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4. 나쁘고 못되고 고약하고, 그럼에도 기다렸던 제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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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4. 나쁘고 못되고 고약하고, 그럼에도 기다렸던 제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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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4. 나쁘고 못되고 고약하고, 그럼에도 기다렸던 제이드
2022.04.17.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제이,”
“지긋지긋하니까 그만 부르고 대공이 너한테 맹세를 바쳤다느니,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가 퍼졌는지나 말해.”
올리비아는 반사적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일 년 반 만이었다. 헤페르티와의 전쟁에 가서 한 번도 오지 않은 제이드와 이렇게 재회한 게 일 년 반 만.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왜 편지에 아무런 답장도 없었는지 구호품은 왜 돌려보냈는지 투정이라도 부리고 싶었다.
무사히 돌아와서 고맙다고. 그렇게 말하면 한 번은 웃어 주었으면 하고 바랐다.
하지만 정작 제이드는 늘 저를 무시하던 일 년 반 전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제이드의 날 선 눈매가 슬쩍 누그러졌다.
“거짓말이지? 그럴 줄 알았어. 하긴. 누가 너한테 레이디에 대한 맹세를 했겠어. 특히 대공 같은 미,”
“진짜야.”
“……뭐?”
제이드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올리비아를 바라보다가 이내 코웃음을 쳤다.
거짓말하지 말라는 제이드의 습관에 올리비아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대공 전하께서, 내게 맹세를 하셨어. 제이드. 오라버니도 알겠지만 기사로서 레이디에 대한 맹세였어.”
“그럴 리가!”
“왜, 그런 식으로 말해?”
“뭐가!”
웅얼거리듯 작은 올리비아의 말에 제이드가 벌컥 소리를 질렀다. 속이 부글부글 끓다 못해 터질 것만 같았다.
분명히, 분명히 황녀한테 맹세를 했어야 할 상황인데 왜 하필 쟤일까? 저 멍청한 게 그게 무슨 의미인 줄이나 알까?
한참을 씩씩대는데, 문득 올리비아가 너무 조용했다. 제이드는 순간 숨을 쉬는 것도 잊은 채 올리비아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쟤가 뭐랬더라?
문 위의 창문으로 들어온 달빛이 올리비아를 비췄다. 고고하고 시린 달빛 아래에서 올리비아는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처럼 저와 꼭 닮은 은발이 반짝였다.
제이드의 심장이 철렁했다. 올리비아는 단 한 번도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열 살 제이드가 올리비아가 진짜 동생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던 때마저도.
“너 때문이었어? 너 때문에 우리 엄마가!!”
아버지와 콘라드 몰래 올리비아를 챙겨 주던 제이드는 그때부터 올리비아를 누구보다 미워했다.
남루한 옷차림으로 입술만 꾹 다물던 올리비아가 뭐라 한 것 같기는 했지만 변명 따위는 듣고 싶지 않았다.
어머니가 죽고도 2년이나 제이드는 올리비아가 제 동생인 줄 알았다. 그 시간 동안 올리비아를 챙겨 준 게 몸서리치게 후회되었다. 그때부터 제이드는 꾸준히 올리비아를 괴롭혔다.
침대 밑에 개구리 무리를 풀어 두어도, 추운 가을날 비가 올 때 밖에 세워 둔 채 문을 잠가도, 아끼던 책을 찢고, 이유 없이 떠밀어도.
심지어 사교계에서 혼자 있었어도.
그 모든 일들에도 올리비아는 고개를 똑바로 들었다.
저렇게 고개를 숙이는 게 아니라.
제이드가 아무 말 못 하는 사이, 올리비아가 고개를 들었다. 여느 때처럼 빙그레 웃는 얼굴이었다.
“왜. 나한테 아무도 맹세를 하지 않을 것처럼 말하냐고.”
“그,”
“나도 받을 수 있는 거잖아. 엄연히 나도 데뷔탕트를 치른 성인인데.”
장난을 치듯, 올리비아가 배시시 웃으며 드레스 자락을 말아 쥐더니 예를 갖추는 시늉을 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제이드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거. 헤페르티 장갑이잖아.”
“어?”
올리비아가 저도 모르게 손을 등 뒤로 숨겼다. 제이드가 잇새로 억눌린 목소리를 뱉었다.
“대공한테 받았어?”
“……응.”
“오늘 보기 전부터, 알고 있었던 거야?”
“……응.”
“이, 멍청한 게!”
벼락같은 목소리가 떨어졌다. 올리비아가 잠시 움찔하는 사이, 저를 보며 씩씩대던 제이드가 소리를 지르다 계단을 올라갔다. 이내 쾅- 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올리비아는 계단 위를 조금 노려보았다. 독한 말 전문은 콘라드였는데, 전쟁터 다녀와서인지 제이드의 말이 더 나빠졌다. 어떻게, 저한테 상처 되는 말만 쏙쏙 골라 할까.
