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01. 마델레이네를 지우겠습니다 (1/151)

#001. 마델레이네를 지우겠습니다2022.03.02.

16550650949278.jpg“도대체 무슨 술수를 부린 거야.”

승전 연회의 마지막 날이었다. 날카로운 말이 여과 없이 올리비아한테 쏟아졌다. 마주하고 있는 아버지, 마델레이네 공작은 모든 것을 얼려 버릴 듯 차갑게 말했다.

16550650949278.jpg“무슨 말을 속살거렸기에 비칸데르 대공이 황태자의 약혼녀인 네게 청혼을 해.”

올리비아를 내려다보는 자수정빛 눈동자에 경멸이 비쳤다.

16550650949278.jpg“딱 하나. 잡음 없이 태자비가 되라는 딱 그 하나도 못 지킬 정도로 엉망인 거냐.”

늘 그래 왔던 것처럼. 여느 때처럼 묵묵히 날카로운 비난을 듣고 있던 올리비아가 웃음을 터트린 건 바로 그때였다. 공작이 불쾌하다는 듯 눈썹을 추켜올렸지만 올리비아는 웃음을 멈출 생각이 없었다. 세상에. 이렇게까지 제 미련을 완벽히 끝내 주시다니. 공작은 평생 모를 것이다. 제가 어떤 마음으로 연회장에서 공작을 따라나섰는지. 지금 이 순간, 처참하게 부서진 제 기대가 무엇이었는지.

16550650949278.jpg“당장 대답하지 못하겠어?”

16550650949296.jpg“말씀드리면, 이제는 믿어 주시게요?”

16550650949278.jpg“뭐?”

매서운 시선이 올리비아를 꿰뚫을 듯 쏘아보았다. 늘 저 시선을 견뎠다. 언젠가는, 언젠가는 저 눈이 다정히 저를 바라봐 주겠지, 저도 아버지의 딸이라는 걸 인정해 주겠지, 믿어 의심한 적 없었다. 제 머리 색과 같은 공작의 은발을 보며, 마델레이네 공작가의 특징을 공유했다는 것만으로도 기뻤던 때도 있었다. 이제는 아니었다. 제 노력은 여기까지였다. 제 최선의 말로에서, 올리비아는 희게 웃었다.

16550650949296.jpg“그러면 말씀드릴게요. 저는 대공 전하께 혼인을 청해 달라 속살거린 적 없다고, 몇 년을 매달려도 약혼녀인 저를 무시하고 에텔 영애와 정답게 지내 잡음을 만든 분은 태자 전하시라고.”

16550650949278.jpg“그 입. 다물어라.”

16550650949296.jpg“저를 에셀라 대신 태자 전하의 약혼녀로 보내기 위해 저택에 데려오신 분은 여기 계신 공작님 본인,”

16550650949278.jpg“닥쳐!”

사나운 노성이 밤을 뒤흔들었다. 새들이 놀라 날아가는 소리가 요란했다. 마델레이네 공작이 결국 이성을 잃은 듯 올리비아를 노려보았다. 핏줄이 터진 듯 보라색 눈동자가 붉게 번졌다.

16550650949278.jpg“너 때문이다. 너. 네가, 네가 내 집에 오지만 않았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거야! 네가 나를 불행하게 만들었어. 다 너 때문이다. 다.”

한 음절 한 음절에 응어리진 분노가 묻어났다. 공작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저 미움이 절절해서, 정말 제 탓이 아닌지 스스로를 의심했던 적도 있었다.

16550650949296.jpg“지금도, 그때도.”

16550650949278.jpg“…….”

16550650949296.jpg“저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16550650949278.jpg“…….”

16550650949296.jpg“제가 공작님을 불행하게 한 건 아니에요.”

16550650949278.jpg“올리비아 마델레이네! 감히!”

쩌렁한 공작의 화에도 올리비아는 더 이상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토록 크게 느껴졌던 공작이, 더 이상 무섭지 않았다. 이제 정말, 끝낼 때가 된 것 같았다.

