 언니는 제가 선물한 보석 핀을 하고 갔을까.
그러는 새 테이블 위로 이상한 눈짓들이 오갔다.
가장 먼저 샤민 백작 영애가 다정하게 말했다.
“첫째 공녀님과 정말 친하신 모양이네요. 공녀님.”
“그럼요. 하나뿐인 언닌데요.”
자부심마저 느껴지는 대답에 영애들이 어머나, 감탄사를 하며 웃었다. 그 웃음소리는 어딘가 미묘했다. 저들끼리 시선을 맞추며 동정하듯 에셀라를 보고 있었다.
기시감이 불쑥 에셀라의 머릿속을 지나갔다. 어릴 적 언니와 놀 때 나이 지긋한 사용인들이 보내던 시선과 비슷했다. 경고처럼 불안한 감정이 올라왔다. 이제 정말 가야겠다 생각할 때 샤민 백작 영애가 고개를 저었다.
“역시 자애로워요. 공녀님. 어머니를 닮으신 건가요?”
“……그게 무슨 말이죠?”
“아니, 그렇잖아요.”
샤민 백작 영애가 어깨를 으쓱하더니 테이블에 있는 모두를 바라보았다. 문득 황녀와 눈이 마주쳤다. 새파란 눈동자에 비치는 악감정에 에셀라는 놀라 시선을 피했다.
상냥한 목소리가 여과 없이 에셀라를 덮쳤다.
“어떻게 어머니를 죽게 만든 무희의 딸을 친언니처럼 대하죠? 저는 상상도 못 하겠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럴 리가 없었다. 언니가 어떻게 내 언니가 아닐 수 있을까.
지금이야 조금 멀어졌지만 분명히 언니는 제게 다정했다. 아버지와 오라버니들 몰래 방에 들어와서 동화를 읽어 주고 잠을 재워 주고. 노래를 불러 주고 춤을 알려 주고.
“어떻게 어머니를 죽게 만든 무희의 딸을 친언니처럼 대하죠?”
달빛에 부서지듯 춤을 추던 언니가 떠올랐다. 가족들과는 다른 초록색 눈도.
숨이 막혔다. 부정하듯 고개를 젓던 에셀라가 고개를 수그렸다. 머리카락이 제발 얼굴을 가려 줬으면 했다.
언뜻 본 에셀라의 얼굴이 텅 비어 가고 있었다. 황녀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리고 진심으로 안타까운 듯 에셀라에게 다가가 어깨를 감쌌다.
“몰랐어요. 공녀? 제국의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었는데.”
“…….”
“공녀의 어머니가 죽은 이유가.”
“…….”
“그 초록색 눈의 계집 때문이라는 걸.”
속삭이는 황녀의 눈이 사악하게 반짝였다. 동시에 에셀라를 이루던 세계의 축 하나가 무너졌다.
* * *
“오늘만큼은 챈들러 극장에서 샹들리에가 떨어져도 아가씨의 1면 기사를 빼앗지 못할 거예요.”
“그, 정도까지는 아닐 텐데.”
“당연히 그 정도 이상이죠! 아가씨께서는 무려 전쟁 영웅께서 명예를 바친 레이디시란 말이에요!”
열을 올리는 샐리의 말에 올리비아가 조금 웃었다. 물론 사교계도 한창 시끌시끌하긴 할 거다. 태자의 약혼녀가 외간 남자의 맹세를 받았다는 것으로 말이다.
“아가씨는 아까 못 보셨겠지만, 오늘 배달 온 배달부들이 다 뭉그적거리면서 뒷문에서 떠나질 않았다니까요? 덕분에 아침부터 저도 인기 스타 되었어요! 이것 보세요. 마구간지기 패터가 저한테 전달해 달라고 기자들 명함도 이렇게 받아 왔어요.”
샐리가 신난 얼굴로 명함 뭉치를 내밀었다. 죄다 가십을 다루는 황색지였다. 올리비아는 농담을 던졌다.