지긋지긋하다는 말이나 맹세에 대해서 단박에 부정하는 말들이 떠올라서 올리비아는 더 힘주어 주먹을 쥐었다.
장갑 아래 손바닥에 남을 손톱자국이 이제야 떠올랐다. 발이 불에 덴 듯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
올리비아는 절뚝이는 걸음으로 계단을 올랐다.
제 방까지 길이 이렇게 멀었을까. 긴 복도를 지나 방에 들어가자마자, 올리비아는 문을 닫고 잠근 것까지 확인한 뒤에야 바닥에 주저앉았다. 미소가 사라진 얼굴에 상처받은 티가 고스란히 남았다.
오랜만이었는데. 이렇게 엉망인 재회라니.
나쁜 제이드. 못된 제이드. 고약한 제이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기다렸던 제이드.
반가움과 아쉬움, 애정과 아주 조금의 서운함이 뒤섞여서, 올리비아는 겨우 한마디를 중얼거렸다.
“……무사히 와서 다행이야 제이드. 정말, 기다렸어.”
제이드에게 그토록 하고 싶었던 말이, 올리비아 혼자 있는 방 안을 휘감았다 사라졌다.
지친 올리비아는 잠들었을 때, 제이드가 인형을 주었던 날의 꿈을 꾸었다.
8년 전, 마델레이네 영지의 축제 때였다. 열두 살이던 올리비아가 방 바깥의 기척에 깨어났던 그때.
또 제이드가 개구리나 제 방에 넣으러 왔을까.
심술을 부릴 거면 차라리 시궁쥐가 나을 텐데. 생쥐도 못 만지는 도련님은 기를 쓰고 저를 괴롭혔다.
화관을 주고, 웃어 주고, 퍼즐까지 주었던 여덟 살부터 열 살까지의 제이드가 저렇게 못된 열네 살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늘 최선을 다하는데도 제이드는 하나도 몰라주고 심술만 부렸다.
올리비아가 정말 미워 죽겠다는 듯 말이다.
씁쓸함을 삼키며 올리비아는 제이드의 심술을 기다렸다. 그래도 저렇게 괴롭히는 것이 나을지도 몰랐다. 없는 사람처럼 쳐다도 안 보는 아버지보다는.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제이드는 들어오지 않았다. 숨을 죽인 채 방이 열리기를 기다리던 올리비아는 결국 조심히 문을 열었다.
희미한 불이 켜진 복도에 제이드가 있었다. 몰래 술이라도 훔쳐 마셨는지 술 냄새가 진동을 했다. 멍한 얼굴의 제이드가 천천히 올리비아를 돌아보았다.
순간 올리비아는 긴장했다.
올리비아보다 족히 세 뼘은 훌쩍 큰 제이드는 검을 배우면서 소년보다는 어른 체격에 더 가까워졌다. 단 한 번도 때린 적은 없었지만 술에 취한 어른이 어떻게 돌변하는지 이미 터닝벨 거리에 있을 때 많이 보아 왔었다.
하지만 제이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손에 커다란 토끼 인형과 작은 토끼 인형을 각각 하나씩 든 채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느리게 올리비아를 알아챈 듯, 아직 앳된 얼굴이 천천히 일그러졌다. 자수정빛 눈동자에 초점이 맞춰지더니 올리비아를 노려보았다.
“……인데.”
한참 만에야 웅얼거리는 소리가 났다. 올리비아는 귀를 기울이며 저도 모르게 한 걸음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순간, 숨을 쉴 수 없었다.
“……내 동생인데, 왜 네가 내 동생이 아니야…….”
“…….”
“내 동생인 줄 알았는데.”
“…….”
“왜 네가 내 동생이 아니야…….”
올리비아를 노려보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순간 그 위로 지금보다 더 어렸던 제이드가 겹쳐 보였다.
늘 화관을 만들어 주고, 퍼즐을 갖고 아웅다웅하다 결국 제게 퍼즐을 내밀던 제이드. 공작 부인의 키스 세례를 받으며 행복하게 웃던 제이드.
“아버지랑 형이 너무했어. 밥도 안 먹었지?”
왜 아버지와 콘라드가 그러는지 모른 채 몰래 빵과 인형을 가져와 저를 위로하던 제이드.
“너 때문이었어? 너 때문에 우리 엄마가!!”
그리고 모든 사실을 알고 악을 쓰던 열 살의 제이드.
올리비아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늘 저도 동생이라며 고집스레 말했던 올리비아였지만 지금 제이드한테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제이드는 휘청이는 걸음으로 에셀라 방문 앞으로 가 커다란 인형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작은 토끼 인형을 올리비아가 있는 쪽으로 던진 뒤 제 방으로 사라졌다.
