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 첫 춤
(12/151)
012 첫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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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 첫 춤
2022.04.10.
“어때. 올리비아. 첫 맹세를 받은 기분이?”
다정하게 제 이름을 부르면서도 레오포드의 입매 끝이 비틀렸다. 무언가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있을 때마다 레오포드가 보이는 사인이었다.
그럴 때마다 올리비아는 늘 제가 잘못한 것처럼 레오포드의 눈치를 보며 기분을 풀어 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습관처럼 레오포드의 옆으로 가려던 올리비아가 멈칫했다. 맞잡은 대공의 손을 가볍게 흔들며 다잡자 딱딱하게 굳어 가던 대공의 표정이 풀렸다.
그 모습을 보던 레오포드의 한쪽 눈썹이 삐딱하게 올라갔다.
아까부터 올리비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제 손을 벗어날 때도, 지금 제 시선을 외면하는 것도.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올리비아라면 당연히 제 옆으로 와야 했다. 여기는 귀족들 한가운데였다. 감히 이런 가운데 저를 거절하려는 듯 올리비아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속이 뒤집어질 것처럼 울렁거렸다. 불이 붙듯 확 하고 치밀어 오르는 감정에 레오포드의 눈매가 점점 날카로워졌다.
“전하.”
올리비아를 보호하듯 뒤로 숨긴 대공은 살육귀라는 별명이 무색할 정도로 상냥하게 말했다. 날 선 기세로 흉흉하게 선 레오포드와는 정반대였다.
“볼일이 없다면 이만 비키시지요. 제가 맹세를 바친 아가씨와 첫 춤을 추려고 하던 참이어서 말이죠.”
“내 약혼녀가 첫 맹세를 받은 만큼, 첫 춤은 내가 가져가고 싶은데. 대공.”
딱딱한 목소리와 달리 레오포드가 두 눈을 부드럽게 휜 채 저를 바라보았다.
“가지. 리브.”
다정한 목소리가 제 애칭을 불렀다. 그 순간, 올리비아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어머니 이후로 제 애칭이 불린 게 처음이었다.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레오포드가 환하게 웃었다. 아주 옛날 제 찬란한 구원이었던 그 열한 살 때처럼.
그래서 올리비아는 저도 모르게 움직일 뻔했다.
“늘 나와 첫 춤을 추고 싶어 했잖아.”
마치 적선 같은 저 말만 아니었어도 정말 그랬을 것이다.
‘첫 춤’이라는 단어에 제 데뷔탕트가 떠올랐다. 당연하게도 레오포드의 옆에 섰었던 저와, 그런 저를 내버려 둔 채 노르디안 후작 영애의 손을 잡았던 레오포드.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레오포드는 자신만만했다.
한 번의 청함도 없이 당연하게 손을 내미는 레오포드의 모습. 허락을 구하지도 않고 애칭을 부르는 레오포드의 모습에 올리비아는 가만히 입술 안쪽을 깨물었다.
……레오포드한테는 제가 그렇게 쉬운 걸까.
마리아 에텔과 함께 왔으면서도 저를 향해 약혼녀라고 말하는 것도, 보낸 적 없는 카드와 꽃에 대해 시종장한테 이야기를 들었을 텐데 모르는 척하는 것도.
이런 식으로 저를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만드는 것도.
기분이 한없이 가라앉았다. 올리비아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려고 애썼다.
뒷일은 생각할 여유가 없이 올리비아가 느릿하게 입술을 떼었다.
“……전쟁 영웅들을 축하하는 승전 연회입니다. 전하.”
“……리브?”
믿기지 않는다는 듯 레오포드가 다시금 올리비아를 불렀다.
올리비아는 그 어느 때보다도 고개를 꼿꼿하게 들었다. 레오포드의 새파란 눈동자에 넘실거리는 게 이 상황에 대한 분노인지 저를 향한 화인지 모르겠지만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오늘은 너무 지쳤다.
“첫 춤은 대공 전하와 먼저 추고 오겠습니다.”
타이밍을 맞추듯 대공이 부드럽게 올리비아를 에스코트했다. 한 걸음, 두 걸음.
아 참, 올리비아는 뒤늦게 생각난 것처럼 레오포드를 향해 잠시 돌아섰다.
그러면 그렇지. 하는 눈빛으로 오만하게 저를 바라보는 레오포드한테 예를 갖추어 말했다.
“전하께서도 저기 뒤에 있는 에텔 영애와 즐거운 첫 춤 추고 오시지요.”
레오포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올리비아는 그대로 대공의 손을 잡은 채 연회장 가운데로 향했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두근대었다.
처음으로 레오포드를 밀어냈다.