“그래서, 연락하려고?”
“에이. 절대 안 하죠! 저도 전담 시녀 교육 정말 열심히 받았는데요.”
고개까지 도리도리 젓는 모습에 올리비아가 부드럽게 웃었다. 마차는 러헤이른 거리에 접어들었다. 올리비아는 할 일을 꼽아 보았다.
에셀라에게 편지도 부쳐야 하고, 사서함에 편지가 왔는지도 확인해야 하고.
보석 핀을 대신할 대공을 위한 선물도 사야 했다.
올리비아는 결국 쓰지 못한 답장을 떠올리다 고개를 저었다.
보석 핀 이야기를 하자니 멋쩍고, 보검 이야기를 하자니 정말 그 어마어마한 걸 줄 것 같았다.
뭐가 되었든 선물과 함께 부탁하면 좋겠지. 뭘 사야 에셀라의 보석 핀과 바꿔 줄까.
고민하는 사이에 마차가 멈추었다. 올리비아가 나가려는데 샐리가 재빠르게 문을 잡았다. 그리고 걱정 어린 얼굴로 말했다.
“아가씨. 물론 기사님들이 주변에 계시겠지만, 아무튼 정말 오늘은 아가씨께 사람이 많이 몰릴지도 몰라요. 물론 제가 지켜 드릴게요!”
“뭘 그렇게 조심할까.”
“아휴. 아가씨. 정말인데.”
올리비아는 샐리의 걱정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마차를 나갔다. 마차에서 정확히 다섯 걸음 떨어졌을 때, 올리비아는 샐리의 말이 맞았다는 것을 인정했다.
평상시에는 적대적으로 바라봤을 사람들 중 반 정도는 처음 보는 눈으로 저를 힐끗대고 있었다. 익숙지 않은 시선에 올리비아는 당황함을 삼키며 애써 앞만 보고 다른 생각을 하며 걸었다.
모든 것을 다 가진 남자에게 뭐가 필요할까.
농담이 아니라 비칸데르 대공은 모든 걸 가졌다.
명예와 지위, 거기에 막대한 부까지.
올리비아는 매년 늘어나던 비칸데르령의 세금을 떠올렸다. 보석 채굴로 세금이 점점 오르는데도 불구하고 비칸데르령에서는 한 번도 세금이 밀린 적이 없었다.
정말 뭐가 좋을까. 가만히 고민을 하며 걷던 찰나였다.
“저, 아가씨.”
앳된 목소리가 부르는 소리에 올리비아가 무심코 아래를 내려다보고 조금 놀랐다. 대여섯은 되었을까, 조그마한 여자아이가 올리비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순식간에 거리는 찬물이라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그 고요를 피부로 느끼며 올리비아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갈색 머리 아이는 예쁜 꽃 한 송이를 든 채 올리비아를 동경 어린 눈으로 바라봤다. 뒤에 있던 샐리가 아이한테 다가서기도 전에 아이가 똘망한 눈을 굴리며 말했다.
“아가씨께서 그 공녀님 맞으시죠?”
“그 공녀님?”
“네! 요정처럼 예쁜 공녀님이요!”
순진하게 외치는 아이의 말에 올리비아는 저도 모르게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요정처럼 예쁜 공녀님이라니.
난생처음 들어 보는 호칭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도대체 무슨 말을 들었기에 저를 그렇게 부르는 걸까. 우습게도 부끄러운 와중에 입꼬리가 자꾸 올라갔다.
꼭 꿀이라도 들이부은 것처럼 기분이 달콤해졌다. 에셀라와 샐리 말고도 저를 예쁘게 봐 주는 사람이 있다니.
올리비아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는 사이, 아이가 들고 있던 꽃을 내밀었다. 어디에선가 꺾어 온 듯한 분홍색 들꽃. 그 꽃 한 송이가 뭐라고. 올리비아는 조금 떨리는 손으로 꽃을 받아 들었다.
