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1화 <독도해전>
와아아아!
스털링은 흥분해서 경기장 한쪽을 마구 달렸다.
그러다 자신에게 멋진 어시스트를 해준 대한이 생각났는지 다시 재빠르게 달려와 그를 껴안았다.
아니 대한의 넓은 품에 푹 안겼다.
동료들도 하나둘씩 달려와 스털링을 축하해줬다.
그틈에 마레즈가 슬쩍 다가오더니 대한에게 하소연하듯 말했다.
“대한, 나한테도 킬패스 좀 넣어줘!”
“그래. 알았어.”
그는 두말없이 승낙했다.
기회가 온다면 마레즈에게 킬패스를 안 해줄 이유가 없었다.
마레즈는 대한의 말에 기분 좋은 미소를 날리며 달려갔다.
점수 차가 5:0까지 벌어지자 유벤투스의 사기가 급격히 꺾였다.
호랄두는 패색이 짙은 경기에 더는 힘을 쏟지 않았다.
아니 쏟을 힘이 더는 없었다.
영리한 건지 이기적인 행동인지 그건 전적으로 팬들의 판단에 달린 문제였다.
이렇게 되자 신이 난 것은 맨시티의 공격진이었다.
그들은 파상공세를 펼치며 더욱 유벤투스를 압박했다.
펩 감독은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다가 대한을 빼버렸다.
다 이긴 경기에 굳이 힘을 빼게 할 필요가 없었다.
대한은 후반전 중반 아구에로와 선수 교체되어 나왔다.
벤치로 돌아오자 동료들이 모두 한 손을 들고 하이파이브를 했다.
코치가 생수를 가져다줬다.
그는 뚜껑을 따서 벌컥벌컥 물을 마셨다.
가뭄에 바짝 마른 논처럼 대한의 몸에 물이 들어오자 바로 생기가 꽃처럼 활짝 피어났다.
그는 수건으로 얼굴의 땀을 닦았다.
그리고 에바를 불렀다.
‘에바!’
―네, 마스터.
‘현재 상황을 말해봐!’
―먼저 센카쿠 열도의 상황부터 보고하겠습니다.
‘그래.’
독도의 상황이 궁금하긴 했지만 어느 쪽을 먼저 듣던 결국 다 듣게 될 것이다.
굳이 조바심을 낼 필요는 없었다.
―중국의 동해함대와 일본의 호위대군이 결국 정면충돌했습니다.
‘결과는?’
―양쪽 다 괴멸적인 타격을 입고 물러났습니다.
‘괴멸적인 타격이라면?’
―함대의 50%가 침몰하거나 파손당했습니다.
‘그 정도면 괴멸적인 타격이라는 말이 맞네.’
대한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두 함대가 훨씬 일을 잘해줬다.
정확히 얼마나 피해를 보았는지 굳이 묻지 않았다.
솔직히 중국과 일본의 함대가 어떻게 되든 별로 관심도 없었다.
애피타이저를 먹었으니 인제는 오늘의 주요리를 먹을 차례였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대한민국은 ‘독도해전’에서 압승했습니다.
에바의 말에 대한은 더 이상 표정 관리를 하지 못했다.
입가에 환한 미소가 절로 일어났다.
카메라를 통해 그의 얼굴을 본 시청자들은 경기에서 승리한 게 기뻐서 웃나보다 생각했다.
하지만 대한은 오늘의 경기보다는 독도해전의 승리가 훨씬 더 기뻤다.
‘이번 전투를 독도해전이라고 명명한 모양이군.’
―네, 그렇습니다.
에바의 말에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그의 옆에는 스털링이 앉아있었다.
승리가 확실하니 펩 감독이 스털링까지 빼버린 모양이었다.
덕분에 마레즈가 홀로 경기장에서 기염을 토하고 있었다.
‘피해는 없었어?’
―전혀 없었습니다. 제3호위대군은 제7기동전단에서 발사한 해성 대함미사일과 신형 초음속 대함미사일의 집중포화를 견디지 못하고 전멸했습니다.
‘전멸? 그럼 8척의 군함이 모두 침몰했다는 말이야?’
―침몰한 것도 있고 전파된 것도 있고 반파된 것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모두 전투 불능이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전멸이 맞았다.
전투함이 전투할 수 없게 됐다면.
남은 것은 적에게 나포당하는 일밖에 없다.
적에게 자국의 군함을 넘겨주기 싫다면 자침하는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함대의 반 이상이 침몰한 상황이었다.
의욕을 잃은 제3호위대군은 더 이상 피해자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덕분에 비록 반파되기는 했지만.
묘코함과 아타코함!
두 척의 이지스함을 온전히 나포할 수 있게 됐다.
―1함대에서 날린 해궁 개량형도 제 몫을 다했습니다. 대한민국 해군의 잠수함을 잡기 위해 동해로 들어온 해상자위대의 해상초계기 21대를 모조리 잡아냈습니다.
