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5화 <체스터 포트>
“혼자 쓰기는 아까운 곳이군.”
“저도 있잖아요.”
“둘이 쓰기에도 아까운 곳이야.”
“에바도 있으니까 이제 셋이네요.”
“크크.”
대한은 엘라의 별것 아닌 농담에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팔을 빼서 그녀의 어깨에 걸쳤다.
엘라는 기회라는 듯!
대한의 몸에 자신의 몸을 바짝 붙이며 그의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
둘은 그렇게 하나처럼 붙어서 체스터 포트를 돌아다니며 구경했다.
체스터 포트는 대한에 맞춘, 대한을 위한, 대한의 성(城)이다.
10층 높이의 저택에는 특급호텔처럼 없는 게 없었다.
계단식으로 만들어진 저택의 프런트!
국제규격에 맞춰진 50m 길이의 야외 풀과 다이빙대가 보였다.
방탄유리를 사이로 저택 안으로 이어진 실내수영장도 크기가 만만치 않았다.
신기한 것은 시리도록 투명한 물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다는 점이다.
“저거 왜 저래? 물을 끓이기라도 한 거야?”
“온천수를 담아와서 그래요.”
“온천수를? 그럼 저게 전부 온천수라는 말이야?”
“네. 영국의 유일한 자연 온천수 마을인 바스(bath)에서 공수해온 거예요.”
엘라의 설명에 대한은 절로 입이 딱 벌어졌다.
볼 땐 별거 아닌데 사정을 알고 보니 스케일이 장난이 아니었다.
“설마! 온천수 담아온다고 히릭스를 이용한 것은 아니겠지?”
“히릭스까지 쓸 일이 있나요? 그냥 우주셔틀로 담아왔어요.”
꿀꺽!
히릭스나 우주셔틀이나!
대한에겐 그게 그거였다.
어쨌든 사람이 하려면 보통 일이 아니지만.
엘라에게는 그리 힘든 일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수영장은 1층 말고도 두 군데 더 만들어 뒀어요.”
“수영장이 또 있단 말이야?”
“네, 2층에도 있고 펜트하우스에도 있어요.”
“우와!”
엘라의 설명을 들으며 그는 연신 감탄사를 터트렸다.
2층으로 올라가 보니 넓은 발코니에 야외 수영장이 펼쳐져 있었다.
햇빛을 최대한 즐기려는 의도인지.
파라솔을 비롯해 비치 의자가 줄줄이 늘어서 있는 게 보였다.
“여기서부터는 외부인이 출입할 수 없게 만들어놨어요.”
“그럼 공간 낭비가 심하잖아.”
“굳이 안 될 일도 없잖아요.”
“그야……. 당연하지.”
대한은 엘라의 대답에 바로 태세전환을 하는 순발력을 보였다.
그도 슬슬 남자의 생존본능을 깨달아가고 있는 과정인 모양이다.
한 층씩 올라가면서 엘라의 설명이 이어졌다.
전용 레스토랑, 영화관, 당구장, 볼링장, 바(Bar), 노래방, 사격장, 연무장 등
넓고 큰 저택 안에는 이름 앞에 ‘전용’이라는 단어가 붙은 온갖 편의시설이 가득했다.
이밖에도 그를 위한 세탁소, 주차장, 의무실 등이 있었고, 옥상에는 헬리포트까지 잘 갖춰져 있었다.
“이야! 이거 보는 것도 한세월이네.”
“좀 지루하셨던 모양이네요. 이제 하나 남았어요.”
“혹시 내방?”
“네, 오빠의 펜트하우스에요.”
체스터 포트의 하이라이트!
저택의 꼭대기 층에 해당하는 공간 전체가 대한의 주거시설이다.
지잉!
승강기의 문이 열리자 탁 트인 전경이 한눈에 가득 찼다.
대한타워의 펜트하우스처럼.
이곳 체스터 포트의 펜트하우스도 투명금속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래서 언뜻 잘못 보면 허공에 붕 떠 있는 느낌이 든다.
특히 펜트하우스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수영장의 존재는 압권이었다.
역시 투명금속으로 만들어진 수영장!
그냥 대놓고 허공에 물만 둥둥 떠 있는 느낌을 줬다.
위쪽의 투명한 지붕이 덮이면 실내수영장, 벗겨지면 옥외수영장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건 간이 작은 나 같은 사람은 수영도 못하겠다.”
“설마요.”
엘라는 대한의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였다.
확실히 그는 아닐지 모르지만!
간이 작은 사람은 무서워서 수영을 못할 것 같긴 했다.
대한의 시선이 수영장에서 주변 일대로 옮겨졌다.
발코니로 나와 난간을 잡고 주위를 살폈다.
높은 담으로 둘러싸인 체스터 포트!
시원하게 뚫린 프런트 정원은 싱싱한 잔디로 뒤덮여있었다.
왼쪽에 미니 골프코스, 오른쪽에 간이 축구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저택의 뒤쪽은 온갖 기화요초가 가득한 정원으로 꾸며져 있었는데 우거진 수풀로 이어진 근사한 산책로가 만들어져 있었다.