16550650949296.jpg“……저를 지우고 싶다 하셨죠?”

16550650949278.jpg“할 수만 있다면, 너를 내 인생에서 지워 버리고 싶다.”

며칠 전의 기억인데도, 잇새로 토해 내듯 말하던 공작의 목소리가 또렷했다. 심장이 떨어져 나갈 듯 아팠던 말이, 고작 며칠 만에 저릿한 수준이 되었다.

16550650949296.jpg“저도 마찬가지예요. 저도 이제 제게 붙은 마델레이네.”

마델레이네. 그토록 바랐던 성이었다. 온 힘을 다해 붙들고 있던 가문, 제 평생의 최선을 다 바쳐 짝사랑했던 가족. 그리고 끝내 돌아봐 주지 않았던, 제 외사랑들. 올리비아는 그 모든 짝사랑들을 향해 홀가분하게 웃었다.

16550650949296.jpg“마델레이네를, 전부. 지우겠습니다.”

스르르, 저만 당기고 있던 관계가 툭, 떨어졌다.

16550650949278.jpg“올리비아!!”

공작의 고함과 함께 번뜩이는 살기가 온몸으로 다가왔다. 호흡조차 조이는 흉흉한 기세에도 올리비아는 몸을 꼿꼿이 했다. 그게 올리비아가 바라는, 마지막이었다.

16550650978156.jpg“거기까지.”

그 순간, 저벅이는 발소리 하나가 끼어들었다.

16550650978156.jpg“내 소중한 아가씨께 더 이상의 위협을 가한다면 비칸데르 전체를 적으로 돌리게 될 겁니다. 공작.”

단정하게 들려오는 목소리가 올리비아를 따스하게 감쌌다. 공작이 이를 으득 갈며 낮게 읊조렸다.

16550650949278.jpg“……비칸데르 대공…… 전하.”

올리비아가 뒤를 돌아보았다. 무저갱의 까마귀 깃처럼 새까만 머리카락에 반짝이는 루비처럼 붉은색 눈동자. 살인귀며 혈귀, 흉흉한 별명들로 가득 찼다기에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화려하게 잘생긴 남자. 절대로 깨질 것 같지 않은 무표정이 올리비아를 마주하는 순간 달큼하게 웃었다. 기묘한 일이었다. 제가 그토록 최선을 다했던 가족도, 약혼자도, 그 누구도. 올리비아를 저런 식으로 바라본 적이 없었다.

16550650978156.jpg“볼일 다 끝났으면, 이제 내게 집까지 에스코트할 기회를 주었으면 하는데 말이죠, 내 아가씨.”

저렇게 다정하게. 저렇게 달콤하게. 그토록 올리비아가 바랐던 눈빛으로.

16550650978173.jpg

  * * * 마델레이네가의 이른 새벽, 계단 위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마델레이네 공작의 출근을 알리는 소리였다.

16550650949296.jpg“안녕히 주무셨어요.”

부관과의 이야기가 끝나는 틈을 타서 올리비아가 인사했다. 공작이 눈살을 찌푸렸다. 여섯 살 때부터 십사 년째 보는 표정이었지만 심장을 쿵 하고 때리는 통증은 절대 익숙해지지 않았다. 남을 보는 것보다 못한 눈빛. 올리비아는 못 본 척, 빙그레 웃으며 쟁반을 내밀었다. 여느 아침과 마찬가지로 채소 주스가 놓여 있었다.

