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만재능(Feat. 대한 TV)-306화 (304/331)

306화 <죗값을 치르자>

“너 지금 나한테 총구를 들이댄 거! 실수한 거야.”

“뭐, 뭐라고?”

야쿠자는 시비를 거는 듯한 아키라의 말에 비릿한 조소를 지었다.

그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싸움의 현장을 향했다.

그런데 이미 싸움은 끝나있었다.

스무 명이나 되는 친피라들이 구겨진 휴지처럼 박살 나 사방에 널브러진 상태였다.

문제는 그들을 이렇게 만든 네 명의 사내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걸 깨달은 순간!

불길한 마음에 야쿠자는 아키라를 겨냥한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탕!

총알이 아키라의 발 바로 앞에 박혔다.

그러나 아키라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마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어둠의 전사처럼 말이다ㅣ.

“크크크, 이렇게 가만히 서 있는데도 맞추질 못하네. 권총 그립을 그따위로 잡으니까 그렇지. 자세도 완전 개판이로구나.”

“아니, 이놈이!”

이름 모를 야쿠자는 아키라의 놀림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래서 이번에는 연사로 머리통을 맞추려고 작심을 했다.

그는 두 손으로 권총을 잡고 총구를 아키라의 머리에 맞췄다.

순간!

탕!

총소리와 함께 아키라가 아닌 야쿠자가 옆으로 쓰러졌다.

그의 옆머리가 터져 나가며 뇌수와 피가 쏟아졌다.

아키라는 싸늘한 눈빛을 빛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동공에 비췬 난간!

어느새 올라간 팀원의 모습이 달빛에 비치고 있었다.

“다 쓸어버려!”

아키라는 차갑게 명령했다.

“네.”

“옛!”

네 명의 사내는 묵직하게 대답을 하고는 즉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의 손에는 각각 권총이 하나씩 들려있었다.

탕 탕 탕 탕 탕!

타타탕 타타탕!

곧이어 건물 안에서 총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권총 소리만 났다.

하지만 이내 연발 총소리가 합류했다.

저벅저벅!

아키라는 그 소음을 배경음악으로 삼고.

느긋하게 건물 내부로 들어섰다.

안에서 피와 화약 냄새가 훅하고 들어와 코를 찔렀다.

계단을 오르자 붉은 핏물이 실개천을 이루며 졸졸 아래로 흘러내렸다.

사방에 널브러진 야쿠자들의 시체가 그의 발길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아키라는 결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시체를 발로 옆으로 치우거나 아니면 그냥 밟고 넘어갔다.

“누구냐? 누가 보냈어? 야마구치구미에서 날 암살하려고 시키더냐?”

타타탕 타타타탕!

고함을 치는 악다구니 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기운이 넘치다 못해 뻗치는 불혹의 남자.

아무래도 저놈이 바로 다나카인 것 같았다.

그의 발걸음이 자연히 소리가 나는 쪽으로 향했다.

타타타타탕!

탕 탕 탕

“으악!”

몇 번의 총소리가 이어지고 난 후.

갑자기 건물 내부는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덜컹!

그때, 그의 앞에서 사무실 문이 열리고 팀원의 얼굴이 보였다.

“다 끝났습니다.”

“수고했어.”

아키라는 안으로 들어가며 가볍게 사내의 탄탄한 어깨를 가볍게 툭 쳤다.

오랫동안 같이 손발을 맞춘 사이답게 호흡이 척척 맞았다.

“으음.”

“으으으!”

“살려줘!”

사무실 내부는 난장판이었다.

곳곳에 야쿠자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한쪽에서는 팀원 둘이 야쿠자들의 무기를 수거하고 있었다.

나머지 한 명은 사무실 안쪽 방에서 사람 키만 한 커다란 금고 앞에 서 있었다.

당연히 혼자 금고를 여는 건 아니었다.

총상을 입어 피를 줄줄 흘리는 다나카!

바로 그놈을 뜨거운 총구로 위협하는 아주 쉬운 방법을 사용했다.

끼이익! 덜컹!

검은 색깔에 보기만 해도 묵직한 단단한 금고.

하지만 비밀번호를 아는 자에게는 너무나 쉬운 상대였다.

“살려줘. 돈은 얼마든지 줄게!”

다나카는 금고 한쪽에 몸을 기대며 간신히 말했다.

하지만 아키라나 금고 안을 확인하는 그의 팀원이나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대장, 장부를 찾았습니다.”

“다행이네.”

팀원이 두터운 장부 몇 개를 들고 흔드는 게 보였다.

아키라는 처음으로 환한 미소를 지었다.

순간 다나카의 두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너는 혹시 테레비(TV)에서 나왔던 그 테러범?”

“호오! 이제야 내 정체를 알아낸 거야!”

