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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개는 훌륭하고 (11/20)


11. 개는 훌륭하고
2023.07.06.


아스페이런이 다시 한번 벽을 후려친 뒤에야, 겨우 소란이 진정되었다.

“전부 약간씩 돌아 있기는 해도 능력은 쓸 만하니 걱정하지 마라.”

그렇게 말하는 아스페이런의 얼굴에서는 지겹다는 기색이 짙게 묻어나오고 있었다.

“이들 외에도 연구원 한 명과 연구소 소속의 탐사대원들이 더 있지만, 그들은 지금 벨트라움 근처에 주둔하고 있으니 나중에 소개시켜주마.”

“네엡.”

“그래. 말을 잘 듣는 연구소 일원이 생기니 좋구나.”

아스페이런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뒤 무릎 꿇고 앉아 있는 연구원들에게 다가갔다.

“앞으로 괴수 관리에 관해서는 슈리아의 말에 따르도록 해라.”

“와우, 초고속 승진~.”

세크가 휘파람을 불며 박수를 치다가 아스페이런에게 한 대 쥐어 박혔다.

그러거나 말거나 프롬은 불만에 가득 찬 얼굴로 항의하고 나섰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군주님! 소장은 저입니다. 연구소에서는 제 결정권이 가장 우선되어야 기강이 살고 연구가 순조로워지고 로아킨의 발전이 가속화되고…….”

“토 달지 마.”

“게다가 저 여자는 괴수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지 않습니까! 문외한에게 그런 권한이라니요!”

“모르는 건 이제부터 배우면 된다. 그리고 그 정도 권한도 주지 않으면, 네놈들이 얼마나 이래라저래라 간섭해댈지 안 봐도 눈에 선해서 말이야.”

“하지만…….”

“그만.”

아스페이런이 그대로 일축해버렸다. 그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한다.

“많이 공부하고, 한동안은 연구원들과 충분히 상의한 뒤 결정하거라. 중대 결정은 내게 물어보고.”

“알겠습니다!”

“현재 연구소에서 사육 중인 괴수는 내가 직접 마력 제어구를 채운 달빛늑대개 새끼 세 마리뿐이니, 그 정도면 크게 위험할 것은 없어. 그러니 너를 믿어보마, 슈리아.”

“군주님……!”

마음속에서 감동이 물결쳤다. 나는 양손을 꼭 맞잡고 반짝이는 눈빛을 쏘아 보냈다.

아스페이런이 잘생긴 눈썹을 찡그린다. 나는 그냥 헤벌쭉 웃었다.

“…….”

아스페이런은 잠시 할 말을 잊은 듯했다. 이내 그가 축객령을 내렸다.

“이제 가서 슈리아에게 연구소를 구경시켜 주거라.”

“예…….”

“개들도 만나게 해주고, 슈리아가 해달라는 건 군말 없이 하도록.”

“예…….”

“그리고 슈리아 네가 앞으로 사용할 방은 연구소 위층 숙소에 준비해 놓으라 했다. 지금쯤 가구를 들여놓고 있을 거다.”

“감사합니다!”

“그래.”

아스페이런이 손을 내저었다. 나와 네 명의 연구원들은 그대로 방을 나섰다.

닫히는 문틈 사이로 키아라가 한 뭉치의 서류를 아스페이런에게 들이미는 모습이 보인다. 오늘 오후에도 아스페이런은 아주 바쁠 예정인 모양이었다.

‘군주의 삶은 고단하구만.’

새 직장을 얻은 나도, 언제나처럼 공사다망한 아스페이런도, 파이팅이다.

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연구원들을 뒤따라갔다.

……몇십 분 뒤, 내게 어떤 일이 닥칠지도 모른 채로.

* * *

연구소는 왕족들이 기거하는 궁인 크로넨 궁에서 걸어서 10여 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넓고 휑한 부지 위에 3층짜리 회색 건물이 쓸쓸히 서 있다. 괴수들의 세계를 연구하는 시설이니 좀 더 신비롭고 굉장하지 않을까 했는데, 생각보다 평범했다.

“어디부터 소개해 주실 건가요?”

“잠자코 따라와!”

프롬이 짜증스럽게 대꾸했다. 나는 연구원들을 따라 지하로 내려갔다. 숨 돌리며 건물 내부를 구경할 틈도 없었다.

“좀 천천히 가면 안 돼요?”

“나는 바빠. 우리 모두 바쁘지. 하루 종일 자네에게 달라붙어 있을 시간은 없네.”