한쪽에는 테니스 코트와 농구장도 보였다.
“엘라!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네?”
대한의 물음에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봤다.
“나 하나 사는 곳에 왜 이렇게 돈을 많이 들였어?”
“아아! 별거 아니에요.”
엘라는 그의 진의를 파악하고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별거 아니긴. 대충 봐도 체스터 포트에 100명 이상은 상주할 것 같은데.”
“그 정도까진 아니지만, 뭐 그래도 꽤 많은 숫자가 있긴 하죠.”
“아예 외부인은 들이지 않은 건가?”
“네, 오빠와 저를 제외하면 전부 전투로봇과 안드로이드뿐이에요. 그러니까 마음 편하게 지내세요.”
“응, 알았어.”
그 점은 나쁘지 않았다.
외부인이 있다면 아무래도 거동하기가 좀 불편할 것이다.
“나머지는 그냥 간단히 한번 훑어보고 넘어가기로 해요.”
“그러자.”
엘라의 제안에 대한이 반색했다.
그동안 설명한 것 외에도.
초소형 핵융합 발전기, 에너지 보호막, 레이저 대공포 등
여러 비밀시설이 있었다.
하지만 굳이 대한이 직접 가서 볼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간단히 홀로그램을 통해 확인만 하고 끝냈다.
“꺄악!”
풍덩!
그때 엘라의 날카로운 비명이 울렸다.
대한이 그녀를 냅다 수영장에 밀어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혼자 남아서 낄낄대지는 않았다.
그도 뒤이어 옷을 입은 채 수영장으로 뛰어들었다.
풍덩!
그녀는 처음에만 놀랐다.
물속에 빠지자 오히려 금세 정신을 차렸다.
아니 이제는 반격을 노리고 있었다.
엘라는 물속에서 목걸이를 한번 툭 쳤다.
그러자 입고 있던 원피스가 스르륵 줄어들더니 반투명한 비키니수영복이 됐다.
그것도 도저히 안의 내용물을 감당하지 못하고 당장이라도 터질 듯한 기세였다.
그녀의 이런 행동에 대한도 즉각 반응했다.
그는 가볍게 자신의 가슴을 한번 툭 쳤다.
입고 있는 옷이 빠르게 줄어들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옷은 수영복으로 변해버렸다.
그것도 몸에 딱 달라붙는 삼각형이라 남들이 보면 좀 민망한 모습이었다.
대한과 엘라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상대에게 물을 먹이려고 온갖 시도를 다 하고 있었다.
그러나 애초에 그녀는 물속에서 그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결국, 물을 한 모금 먹고야 만 엘라가 급히 물 밖으로 튀어 나왔다.
“꺄악!”
파닥파닥!
싱싱한 인어 한 마리가 풀 안에서 파닥거렸다.
덕분에 대한의 눈이 호강하고 있었다.
반투명한 비키니 자체도 아주 야했다.
하지만 당장이라도 터져서 폭발할 것 같은 위아래로 요동치며 흔들리는 모습은 유혹 그 자체였다.
꿀꺽!
대한은 웃으면서도 침을 삼켰다.
최근에 리나와 류연을 비롯한 여자들과 뜸한 게 아무래도 이것 때문인 것 같았다.
생각이 일자 그의 몸 일부가 바로 반응했다.
그런데 그녀는 또 이걸 귀신처럼 알아차렸다.
컥컥 대면서도 눈은 그를 살짝 흘려보고 있었다.
“크흠.”
대한은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무안한 마음에 헛기침을 했다.
그러자 엘라가 냉큼 다가오더니 그의 품에 폭 안겼다.
물컹!
옷을 입고 있을 때도 그랬지만.
확실히 벗은 상태로 달려드니 그 실한 질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엘라도 그런 사실을 이미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오빠! 제가 체스터 포트에 입주한 기념으로 오늘 한턱낼게요.”
“뭘 한턱 내?”
“뭐겠어요?”
대한의 물음에 그녀는 다시 질문으로 답했다.
그런데 벌써 목소리가 달착지근한 게 기대감을 부풀게 했다.
“혹시 이거?”
“아잉.”
그는 순진한 표정을 지으며 손가락으로 그녀의 가슴을 꾹 눌렀다.
탄력 있는 젤리를 만지는 것 같은!
기분 좋은 감촉이 손가락 끝에 느껴졌다.
엘라는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마구 도리질했다.
물에 젖은 금빛 머리카락이 찰랑대며 연한 물안개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녀의 도톰한 입술에서 나오는 말은 행동과는 전혀 달랐다.
“맞아요.”
“어우야! 이거 너무 기대된다.”
“기대해도 좋아요.”
엘라는 용감했다.
대한은 그녀의 눈을 바라봤다.
뭔가 반드시 해내고 말겠다는 의지에 불타는 저 맑고 고운 두 눈.
호기심과 궁금증이 반죽이 되어 호기심이란 빵으로 승화되었다.
기대감이 만빵으로 부풀자 덩달아 주니어도 부풀어갔다.
마침 그녀가 그의 품에 안겨 왔다.
매끄럽고 고운 살결의 말캉거림에 절로 몸이 진저리쳤다.