그제야 올리비아는 느리게 인형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예쁜 토끼 인형. 꼭 안아 본 인형은 포근했다. 마치 어릴 적 제이드가 가져다준 인형처럼.
그날 밤. 올리비아는 쉽사리 잠들지 못했다. 뭔가가 가슴을 콕콕 찔렀다. 잠깐 맛보았던 어린 시절의 행복감이 다시 올라왔다.
어쩌면 제이드도 마음 한편에서는 저를 동생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몰랐다. 제가 조금만 더 노력한다면.
“올리비아는 에메랄드 공주님이야.”
다시 그 행복이 제게로 다가와 줄 거라고 생각했다.
* * *
쾅- 닫힌 문이 울렸다. 올리비아가 고개를 숙인 모습이 아른거렸다. 잔상을 없애기 위해 고개를 젓던 제이드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 미친놈이, 대가리가 돌았다더니 이게 무슨!”
오늘을 기다렸다. 승전 연회에 갈 날이 오겠거니 하면서 일 년 반 동안이나 굴렀는데.
하필 헤페르티 잔당이 있다는 첩보가 들어왔다. 그 미친 대공은 저를 콕 집어 해결하고 오라고 했다.
첩보는 거짓이었다.
왜 승전 연회를 기다렸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따위 연회야 널리고 널렸는데.
그래도.
부풀어 오르는 기대에 찬물을 끼얹은 건 제도로 들어와 만난 기사들 중 한 명이었다.
이미 연회에 갔다가 저택으로 돌아가는 길이라던 기사는 이상한 말을 늘어놓았다.
대공이 누군가한테 레이디에 대한 맹세를 했다고?
제이드는 코웃음을 쳤다. 황제가 자신의 개를 묶기 위해 기발한 수를 쓴 모양이었다. 분명 황녀에게 맹세했겠지.
“황제 폐하께서 아주 작정을 하셨군. 국혼이라도 여실 모양인가.”
“아닙니다. 부단장님. 상대는 황녀 전하가 아닙니다! 전하께서 맹세를 바친 분은…….”
열이 올라 말을 하던 기사가 문득 제이드를 보고 말끝을 흐렸다.
“……그러고 보니, 부단장님. 부단장님 동생분이신데…….”
“뭐?”
눈앞이 새하얘졌다. 연회에 참석할 수 있는 마델레이네 공녀는 올리비아뿐이었는데.
성을 내며 돌아간 저택에도 올리비아는 없었다.
모든 사람들을 물린 채, 첫 번째 계단에 앉아 있던 제이드는 올리비아가 돌아오자마자 일어섰다. 그리고 씨근거리는 마음을 참고 물었는데.
대공의 맹세를 받은 사람이, 올리비아가 맞았다니.
저 멍청한 게.
대공이 어떤 놈인 줄 알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제이드는 옆에 있던 선물 중 아무거나 집어 들어 벽에 던졌다.
상자가 떨어지면서 안에 있던 장갑이 툭 떨어졌다. 올리비아가 끼고 있던 것과 똑같은 장갑이었다. 제이드는 거친 숨을 고르며 옆에 쌓인 선물들을 바라보았다.
에셀라와 똑같은 것으로 샀지만 한 번도 올리비아한테 주지 못했던 선물들이었다. 버리지도 보내지도 못하고 있다가 계속 쌓여만 갔다.
동생인 줄 알았지만, 동생이 아니었던 저 멍청한 게.
제이드는 눈을 감았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화가 나는지 몰라서 아득해졌다.
새까만 시야 너머에는 올리비아가 보였다.
열 살.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알게 된 후 올리비아를 적대했던 저와 그런 제 주변을 맴돌던 여덟 살의 올리비아가.
그 초록 눈에 서린 기대감 때문에 제이드는 더 숨이 막혔다. 절대로 이루어 줄 수 없는 소원이라고 생각했다.
왜 저렇게 선물을 쌓아 두었는지. 아주 조금만 더 생각한다면 쉬운 길이 되었을 것을. 이때의 제이드는 그 조금을 더 생각하지 못했다.
* * *
마델레이네 저택의 1층.
올리비아는 해가 뜨는 것을 바라보았다. 아버지를 위해 만든 초록색 주스는 이렇게 또 버려지게 생겼다.
새벽부터 기다렸다. 아버지든 콘라드든 누구든 와서 제게 물어볼 줄 알았다. 대공의 맹세든 레오포드와의 관계든 뭐든.
하지만 정작 아침은 이렇게 고요했다.
“아가씨. 식사가 다 준비되었는데. 이건 저 주시고 식사하세요.”
샐리가 주스를 받아 들며 말했다. 제이드는 새벽부터 나갔다고 했다. 텅 빈 식당에 제 자리에만 식사가 있었다.
