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만재능(Feat. 대한 TV)-318화 (316/331)

318화 <날강두의 굴욕>

솔직히 다 늙어빠진 호랑이를… 아니, 들개를 잡는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그래도 한때 신계에 들어갔던 선수라고 해서 잔뜩 기대했었다.

하지만 웬걸!

막상 붙어보니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열심히 뛰는 동료들과는 달리 설렁설렁 뛰다가 볼을 받을 때만 잽싸게 달려가는 호랄두의 태도에 크게 실망했다.

그런데 몇 번 약을 올려주자 열이 받았는지 꽁지에 불이 붙은 멧돼지처럼 씩씩대며 날뛰고 있었다.

‘흐음, 문제는 체력인데……. 과연 받쳐줄 수 있을까?’

호랄두가 원래의 실력을 발휘하는 건 대환영이다.

그렇지만 나이 때문이라도 저렇게 무리를 했다간 아마 오래 뛰지 못할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대한은 금세 잡념을 버리고 경기에 집중했다.

오늘 괜히 자신이 오른쪽 포워드로 나선 게 아니다.

펩 감독이 지시한 호랄두를 묶고 거기에다 유벤투스의 왼쪽 라인을 초토화하기 위해서다.

“대한! 들어가! 이제 가서 공격해!”

그때, 반가운 펩 감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더 이상 호랄두 신경 쓰지 말고 이제 들어가서 공격을 하란다.

그는 펩 감독을 향해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안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그러자 호랄두가 눈을 빛내며 쫓아왔다.

평소 같으면 중앙선 부근에서 어슬렁거릴 호랄두!

그런데 열 받은 호랄두의 눈에는 대한밖에 보이지 않나 보다.

문제는 그가 생각하는 것만큼 대한이 허접한 축구선수가 아니라는 것이다.

“으악!”

볼을 잡은 대한을 향해 호랄두는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그런데 대한의 간단한 플립플랩에 그대로 뚫려버렸다.

아니, 뚫린 정도가 아니라 넘어져서 엉덩방아까지 찧었다.

나중에 굴욕 짤로 만들어져 세계에 쫙 뿌려질 바로 그 명(?)장면이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호랄두는 벌떡 일어났다.

다다다다다!

그는 젖 먹던 힘을 다해 대한을 쫓아갔다.

하지만 점점 거리가 더 멀어졌다.

그제야 호랄두는 차가운 현실을 깨달았다.

대한의 주력은 자신의 그것을 훨씬 능가하고 있었다.

거기에다 아직 젊어서인지 체력이 펑펑 솟구치는 모습이었다.

‘제기랄!’

호랄두는 갑자기 두 손으로 얼굴을 마구 문질렀다.

화가 나서 참을 수 없을 때!

가끔 하는 그의 습관적인 행동이다.

당장은 수많은 카메라가 자신을 찍고 있어 발광은 하지 못했다.

그래도 참을 수 없는 무력감과 분통이 터지는 것까진 막을 수 없었다.

‘역시 나이는 속일 수 없나 보다.’

대한은 달려가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이제 30대 중반인 크리스 호랄두다.

그런데 벌써 저렇게 기량이 떨어졌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하긴 이미 전성기가 끝난 메시도 상황이 그렇게 썩 좋지만은 않았다.

서른 살만 돼도 축구선수들이 왜 은퇴를 고려하는지 알만했다.

대한은 유벤투스의 오른쪽 라인을 쭉 따라 달렸다.

그러다 코너에 거의 다다랐을 때!

강하게 크로스를 날렸다.

뻥!

골대를 향해 날아가던 볼이 급격한 곡선을 그리며 휘어졌다.

부폰 골키퍼의 대체자로 성장한 보이치에흐 골키퍼!

그는 볼을 잡으려다가 급히 뒷걸음질 쳤다.

날아오던 볼이 크게 휘어서 꺾이자 기겁을 하고 물러난 것이다.

맨시티의 공격수 제주스가 중앙에서 볼을 잡으려다가 멈칫했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볼이 훨씬 더 크게 휘어지고 있었다.

그 대신 제주스 뒤에서 달려오던 귄도안이 기회를 잡았다.

귄도안은 날아오는 크로스를 향해 달려가 그대로 발리슛을 때렸다.

뻥!

가죽 북 터지는 소리와 함께 축구공은 무서운 속도로 골문을 향해 날아갔다.

텅!

“아오!”

그러나 운이 없었다.

아니 유벤투스에게는 천운이었다.

귄도안의 회심의 발리슛이 유벤투스의 골대를 맞추고 튀어 나간 것이다.

유벤투스 수비진은 식겁했다.

모두의 시선이 허공으로 떠오른 볼을 향했다.

그리고 낙하지점을 향해 무섭게 달려오는 자도 볼 수 있었다.

“어! 대한이다.”

“막아!”

수비수들이 다급히 볼을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이미 하늘 높이 떠오른 대한을 막지는 못했다.