슬쩍 부탁해 보았지만 우리의 냉정한 연구소장님 프롬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단호히 거절했다.

뿐만 아니라, 연구소의 모든 연구 시설이 모여 있다는 지하층에 도착한 뒤 이렇게도 말했다.

“여기 지하에서 자네에게 허락된 공간은 딱 괴수 사육시설뿐이야. 절대 다른 곳에는 들어가지 말게나. ‘자격’도 없는 이가 괜히 여기저기 뒤지고 다니다가 문제라도 생기면 큰일이니…….”

연구시설을 함부로 들쑤시지 말라는 말은 연구원으로서 당연한 당부였으나, 어쩐지 그의 말투와 단어 선택에서 나에 대한 강한 배척이 느껴졌다.

‘내가 영 탐탁지 않은가 본데.’

나는 턱을 쓰다듬었다.

하기야 연구소장인 프롬의 입장에서는 굴러들어온 외부인에게 뜬금없이 자신의 권한을 하나 빼앗긴 꼴이니, 확실히 언짢을 만도 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의 마음을 일일이 헤아리고 눈치 볼 여유가 없었다.

나는 지금 시한부 상태다. 3년 안에 아스페이런을 결혼시키지 못하면, 내 영혼이 영구적으로 소멸된다고 했다.

‘거기에 더해서 내가 손쓰지 않으면 아스페이런은 평생 독신으로 살게 된다고…….’

3년. 연애에 전혀 관심이 없는 일국의 군주의 결혼을 추진하기에는 솔직히 짧은 시간.

그러니 한시라도 빨리 실적을 만들어 아스페이런의 신임을 얻은 뒤, 최측근 자리에 올라야 한다. 그래야 군주님께 결혼의 ‘결’자라도 꺼내 볼 수가 있다.

‘그러니 만약 여기서 텃세가 더 과해지고, 내 일에까지 영향을 끼쳐 실적을 쌓는 데 차질이 생긴다면…….’

그땐 전쟁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내가 승진하는 데 방해가 되는 것들은 모두 제거하겠어!

나는 주먹을 불끈 쥐고 각오를 다졌다.

내가 맨 뒤에서 독기를 가득히 채워 넣는 동안, 우리는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 있었다. 프롬이 거대한 문을 손바닥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여기가 바로 괴수 사육시설일세. 현재 있는 건 달빛늑대개 세 마리뿐이야. 뭐, 자네가 일을 제대로 한다면 나중에 더 늘어날 수도 있겠지. 어쨌든 들어가 봐.”

그러더니 모든 연구원들이 이만 가보려는 듯 몸을 돌린다. 나는 급히 팔을 쭉 뻗어 그들의 앞을 막아섰다.

“어디 가세요? 같이 들어가서 지금까지 어떻게 돌봐왔는지 설명도 해주시고 주의사항도 알려주셔야죠.”

당연한 요구였으나 이상하게도 연구원들이 동시에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왜들 그러는 거지? 그렇게 바쁜가?’

나는 일단 한 발짝 양보해 주기로 했다.

“좋아요. 그럼 지금까지 괴수 관리를 담당하셨던 분만 남아주세요. 누구시죠?”

연구원 삼인방, 그러니까 세크와 티티라, 키리가 동시에 자신들의 소장님을 보았다. 여덟 쌍의 눈동자가 자신에게 향하자 프롬이 버럭 화를 냈다.

“지금 나한테 떠미는 건가, 자네들? 어이가 없군! 됐어, 모두 따라와. 함께 들어가지!”

씩씩거리며 프롬이 앞으로 나섰다. 그가 문을 벌컥 열어젖힌다.

그와 동시에 고약한 냄새가 콧속으로 파고들었다. 나는 급히 코를 틀어막았다. 이 냄새가 뭔지, 나는 아주 잘 알고 있다.

‘개 냄새야.’

거기에 똥 냄새와 오줌 냄새도 곁들여진.

하지만 이렇게까지 독하게 나다니?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래도 내 반응은 아주 온화한 축에 속했다. 옆에 있는 연구원들은 코를 막고 기침을 하며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

‘이래서 들어가기 싫어했던 거구나.’

나는 문 앞에 붙박여서 콜록거리는 연구원들을 한번 흘긴 뒤 성큼성큼 방으로 걸어 들어갔다.

쭉 둘러본 사육실 내부는 냄새만큼이나 가관이었다.

그저 넓기만 한, 어두침침하고 삭막하기 그지없는 회색 방. 대체 언제 청소를 한 건지 곳곳에는 먼지와 털 뭉치들이 굴러다니고, 천장 구석에는 거미줄까지 보인다.

