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3화 <쇼핑>
“로터리 그룹에선 로터리인천타운과 한국후지필름을 매각했습니다. 그리고 로터리자이언츠도 매각을 결정했습니다. 또한…….”
“아!”
이번에는 로터리 그룹 출신의 사장들이 크게 동요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로터리 자이언츠 구단을 매각한 것은 충격이 컸다.
대한의 마음도 사실 이와 비슷했다.
어지간하면 자이언츠 구단은 가지고 있으려고 했다.
하지만 운영할 능력도 의지도 없는 코레그룹이 괜히 가지고 있어봤자 오히려 구단을 망치기만 할 것 같았다.
다행히 다른 대기업에서 큰 관심을 보였다.
그래서 얼른 넘겨버렸다.
앞으로 ‘로터리’라는 단어는 빠질 것이다.
그래도 명문구단인 자이언츠의 명맥은 계속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신임사장단을 발표하겠습니다. 조직도를 보면서 들어주세요.”
오세종의 제안에 다들 시선을 LED TV로 돌렸다.
그가 신임사장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조직도의 이름이 강조되고 사진이 확대됐다.
코레항공(한양항공): 손병희
코레호텔(칼호텔네트워크, 로터리호텔 분리 후 합병): 권동진
코레해운(한양해운, 한양항공에서 분리 후 독립): 오세창
코레공항(한양한국공항에서 분리독립): 백용성
코레쇼핑(로터리쇼핑): 나인협
코레음료(로터리칠성음료): 홍기조
코레푸드(로터리푸드): 박준승
코레제과(로터리제과): 이승훈
코레편의점(로터리코리아세븐 분리 후 독립): 권병덕
코레건설(로터리건설): 김완규
코레물산(로터리물산, 로터리상사 합병): 나용환
코레보험(로터리손해보험): 이종훈
코레카드(로터리카드, 로터리멤버스 합병): 홍병기
코레제철(로터리인천제철, 로터리알미늄 합병): 김병조
“…마지막으로 대한TV 채널 사장 유아영.”
“수고하셨습니다.”
오세종의 말이 끝나자 바로 대한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코레그룹에 새롭게 합류한 각 계열사는 현재 정밀감사에 들어간 상태입니다. 그로 인해 전 회장과 부회장은 물론, 사장과 부사장, 전무, 상무, 이사 같은 회사의 전 임원들이 속속 경찰에 구속되고 징계를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
“거기에다 중간관리직인 팀장, 부장, 차장, 과장, 계장도 부정과 비리 혐의가 드러나 무더기로 잘려나갔습니다. 당연히 업무에 공백이 생기고 일이 매끄럽게 흘러가지 않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불법을 저지른 범죄자들을 계속 회사에 다니게 놔둘 수는 없었습니다.”
대한의 단호한 말에 다들 바짝 긴장했다.
“앞으로도 코레그룹은 이런 부정과 비리를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겁니다. 형사는 기본이고 민사까지 가서 회사의 손해를 끝까지 만회할 것입니다. 또한, 업무시간의 연장으로 회식을 한다거나 거래처와 술 접대를 주고받는 일도 없어야 합니다.”
“아!”
거래처와 술을 마시지 말라는 소리에 몇 명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원청과 하청 사이에 당연시되는 게 바로 술 접대다.
이런 관행은 비단 기업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방송국이나 연예계는 이보다 훨씬 더 심각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코레그룹의 회장인 대한의 말을 정면으로 거역할 수도 없었다.
“빈자리는 자체적으로 승진 발령하는 것을 기본으로 합니다. 하지만 외부에서 경력직 직원을 데려와 쓰는 것을 굳이 반대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리고 실무자인 대리, 주임, 사원 및 인턴과 비정규직까지 모든 실사가 끝내면 검증된 인재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세요. 앞으로 우리 그룹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은 없을 겁니다.”
“네에?”
“아아!”
이번에는 충격이 좀 컸나 보다.
다들 놀란 마음에 소리를 내고 말았다.
하지만 대한은 이를 두고 뭐라고 나무라지는 않았다.
다만 확실하게 다짐하듯 말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우리 그룹에 비정규직은 없습니다. 3개월의 인턴 과정을 거치면 정규직으로 채용합니다. 아니다 싶으면 아예 처음부터 뽑지 마세요. 혹시 고정비용이 늘어날까 봐 걱정된다면 그만큼 영업에 힘쓰세요. 인건비 아껴서 회사를 살찌우겠다는 생각은 무능입니다.”
쿵!
대한이 이렇게까지 얘기를 하자.
약간의 여지를 남겨뒀던 사장들은 깨끗이 포기했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코레그룹은 정도를 걷는 기업이었다.
전처럼 일했다간 회장의 눈 밖에 날 게 분명했다.
그러려면 먼저 자신이 바뀌어야 했다.
“다음은 뭐죠?”