쿵!

마치 망치로 볼을 찍어버리듯 대한은 고공에서 골대를 향해 축구공을 머리로 내리찍었다.

문제는 오늘 유벤투스의 운빨이 장난이 아니라는 점이다.

유벤투스 골키퍼 보이치에흐가 힘차게 몸을 날렸다.

아쉽게도 손끝을 살짝 스친 축구공은 그대로 골문 안을 향했다.

그런데 우연히 수비하다 골문 안까지 들어왔던 코스타가 미처 밖으로 나오지 못한 채 골대 앞에 서 있었다.

퍽!

코스타는 급히 얼굴을 잡고 주저앉았다.

볼이 워낙 빨리 날아와서 미처 피하지 못하고 안면을 맞은 것이다.

사람들은 코스타가 얼굴을 희생해서 기어코 볼을 막은 줄 알았다.

코스타가 코피를 줄줄 흘리는 모습이 전광판에 나왔다.

다시보기를 통해, 방금 장면이 하이라이트 영상으로 연속 재생됐다.

그렇게 진실이 밝혀졌다.

와아아아!

경기장은 잠시 환호성인지 웃음인지 모를 묘한 소리에 휩싸였다.

대한도 입술을 꼭 물고 웃음을 참았다.

지은 죄(?)가 있는데 여기서 웃음까지 터트리면 아마 죽일 놈이 될 것이다.

코스타는 대한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시선을 돌렸다.

대신 그의 헤더 골을 자신이 얼굴로 막아냈다는 사실을 위안 삼았다.

그래도 창피한 마음이 쉽게 가시진 않았다.

경기는 잠시 중단됐다.

코스타가 응급처치를 받는 동안 선수들은 코치들이 들고 온 물을 마시며 짧은 휴식을 취했다.

“대한! 호랄두가 좀 지친 것 같아.”

“벌써?”

“응, 옆에서 보니까 더 잘 보여.”

스털링이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어쩐지 자신에게 볼을 패스해달라는 말 같았다.

“알았어. 기회가 되면 바로 패스할게.”

“고마워!”

역시 자신의 짐작이 맞았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스털링은 승부욕이 아주 강했다.

골 욕심도 대단했다.

다만 그걸 잘 절제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대한은 물을 마시면서 시선을 호랄두에게 뒀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게 정말 지친 모양이다.

‘내가 너무 심하게 몰아붙였나?’

대한은 갑자기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빠르게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대한민국 프로축구 팬 전체를 우롱한 날강두의 처사를 용서할 수 없었다.

저래 보여도 그는 전용 제트기까지 소유한 거부다.

그동안 팬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광고를 찍고 다녔는가!

그런데도 약속을 지키지 않고 뻔뻔하게 벤치에 앉아 단 1분도 필드에 서지 않았다.

중국에선 펄펄 날아다녔던 인간이 말이다.

그날의 일을 직접 보고 겪은 대한민국 프로축구 팬들이라면 아마 누구도 그 사실에 분개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최소한 공식적인 자리에서 솔직하게 미안하다거나 잘못했다고 했다면 아마 너그럽게 용서했을 것이다.

하지만 날강두나 유벤투스 FC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뻔뻔스럽게 대한민국 경찰 탓을 해대며 오만하게 굴었다.

거기에다 진짜 용서할 수 없는 건 이탈리아 프로축구리그의 세리에 A 팬들이다.

원래 국민성이 그런 건지는 몰라도 매 경기 유색인종에 대한 인종차별이 극을 넘어가고 있었다.

다른 프로축구리그에서는 인종차별에 관해 아주 엄격했다.

그런데 유독 이탈리아의 세리에 A 리그는 누구처럼 처벌이 아주 솜방망이였다.

어쩌면 전혀 신경을 쓰고 있지 않은지도 몰랐다.

그래서 오늘 대한은 유벤투스를 향한 남모를 칼을 뽑았다.

이제 몸도 적당히 데워졌으니 슬슬 발동을 걸어 볼 타이밍이다.

만일 호랄두가 처음부터 이런 대한의 마음을 알았다면 절대 볼 다툼을 벌이거나 정면 대결을 할 생각을 품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호랄도는 남의 마음을 짐작하거나 읽는데 익숙하지 못했다.

삐익!

주심이 휘슬을 불자 경기가 속개됐다.

유벤투스는 이번에도 강공으로 밀고 나왔다.

파상공세를 펼치며 어떻게든 멘시티의 골문에 볼을 집어넣으려고 노력했다.

그건 호랄두도 마찬가지였다.

몇 번이나 위험한 장면이 나왔다.

하지만 맨시티 골키퍼의 선방과 수비수의 헌신적인 육탄방어로 위기를 잘 넘겼다.

시간이 지나자 유벤투스의 공세는 서서히 무뎌졌다.

그리고 분위기가 맨시티로 넘어왔다.