“……고마워.”
뭐라고 더 말해 주고 싶은데, 이 한마디조차 목이 메었다. 어딘가 긴장되었던 가슴 한편이 먹먹하게 녹아 들어갔다.
아이가 생긋 웃더니 저만치로 뛰어갔다. 아이 뒤로 다른 아이들이 와- 함성을 지르며 따라갔다. 그 소리를 기점으로 다시 러헤이른 상점가는 왁자지껄해졌다.
올리비아는 가만히 꽃을 내려다보았다. 신기하게도 꽃 하나 들었을 뿐인데 더 이상 시선 때문에 몸이 위축되지 않았다. 샐리가 히죽히죽 웃으며 올리비아를 바라보았다.
“좋으시겠어요. 요정처럼 예쁜 공녀님이라니. 저는 언제쯤 그런 이야기를 들어 볼까요?”
“……아이가 그냥 한 말이야.”
덤덤하게 말하는 아가씨의 귓바퀴가 붉게 달아올랐다는 것은 눈치 없는 샐리도 알았다.
올리비아가 눈을 반달처럼 휘었다. 부드러운 미풍이 불어온 것처럼 어쩐지 마음이 간질거렸다. 올리비아의 손에 들린 분홍색 들꽃이 산들거렸다.
“……보석을 달라고 하는 건데, 같은 보석이 낫겠지?”
“네?”
올리비아는 환하게 웃으며 앞서 걸었다. 마담 데톤의 보석점을 향해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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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색 머리 아이가 골목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으스대듯 골목에 서 있는 갈색 머리 남자한테 말했다.
“공녀님한테 꽃 드렸어요!”
갈색 머리 남자 윈스터가 조금 놀란 눈으로 말했다.
“설명도 안 들었는데 어떻게 저분이 공녀님인 줄 바로 알았어?”
“설명 다 들었는데요? 요정처럼 예쁜 아가씨라면서요.”
“맞아!”
뒤따라온 꼬마들이 합창하듯 대답했다. 그런가? 윈스터는 조금 갸우뚱했다.
아이들은 한껏 상기된 얼굴로 올리비아에 대해 이야기했다.
“진짜 요정님 같았어요. 웃는 것도 예쁘고.”
“나도 봤어!”
“치. 나도 꽃 주고 싶었는데.”
아쉬워하는 아이들 속에서 여자아이가 콧대를 높였다.
“원래 용감한 사람이 쟁, 쟁, 아무튼! 다 갖는 거라고 했어! 어쨌든 나는 약속 지켰으니까 아저씨도 약속 지켜요!”
아저씨라니. 윈스터가 풀 죽을 새도 없이 대여섯 명의 아이들이 반짝이는 눈으로 윈스터를 바라보았다.
“약속대로 이건 너희 거야.”
윈스터가 옆에 있던 새 공 하나를 아이들의 품에 안겨 주었다. 아이들이 활짝 웃고 소리치며 뛰어나갔다.
“고맙습니다!”
그사이 벽에 기대어 있던 대공이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애들이 되게 똑똑하네? 머리 색깔도 모르고 아가씨를 찾다니.”
“뭐, 애들이 미적 감각이 제일 뛰어나다고 하지 않습니까.”
시큰둥하게 대답하던 윈스터는 문득 서늘한 살기를 느꼈다. 본능적으로 몸이 움츠러드는 가운데에서도 윈스터는 억울하다는 듯 외쳤다.
“아니! 뭐, 뭐 때문에 또 그러십니까.”
아침부터 편지 배달하고, 마델레이네가 주변에 퍼진 기자들을 정리한 걸로 모자라, 아이들을 섭외해서 꽃까지 전달했다.
전하를 위해 뼈 빠지게 일했더니 결국 돌아온 게 인센티브도 아니고 살기라니!
