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화 <격동하는 주변 정세>
“장족과 묘족도 독립을 위해 무장봉기를 시작했어요.”
“몽골족은?”
“몽골에서 은밀히 지원을 해주기로 했어요.”
“그럼 앞으로 내몽골도 절대 조용하지 않겠군.”
“그럴 거예요. 안 그러면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야죠.”
그는 몸을 소파에 기대고 중국전도를 살펴봤다.
위구르와 티베트, 동북삼성과 내몽골을 떼어내자 중국은 금세 반 토막이 났다.
여기에다 장족과 묘족이 독립하고 6대 군구가 각각 독립한다면 아마 볼만할 것이다.
“참 카자흐스탄과 키르키스탄, 타지키스탄이 위구르, 아니 동투르키스탄 공화국을 은밀히 지원하기로 했어요.”
“슬슬 중국의 눈치를 보던 나라들이 움직이기 시작했군.”
“인도에서도 중국과 국경분쟁이 있는 아크사이친, 시킴주, 아루나찰프라데시에 은밀히 병력을 집중시키고 있어요.”
“으음.”
대한은 손으로 턱을 쓰다듬으며 신음을 토했다.
그동안은 중국이 너무 크고 강하다고 생각해 바짝 몸을 웅크렸던 나라들이다.
그런데 중국에서 권력투쟁이 일어나고 소수민족들이 봉기하여 독립하자 기회라고 생각한 인도가 가장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건 너무 빠른 움직임이었다.
“적당히 속도와 수위를 조절하도록 해. 괜히 사분오열된 중국을 외세의 침략이라는 명분을 줘서 자칫 하나로 뭉치게 만들면 골치 아프다고.”
“알고 있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중화민국을 부추기고 있어요.”
“오오. 대만이 있었군.”
호시탐탐 본토 수복을 노리고 있는 게 중화민국이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은 기회가 찾아왔다.
중국 현지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는 것은 비단 인도만이 아니었다.
대만이야말로 누구보다도 중국 본토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홍콩의 민주화 열망도 잊으면 안 돼요.”
“거긴 좀. 독립이 힘들 것 같은데.”
“실제적인 무력이 없어서 쉽진 않겠지만, 여론전을 펼치기에는 아주 유용한 장소예요.”
“그렇긴 하지.”
지금은 하나라도 더 모아서 불을 지피는 게 옳다.
중국을 땔감으로 민주화 열망이 활활 불타오르기 시작하면.
아마 대륙 전체가 뜨겁게 달아오를 것이다.
“인도는 속도를 조절하고 파키스탄은 괜히 오판하지 않도록 잘 견제해줘!”
“알겠어요.”
“미국의 반응은 어때?”
“중국을 약화할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겠지. 하지만 우리가 깔아놓은 판에 미국이 춤추게 하는 것은 곤란해.”
“그야 당연하죠. 당분간 미국이 함부로 끼어들지 못하도록 할게요.”
대한은 슬슬 때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남북을 통일하자.”
“예, 오빠.”
“네, 마스터.”
엘라와 에바가 기쁘게 대답했다.
통일을 향한 대한의 열망이 얼마나 큰지 둘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어쩌면 중국을 이렇게 건드린 것도 전부 남북통일을 위한 사전정지작업인지도 몰랐다.
“시작하면 단번에 끝내야 해. 종전선언과 동시에 통일선언을 하고 북으로 대한민국 육군의 제7기동군단을 올려보내!”
제7기동군단은 ‘북진선봉부대’라는 별명을 가진, 대한민국 육군 지상작전사령부 예하의 군단이다. 북진이라는 공격 임무를 맡은 전원 기계화보병사단이기도 하다.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말이죠.”
“그래. 질풍처럼 몰아붙여서 단번에 자리를 잡는 게 좋아. 그래야 선양군구가 독립선언을 하고 동북삼성이 독립해서 나라를 세우면 간도를 넘겨받을 수 있어.”
“알겠어요.”
엘라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대한은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의 생각대로 일이 진행된다면.
한반도를 온전히 영토로 삼는 것은 물론이고 거대한 간도라는 고토가 대한민국의 품에 돌아오게 될 것이다.
앞으로 더는 외세에 의존하거나 좌지우지돼서는 안 된다.
한민족은 이제 스스로 나라를 지켜야 한다.
이번 기회에 자주국방을 완성하고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게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또다시 구한말의 굴욕적인 역사가 되풀이될 수 있다.
“응?”
대한은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얼굴을 보지 못했다.
대신 부드럽고 따뜻한, 아주 뭉클한 여체가 그를 껴안았다.
그녀의 몸에서 향긋한 꽃냄새가 났다.