그때부터 맨시티는 본격적으로 이빨을 드러냈다.

그 시작은 역시 대한이었다.

툭 툭!

그는 볼을 잡은 채 툭툭 치고 들어갔다.

그런데 방향이 아까처럼 오른쪽 라인이 아닌 중앙이었다.

자연스럽게 제주스와 자리를 스위치했다.

그러면서 대한은 스털링을 쳐다봤다.

다다다다!

돌연 스털링이 안쪽으로 달려 들어갔다.

그걸 본 대한도 빠르게 드리블을 치고 나갔다.

“스털링을 막아!”

“대한을 막아!”

유벤투스 수비진은 서로 소리를 치며 소통했다.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그들의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스털링의 움직임도 수준급이었다.

한쪽 끝으로 가는 듯하다가 돌연 페널티 에어리어를 가로질러 우측으로 빠졌다.

대한은 바로 그런 스털링을 향해 빠르게 패스했다.

그리곤 왼쪽으로 달려갔다.

스털링은 패스를 받아 바로 슛을 할 모션을 취했다.

유벤투스 수비수들이 기겁하며 스털링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이건 스털링의 속임수였다.

스털링은 대한이 준 패스를 잡지 않고 부드럽게 리턴패스를 했다.

툭!

그것도 대한이 달려가는 방향의 앞쪽이었다.

“나이스 패스!”

대한은 유벤투스의 최종수비진을 바람같이 스쳐 지나갔다.

그의 발밑에는 어느새 스털링이 패스해준 볼이 자석처럼 붙어 있었다.

“안 돼!”

“막아!”

유벤투스의 보이치에흐 골키퍼가 크게 소리쳤다.

센터백인 레오나르도도 같이 고함을 지르며 몸을 날렸다.

하지만 대한은 가볍게 볼을 옆으로 미는 동작만으로 수비수를 제쳤다.

그런 다음, 인사이드로 부드럽게 볼을 찼다.

퉁!

아주 강하지도 빠르지도 않은 슛!

그러나 골키퍼의 움직임과는 정반대인 구석을 향해 정확하게 날아가는 볼이었다.

와아아아!

순간!

에티하드 스타디움이 거대한 함성으로 뒤흔들렸다.

맨시티 팬들은 신이 나서 마구 소리를 질렀다.

주먹을 불끈 쥐고 부들부들 떠는 사람들의 모습!

그걸 보면 지금 맨시티 팬들이 얼마나 열광하고 있는지 능히 짐작이 갔다.

흥분한 장수원 아나운서와 남희진 해설위원도 절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우아아!”

“골입니다.”

“이대한 선수의 선취점입니다.”

“전반 25분, 드디어 우리 자랑스러운 대한의 건아! 이대한 선수가 유벤투스의 골문을 흔들었습니다.”

“속이 다 후련합니다.”

“그렇게 강하게 차지도 않았어요.”

“맞아요. 대신 정확하게 찼습니다. 사실 이렇게 침착하게 원하는 방향으로 슛을 때리는 게 더 힘든 겁니다.”

“역시 갓 클래스는 다르네요.”

어떻게든 대한을 빨아주지 못해서 안달이 난 두 사람!

아마 엉덩이를 맞고 들어가도 의도적으로 가져다 댔다고 우길 양반들이다.

“오늘 재미있는 관전 포인트가 하나 있습니다.”

“호랄두 선수와 이대한 선수의 대결을 말씀하시는 거죠?”

“네, 그렇습니다.”

남희진 해설위원은 입에 침을 바르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전 오늘 확실하게 깨달았습니다.”

“뭘 말입니까?”

“신계에 입성했다는 호랄두 선수보다 우리 이대한 선수의 실력이 월등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아! 맞네요. 그러고 보니 벌써 몇 번이나 대결을 벌였는데 그때마다 이대한 선수가 전부 틀어막거나 오히려 볼을 빼앗았습니다.”

“호랄두 선수가 신계에 입성했다면 우리 이대한 선수는 이미 신계를 초월했다고 봐야 합니다.”

장수원은 속으로 남희진을 욕했다.

‘아니, 이 양반이 도대체 얘기를 어떻게 풀어가려고 저러지?’

그러나 겉으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적극적으로 동조하는 모양을 취했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군요.”

“확실히 이번에 신계는 물갈이됐습니다. 호랄두 선수와 메시 선수가 빠지고 새롭게 이대한 선수가 등극하는 것으로 말이죠.”

“아! 그렇군요. 정말 이대한 선수 자랑스럽습니다.”

남희진 해설위원의 황당무계한 궤변에 장수원 아나운서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그럭저럭 잘 넘어간 것 같았다.

여기서 한 마디만 삐끗했다면 아마 위에서 또다시 온갖 욕과 잔소리를 바가지로 얻어먹었을 것이다.

한편, 대한TV 채널을 시청자들은 오히려 담담했다.

이제는 대한이 골을 넣는 걸 아주 당연하게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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