16550650949296.jpg“혈관에 좋은 채소들로 만들었는데.”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공작이 다시 걸음을 옮겼다. 공작을 뒤따르던 부관, 헉슬리 경이 되레 더 민망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가 공작을 따라갔다. 올리비아는 그 시린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미처 꺼내지 못한 말을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다녀오세요. 아버지. 오늘도 성공하지 못했다. 몇 년째 만드는 채소 주스를 건네는 것도, 인사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도. 하지만 언젠가는 성공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기대감 하나가 십사 년째 올리비아를 움직였다. 어머니가 그랬으니까. 최선을 다한다면 언젠가는 그 바람이 꼭 이루어질 거라고. 애써 어깨를 으쓱이던 올리비아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1층 홀 가운데에 걸린 거대한 초상화가 눈에 박혔다. 의자에 앉은 아버지와 그 오른편에 든든히 서 있는 첫째 콘라드와 둘째 제이드. 왼편에 선 채 환하게 웃고 있는 막내 에셀라. 에셀라 옆에 어정쩡하게 선 제 모습까지 바라보다가 올리비아가 설핏 웃음을 지었다. 저 초상화 속 제 모습이 유난히 어색해 보이는 것은 조금 떨어진 거리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서늘한 은빛을 따다 빚은 듯한 은발과 반짝이는 보라색 눈동자. 유구한 마델레이네의 특징과 다르게 제 눈은 초록색이었다. 사교계에서는 떠돌이 무희를 닮은 수치스러운 초록색이라고 했지만, 올리비아는 제 눈이 좋았다. 이건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유일한 흔적이었다. 하지만 아주 조금 아쉬워졌다. 만약 제가 에셀라처럼 보라색 눈동자였다면 가족들이 저를 대하는 태도가 조금은 달랐을까. 초상화 속 에셀라를 보는 올리비아의 녹색 눈동자 위로 부러움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이내 올리비아가 고개를 저었다. 사교계의 꽃이라 불렸던 전대 공작 부인을 쏙 빼닮은 막내 에셀라는 날이 갈수록 빛이 났다. 겨우 눈동자 색깔만 같아진다고 해서 에셀라를 따라갈 수는 없을 것이었다. 무엇보다 에셀라는,

16550650978187.jpg“언니. 벌써 일어났어요? 아버지는요?”

저렇게 착하고 사랑스러웠으니까. 아직 열일곱 어린 나이답게 에셀라는 졸음 가득한 눈을 비비며 계단을 내려왔다. 올리비아는 일부러 냉정하게 말했다.

16550650949296.jpg“……출근하셨어.”

16550650978187.jpg“일어나자마자 바로 왔는데. 오늘도 늦었네요. 그런데 언니.”

에셀라가 아쉬운 듯 문가를 바라보다 올리비아한테 다가왔다.

16550650978187.jpg“이번에 황녀 전하의 티 파티에서 되게 독특하고 예쁜 꽃 장식이 나왔다는데, 들으셨어요? 처음 선보이는 디자인이라던데, 들어 보니까 제가 어디에선가 본 것 같아서요.”

에셀라의 목소리가 은근해졌다. 황녀는 종종 올리비아한테 일을 시켰다. 이번에 맡은 일 중 하나가 바로 새로운 꽃 장식이었다. 올리비아가 며칠을 고민해 만든 꽃 장식은 언제나처럼 황녀의 이름으로 유행했다. 인기가 좋았다더니, 티 파티에는 일절 참석하지 않는 에셀라한테까지 이야기가 전해진 모양이었다.

16550650978187.jpg“그거, 언니 방에서 본 거,”

16550650949296.jpg“황녀 전하께 티 파티 전에 미리 몇 개 받은 게 있었어. 마음에 든다면 네 방으로 몇 개 보내 줄게.”

올리비아가 건조하게 말했다. 대답이 기대와 달랐던 듯, 김이 샌 게 그대로 에셀라의 얼굴에 드러났지만 올리비아는 모른 척했다.

16550650978187.jpg“감사해요. 아, 그리고. 혹시 오늘 베로니아라고 제 친구가 티 파티를 연다고 하는데 같이 가 주실 수 있으세요? 걔가 자기 사촌 언니 자랑을 엄청 해서요.”

에셀라는 잔뜩 기대한 얼굴로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반짝이는 두 눈동자며 홍조를 띤 얼굴을 보니 매정하게 잘라 내려던 말이 나가지 않았다.

