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7화 <아폴로의 비밀>
‘헉!’
대한은 속으로 헛바람을 들이키며 급히 위빙을 했다.
무지막지한 아폴로의 주먹의 그의 귀를 스치며 지나갔다.
싸악!
뒤이어 아폴로의 기묘한 대각선 돌려차기가 들어왔다.
그런데 그 타이밍이 얼마나 정교한지.
대한은 더킹과 스텝을 동시에 쓰고 나서야 간신히 피할 수 있었다.
그는 다급히 백스텝을 밟으며 거리를 벌렸다.
다행히 아폴로는 대한을 쫓아 바로 치고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놀란 눈빛으로 아폴로를 쳐다봤다.
‘에바! 봤어?’
―네, 봤어요. 아폴로가 오러를 쓰는 것을 분명히 봤어요.
에바의 말에 이어 엘라의 다급한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오빠, 저건 스파이럴 대제국의 로열나이트 아카데미에서 가르치는 무술 중 하나인 ‘베타글루칸(A)’이 분명해요.
쿵!
대한의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런데 상대도 적잖은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오러까지 끌어올려 펼친 자신의 베타글루칸 공격!
그걸 대한이 완벽히 피해버렸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내 베타글루칸을 피할 수 있지? 이대한 선수가 오러를 쓰는 나보다 더 강하다는 말인가?’
아폴로는 회심의 일격이 실패한 충격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다.
대한도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없어 머리가 복잡해졌다.
‘에바! 아폴로의 몸을 정밀 스캔해봐!’
―네, 마스터.
대한의 명령에 에바는 즉시 에어볼을 보내 아폴로의 몸 구석구석을 스캔했다.
‘피코셀의 흔적이 엿보입니다.’
―피코셀! 흔적?
놀라운 소식이 연타로 들어왔다.
‘아폴로의 몸에서 피코셀이 남긴 흔적과 패턴을 읽을 수 있습니다.’
―지금도 활동하고 있나?
‘그렇진 않습니다. 이미 자연 배출된 모양이에요.’
그제야 일이 어떻게 된 건지 알 것 같았다.
아폴로는 분명 자신과 같은 행운아였다.
운석을 발견하고 피코셀을 흡수한 게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다면 오러를 이용해 베타글루칸(A)을 펼치지는 못했을 것이다.
대한도 당장 베타글루칸(A)을 익힐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탄탈러스(SSS)와 크루세이더(SSS)라는 최상위 등급의 무술과 검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굳이 등급이 낮은 것을 일부러 배울 필요는 없었다.
안타까운 것은 그가 가진 피코셀이 에바처럼 끝까지 살아남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래도 이렇게 대단한 종합격투기 선수를 키워낸 것을 보면.
확실히 스파이럴 대제국의 로열나이트 아카데미 에듀케이션 모듈은 대단했다.
피식!
대한은 아폴로를 쳐다보며 웃음을 흘렸다.
원인을 몰랐을 땐 당황했지만 일이 어떻게 된 건지 전후 사정이 파악되자 하나도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쉬워서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오러를 사용한 건 네가 먼저다. 그러니 날 원망하지 마라!’
아폴로처럼 대한도 오러를 사용하는 것은 반칙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오러를 쓰지 않고 순수하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육체의 힘만으로 경기를 치렀다.
그런데 상대가 먼저 오러를 이용해 공격해왔다.
자연스럽게, 대한 스스로 제약을 걸어 뒀던 빗장이 스르르 풀려버렸다.
솔직히 오러를 쓰지 않아도 아폴로 정도는 어렵지 않게 이길 자신이 있었다.
그렇다고 오러를 쓸 수 있는 상황인데도 억지로 쓰지 않고 경기를 치러야 할 이유는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대한은 가만히 배틀푸르나(SSS)를 일으켰다.
정수리에서 시작한 진자운동이 꼬리뼈까지 빠르게 움직였다.
마력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그는 전신으로 마력을 고르게 퍼트렸다.
몸이 사이다에 퐁당 빠진 것처럼 아주 상쾌하고 시원했다.
전신에 힘이 불끈거리고 온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하수를 상대하는데 굳이 오러까지 뽑아 쓸 필요는 없지. 넌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해!’
대한은 그렇게 속으로 생각하며 다가갔다.
두 팔을 내리고 당당하게 걸어가는 그의 모습!
아주 자신감에 푹 쩔어 있었다.
주춤주춤!
아폴로는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조금 전과는 달리!
대한의 모습이 거대한 태산처럼 크게 느껴졌다.
왠지 모를 이 막대한 위압감에 아폴로는 숨이 턱 막혔다.
그는 점차 무뎌져 가는 승부 근성을 억지로 끌어냈다.
투기가 몸속에서 회오리치는 것처럼 튀어나왔다.
아폴로는 위기를 직감하고 오러를 몽땅 끌어올렸다.