“인수·합병할 민간 항공업체 리스트입니다.”
“띄워보세요.”
“네.”
에바가 리모컨을 조작하자 금세 화면에 기업들의 이름이 나타났다.
그런데 하나같이 어마어마한 회사들이었다.
보잉, 에어버스, ATR, 엠브라에르, 봄바디어…….
민간 항공시장을 선도하는 항공기 제조회사들의 이름이 총망라되어 있었다.
“설마 나보고 저걸 전부 인수하라는 뜻은 아니겠죠?”
“보잉은 종합방위시스템(Boeing IDS; Boeing Integrated Defense Systems)과 상업항공(BCA; Boeing Commercial Airplanes)으로 나뉩니다. 전자는 군사와 우주에 관련됐고, 후자는 민간 항공기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에어버스는 유럽의 항공회사들의 컨소시엄으로 미국의 방위산업체들과 경쟁하기 위해 설립됐습니다. 자회사로 방위산업체인 EADS 등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대답의 요지가 뭐죠?”
“보잉과 에어버스는 사고 싶다고 해도 쉽게 살 수 있는 기업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다만 현재 주가가 폭락한 관계로 대주주가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에바의 또랑또랑한 목소리에 대한은 천천히 의자에 몸을 기댔다.
보잉이나 에어버스나 방위산업체를 가지고 있었다.
상업항공 분야만 따로 분리해낼 수 있다면.
아마 인수가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간단히 예를 들어, 2019년 보잉 737 MAX의 이륙 금지조치와 기종 생산중단 결정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난 지 얼마 안 되는 시점에서 중국 우한에서 시작한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항공산업이 마비되는 큰 악재가 일어나 3월 13일 하루 동안, 보잉의 주가가 23.83%나 급락하는 사태가 터졌다.
위기에 빠진 보잉은 급히 미국 정부와 금융기관에 600억 달러의 긴급자금을 요청했다.
말이 600억 달러지, 이건 천문학적인 액수다.
그런데 미국 정부와 금융기관은 이것도 모자랐는지.
이후에도 몇 차례에 걸쳐 거액의 유동자금을 지원해줬다.
대마불사!
그렇다.
이건 절대 미국 정부가 보잉이 무너지는 것을 절대 좌시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런 회사를 코레그룹이 먹겠다고 나서면 퍽이나 좋다고 하겠다!
“주식투자는 코레투자에서 전담하는 것으로 합시다.”
“네, 알겠습니다. 하지만 ATR, 엠브라에르, 봄바디어는 우리가 충분히 인수할 수 있습니다.”
“가장 좋은 인수처는 어디죠?”
대한의 물음에 에바가 즉각 대답했다.
“엠브라에르입니다. 2018년 7월 5일, 브라질 엠브라에르의 리지널 제트기 사업의 80%를 보잉이 38억 달러에 인수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이걸 고스란히 시장에 내놓았습니다. 그것도 12억 달러라는 아주 저렴한 가격입니다.”
그는 잠시 생각해봤다.
가격은 나쁘지 않다.
그래도 엠브라에르 하나로는 전혀 성이 차지 않았다.
대한이 원하는 것은 보잉과 에어버스에 이은 새로운 강자!
코레항공의 출현이다.
민간 항공시장의 ‘천하삼분지계’를 바라는 그의 시선이 ATR과 봄바디어로 향했다.
“보잉이 내놓은 리지널 제트기 사업과 ATR, 엠브라에르, 봄바디어 항공사! 이 셋을 전부 인수해서 하나로 합치는 게 좋겠어요.”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인수는 코레투자에서 맡기로 하고 인수대금은?”
“그룹이 보유한 자금으로 충분합니다.”
“좋아요. 그렇게 합시다.”
대한과 에바는 세계 민간항공 시장을 선도하는 세 기업의 인수합병을 빠르게 결정했다.
그걸 본 신임사장들은 속으로 무척 놀랐다.
브라질의 엠브라에르만 하더라도 매출액이 수십억 달러에 달한다.
캐나다의 봄바디어는 포춘지에서 세계 500대 기업에 선정했다.
ATR은 프랑스와 이탈리아 항공사의 합작회사다.
이런 대기업을 하나도 아니고 셋이나 한꺼번에 인수한다고 한다.
아마 자금이 수십억, 아니 수백억 달러도 더 들어갈지 모른다.
그런데도 인수자금이 충분하다고 얘기하고 있다.
도대체 코레그룹이 보유한 자금이 얼마나 되길래 이게 가능하다는 것일까?
“만약 인수에 성공한다면 저 회사들의 운영은 누가 합니까?”
그때 오세종 코레디펜스 사장이 궁금한 듯 합리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생각할 가치도 없다는 듯.
대한은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당연히 코레항공에 합병해야죠.”
“아!”
회의실에 있는 사람의 입이 쫙 벌어졌다.