16550650949296.jpg“어, 나는.”

16550650993532.jpg“에셀라.”

부드러운 음성이 올리비아의 목소리 위로 올라왔다. 에셀라가 눈을 반짝이며 계단 위를 바라보았다. 콘라드였다.

16550650978187.jpg“오라버니!”

에셀라가 자연스레 콘라드에게 달려가 목에 매달렸다. 가볍게 에셀라를 안았다 내려 준 콘라드가 서늘한 눈으로 올리비아를 마주했다. 저 눈이 경고라는 것을 올리비아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에셀라와 함께 있지 말라는 경고. 콘라드가 다정하게 물었다.

16550650993532.jpg“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

16550650978187.jpg“아, 언니한테 베로니아의 티 파티에 같이 가 달라고 하고 있었어요.”

16550650993532.jpg“그래? 그런데 올리비아. 오늘 수요일인데 아직 출발 안 했어?”

16550650978187.jpg“아 맞다! 오늘이었죠? 태자 전하께서 기다리시겠어요!”

콘라드가 자연스레 화제를 돌렸다. 더 이상 조르지 못할 이유에 에셀라도 고개를 끄덕였다.

16550650949296.jpg“그러게. 고마워요. 오라버니.”

콘라드의 얼굴이 아주 조금 일그러졌지만 올리비아는 모른 척했다. 올리비아는 오라버니라는 호칭이 좋았다. 꼭 가족 같아서. 그 작은 연결점이 좋았다.

16550650978187.jpg“그러면 언니. 다음에 꼭 같이 가요. 다음번에는 꼭 일찍 물어볼게요!”

에셀라가 아쉬운 듯 올리비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올리비아는 시선을 피했다. 아무리 다음번에 일찍 말해 준다고 해도, 에셀라와 함께 가지는 못할 거였다.

16550650993532.jpg“와. 나한테는 같이 가자고 물어보지도 않는 거야, 에셀라?”

16550650978187.jpg“치. 오라버니랑 같이 가서 뭐 해요. 다들 오라버니만 바라볼 텐데.”

하하하. 콘라드가 시원스레 웃었다. 심통이 난 듯 계단을 올라가던 에셀라가 반짝 생각이 난 듯 올리비아를 돌아보며 말했다.

16550650978187.jpg“참! 언니! 오늘 저녁 식사 잊지 않았죠? 잘 다녀와요!”

활기차게 손을 흔든 에셀라가 다시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에셀라를 따라 걷던 콘라드가 지나치듯 말했다.

16550650993532.jpg“……본분에나 충실해. 에셀라한테 다가올 생각은 하지도 말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올리비아를 찔렀다. 아무렇지 않은 듯 걸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는 올리비아가 느릿하게 숨을 참았다 내쉬었다. 여섯 살, 올리비아가 처음 마델레이네로 들어오던 때부터 속상함을 삭이던 그녀만의 방법이었다. 대개 이러면 다 사라졌는데. 제 방으로 올라왔는데도, 오늘따라 쌓인 속상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올리비아는 서랍을 열었다. 다섯 권이나 쌓여 있는 일기장 중 지금 쓰는 일기를 꺼내 펴다가 피식 웃었다.

16550650949296.jpg“아, 다 썼지.”

끝장까지 빼곡하게 쓰인 글씨에 올리비아가 중얼거렸다. 집에 오는 길에 한 권 더 사 와야겠다고 생각하며 일기장을 꽂을 때였다. 유난히 손때가 많이 탄 첫 번째 일기장이 눈에 박혔다. 올리비아는 일기장을 펼쳤다. - 오늘은 경망스럽게 에셀라를 불렀다. 절대로 귀족답지 않은 태도이니 꼭 고치라고 들었다. 다음부터는 절대 그러지 말아야지. - 식사 예절이 우아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입맛이 떨어진다고 했다. 절대로 그러지 말아야지. 계속 생각하자. 올리비아. 실수하지 말고 계속 최선을 다하자. 글자 군데군데가 번지고 종이가 울어 있었다. 그래도 이 일기 덕분에 제가 나아질 수 있었다. 늘 지적받은 점을 적고 다시는 그러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니, 이런 자국은 별거 아니었다. 일기를 훑어보던 올리비아의 손이 멈췄다.