‘응, 생각보다 명중률이 뛰어나군. 우리 잠수함은 다들 무사하지.’
―그렇습니다. 대한민국 해군 잠수함사령부에서는 일본 해상자위대의 소류급 잠수함 3척, 오야시오급 잠수함 2척, 총 5척을 격침했다고 보고했습니다.
‘호오! 역시 한일 잠수함대전은 작아도 은밀성에서 앞선 우리가 압도적이로군.’
대한은 대한민국 해군 잠수함들의 선전에 크게 기뻐했다.
―기존에 기관 고장으로 긴급부상해 나포된 두 척의 잠수함까지 합하면, 일본 해상자위대는 소류급 잠수한 5척, 오야시오급 잠수함 2척, 모두 합해 총 7척의 잠수함을 잃었습니다.
‘그래도 치중 물자로 보관하고 있는 잠수함들이 꽤 있는 일본이라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놀라운 전공을 세운 대한민국 해군의 잠수함들이 앞으로도 일본의 잠수함을 보는 족족 다 잡아낼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사실 한일 두 나라는 잠수함의 톤수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대한민국 해군 잠수함사령부가 보유한 손원일급 잠수함은 수중 1,860t, 장보고급 잠수함은 수중 1,285t이다.
거기에 비하면 일본의 잠수함은 같은 디젤 잠수함이면서도 오야시오급 잠수함은 수중 4,000t, 소류급 잠수함은 무려 수중 4,200t이나 됐다.
이런 엄청난 체급 차에도 불구하고 막상 수중전투가 벌어지자 일본의 잠수함은 대한민국의 잠수함의 은밀한 접근과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만약 전면전이였다면 아직 남아있는 일본의 잠수함들도 마냥 무사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독도로 침투한 일본 특수부대는 어떻게 됐어?’
―치열한 총격전이 있었지만 이미 사전에 적의 침입을 알고 있던 독도경비대가 승리했습니다.
‘전멸시킨 거야?’
―그건 아닙니다. 반 이상 사살하자 특수부대를 이끌고 온 팀장이 항복했습니다.
‘오오! 이거 최선의 결과가 나왔군. 다친 사람은 없어?’
―다섯 명이 총상을 입어 급히 수술에 들어갔습니다. 그중에 둘은 중상입니다.
비록 전투에서는 승리했지만.
그렇다고 전혀 피를 흘리지 않을 수는 없었다.
대한은 안타까운 마음에 급히 에바에게 말했다.
‘즉시 나노셀을 보내서 치료에 도움을 주도록 해.’
―네, 마스터. 에어볼을 통해 은밀하게 나노셀을 주입해서 치료에 도움을 주도록 하겠습니다.
에바도 그의 마음을 읽었는지 재빨리 반응했다.
―그리고, 현재 중국의 대규모 고기잡이 선단이 서해 영해를 침범하고 있습니다.
‘또?’
―그런데 이번에는 분위기가 좀 다릅니다.
‘어떻게?’
―고기잡이 선단 뒤쪽에 중국 북해함대의 구축함제10지대가 포진해 있습니다.
‘뭐야?’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에서 일본과 거하게 한판 붙은 것도 모자랐나 보다.
아니면 전투 후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가!
아직 독도해전의 결과를 모르는 중국!
분위기 반전을 꾀해 만만한 대한민국 해군을 건드려보자는 모험을 선택했다.
대한은 속으로 이를 바드득 갈았다.
―어떻게 할까요?
‘지금 중국과 분쟁을 일으키는 것은 좋지 않아.’
―남북통일이 이뤄지면 어차피 중국과 부딪쳐야 하지 않나요?
‘중국과 통일한국 사이에는 선양군구가 있잖아. 그러나 바다에는 완충지대가 없어. 전투가 시작되면 한쪽이 전멸할 때까지 싸우는 수밖에 없는 거야.’
―그럼 지난번처럼 풍랑을 좀 일으켜볼까요?
‘그게 좋겠다.’
―네, 마스터.
대한의 결정에 에바는 바로 우주탐사선 히릭스를 불러들였다.
히릭스는 빠르게 서해로 내려왔다.
안 그래도 거친 파도가 일렁이는 서해의 새벽 바다였다.
그런데 히릭스가 낮게 내려와 바다를 향해 규칙적인 충격파를 발사하자.
파도가 점차 높아지더니 이내 거센 풍랑으로 바뀌고 말았다.
이 정도면 이제 해일이라 불러도 될 정도였다.
―마스터, 성공했습니다.
‘알았어. 결과는 나중에 보고해.’
―네.
에바는 그걸 마지막으로 침묵을 지켰다.
사실 굳이 결과를 확인하지 않아도 뻔했다.
해일에 가까운 엄청난 풍랑!
영해를 침범한 중국의 고기잡이 선단이 버텨낼 리 만무했다.
