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5화 <치열한 설전>
“이미 중국인민해방군 전력을 압록강과 두만강 국경에 전개하라고 명령을 내리지 않았나요? 선양군구, 아니 이제는 북부전구가 말을 듣지 않고 독립선언을 해서 실제로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아니 지금 나를 놀리는 것이요?”
“팩트를 말하는데 놀리는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가 이렇게 앉아서 대화할 이유가 없을 것 같네요.”
왕일은 당장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다.
항상 차분하고 침착한 모습만 보이던 그였다.
하지만 오늘은 도저히 평정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대화와 주제가 하나같이 너무나도 예민하고 민감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북부전구의 독립선언은 중국에 너무나도 뼈아픈 일침이었다.
나머지 사대전구가 북부전구를 강제로 진압하려고 한다면 아마 중국은 당장 내전에 휩싸일 것이다.
그리고 그걸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북부전구도 아니었다.
전력이야 베이징군구가 조금 더 강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북부전구의 전력이 크게 밀리지도 않았다.
더군다나 북부전구에도 로켓군이 배치되어 있었다.
그것도 핵탄두가 탑재된 미사일을 실은 전략로켓군이 말이다.
“참! 우리 정부는 동투르키스탄과 티베트 공화국을 정식 국가로 승인할 생각이에요.”
“뭐요? 그게 지금 무슨 망발이요! 그건 절대 용납할 수 없소.”
“중국이 용납하든 않든 우린 대세를 거스를 생각이 없어요.”
“그게 무슨 대세요? 미국과 유럽연합을 비롯한 서방세계의 간악한 술수지.”
미국은 동투르키스탄 공화국과 티베트 공화국이 각각 독립을 선언하자 기다렸다는 듯 두 나라를 정식으로 승인해버렸다.
이에 열이 받은 중국은 극렬하게 항의를 하며 모든 외교적인 노력으로 이를 되돌리려고 했다.
하지만 중국은 뜻을 이루지 못했다.
오히려 미국의 이런 행동에 가세해 유럽연합과 러시아 등, 세계 각국이 앞다투어 동투르키스탄 공화국과 티베트 공화국을 승인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일의 당사자이자 가장 큰 피해자인 왕일 외교부장이 열을 낼만도 했다.
“그거야말로 중국의 아집일 뿐이에요. 우리 정부는 그동안 중국이 강제로 합병해 고통받고 있던 민족들이 스스로 독립을 쟁취하는 것에 아주 긍정적이에요.”
“독립이라니요? 누가 독립했다는 말입니까? 일부 반란군이 준동한 것을 가지고 확대해석하지 마시오. 우린 중국을 위협하는 이런 반동들의 내정간섭과 책동을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것이요.”
왕일 외교부장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열변을 토했다.
그에 반해 강선화 장관은 시종일관 차분한 톤으로 말했다.
“그럼 이런 얘기는 그만하고 바다에서 일어난 불행한 사태에 관해 얘기해보죠.”
“으음, 그 건은 한국이 간섭할 일이 아니요.”
“앞으로는 통일한국이라고 불러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절대 그럴 수 없소.”
“어쨌든 이번 사태는 아주 유감입니다.”
“우리도 유감이요. 감히 일본 함대가 무력을 사용해 우리 중국 해군에게 도전장을 던지다니.”
왕일 외교부장의 말에 강선화 장관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네요.”
“무슨 말이요?”
“제가 언급한 것은 중국 함대와 일본 함대가 다오위다오(센카쿠)에서 함대전을 벌인 것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크흠. 그, 그렇소?”
강선화 장관의 말에 왕일 외교부장은 괜히 어색한 헛기침을 했다.
“먼저 이 사진을 보시지요. 명백한 영해침범입니다. 그것도 중국의 고기잡이 어선들만이 아닌 중국인민해방군 해군 북해함대의 전투함이 우리 서해 영해를 무단으로 침범해 들어와 있는 상태입니다. 이걸 우리는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합니까?”
왕이 외교부장은 그녀가 내민 고화질의 사진을 보고는 속으로 뜨끔했다.
고고도에서 찍은 사진이 너무나도 선명하고 깨끗했다.
“영해침범을 하려고 했던 게 아니요. 중국의 고기잡이 선단이 갑작스러운 풍랑으로 인해 침몰하게 된 것 때문에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이요.”
“풍랑으로 배가 침몰하든 구조작업을 벌이든 통일한국의 영해를 침범한 것이 명백한데 무슨 궁색한 변명을 그렇게 하십니까? 그리고 우리 해경이 출동해서 구조작업을 도와주려고 했는데 왜 함포를 쏘신 거죠?”
“인명을 구조하려는 우리 함정의 활동을 방해했기 때문이요.”
왕일은 아주 당당하게 말했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강선화 외교장관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어야 했다.