순간!
팡!
퍼벅 퍽 빠각!
갑자기 세상이 빙글 돌았다.
아폴로는 그대로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
와아아아!
아레나는 거대한 함성의 파도로 뒤덮였다.
대한은 두 팔을 하늘 높이 들고 기절한 아폴로를 내려다봤다.
그는 굳이 달려들어 마무리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뒤늦게 심판이 다가와 두 손을 좌우로 흔들었다.
그리곤 급히 의료진을 옥타곤 안으로 불러들였다.
경기를 보던 시청자들이 그 모습에 열광하며 뜨겁게 호응했다.
[재성이: 우와! 다운이다.]
[겨울단풍: 어라! 경기 끝났네.]
[Ksniper: 개지림! 봤냐?]
[육덕이: 뭐야?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왜 아폴로가 누워있어.]
[팔로알통: 번개처럼 달려드는 것까진 봤다. 그리고는 투닥탁! 끝?]
[스톤골드: 원투 스트레이트를 날리자 아폴로가 살짝 피했어. 그걸 엘보우로 바꿔서 타격한 거잖아.]
[백기올려: 쓰러지는 아폴로의 다리를 쳐서 띄우고 발끝으로 명치를 찍어버렸지.]
[본좌: 이게 실화냐?]
[먹다버린껌: 이 정도면 종합격투기가 아니라 무술 아냐?]
[나보다낫다: 대박! 이소룡 저리 가라야!]
[오강맨: 난 이소룡이 살아 돌아온 줄 알았다.]
[슈퍼둡둡: 축구도 잘해! 종합격투기도 잘해! 이젠 무술도 잘하네.]
[짖는개: 연애도 잘하더라. 주변에 쭉쭉빵빵한 미녀들 천지야!]
[킴킴킴: 돈도 아주 많아요. 코레그룹 회장이라는 소문도 있어.]
[박켜니: 에이. 그건 좀 오버다.]
[오동동: 어휴! 속이 다 시원하네.]
[생존다이어트: 정말 멋진 경기였어.]
[남는건돈: 페이퍼뷰 돈 낸 거 하나도 아깝지 않다.]
[거부의꿈: 우리 대한이 역시 최고야!]
이런 반응은 비단 대한TV 채널뿐만이 아니었다.
페이퍼뷰를 통해 시청하고 있던 세계 각국의 시청자들도 비슷한 반응은 보였다.
사실 아폴로도 참 잘 싸웠다.
하지만 역시 대한의 높은 벽을 넘는 것은 무리였다.
“대한! 잘했어.”
페드루 코치가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다가왔다.
그는 연신 웃음을 터트리며 수건으로 대한의 몸을 닦아줬다.
대한도 페드루 코치와 가볍게 포옹을 하며 수고했다고 말했다.
솔직히 뭐 별로 한 일은 없었지만 말이다.
번쩍번쩍!
사방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아나운서가 나와 대한의 KO승을 선언했다.
주심이 그의 손목을 잡고 높게 들어 올렸다.
와아아아!
아레나는 지진이 난 것처럼 관중의 열렬한 함성에 진동했다.
그 사이 대한의 허리에는 챔피언벨트가 걸렸다.
번쩍번쩍!
옥타곤이 하얗게 변할 정도로 카메라 플래시가 빗발쳤다.
그렇게 대한은 UFC 미들급 세계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하고 정상에 올랐다.
* * *
힐끔힐끔!
아폴로는 불안한 눈초리로 대한을 쳐다봤다.
그러다가 옆에 앉아있는 엘라를 보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홍당무처럼 변한 그의 얼굴만 봐도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이러기를 벌써 10분.
아폴로는 지치지도 않는지 계속 이 패턴을 반복하고 있었다.
결국, 대한은 참지 못하고 입을 벌렸다.
그러나 엘라에 의해 그의 시도는 원천 봉쇄됐다.
―오빠! 내가 물어볼게요.
‘흐음. 알았어.’
대한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입을 꾹 다물었다.
대신 엘라가 싱글거리며 말했다.
“아폴로!”
“네?”
“아폴로라고 불러도 되죠?”
“무, 물론이죠.”
아폴로는 그녀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엘라를 쳐다보는 그의 눈빛이 별빛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그녀가 어지간히 마음에 든 모양이다.
하지만 아무리 엘라를 좋아해도 소용없다.
그녀의 마음엔 오직 한 사람밖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나 그만 훔쳐보고 얘기 좀 해봐요.”
“훔쳐본 거 아니에요.”
얼굴이 빨개진 아폴로가 애써 변명을 했다.
엘라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그럼 그렇다고 해두죠. 몸은 좀 어때요? 괜찮아요?”
“네, 저 생각보다 튼튼해요. 이제 아무렇지도 않아요.”
“혹시 배 안 고파요?”
“나올 때 샌드위치 먹었어요.”