아니, 그들에게 이건 날벼락이나 마찬가지다.
뒤집히거나 침몰하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고 어쩌면 중국 북해함대의 전투함까지 집어삼킬지도 모른다.
와아아아!
경기장이 큰 함성으로 뒤덮였다.
드디어 경기가 끝난 것이다.
펩 감독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유벤투스 감독과 악수를 했다.
선수들은 전부 두 손을 하늘로 번쩍 들고 환호성을 질렀다.
에티하드 스타디움은 맨시티 팬들이 쏟아내는 함성과 박수갈채로 진동했다.
대한도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손뼉을 쳤다.
오늘의 ‘맨 오브 더 매치’는 해트트릭을 기록한 대한에게 돌아갔다.
다들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잠시 뒤.
영국의 스포츠신문과 방송국들이 합동으로 여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대한은 펩 감독과 함께 참석했다.
그의 옆자리엔 오늘 멀티골을 넣은 스털링도 앉아있었다.
하지만 질문은 해트트릭한 대한에게 집중적으로 쏟아졌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침착하게 기자들의 질문에 답했다.
경기를 압승으로 끝낸 상태라서 기자회견장 분위기는 참 화기애애하고 좋았다.
그러던 어느 순간.
자신의 차례가 되어 일어나 질문하려던 더벅머리의 백인 기자가 갑자기 자신의 귀를 누르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는 급히 스마트폰을 들어 뭔가를 확인했다.
비슷한 반응이 몇몇 기자들에게도 일어났다.
마이크를 다시 잡은 더벅머리 기자는 대한을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대한 선수! 일본해에서 한국과 일본 함대의 전투가 벌어졌다고 합니다. 만약 전쟁이 일어나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기자의 질문에 대한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먼저 일본해라는 명칭은 완전히 잘못된 것입니다. 역사적으로나 전통적으로나 대한민국의 동쪽 바다는 수백, 수천 년 동안 동해라고 불렸습니다. 그걸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제가 강제와 불법으로 바꾸려고 시도하는 겁니다.”
“그렇게 말하면 일본으로서도 자국의 서쪽에 있는 바다니까 일본해라고 부를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기자가 나름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이건 대한에게는 씨도 먹히지 않을 소리였다.
“쉽게 예를 하나 들어보죠. 만약 영국 해협을 프랑스에서 프랑스 해협이 맞다고 우긴다면, 그리고 세계의 지명이 프랑스 해협으로 바뀐다면 여러분은 어떤 기분이 들 것 같습니까?”
“아!”
그의 명쾌한 비유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지명은 나중에 한번 따로 알아보겠습니다. 일단 지금은 제가 한발 양보하는 것으로 해서, 일본해가 아닌 동해에서 지금 현재 한일 간에 해전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만약 대한민국에 전쟁이 나면 이대한 선수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더벅머리 기자는 의외로 끈질겼다.
대한은 그런 기자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대답이 아닌 질문을 던졌다.
“대답에 앞서 먼저 기자에게 한 가지 묻겠습니다.”
“네에? 뭘 말입니까?”
“집에 강도가 들어와 재물을 빼앗고 부모님을 죽이고 아내를 강간하고 여동생을 창녀로 만든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뭐요? 절대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내가 그놈의 다리를 부러뜨려 버릴 테니까.”
더벅머리 기자는 의외로 다혈질이었다.
대한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저도 당신과 마찬가지입니다. 제집에 강도가 들어와 재물을 빼앗고 부모님을 죽이고 아내를 강간하고 여동생을 창녀로 만들려고 한다면 그놈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말겠습니다.”
“와아!”
과격한 대한의 발언에 다들 입을 쩍 벌렸다.
그런데 하나같이 시원하고 통쾌하다는 반응이었다.
정신을 차린 더벅머리 기자가 다시 물었다.
“지금 그 말은 전쟁이 일어나면 자원해서 입대하겠다는 뜻으로 봐도 좋습니까?”
“물론입니다. 그것보다 더한 일이라도 조국을 지키는 일이라면 마땅히 할 것입니다. 이미 일본은 참혹한 전쟁범죄를 수도 없이 저질렀던 전례도 있으니 이번에는 꼭 막겠습니다.”
짝짝짝짝!
갑자기 기자 몇 명이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모든 이들이 대한을 쳐다보며 박수갈채를 보냈다.
분위기가 참 묘하게 돌아갔다.
그래도 이건 대한과 대한민국에게 긍정적인 요소였다.
대한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뼉을 친 기자들을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이날 머리기사는 유벤투스와의 경기에서 해트트릭한 것보다 대한의 애국심이 더 크게 조명됐다.
거기에다 독도해전의 놀라운 결과가 알려지자.
영국에선 한류에 버금가는 엄청난 대한민국 신드롬이 일어났다.
그리고 며칠 뒤!
전 세계를 강타하는 어마어마한 사건이 터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