혼자 하는 식사는 맛이 없었다.
외가인 하엘퀸 후작저로 간 에셀라가 언제 오더라.
올리비아는 계속해서 다른 생각을 하기 위해 애썼다. 그게 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도피였다.
뒤에 서 있던 샐리가 다가와 빈 잔에 주스를 따르며 조심히 말했다.
“저, 아가씨. 혹시 하나만 여쭤봐도 될까요?”
“뭔데?”
“아가씨 어제 정말 대공 전하께 레이디에 대한 맹세를 받으셨어요?”
“그걸 어떻게?”
샐리는 상기된 얼굴로 함박웃음을 지었다.
“정말이었군요! 역시 그럴 줄 알았어요! 아가씨 어제 정말 너무 아름다우셨어요! 신문에서도 아가씨께서 어찌나 아름다우셨는지,”
“신문?”
“네! 신문에 아가씨에 대한 기사가 쫙 퍼졌거든요!”
손끝이 차갑게 굳는 기분이었다. 신문이라니. 감히 누가 황궁에서 일어난 일을 퍼트린 걸까.
샐리가 한껏 들뜬 얼굴로 물어 왔다.
“가져올까요?”
올리비아가 고개를 끄덕이자 샐리가 부리나케 식당을 나섰다.
올리비아는 잠시 눈을 감았다.
황궁, 특히 연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모두 ‘비공식’으로 취급되었다.
기껏해야 연회 때 레오포드의 파트너가 누구였는지 같은 가십이 전부였다.
제가 기사의 전면을 장식했다는 이야기는 둘 중 하나였다.
황궁에서 기사를 내게 했거나,
“……누군가 의도적으로 기사를 흘렸거나.”
올리비아가 낮게 중얼거리며 눈을 떴다.
“네?”
샐리가 영향력 있는 신문 몇 부만 올리비아한테 가져왔다. 헤드라인에 커다랗게 박힌 제목은 정말 다 올리비아, 제 이야기였다.
- 영웅 비칸데르 대공, 마델레이네 공녀한테 맹세를 바치다?
- 속보) 전쟁 영웅, 드디어 레이디에 대한 맹세를 치르다?
올리비아는 빠르게 신문들을 훑어보았다.
대공이 제게 맹세를 바쳤다는 것, 그 내용이 전부였다.
당분간은 일정에도 없던 칩거 생활을 할 판이었다.
올리비아는 차분히 제가 할 일들을 떠올렸다. 입궁할 때를 제외하고는 집에 있고, 태자비 궁의 재정은 사람을 불러야겠다. 생각을 정리하다가도 불쑥불쑥 레오포드 생각이 났다.
레오포드는 이 기사를 봤을까.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신경을 쓰긴 해 주겠지. 올리비아가 쓰게 웃으며 신문을 뒤적이던 때였다.
“아침부터 아가씨께 편지도 엄청 왔어요. 다른 건 다 방에 올려두고 이거 하나만 가져왔어요. 짠.”
샐리가 잔뜩 기대에 부푼 얼굴로 편지 하나를 내밀었다. 에셀라일까, 레오포드일까 어림짐작하던 올리비아는 편지를 받고 눈을 깜빡였다.
고급스러운 편지 봉투 위에 찍힌 인장은 분명.
“대공가에서 직접 사람이 왔었어요!”
비칸데르가.
화려한 장미와 날카로운 가시로 장식된 검. 귀족 연감에서나 보던 문양에 올리비아는 조심스레 편지를 뜯었다.
우아한 필체를 읽는 순간, 올리비아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 검을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더 귀한 선물로 준비할 테니, 내게 기회를 줘요. 언제든 기다리겠습니다. - 에드윈 R. 비칸데르
정말 이게 다일까. 편지를 읽고, 또 읽던 올리비아는 어느 순간 웃음을 터트렸다.
세상에.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을까? 분명히 대공은 위험하고 잔인하다고 들었는데. 편지는 시끄러운 기사들에도 초연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정말 이상한 사람이야.
올리비아는 입속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른 새벽부터 저를 감싸던 우울감이 씻은 듯 날아가면서 갑자기 입맛이 돌았다.
이상하게도 뭐든 다 괜찮을 것 같아서, 포크를 다시 들어 올리며 올리비아가 낮게 샐리를 불렀다.
“샐리.”
“네?”
“오후에는 잠시 나가자.”
에셀라한테 보낼 편지도 한가득 썼었다. 그중 하나 정도는 보내도 괜찮겠지. 시간이 난다면 대공에게 답장을 보내도 좋을 것 같았다.
어쩐지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따스하게 느껴졌다.
* * *
같은 시간.
에셀라는 마차를 타고 외가인 하엘퀸 후작저를 떠났다.
목적지는 황궁의 황녀 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