그제야 대한은 자신을 백허그한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류연!”
“대한!”
류연은 그의 귀에 속삭이듯 말하며 가볍게 뺨에 키스했다.
“내가 방해한 건 아니지?”
“아니야. 이리 앉아.”
대한은 자신의 옆자리를 손으로 툭툭 치며 말했다.
하지만 류연은 바로 오지 않았다.
반대편 소파에 앉아있는 엘라의 눈치를 먼저 살폈다.
그 모습에 엘라는 류연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류연은 슬금슬금 다가와 대한의 옆자리를 차지했다.
류연은 소파에 앉자마자 덥석 그의 허리를 꼭 껴안았다.
향긋한 꽃 내음이 섞인 살 냄새!
허리를 짓누르는 탱글탱글한 감촉!
대한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류연의 몸을 꼭 껴안았다.
잠시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
덕분에 원하지 않던 침묵이 이어졌다.
그래도 류연은 그의 허리에 감은 자신의 팔을 풀지 않았다.
마치 오랜만에 엄마를 보는 아이처럼.
그녀는 그렇게 계속 대한의 허리만 꼭 껴안고 있었다.
난감한 상황에 빠진 대한.
그렇다고 억지로 그녀를 떼어놓고 싶지는 않았다.
아마도 많이 불안했던 모양이다.
중국에서 제주도로 집안 전체가 이주했다.
묘족이 고향에서 봉기해 무장독립투쟁을 시작했다는 소식도 들렸다.
거기에다 이번에는 대한의 사랑도 독점하지 못하고 공유하게 됐다.
그래서인지 그를 안고 있는 류연의 팔에는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녀를 밀어내면 상처를 받을지도 모른다.
“에바! 계속하자.”
“마스터, 괜찮겠어요?”
에바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대한은 단호하게 말했다.
“어차피 이제 한 식구잖아.”
“아!”
그의 말에 감동이라도 받았나 보다.
류연이 작게 탄성을 지르더니 아까보다 더욱 세게 대한을 껴안았다.
그녀의 이런 행동에 그는 절로 미소가 돌았다.
어린아이도 아니고 이게 뭐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느껴지는 이 성숙한 감촉만은 절대 아이가 아닌데 대한은 류연의 행동을 통해 한 가지는 확실하게 느꼈다.
류연은 그를 아주 많이 좋아하고 있었다.
“다들 여기서 뭐 하는 거야?”
그때, 리나의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영하러 가는 길인지.
비키니를 입은 리나의 몸매가 눈에 띄었다.
“일하고 있어.”
“여기서 그렇게?”
리나는 경쾌한 워킹으로 대한을 향해 걸어왔다.
그럴 때마다 흔들리는 그녀의 미드가 자꾸 시선을 붙잡았다.
어제 그렇게 친하게 잘 지냈었는데 막상 오늘 다시 보니 너무나도 새로웠다.
순간, 허리에서 점차 풀려나가던 힘이 강하게 돌아왔다.
대한은 그제야 류연의 존재를 새삼 깨달았다.
“잠시 이렇게 있고 싶다고 해서 내버려 둔 거야.”
“으음, 대한은 주로 여기서 일하나 보네.”
리나는 동문서답을 했다.
대한의 앞에 당당히 서서, 그녀는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뭐 그런 셈이지.”
그의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리나는 대한의 허벅지에 앉았다.
그리고는 가녀린 두 팔로 그의 목을 감싸더니 진하게 프렌치 키스를 했다.
입에서 상큼한 박하 향이 났다.
리나의 돌직구에 대한은 잠시 망설이다가 같이 어울렸다.
양옆에 여자 둘이 자신을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한쪽에 서 있는 에바까지 합하면 셋이 보고 있었다.
정말 낯 뜨거운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도 대한은 뻔뻔하게 리나와의 프렌치키스를 이어갔다.
욕심껏 키스를 날린 리나가 그제야 떨어져 나갔다.
“다들 바쁜 것 같아서 그만 가볼게.”
“수영장?”
“응. 그런데 아무리 바빠도 앞으로 모닝 키스하는 거는 잊지 마!”
“어? 응. 알았어.”
리나는 그 말을 끝으로 미련 없이 일어났다.
그리고는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체스터 포트 펜트하우스의 투명 수영장으로 갔다.
불안한 것은 마찬가지일 텐데, 참 용감하고 씩씩한 리나였다.
그 사이, 엘라와 리나의 불꽃 튀는 시선이 짧게 정면충돌했다.
하지만 대한은 미처 그것까지는 보지 못했다.
“크흠. 다시 시작하자.”
“네, 마스터.”
대한은 무안한 마음에, 헛기침하며 에바를 쳐다봤다.