“우리 들어가요.”
“응.”
굳이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대한은 엘라의 풍만한 몸을 번쩍 들더니 수영장을 빠져나갔다.
촤르르!
두 사람의 몸에서 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들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안방 침실로 들어갔다.
쿵!
들어가자마자 문이 닫혔다.
그리고 안에서 쉬지 않고 거친 사랑의 숨소리가 나와 펜트하우스를 달궜다.
오후에 시작된 대한과 엘라의 사랑!
밤하늘에 달이 휘영청 비출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 * *
일본 효고현 고베(神戶).
고베시는 일본에서 6번째로 큰 도시다.
인구 150만 명의 이 도시는 일본을 대표하는 항만도시이기도 하다.
저벅저벅!
늦은 밤.
번화가에 붙은 유흥가 뒷골목.
긴 버버리를 입은 사내가 걸어가고 있다.
건장한 체격을 가진 그의 눈빛이 유난히 서늘하기만 했다.
뒤쪽으로 일행인 듯한 탄탄한 체구의 사내 네 명이 뒤따랐다.
“멈춰라!”
그때 초로의 남자가 골목에서 튀어나오며 거만하게 소리쳤다.
“여긴 아무나 출입할 수 없는 곳이다. 돌아가라!”
버버리 사내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어두운 뒷골목을 비추는 한줄기 조명!
그의 얼굴에 비추며 정체가 드러났다.
사내는 바로 아키라였다.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아키라는 초로의 사내에게 말했다.
“가고 오고는 내가 판단한다. 들어가서 다나카나 불러!”
“어디서 오셨소?”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초로의 사내는 바로 표정을 굳혔다.
하지만 아키라는 그를 바라보지 않았다.
뒤쪽에 있는 어두운 골목길 안을 뚫어보듯 바라보고 있었다.
“볼일이 있어서 왔다. 좋게 말할 때 다나카 데려와라.”
“흥, 우리가 누군지 알고 하는 소리요?”
“야마구치구미에서 갈라져 나온 고베야마구치구미의 하부조직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은 건가?”
“음.”
아키라가 자신의 정체를 이미 꿰뚫어 보고 있자 초로의 사내는 작게 신음을 흘렸다.
그는 고개를 슬쩍 들어 위쪽을 한번 바라봤다.
그러자 골목을 감시하던 눈길이 바로 사라졌다.
동시에 어두운 양쪽 골목에서 손에 회칼과 야구방망이를 든 자들이 줄줄이 걸어 나왔다.
대충 눈으로 어림짐작을 해봐도 스물은 넘는 숫자였다.
“역시 예상대로 말로 해선 안 되는 놈들이군.”
“쳐라!”
아키라의 말이 채 끝나기 전.
초로의 사내는 바로 공격을 명했다.
시비를 건 자들의 숫자가 몇 안 되는 것을 이미 파악한 뒤였다.
그는 승리를 확신하며 자신 있게 전투를 선택했다.
하지만 자신의 이런 무모한 결정이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 그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야아!”
“와아아!”
친피라(チンピラ: 찐삐라)들이 일제히 소리를 지르며 달려왔다.
야쿠자도 아닌, 야쿠자 밑에서 시다바리를 하는 양아치, 똘마니들!
자신의 몸이 무슨 도화지라고 생각을 하는 듯.
온몸에 더러운 문신이 가득했다.
하지만 문신을 했다고 양아치가 건달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친피라가 문신했다고 야쿠자가 되는 것도 아니었다.
투다닥 퍼버벅! 퍽퍽퍽!
아키라를 중심으로 순식간에 난전이 벌어졌다.
그런데 친피라를 상대하는 것은 아키라가 아니었다.
그와 같이 와 뒤에서 서 있던 건장한 사내들!
이들은 굳이 아키라가 명령하지 않아도, 알아서 앞으로 나서며 친피라들을 개 박살 냈다.
그렇다. 그냥 박살이 아니라 개 박살을 내버렸다.
“으악!”
“아악!”
“끄악!”
사내들의 손길은 무시무시했다.
친피라들의 팔다리가 절대 꺾이면 안 되는 방향으로 무참히 꺾였다.
야구방망이를 든 자들은 팔다리가 부러지고 박살이 났다.
회칼을 든 자들은 어디서 튀어나온 지 모를 날카로운 대검에 팔다리의 인대가 잘리고 끊어졌다.
심지어는 아킬레스건이 끊겨 죽는다고 고래고래 비명을 지르는 자도 있었다.
“멈춰라!”
그때 2층 난간에서 누군가 밖으로 나오더니 소리를 질렀다.
어깨에 문신을 드러낸 모습을 보니 야쿠자가 분명했다.
그런데 놈의 손에는 권총이 들려있었다.
하지만 아키라는 고개를 살짝 좌우로 저었다.
자신이 찾고 있는 이 조직의 수장인 다나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쿠소(糞, くそ)! 당장 멈추라는 말 안 들려?”
놈은 화가 난 듯 권총을 들더니 아키라를 겨냥했다.
그 순간, 장내의 분위기가 돌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