거의 동시에 그들은 코레항공의 손병희 신임사장을 쳐다봤다.
손병희 사장은 너무 놀라서 심장이 마구 벌렁대고 있었다.
정말 인수합병에 성공하기만 하면.
당장 보잉과 에어버스 부럽지 않은 대기업이 탄생하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 최대의 항공사 사장이 된 현재.
잘하면 거대한 다국적기업들과 경쟁할만한 대기업의 총수가 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는 이 사실에 전율을 느꼈다.
그제야 신임사장들도 정신을 바짝 차렸다.
지금의 이 회의가 어쩌면 자신에게도 엄청난 기회로 다가올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것이다.
“다음으로 넘어가죠.”
“네, 회장님. 이번에는 호텔입니다.”
호텔이라는 말에 코레호텔의 권동진 사장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는 눈에 잔뜩 힘을 주고 귀를 바짝 기울였다.
“항공업계와 마찬가지로 초토화되다시피 한 호텔업계에 좋은 매물이 많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럼 우리가 좀 가져갈 게 있겠군요.”
“물론입니다.”
대한이 싱긋 웃자 에바도 따라 웃었다.
권동진 사장의 입가에도 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그 모습에 다들 노골적으로 부럽다는 시선을 보냈다.
“먼저 글로벌 체인 호텔인 힐튼, 하얏트, 메리어트입니다. 포트폴리오가 풍부해서 살 것도 많고 사야 할 것도 많습니다. 당연히 덩치가 큰 것도 꽤 됩니다.”
“설마 체인 호텔 전체를 매물로 내놓았을 리는 없고. 매물이 뭐죠?”
“매물은 다양합니다. 특급호텔도 있고 리조트도 있습니다.”
“그럼 장기적으로 봤을 때 부동산 가치가 있는 특급호텔과 리조트 위주로 선별해서 인수할 대상을 올려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대한의 지적에 에바가 즉시 태블릿을 조작했다.
그러자 화면에 힐튼, 하얏트, 메리어트 호텔 체인이 매물로 내놓은 특급호텔과 리조트들이 순위에 따라 수십 개나 나타났다.
“다 사들이세요.”
“네, 회장님.”
대한의 결정에 에바는 바로 알겠다고 대답했다.
“헉!”
“저게 다 얼마야?”
“오마이갓!”
권동진 코레호텔 사장은 기겁을 했다.
특급호텔 하나나 둘 정도는 내심 기대했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 특급호텔만 12개에 리조트는 24개나 됐다.
전부 합하면 수십억 달러, 아니 수백억 달러도 넘어갈 것 같았다.
그걸 이대한 회장은 한마디 말로 결정해버렸다.
다들 자신을 부러운 눈초리로 쳐다봤다.
하지만 권동진 사장은 이들의 시선을 즐길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앞으로 저걸 다 어떻게 소화해야 할지.
아니 운영은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눈 앞을 가리고 있었다.
대한은 그런 권동진을 힐끗 한번 쳐다보고는 다음 대목으로 넘어갔다.
“이번에는 여러분도 잘 아시는 기업들입니다. 재계 1위에서 34위까지의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과 35위에서 59위까지의 공시대상 기업집단에서 내놓은 매물입니다.”
“아!”
에바의 설명에 모두 침을 꿀꺽 삼켰다.
해외의 다국적기업과 국내의 대기업은 벌써 다가오는 느낌이 달랐다.
당장 코레그룹만 봐도 재계 순위 5위의 로터리 그룹과 13위의 한양그룹을 합병한 것만으로 현재 재계 순위 4위를 밀어내고 그 자리에 올라섰다.
당장 어떤 기업을 인수하느냐에 따라 대접받는 정도가 달라질 게 분명했다.
그러니 모두 이렇게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는 것이다.
“오성은 중공업과 건설 부문 그리고 생명공학 부문을 통째로 내놓았습니다.”
“흥, 그래도 노른자인 전자와 금융은 꽉 틀어쥐고 있군. 생명공학 부문만 생각해봅시다.”
오성그룹에게 전자는 미래와 현재의 먹거리다.
금융은 그룹의 자금줄이니 당연히 내놓을 리 없었다.
사내유보금이 천문학적이라는 말이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글로벌 바이러스 위기 여파를 피해가기는 힘들었던 모양이다.
“미래자동차는 통 크게도 기안자동차를 매물로 내놓았습니다.”
“호오! 이건 구미가 좀 당기는군요.”
“사람들이 밖으로 외출하지 않으니 자동차를 쓸 일이 거의 없습니다. 당연히 해외의 유명한 자동차 브랜드 상당수도 매물로 나오거나 새로운 투자자를 찾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기안자동차 인수부터 적극적으로 검토하세요. 해외의 자동차 제조업체들의 인수도 같이 겸해서 검토해보시고요.”
“네, 회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