알 수 없는 감정이 올리비아의 마음을 가득 채웠다.
.
.
.
“안 무거워요?”
“네?”
“그 검이요.”
대공이 웃음 가득 어린 얼굴로 눈짓했다. 그제야 올리비아는 제가 한 손으로 검을 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분명 보석이 가득 박혀 무거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가벼웠다. 올리비아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게요. 무거울 줄 알았는데.”
“안 무겁다면 어마어마한 재능을 발견한 건데요? 어때요. 우리 기사단에 들어오는 게?”
올리비아가 곱게 눈을 흘기자 대공은 모르는 척 딴청을 부렸다.
“춤출 때는 잠시 내가 맡아 줄까요?”
올리비아가 고개를 끄덕이자 대공이 검을 잡았다. 대공의 기사가 와서 검을 받아 들었다. 윽, 나직한 묵음이 언뜻 들리는 것 같았는데. 그 와중에 대공은 황제를 향해 목례했다.
“폐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레이디께 맹세를 드린 몸으로 첫 춤을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당연하지. 이 축하할 일에. 연회를 계속하지.”
황제는 굳은 입매로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악단이 다시 연주를 시작했다. 우아한 선율이 다채롭게 연주되며 다시 연회장을 채워 나가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서 황제는 억지로 웃었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 쥐는 것은 나중 일이었다.
벌써 귀족들이 웅성대고 있었다. 이 동요는 아마 삽시간에 귀족들 사이로 퍼져 나갈 것이었다. 연회에 초대받지 못한 귀족들로, 그리고 서서히 평민들에게까지.
대공이 준비된 황녀 대신 태자의 약혼녀에게 기사의 맹세를 바치다니.
황녀는 물론 황후까지 어느새 자리를 비웠다. 흰 얼굴을 수치심으로 물들였던 황녀의 얼굴이 떠올라, 황제는 살기를 억누르며 대공을 바라보았다.
늘 표정 없는 얼굴로 저를 올려다보던, 제 개가 태자의 약혼녀 옆에서 웃고 있었다.
입속의 혀처럼 굴던 놈이.
감히.
감히 주제도 모른 채.
황제는 굳은 입매를 겨우 올렸다.
이렇게 황실을 도발해 봤자 저놈이 가장 바라는 백수정 광산은 아직 제 손안에 있었다.
선대 대공비의 유품이라며, 고작 그 광산을 위해 온 전쟁을 돌던 놈이었으니.
황제는 놈을 옭아맬 수를 생각했다. 아직 저놈을 놓을 수는 없었다.
“……황녀의 결혼을 생각할 때가 되었군.”
이를 갈듯 나직하게 말하는 황제의 말에 노련한 시종장은 고개를 숙였다.
* * *
연회장 가운데에서 올리비아는 가볍게 숨을 뱉었다. 무표정한 얼굴 위로 긴장이 스치고 지나갔다.
“왜 이렇게 떨어요? 아까 내 맹세를 받을 때보다 더 떠는데요?”
“첫 춤 데뷔보다 떨리는 게 있을까요?”
“첫 춤이요?”
대공이 조금 놀란 듯 올리비아의 말을 따라 했다. 올리비아가 슬쩍 웃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에셀라 다음으로 두 번째라서 조금 부끄럽기도 했다.
괜히 다른 곳을 바라보던 대공이 툭 내뱉듯 말했다.
“……나도 오늘이 첫 춤인데.”
“그거 큰일이네요.”
까만 머리카락에 덮인 귀 끝이 붉어진 것은 보지 못한 채 올리비아가 진지하게 덧붙였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연습은 많이 했으니 전하의 발을 밟는 일은 없을 겁니다.”
“뭐, 그 구두 굽에라면 발이 찍혀도 상관없을 것 같은데.”
“……네?”
박자를 세던 올리비아가 고개를 들어 대공을 바라보았다.
“제 발이 엉망이 된다면, 그때는 아가씨가 책임져 주시겠죠.”
대공의 미소가 짙어졌다. 올리비아가 농담의 진위를 파악하는 사이 곡이 시작했다.
대공은 아무렇지도 않게 올리비아의 손을 잡은 채 리드했다. 자연스러운 몸짓에 올리비아는 박자를 세던 것도 잊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처음이라는 말이 믿기지 않게 대공의 리드는 훌륭했다. 중간중간 올리비아의 템포를 확인하듯 눈을 맞춰 오는 여유까지 있었다.
“……그, 처음이라시더니.”
올리비아가 툭 말하고는 아차 했다. 대공이 춤에 능한 것에 투정을 부린다는 것이 웃겼다.
제가 뭐라고.