16550650978173.jpg

  - 어쩌면, 내가 이곳에 온 것 자체가, 아주 고민하다 처음 썼던 제 일기. 끝을 맺지 못한 문장에 올리비아는 입 안쪽 살을 깨물었다. 여섯 살, 제 인생이 달라졌던 때가 떠올랐다. 모든 건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시작되었다. * * * 부랑자와 가난의 거리 터닝벨. 올리비아는 그곳에서 태어나 살았다. 아름다운 어머니와 함께. 제 팔뚝만 한 쥐가 수시로 나타나고, 빵 한 덩이만으로도 감지덕지한 일상이었다. 그렇지만 올리비아는 행복했다. 어머니의 노래와 춤은 모든 상황을 마법처럼 만들었으니까. 행복이 문밖으로 나간 것은 올리비아가 여섯 살 때였다. 일을 나가던 어머니가 쓰러졌다. 어떤 약도 듣지 않았고 어머니는 계속 시들어 갔다. 어느 날이었다. 올리비아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어머니가 올리비아의 손을 잡았다. 이 손은 어머니의 손이 아니었다. 강하고 부드러운 힘으로 잡아 주던 손이 고작 올리비아의 손에도 바스러질 것처럼 앙상했다. 여러 날을 참아 왔는데,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올리비아는 엉엉 울었다.

16550651021293.jpg“리브, 내, 아가. 왜, 울어. 응?”

저를 달래는 목소리가 뚝뚝 끊어졌다. 카나리아처럼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던 어머니의 모습은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어린 나이였지만 어떠한 직감 같은 게 있었다. 그러니까, 어머니와 다시는 보지 못할 것 같다는 그런 직감. 그건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16550651021293.jpg“리브. 이제 잘 들어야 해. 아가.”

오랜만에 힘주어 말하는 목소리에 올리비아는 얼른 눈물을 그치고 어머니 곁으로 앉았다.

16550650949296.jpg“응.”

16550651021293.jpg“곧 네 아버지가 올 거야.”

16550650949296.jpg“……아버지는 죽었잖아.”

16550651021293.jpg“거짓말이었어. 미안. 아가.”

16550650949296.jpg“…….”

16550651021293.jpg“미안해. 리브.”

16550650949296.jpg“아니야.”

올리비아는 고개를 저었다. 어머니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작은 머리통으로 다 이해하는 바는 아니었지만, 어머니가 미안해할 필요는 하나도 없었다. 어머니 혼자만으로도 넘칠 만큼 행복했으니까.

16550651021293.jpg“아가. 그곳에, 는 형제도, 있을 거고, 자매, 도 있을 거야. 너를 낯설어할, 수도 있지만. 알지?”

어머니가 가쁘게 숨을 쉬다가 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16550651021293.jpg“……최선을 다한다면,”

16550650949296.jpg“모든 것은 다 이루어질 테니까.”

올리비아가 대답했다. 바로 맞추었다는 듯 어머니의 눈이 둥글게 휘었다. 그게 마지막 웃음이었다. 며칠 뒤의 아침, 어머니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소박한 장례를 마치고 돌아온 집 앞에는, 거리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마차 한 대가 서 있었다. 마차 옆에 서 있던 남자가 올리비아를 내려다보았다. 차가운 시선에 올리비아는 어깨를 움츠렸다.

16550651021293.jpg“머리 색을 보아하니 딸은 맞는가 보군요.”

남자는 혀를 차더니 올리비아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남자의 손에는 엄마가 유품으로 남겨 준 실 발찌와 똑같은 게 들려 있었다.

16550651021293.jpg“편지를 받고 왔습니다. 저와 함께 가시죠.”

1655065104264.jpg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