아키라는 다나카의 말에 두 손을 들어 가볍게 손뼉을 쳤다.

그러자 금고에서 장부를 챙기던 팀원이 눈을 마주쳤다.

시선이 금고 내부에 쌓여 있는 현금다발과 골드바로 옮겨갔다.

아키라는 그게 무슨 뜻인지 바로 이해하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심전심(以心傳心).

비록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팀원의 입꼬리가 올라가고 금고 안을 훑는 손길에 힘이 들어갔다.

뒤늦게 방안으로 들어온 팀원 중 하나의 손에 커다란 군용가방 두 개가 들려있었다.

팀원들은 서둘러 금고를 비우고 일어섰다.

아키라는 그 시간 동안, 사무실 벽에 걸린 TV를 틀었다.

“나 테러범 아니야.”

“그럼 테레비(TV)에서 나오는 건 뭔데?”

고통 속에서도 참 호기심이 많은 다나카였다.

하지만 아키라도 친절하게 대답을 해줬다.

“그거 이제 곧 여기서 나올 거야. 잘 봐둬!”

그제야 생각이 났다는 듯.

다나카가 급히 아키라를 향해 물었다.

“그런데 왜 우리를 습격한 거야?”

“우리가 널 왜 습격했겠어? 너희들이 먼저 우리를 죽이려고 했으니까 반격한 거지?”

“뭐, 뭐라고?”

“그러니까 평소에 부하들한테 예의를 잘 가르쳤어야지.”

“아!”

아키라의 말에 다나카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알고 보니 굳이 싸울 필요도 없는 싸움을 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결과는 아쉽게도 대패.

아니 전멸이었다.

조직은 무너졌고 조직원은 전부 죽거나 다쳤다.

아마 다시는 자신의 조직 이름이 사람들을 공포에 물들이지 못할 것이다.

“장부는 왜 가져가는 거야?”

“네가 납치해서 섬에 팔아넘긴 여자들을 찾으려고.”

“뭐라고? 그걸 네가 왜 찾아?”

“그 얘기를 좀 잘하려고 했는데 일이 이상하게 꼬였네.”

아키라의 약 올리는 듯한 말투에 다나카는 이를 갈았다.

총에 맞은 복부에서 올라오는 고통보다.

아키라가 놀리는 한마디 말이 더 아팠다.

그리고 TV에선 전혀 예상치 못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테러범으로 몰렸던 아키라 사건이 전혀 사실무근이라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일본 정부의 고위 관료들이 작당해서 무고한 시민 한 명을 테러범으로 몰아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운 희대의 조작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나카는 뉴스를 보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말 아키라의 말대로 그에 관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그것도 혐의가 완전히 풀린 반전의 소식이었다.

“푸하하하!”

아키라가 뉴스를 보더니 파안대소를 터트렸다.

그런데 통쾌하게 웃음을 터트린 그의 두 눈에서 굵은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B22

그러다가 갑자기 두 손을 위로 번쩍 치켜들더니 크게 소리쳤다.

“마스터께 영광을!”

이 황당하고도 그로테스크한 모습에 다나카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저놈은 또라이, 아니 완전히 미친놈이야.’

세상에서 가장 상대하기 곤란한 부류가 바로 이런 놈이다.

다나카는 그동안 살아오면서 최대한 엮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오늘 일진에 무슨 마가 꼈는지.

제대로 이 미친놈과 엮여버렸다.

그것도 자신의 잘못이 아닌, 순전히 부하들의 잘못된 판단 때문이었다.

“다 끝났어요.”

“그만 돌아가자.”

“네.”

“예.”

팀원들은 어깨에 무거운 군용가방을 하나씩 들고 밖으로 나갔다.

아키라도 웃음을 멈추고 손등으로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는 품속에서 뭔가를 꺼내 책상 위에 살짝 올려놓았다.

“그냥 가기는 좀 섭섭해서 선물 하나 주고 갈게. 그동안 네가 지은 죗값은 치러야지. 안 그래?”

“안 돼!”

아키라는 공 같은 것에서 핀을 뽑고 냉정하게 밖으로 나갔다.

다나카는 놀라서 크게 소리를 질렀다.

쿵!

문이 닫히자마자 다나카는 급히 몸을 움직였다.

책상 위에 놓인 저 수류탄을 빨리 창문 밖으로 던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살 수 없다.

총상을 입은 몸은 생각대로 잘 움직여주질 않았다.

그래도 억지로 몸을 움직여 간신히 수류탄을 잡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수류탄이 생각보다 너무 조잡하고 가벼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 몰라 급히 창문 밖으로 던져버렸다.

휘익!

쿵!

다나카는 수류탄을 던지자마자 바닥으로 쓰러졌다.

총에 맞은 배가 불로 지지는 것처럼 아팠다.