서러움에 가득 찬 윈스터의 시선은 아랑곳 않은 채 남자가 중얼거렸다.
“……됐어. 어차피 아가씨 눈 높아서 나밖에 안 보일 거야.”
아니, 누가 공녀께 저 좀 봐 달라고 했습니까.
사람이 기가 막히면 말도 못 한다고, 윈스터는 말 대신 가슴을 팡팡 두드렸다. 정말이지 여기서 가장 힘든 건 저였다.
안 그러던 사람이 딱 올리비아 마델레이네 이야기만 나오면 저렇게 달라졌다.
정말, 다시는 안 도와준다고 마음을 먹는데 저만치까지 간 대공이 문득 뒤를 돌았다.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윈스터를 불렀다.
“안 가?”
에라이, 모르겠다. 이놈의 서러움, 비칸데르령에 가서 실컷 풀어야지! 속으로 생각하면서 윈스터는 오늘도 뛰었다.
“갑니다!”
* * *
보석점 마담 데톤의 가게.
“음, 저것도 보여 주겠어요?”
응접실 테이블 위에 청회색 벨벳 박스들이 쌓여 있었다. 올리비아가 가리키자 마담 데톤이 새 박스를 열었다. 흑요석 커프스가 반짝였다.
“역시 공녀님 안목이 탁월하세요. 이건 웰튼 왕국에서 수입해서 딱 한 개 남은 거랍니다.”
마담 데톤이 호들갑을 떨었지만 올리비아는 고개를 저었다. 귀하다는 보석보다는 조금 더 대공이 떠오르는 보석이면 좋을 텐데.
문득 대공의 눈이 떠올랐다. 꼭 보석처럼 붉고 반짝이고 다정한 눈.
“공녀님?”
“네, 네?”
저를 부르는 소리에 올리비아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마담이 염려하듯 올리비아를 봤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더우세요? 얼굴이 빨개지셨어요.”
“아니에요. 그냥……. 다른 건 없을까요?”
“이번 달에 수입한 최상품은 이게 다인데. 공녀님 눈에 들지 않다니. 수입 담당을 족쳐야겠어요.”
마담 데톤이 토라진 척 고개를 돌렸다. 이혼 후 새로운 이름으로 사업을 시작한 마담 데톤은 올리비아가 진심으로 대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아니면 한번 나가서 둘러보시겠어요?”
마담 데톤이 바깥을 가리켰다. 잠시 고민을 하던 올리비아가 홀로 나갔다. 세밀한 공예품 같은 진열장 속 보석들이 눈을 사로잡는 와중에 유독 눈이 가는 보석이 있었다.
불에 타는 것처럼 붉은 보석 반지였다. 크리스털 케이스 속 일렁이는 불꽃을 품은 보석을 보자 어쩐지 대공이 떠올랐다.
올리비아가 한 곳만 바라보자 마담이 얼른 다가왔다.
“공녀님, 저게 마음에 드세요?”
마담이 꺼내는 건 반지 옆의 사파이어 팔찌였다.
“그거 말고 옆의 반지요.”
“네? 이 반지요?”
올리비아의 말에 마담의 표정이 애매해지던 찰나였다.
“저 반지가 당신 거라는 걸 어떻게 알았어요?”
나른한 속삭임이 끼어들었다. 어딘가 귀에 익은 목소리에 올리비아가 고개를 들었다. 언제 왔는지 제 옆에 새까만 로브를 뒤집어쓴 커다란 남자가 서 있었다.
저 로브는 분명.
“대,”
“쉿.”
로브 아래로 보이는 아름다운 얼굴이 마담을 눈짓했다. 놀란 올리비아가 토끼 눈을 뜬 채 입을 앙다물었다. 그러는 새 마담이 대공을 보고 갸우뚱하다가 조심스레 말했다.
“아쉽게도 이건 판매용이 아니네요. 다른 손님께서 청혼용 반지를 맡기셔서 저희가 보관만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