아폴로의 당당한 말에 엘라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웨이터를 불러 스테이크를 비롯한 이것저것을 주문했다.
그 사이, 대한은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경기를 치른 아레나와 템스(Thames)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최고급 호텔 레스토랑의 프라이빗 룸.
역시 돈값을 하는지 전망이 무척 좋았다.
덕분에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그들은 조용히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르자 요리가 줄줄이 나왔다.
스테이크, 파스타, 카르보나라, 피자, 왕새우구이, 전복 칠리소스, 미트 롤, 연어샐러드 등.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러운 요리들이 향긋한 냄새를 풍기며 유혹하고 있었다.
꿀꺽!
시합을 뛰고 나온 것은 대한도 마찬가지다.
그는 아폴로를 한번 쳐다보고는 포크와 나이프를 들었다.
먼저 안심 스테이크를 조금 잘라 맛을 봤다.
미디엄 레어답게 고기를 씹자 육즙이 터지며 입안에서 살살 녹았다.
살짝 고개를 끄덕인 대한은 본격적으로 스테이크를 썰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아폴로도 더는 참지 못하고 달려들었다.
마치 무슨 먹방 경쟁이라도 하듯 둘은 쉬지 않고 테이블을 가득 채운 요리를 작살 냈다.
그걸 보자 엘라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좀 천천히 먹어요. 아폴로도 콜라 좀 마셔가면서 드세요.”
“네, 고마워요.”
대한은 은근히 속에서 열불이 났다.
아까부터 아폴로가 엘라를 바라보는 시선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미모를 가진 그녀였다.
같은 남자로서 절로 눈이 돌아가는 것을 전혀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기분이 나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일까?
평소보다 스테이크를 씹는 그의 모습이 무척 거칠었다.
그렇게 대한은 자근자근 식사를 씹어먹었다.
시간이 지나자 그 많던 요리도 어느덧 바닥을 보였다.
“우와! 더는 못 먹겠다.”
“그럼 차라도 한잔할래요?”
“아니요. 콜라면 충분해요.”
아폴로는 환하게 웃으며 콜라가 담긴 큰 컵을 들었다.
그리고는 터프한 매력이라도 선보이려는 듯 꿀꺽꿀꺽 마셔댔다.
확실히 같이 식사를 하고 나니 아폴로의 얼굴이 훨씬 밝아졌다.
대한은 속으로 콧방귀를 끼며 조용히 물을 마셨다.
포크와 나이프는 이미 한참 전에 내려놓은 상태였다.
출출하긴 했지만, 아폴로처럼 배가 고팠던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UFC 미들급 세계챔피언 타이틀전에서 승리한 것이 뭘 많이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른 요인이 되기도 했다.
“자! 그럼 아폴로의 얘기를 좀 들어볼까요?”
“네에? 무슨 얘기요.”
“오러와 베타글루칸(A) 쓴 거 말이에요.”
“푸악!”
아폴로는 깜짝 놀라 마시던 콜라를 내뿜어냈다.
다행히 급히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래서 대한과 엘라에게 콜라가 뿜어지는 참사는 면할 수 있었다.
“쯧쯧쯧!”
대한은 대놓고 혀를 찼다.
하지만 엘라는 웃으면서 냅킨을 건넸다.
그 모습이 마치 어린 남동생을 챙기는 누나처럼 보였다.
둘 다 금발에 푸른 눈이라 남들이 보면 그렇게 오해를 할 만했다.
“고마워요.”
“천만에요.”
잠시 냅킨으로 수습할 시간을 줬다.
그 사이 아폴로는 놀란 마음을 다잡았다.
“당신들 정체가 뭐죠?”
“내가 누군지 몰라서 그래요?”
“알죠.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씹어 먹고 있는 세계 최고의 공격수 이대한 선수! 물론 이제는 UFC 미들급 세계챔피언까지 됐지만.”
“잘 알고 계시네요.”
대한의 말에 아폴로는 바로 고개를 흔들었다.
“제 말은 진정한 정체가 뭐냐는 거예요.”
“당신과 똑같은 행운을 가진 사람입니다.”
아폴로는 그의 대답에 격렬하게 반응했다.
“아! 역시 그랬구나. 어쩐지 강하더라. 그럼 이대한 선수도 나처럼 지니를 만난 거예요?”
“지니? 아라비안나이트의 그 요정?”
“네.”
대한이 재차 묻자 아폴로의 얼굴은 순간 새빨갛게 변했다.
얼굴에 생각이 바로 드러나는.
어떻게 보면 참 알기 쉬운 상대였다.
“난 에바를 만났어요.”
“아! 에바! 이름 좋네요.”
대한은 아폴로의 말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다행히 둘의 눈빛에는 호감이 어렸다.
왠지 두 사람은 그 짧은 사이에 무척 친해진 기분이 들었다.
지니와 에바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