게다가 숨조차 제대로 쉬기 어려운 독한 냄새와 이 쿰쿰한 공기……. 환기도 제대로 안 되는 모양이군.

아무리 괴수한테 접근하기가 힘들다 해도 이렇게까지 관리를 안 하다니, 제정신인가?

당장 연구원들의 머리채를 죄다 쥐어 뜯어놓고 싶었으나 일단 꾹 참았다. 지금 급한 일은 따로 있었다.

아직, 가장 중요한 강아지들을 찾지 못했다.

나는 처리해야 할 이런저런 일을 떠올리며 강아지들을 찾아 어둠에 잠긴 방의 깊숙한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우선 청소부터 쭉 하고……. 혹시 공기 정화 마법 같은 것도 있나? 냄새 빼려면 한참 걸리겠는데.’

그래도 죽기 전에 유기동물보호소로 봉사도 다니고 삼촌네 반려견 훈련소에서 아르바이트도 했던 터라 이런 일에는 나름 경력이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일이다.

“끼잉, 낑.”

그때, 방 한구석에서 아주 작고 힘없는 소리가 들려왔다.

“!”

나는 소리가 난 방향으로 급히 몸을 돌렸다. 그곳에는 커다란 동물 우리 하나와 작은 동물 우리 하나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작은 우리에서는 눈동자 한 쌍이, 큰 우리에서는 눈동자 두 쌍이 반짝인다.

‘어두워서 잘 안 보여.’

나는 결국 연구원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여기 불 좀 켜주실래요?”

연구원들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곧, 누군가가 손가락을 튕긴다.

마법이라도 쓴 건지 방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반색하며 다시 우리 안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리고 곧장 숨을 들이켰다.

“이런, 미친.”

큰 우리의 내부는 엉망진창이었다.

구석에 말라붙어 있는 배설물부터 시작해서 텅 비어 있는 지저분한 물그릇, 한참 방치된 것으로 보이는 벌레 꼬인 사료까지.

나는 우리 안쪽에 갇혀 서로 기댄 채 오들오들 떨고 있는 두 마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런 지독한 곳에서 저 애들은 얼마나 오랫동안 갇혀 있었던 걸까?

작은 우리 쪽에 갇힌 한 마리가 우두커니 서 있는 나를 향해 애처롭게 낑낑댔다. 홀로 격리되어 있는 걸 보니 아마 저 애가 나와 회랑에서 만났던 바로 그 애겠지.

불안한 눈빛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마르고 지저분한 그 강아지.

이제 이 아이가 왜 그리 불안해했는지 알 수 있었다. 피가 차갑게 식는 기분이다.

나는 스스로도 깜짝 놀랄 만큼 차갑게 굳은 목소리로 연구원들에게 물었다.

“……애들 물 언제 줬어요?”

“으응? 글쎄…….”

프롬이 대충 얼버무린다. 나는 다시 물었다.

“이 밥은 뭐고요? 얼마나 된 거예요?”

“저희가 괴수를 위해 만든 특제 사료인데…… 잘 안 먹기에 배고프면 먹으라고 내버려 뒀어요……. 얼마나 됐는지는 잘…….”

티티라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물었다.

“……그럼 애들을 이 상태로 가둬둔 지 얼마나 지난 거죠?”

“그건 알아요! 딱 56일 됐어요~.”

세크가 신나서 대답했다.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하지만 강아지들이 겁먹을까 봐 아스페이런처럼 무언가를 후려치지는 못했다.

나는 애견인이고, 앞서 말했듯 평소 유기동물보호센터로 봉사활동도 자주 다녔었다.

그런 내가 가장 싫어하는 건 동물과 어린아이를 괴롭히는 것.

지금은 실적을 내고 말고가 문제가 아니다. 내 안의 우선순위가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저 망할 연구원 놈들에게 정의의 철퇴를 내리자, 로.

“들어와요.”

도망가려는 건지 슬금슬금 몸을 물리던 연구원 놈들이 움찔 멈춰 섰다. 나는 그들을 노려보며 낮은 목소리로 명령했다.

“전부 들어오라고요.”

“아까 말했듯이, 우리는 자네와 달리 아주 바쁜 몸…….”

“당장.”

“그, 그러니까…….”

“당장!”

연구원들이 후다닥 방 안으로 달려 들어왔다. 마지막으로 들어 온 연구원, 키리가 비몽사몽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까, 깜짝이야. 군주님인 줄 알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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