에바는 그를 뚫어지라 바라보는 엘라를 보면서 손가락을 튕겼다.
딱!
그러자 새로운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대한은 엘라의 시선을 일부러 모른 체했다.
그보다는 눈앞에 있는 현안에 집중했다.
“여긴 독도잖아.”
“일본이 대한민국을 자극하려고 단단히 마음먹었습니다.”
“설마 국내의 불만을 외부로 돌리려는 전형적인 수법?”
“네, 정답입니다. 일본 해상자위대 제3호위대군 함대가 마이즈루 기지에서 출발해 독도로 향하고 있습니다.”
에바의 설명에 대한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이것들이 가만히 있으니까 정말 가마니인 줄 아나. 자꾸 와서 시비를 거네.”
“그러게 말입니다.”
“이 상황을 대한민국 해군도 알고 있나?”
“네, 알고 있습니다.”
“미국은?”
“모른 척하고 있습니다. 두 나라의 영토문제에는 끼어들지 않겠다는 분위기입니다.”
“흥!”
대한은 크게 콧방귀를 꼈다.
“그게 아니겠지. 둘이 사고를 쳐야 끼어들 명분이 생길 테니까, 일본의 위험한 행동을 그냥 가만히 내버려 두는 거야.”
“그럴 수도 있습니다.”
“에바! 청와대의 분위기는 어때?”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럼 독도 분쟁이 실제로 일어나면 대응방식도 그만큼 거칠어지겠군.”
“아무래도 그렇지 않을까요!”
에바의 말에 이어 엘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 기회에 일본의 함대를 정리할 필요성이 있어요.”
“일본 함대를 정리하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갑작스러운 엘라의 의견에 대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한민국의 입장에선 중국과 일본의 함대는 골칫덩어리입니다. 그러니 이번 기회에 적당히 수를 좀 줄여놓아야 합니다.”
“설마 독도에서 교전이라도 벌이자는 뜻이야?”
“그 정도면 안 하느니만 못합니다. 압도적으로 승리해야 합니다.”
“압도적이라면 일본 함대를 전멸시키자는 거네.”
“그렇죠.”
대한은 그녀의 강경한 발언에 눈을 깜빡였다.
‘혹시 나 때문에 화가 나서 그런가?’
엉뚱한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곰곰이 따져보니 이거야말로 자신이 원하는 바다.
일본은 섬나라라 전통적으로 해군력이 강하다.
세계 해군 군사력 4위에 랭크될 정도로 일본의 함대는 수적으로나 질적으로 우수하다.
그런 일본과 해전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다면.
아마 일본 정부는 당장 멘붕이 올지도 모른다.
“중국 함대는?”
“그거야 일본과 싸움을 붙여야죠.”
“호오!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법을 쓰자는 말이군.”
“맞습니다. 중국 오랑캐로 일본 오랑캐를 잡는 거죠. 아니면 반대이거나.”
어느 쪽이 먼저 건들 던 중요한 게 아니다.
양측의 함대가 부딪히면 필연적으로 전력에 손실이 날 수밖에 없다.
그만큼 중간에 끼어있는 한반도는 안전해진다.
“해군의 대공 방어체계는 어떻게 됐지?”
“한국빔형방어체제의 성능에 고무된 해군작전사령부에서 대공미사일과 근접방어 무기체계와는 별도로 해상빔형방어체계를 도입했습니다.”
한국빔형방어체제의 위력을 아는 사람은 절대 혹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빔형방어체제를 가장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곳이 바다다.
특히 해군 함정에 설치하면 생존율이 기가 막히게 올라간다.
“그럼 해군의 전 함정이 전부 우리의 해상빔형방어체계를 설치한 거야?”
“기본적으로 그렇게 할 계획입니다. 다만 현재는 제7기동전단을 필두로 1함대, 2함대, 3함대까지만 실전 배치된 상태에요.”
“그거면 충분하지. 위력도 당연히 잘 알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이미 여러 차례 테스트를 진행한 상태라 해군은 전투 교리까지 전부 바꾸는 중입니다.”
“그렇다면 이번에 그걸 실전 테스트하면 좋겠군.”
“적절히 시험해볼 좋은 기회이긴 합니다.”
대한과 에바는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청와대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겠지?”
“네, 해군작전사령부에서 테스트 결과를 대외비로 올려서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럼 독도는 자칫하면 한일분쟁의 시발점, 아니 도화선이 될 수도 있겠네.”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인간은 호기심의 동물이다.
자신의 힘을 깨달으면 그걸 꼭 써보고 싶어 한다.
그동안 억울하게 당해왔던 일 때문이라도.
청와대는 결코 일본의 독도 침략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