“그걸 지금 변명이라고 하시는 겁니까? 중국 해군이 민간인인 우리 해경의 배를 향해 함포를 쏜 일이라고요. 당장 중국 해군의 함정들을 우리 영해 밖으로 내보내세요.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일어날 사태의 책임은 모두 중국에 있습니다.”
“혹시 지금 나를 협박하는 거요?”
“협박이 아니라 경고입니다. 무력투사를 배제하지 않겠다는 경고 말입니다.”
“아주 대놓고 전쟁을 하자는 말처럼 들리는군요.”
“지금 전쟁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렇소.”
“중국이 통일한국과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되는 거죠?”
“아, 아니 그건 그렇지 않소. 하지만 우리 해군 함정에게 위해를 가한다면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것이요.”
“하하하!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지금 남의 집에 무단으로 침입해 폭력을 가해놓고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이런 사실을 다른 국가에서 알게 된다면 왕일 외교부장은 앞으로 뭐라고 핑계를 대실 겁니까?”
강선화 장관이 대놓고 웃음을 터트리자 왕일은 곤혹스러워졌다.
자신이 생각해도 참 말이 안 되는 변명이었다.
그래도 그는 급히 안면 관리를 하면서 입을 열었다.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우린 중국 인민의 생명을 구조하기 위해 함정을 물리지 않을 것이요.”
“그렇다면 우리도 선택의 여지가 없겠군요.”
“무력을 투사하겠다는 뜻이요?”
“영해에 외국의 함정이 들어와 있는 걸 그냥 가만히 보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습니까?”
“내가 말했잖소. 인명구조라고.”
“구조할 인명이 어디 있다고 그런 소리를 하시죠? 이미 중국의 고기잡이 어선들은 대부분 풍랑에 의해 침몰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아! 북해함대 구축함제10대의 침몰한 구축함들 때문에 그러십니까? 그거라면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가 알아서 잘 인양해드릴 테니까요.”
“끄응.”
강선화 장관이 핵심을 찌르고 나오자 왕일의 표정이 급속도로 어두워졌다.
얼마나 엄청난 풍랑이었는지 고기잡이 어선들이 한꺼번에 침몰한 것에 이어 준 이지스급이라고 불리는 신형 방공구축함(1만t)과 쿤밍급(7,500t), 란저우급(7,000t), 루저우급(7,100t) 구축함이 각각 한 척씩 침몰했거나 침수 중이었다.
이 엄청난 사태에 지금 북해함대는 패닉에 빠져있었다.
솔직히 중국이 당장 함정을 빼지 못하는 것은 고기잡이 어선들의 구조라기보다는 어떻게든 자국의 피 같은 구축함을 하나라도 더 건질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통일한국의 입장에선 이걸 용납한다는 게 말도 되지 않았다.
그래서 강선화 장관은 무력충돌의 위험을 감수하고도 강경하게 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초반에 풍랑이 일 때 고기잡이 어선들을 데리고 영해를 빠져나갔다면 아마 이렇게까지 사태가 악화되진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중국의 해군이나 고기잡이 어선들이나 남의 나라 영해를 무단으로 자기 집 드나들 듯했던 것이 이런 참사를 빚게 했다.
“인명구조만 끝나면 바로 빼겠소.”
“그게 언제라는 말이죠? 그리고 왜 우리가 그걸 용납해줘야 하죠? 그건 전적으로 귀국의 문제입니다. 이미 구조할 인명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으니 당장 빼세요. 그렇지 않으면 정말 크게 후회할 일이 생길 겁니다.”
“지금 이걸 협박으로 받아들여도 되겠소?”
“참 같은 말 반복하게 하시네요. 협박이 아니라 준엄한 경고라고 말씀드렸습니다만.”
왕일 외교부장과 강선화 외교부 장관은 날카로운 눈으로 서로를 쳐다봤다.
잠시 긴 침묵이 이어졌다.
하지만 둘 중 그 누구도 서로를 노려보는 시선을 먼저 거두지 않았다.
그러다가 강선화 장관이 뭔가 생각이라도 난 것처럼 말했다.
“아! 이 문제와는 별도로 우리 정부는 우한 코로나바이러스와 새롭게 창궐하고 있는 변종 코로나바이러스 박멸을 위해 적극적으로 협력할 의사가 있습니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것이요? 중국엔 더 이상 코로나바이러스가 없소. 그리고 변종이라니?”
“정말 몰라서 묻는 겁니까? 아니면 지난번처럼 발뺌하려는 겁니까?”
“발뺌이라니요? 말씀이 너무 지나친 것 아니요?”
“그게 아니라면 중국에 빠르게 퍼지고 있는 변종 바이러스 사태에 대해서 보고를 받지 못한 겁니까? 어허! 이거 정말 큰 문제로군요.”
왕일은 크게 당황했다.