하지만 그의 입가는 살았다는 안도의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그때 바닥에 뭔가 이상한 게 보였다.

분명히 아까 밖으로 던진 수류탄과 비슷했다.

그런데 확실히 모양이 정교해서 진짜 수류탄처럼 보였다.

‘그럼 아까 던진 건 뭔데? 혹시 이게 진짜 수류탄? 그럼 놈이 나한테 사기를 친 건가?’

다나카의 얼굴이 순간 하얗게 질려갔다.

그의 동공에는 그동안 자신이 저지른 수많은 범죄와 악행이 주마등처럼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죽음이 임박했을 때만 보인다는 바로 그 현상.

그렇다고 다나카가 회개하거나 후회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더 가지지 못하고 더 통쾌하게 살지 못해.

분하고 원통해서 하늘을 원망했다.

“칙쇼!”

다나카는 아키라를 떠올리며 찰지게 욕을 했다.

그것이 그가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내뱉은 말이다.

쾅!

수류탄은 여지없이 터졌다.

방안은 산산조각이 난 피와 살점으로 도배가 됐다.

강한 충격으로 건물이 무너질 듯 크게 흔들렸다.

다나카를 비롯한 야쿠자들!

아니 사무실과 방 안에 있던 모든 이들이 단 한 명도 빠져나가지 못하고 전부 그 자리에서 폭사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일들은 일본 전역의 대도시, 12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 * *

“제법이네.”

“생각보다 잘하네요.”

대한과 엘라는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으며 품평하듯 말했다.

두 사람은 목욕가운만 걸친 채 커다란 소파에 기대어 앉아있었다.

그들의 앞에는 손에 잡힐 것처럼 선명한 홀로그램이 12개나 떠 있었다.

“그런데 이거 참 맛있다.”

“수제 블루베리 아이스크림이에요. 냉장고에 몇 개 더 있는데 가져올까요?”

“아니야. 밥 먹어야지.”

그녀의 말에 대한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간식은 간식이고 밥은 밥이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당연히 밥을 먹어야 한다.

스테이크도 좋고 파스타도 좋고 피자도 다 좋다.

그렇지만 역시 삼시 세끼는 밥과 김치를 먹어줘야 힘이 난다.

초인의 몸을 가지고 있고 세상의 온갖 진미 요리를 먹을 수 있는 대한이었지만.

이 입맛만큼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엘라는 두 번 권하지 않았다.

“식사 준비가 끝나면 에바가 알려줄 거예요.”

“응.”

대한은 그녀의 말을 건성으로 듣고 대답했다.

그의 시선은 12개의 홀로그램 중 중앙의 하나에 고정되어 있었다.

고베시에 있는 에어볼로 바로 아키라가 나오는 홀로그램이었다.

“천사 프로그램은 성공인가요?”

“이제 겨우 일본에 12명을 풀었을 뿐이야.”

“일본 다음으로 중국과 미국에서도 일을 시작했다고 하네요. 한번 살펴볼까요?”

대한은 뚫어지게 아키라가 나오는 홀로그램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서 묻는 엘라의 목소리도 상당히 조심스러웠다.

“으음, 그래. 중국부터 좀 보자.”

“네.”

다행히 그는 자신의 감정을 적절히 통제할 수 있었다.

딱!

엘라가 허공에 손을 들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12개의 홀로그램이 사라지고 동시에 24개의 홀로그램이 열렸다.

“숫자가 제법 되네.”

“그만큼 응징할 곳이 많다는 거죠.”

쿵! 와르르!

마침 홀로그램 하나에서 둔중한 소리와 함께 건물이 무너져 내렸다.

“저건 어디야?”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 있는 국가안전부 청사에요.”

“뭐?”

무슨 건물이 무너지는가 했더니.

자그마치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중국의 정보기관이 입주한 건물이었다.

“무고한 시민을 다치게 하진 않았겠지?”

“일을 벌이기 전에 화재경보와 최루탄 가스를 뿌려서 다 내보냈어요.”

“그건 다행이군.”

아무리 보복과 응징이 중요해도 죄 없는 사람을 다치게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물론 우한 국가안전부 청사에서 일하는 놈들이 과연 선량한 인간인지는 확실치 않다.

“가만! 그런데 왜 베이징의 본사가 아니라 우한의 국가안전부 청사야?”

대한의 합리적인 의심에 엘라가 바로 대답했다.

“우한의 국가안전부 청사를 무너뜨린 것은 연막작전이에요.”

“그럼 진짜 작전은 뭔데?”

“지난번에 불타버린 베이징의 국가안전부 서버를 백업해놓은 데이터센터를 소멸시키는 게 작전의 핵심이에요.”

“국가안전부의 백업 데이터센터가 타깃이었군.”

그제야 그는 이 작전의 핵심을 파악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