올리비아가 서둘러 다른 말을 찾았다. 대공이 눈매를 가늘게 좁힌 채 즐겁다는 듯 대꾸했다.
“내가 말했을 텐데요. 몸으로 하는 것에는 다 능하다고.”
그야 그렇지만.
올리비아는 쉽게 수긍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작게 심술이 났다. 그렇다고 해도 첫 춤인데 허둥지둥하는 저와는 달리 노련하게 파트너까지 이끌 줄은 몰랐다.
“……이렇게까지 잘 추실 줄은 몰랐죠.”
“하긴. 나도 좀 아쉬운데요.”
“네?”
“아가씨의 구두 굽에 찍히길 조금 바랐는데. 내가 리드를 너무 잘하죠?”
올리비아는 잠시 말을 잃었다.
얼굴색 한 점 안 바뀐 채 말하는 대공은 정말 아쉽다는 듯 낮게 한숨까지 쉬었다.
정말 뻔뻔하기가 이를 데 없어서. 올리비아는 저도 모르게 얼굴의 힘을 풀고 옅게 웃었다.
이 남자가 정말 살육귀라는 소문을 달고 다니는 비칸데르 대공이라는 걸까?
이렇게 능청스럽고, 또.
“아.”
갑자기 허공에 뜬 올리비아가 깜짝 놀라 작게 소리 냈다. 대공이 올리비아를 훌쩍 들어 올린 채 빙그르르 돌았다. 가볍게 착지를 한 올리비아가 다시 토끼처럼 커다랗게 눈을 떴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대공의 붉은 눈이 더 짙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던 찰나,
순식간에 몸을 가까이 댄 대공이 올리비아의 귓가에 속삭였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훅 들어왔다 다시 멀어진 대공이 천연덕스럽게 웃었다, 올리비아는 귀 끝이 홧홧해지는 느낌을 애써 지운 채 여유롭게 웃었다.
“너무 귀한 선물을 받았다는 생각이요.”
“제 가치를 알아주다니. 선물 드린 입장에서 보람차네요.”
대공이 턱을 들어 올렸다. 우쭐한 감정이 스스럼없이 얼굴에 드러났다. 놀려 주고 싶은 얼굴이라서 올리비아는 모른 척 말을 바꿨다.
“저는 보검 말씀드린 건데. ‘아이라루텐’이요.”
“와.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네요?”
“저는 들어 올려지는 입장인데요?”
타이밍 좋게 대공이 올리비아의 허리를 잡고 위로 올렸다.
붕 뜨는 기분이 이렇게 좋은 건지 몰랐다. 숨이 가쁘게 왈츠를 추는 기분이 이렇게 상쾌할 줄도.
머리카락을 느리게 날리며 올리비아가 눈을 곱게 접었다.
올리비아의 모든 표정을 눈에 담던 대공이 빙그레 따라 웃었다.
“……농담도 잘하네요.”
“제가요?”
손을 맞잡은 상태로 올리비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처음 들어 보네요.”
올리비아를 수식하는 수많은 말 중에 농담을 잘한다는 말은 없었다. 딱딱하고 재미없다면 모를까.
“그러면 재치 넘친다는 말은요?”
“단 한 번도요.”
“저런. 아가씨 주변의 사람들은 다 눈이 삔 게 분명하군요.”
진지한 대공의 얼굴에 올리비아는 그만 웃음을 터트렸다.
정말 이상하다. 연회 때 웃는 게 처음이라서일까. 아니면 무슨 말이든 웃게 만드는 저 남자 때문일까.
마주 웃는 대공의 뒤로 염탐하듯 살피는 귀족들의 얼굴이 보였다. 올리비아의 가슴 한쪽이 서늘하게 내려앉았다.
그제야 올리비아는 제가 받은 맹세가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인지했다.
이제 제 명예는 모두 대공의 명예와 직결될 것이었다. 이미 여기저기에서 조리돌림당하는 제 이름의 끝에 늘 대공이 거론될 것이었다.
그걸 피하기 위해 에셀라와도 거리를 두었는데. 제게 다정한 사람한테 피해가 미친다고 생각하자 덜컥 겁이 났다.
대공은 웃음기 사라진 올리비아를 살폈다. 그러는 새 올리비아가 중얼거렸다.
“……뒤집으셔도 괜찮아요.”
“뭘요?”
“그, 전하. 그 맹세에 대한 것은…… 뒤집…….”
올리비아는 말을 하다 잠시 망설였다. 가장 좋은 방법은 대공이 맹세를 무를 수 있게 제 복장에 대해 다시 한번 재고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머뭇거려졌다.
그렇게 다시금 뒤집는다면.