아직 변종 바이러스에 관한 자세한 보고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어느 정도 변종 코로나바이러스 창궐 위험성에 대해 인지하고는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한국까지 알고 있을 정도로 빠르게 퍼지고 있다는 것은 금시초문이었다.
“변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우한에서 시작한 코로나바이러스가 또다시 변종을 일으킨 겁니다.”
“우한에서 시작됐다는 것은 근거 없다는 것이 우리 중국 정부의 공식 입장이니 앞으로 그런 말은 삼가시오.”
왕일 외교부장은 우한 바이러스라는 말에 아주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행동은 중국의 미래와 중국 인민의 생명을 위해서도 좋지 않습니다. 그것보다는 당장 변종 코로나바이러스를 잡을 노력부터 하세요. 저희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우린 변종 코로나바이러스 진단키트를 시작으로 예방약과 백신까지 양산하고 있습니다.”
“지금 세일즈 외교를 하시러 오셨소? 그런데 어떡합니까? 전혀 방향을 잘못 찾아왔네요.”
“저희의 호의를 거절하시면 나중에 크게 후회하실 겁니다. 이미 그런 선례도 있지 않습니까?”
강선화 장관은 연민의 눈빛을 담아 그에게 다시 한번 좋게 권하려고 했다.
하지만 왕일 외교부장은 단호했다.
“후회하든 안 하든 그건 귀 정부에서 걱정할 일이 아닙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 제안은 중국 정부에서 거절한 것으로 알겠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든 변종 코로나바이러스든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너무 신경 쓰지 마시오. 그보다는 빨리 중국의 국경에서 제7기동전단을 철수시키시오. 안 그러면 한국에 제2의 사드 사태가 올 것이오.”
“이번에는 저희도 그냥 가만히 당하고 있지는 않을 겁니다. 큰 시장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강경대처할 것임을 재차 말씀드립니다.”
왕일 외교부장과 강선화 외교부 장관은 다시 눈싸움을 시작했다.
누구도 지지 않겠다는 듯,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총칼만 안 들었지 두 사람의 기 싸움과 신경전은 실제 전쟁보다 더 치열한 소리 없는 전투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 현장을 생생하게 지켜보는 눈들이 있었다.
바로 대한 일행이었다.
“우와! 강선화 장관, 진짜 대단하다.”
“한마디도 지지 않고 잘 받아치네요.”
“너무 멋있는 것 같아.”
“여장부가 따로 없네.”
체스터 포트 펜트하우스 거실에 모인 이들은 모두 감탄했다.
다들 강선화 외교부 장관의 조리 있는 말과 날카로운 대처에 깜짝 놀란 것이다.
“에바! 저 화술과 설득력은 재능의 범위 아냐?”
“맞습니다.”
“그럼 저 재능을 흡수해야겠군.”
“마스터와 강선화 장관의 동선이 겹칠 수 있게끔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그동안 새로운 재능을 많이 흡수하지 못해 불만이었다는 듯 에바는 아주 즐거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현재 한미일 삼국의 정보부장이 모여서 치열한 논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보시겠습니까?”
“아니. 그건 굳이 볼 필요가 없을 것 같아. 그냥 나중에 결과만 알려줘!”
“네, 마스터.”
대한은 굳이 개입하지 않아도 정부가 알아서 잘해 낼 것으로 믿었다.
이렇게 수저로 퍼서 입안에 떠먹여 주기까지 했다.
그러니 씹는 것 정도는 스스로 해야 할 것이다.
“에바! 소수민족 독립을 지원하는 사업은 어떻게 됐지?”
“무기와 장비는 물론 고급정보까지 깔끔하게 넘겼습니다. 현재 중국 각지의 소수민족자치구는 빠르게 독립을 선포한 후, 주둔하고 있는 중국 인민해방군을 순조롭게 몰아내고 있습니다.”
에바의 설명에 류연이 눈을 빛냈다.
그녀는 중국에서 소수민족으로 분류하는 묘족 출신이다.
오랫동안 그 사실을 숨겨왔지만, 앞으로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대한은 잔뜩 긴장한 류연의 얼굴을 보고는 가만히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제야 류연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대한의 어깨에 자신의 머리를 기댔다.
“다 잘 될 거야. 너무 걱정하지마.”
“알아. 대한이 도와주면 반드시 성공할 거야.”
류연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미세하게 떨려오는 몸의 긴장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대한은 그런 그녀의 몸을 꼭 안아주면서 속삭였다.
“에바가 특수부대를 붙여줘서 24시간 도움을 주고 있어. 그러니까 마음 편하게 먹어.”
“알았어. 고마워 대한!”
그는 류연의 입술에 살짝 키스하고는 다시 꼭 끌어안았다.
따뜻하고 폭신한 그녀의 몸이 껌딱지처럼 대한에 몸에 찰싹 달라붙었다.
엘라는 두 사람의 이런 모습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천천히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