결국 이 다정한 우연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이 짧은 인연은 이대로 끝이라는 게 자명했다.
올리비아의 입술이 쉬이 떨어지지 않을 때였다.
“비밀을 털어놓자면 처음부터 아가씨한테 맹세를 바칠 계획은 없었어요. 나름의 작전을 품고 왔거든요.”
대공의 말에 올리비아는 숨을 삼켰다. 어떤 말이 나오더라도 괜찮은 얼굴을 해야 했다. 마주한 대공의 얼굴에 장난기가 번졌다.
“그런데 딱 검만 선물하려는 순간 생각이 난 거예요. 아, 난 가장 귀한 걸 선물로 주기로 했는데. 이 검은 단지 귀한 검일 뿐이지 가장 귀한 건 아니잖아요. 그러니 어떻게 해요.”
대공의 말 뒤로 끝을 향하듯, 왈츠의 선율이 빨라졌다.
뭘 어떻게 한다는 말이지?
아직 끝나지 않은 말에 올리비아가 궁금해할 틈도 없었다. 음악은 클라이맥스로 치달았다.
손을 마주 잡은 상태에서 올리비아는 돌고 또 돌았다.
붉은 드레스가 마치 꽃처럼 피어났다 접혔다를 반복했다. 핀 없이 흐트러지는 은발이 샹들리에 빛에 반짝이며 사람들의 시선을 휘감았다.
마침내 왈츠가 끝났다. 올리비아가 가쁜 숨을 고르며 한쪽 드레스를 잡은 채 가슴 부근에 손을 대고 대공을 향해 예를 갖췄다.
그 앞에 선 채 올리비아를 향해 고개 숙인 대공이 부드럽게 올리비아의 손을 이끌었다.
그리고 장갑 위로 슬쩍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닿지는 않았지만, 파격적인 인사에 올리비아를 포함한 모두가 조용해진 틈을 타서 대공은 올리비아를 향해 속삭인 뒤 자리를 떴다.
이 가운데에서 혼자 남은 올리비아가 멍하니 대공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눈을 커다랗게 뜬 채 다시 한번 대공을 바라보았다.
멀어지는 대공이 남긴 말이 올리비아의 귓전을 맴돌았다.
“그러니 어떻게 해요. 가장 귀한 내가 아가씨의 선물이 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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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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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철에 피어난 장미처럼 화사하게 웃던 대공의 얼굴에서 웃음이 가셨다. 화려한 얼굴이라고 생각했던 대공이 무표정해지자 주변의 온도가 내려가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대공의 뒤를 따라온 기사 하워드 인터필드 남작은 보검을 대공에게 내밀었다. 검에서는 모든 것을 얼려 버릴 듯 차가운 기운이 풍겼다.
“전하. 여기.”
하지만 이 검을 진정시킬 수 있는 유일한, 아니 이제는 유이한 분 중 한 분인 대공은 검은 신경도 안 쓴 채 연회장 중간을 보며 중얼거렸다.
“왈츠곡은 도대체 왜 시간이 정해진 거지?”
다급한 얼굴로 달려온 갈색 머리 윈스터 칼터가 딱 대공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말했다.
“파트너를 바꿔야 하니까요. 그나저나 왜 그러셨어요. 광산을 위해서라도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굽히신다면서요.”
“왜 파트너를 바꿔야 하지?”
“네? 광산은요? 전하!”
당황한 윈스터의 말은 들리지도 않는지 대공은 대답 대신 연회장 한가운데를 바라보았다.
태자가 당당한 걸음으로 올리비아에게 향했다. 올리비아와 같은 색의 제복이 눈에 밟혔다. 파트너라는 것을 과시하는 듯한 모습에 대공의 눈이 짙게 가라앉았다.
검에 살기가 어렸다.
깜짝 놀란 윈스터가 몇 걸음 멀어졌지만 대공의 시선은 오롯이 한 사람을 향했다.
“설마…….”
윈스터가 중얼거리자 하워드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백수정 광산을 소유한 황녀를 공략하자는 가장 손쉬운 작전은 수포로 돌아갔다.
하지만 전하는 다른 작전을 세우셨을 것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승리를 낚아채는 것. 그게 대공이 늘 해 왔던 일이니까.
* * *
다시 곡이 바뀌었다. 연회장 가운데에 있던 올리비아는 등을 꼿꼿하게 폈다. 늘 벽 근처에 있는 게 전부였던 연회였는데, 오늘만큼은 아니었다.
“즐거웠나 보군.”
레오포드가 당연하다는 듯 올리비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네. 전하.”
올리비아가 제 손을 얹었다. 그리고 레오포드를 바라보며 물었다.
“전하께서도, 즐거우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