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만재능(Feat. 대한 TV)-304화 (302/331)

304화 <맨체스터 시티>

“그런데 에바는 이렇게 계속 따라다닐 거야?”

“당연하죠. 제가 마스터를 안 모시면 누가 모십니까?”

그의 물음에 에바는 당연한 게 아니냐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대한은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잠시 침묵했다.

하지만 그때를 놓치지 않고 엘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혹시 에바가 옆에 붙어 있으면 일을 제대로 못 할까 봐 그러시죠?”

“응, 뭐 그런 점도 있고.”

그의 대답에 엘라는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잊었어요. 에바는 슈퍼 인공지능과 시스템이 결합한 에듀케이션 모듈이라는 것을?”

“그건 처음이나 그랬지.”

“맞아요. 지금은 히릭스의 메인 슈퍼컴을 흡수해서 더욱 업그레이드됐죠. 그렇다면 지금 눈앞에 보고 있는 에바는 뭘까요?”

“안드로이드?”

“정답이에요. 에바는 이런 안드로이드를 동시에 수천 대나 움직일 수 있어요. 물론 제 통제하에 말이죠.”

“아!”

그제야 엘라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해했다.

아니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의 맹점을 파악할 수 있었다.

“에바가 옆에 있다고 일을 안 하는 게 아니구나.”

“네, 에바와 똑같이 생긴 안드로이드가 지금 코레그룹 본사에서 홍보이사로 일하고 있어요. 또한, 히릭스를 비롯해 태양계에 만들어지고 있는 콜로니를 관리하고 있어요.”

대한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100% 이해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자신이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에바가 일을 많이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물론 그것은 반만 맞고 반은 틀린 생각이었다.

엘라가 맨 위에서 에바를 통제한다.

에바를 통해 슈퍼 인공지능과 시스템 모듈을 조율한다.

슈퍼 인공지능과 시스템은 각자 맡은 프로그램을 잘 처리한다.

로봇과 안드로이드는 내려온 명령에 맞게 열심히 일한다.

이게 정답이었다.

어쨌든, 엘라와 에바 덕분에 대한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래도 우주탐사선 히릭스와 태양계의 콜로니는 물론.

코레그룹을 잘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오빠!”

엘라가 대한을 불렀다.

그런데 그녀의 목소리에서 묘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뭔가 필요한 게 있거나!

부탁할 때 나오는 코맹맹이 소리였다.

“응?”

“저, 부탁할 게 있어요.”

역시 예상대로 엘라는 대한에게 원하는 게 있었다.

“뭔데?”

“제가 오빠의 주변을 정리했으면 좋겠어요.”

“내 주변을 정리하다니?”

대한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녀가 무슨 뜻으로 저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모니카, 고리나, 류연, 하이스, 나나, 한새롬!”

“아!”

그제야 그는 엘라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감을 잡았다.

“여자들이 신경 쓰여서 그래?”

“전혀 아니라고는 말 못 하겠네요.”

여자에겐 참 예민한 문제라서 대한도 함부로 뭐라고 얘기를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일단 공을 그녀에게 넘기기로 했다.

“내가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어.”

“아무것도 하지 말아주세요.”

“그게 무슨 말이야?”

“제가 직접 교통정리를 하고 싶어요.”

교통정리라는 말에 대한은 속으로 뜨끔했다.

그런데 엘라가 말한 교통정리의 의미는 그가 우려하는 것과는 좀 달랐다.

“마음 같아서야 전부 정리해버리고 싶지만, 그래도 앞으로 이룩할 오빠의 가문을 생각해서 알곡과 쭉정이는 골라야겠어요.”

“알곡과 쭉정이?”

“네.”

대한은 목이 타는 느낌에 컵에 물을 따라 마셨다.

여기서 삐끗하면 그는 평생 잡혀 살 수 있다.

그렇다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고집을 부릴 수도 없었다.

“좀 더 알기 쉽게 얘기해주면 안 될까? 뭐가 알곡이고 뭐가 쭉정이야?”

“간단해요. 오빠와 관련된 여자들을 모두 테스트해보면 돼요.”

“무슨 테스트?”

“가상현실을 통해 그녀들의 진심을 파악하는 거죠.”

“설마 거기서 나에 대한 사랑을 시험하겠다는 거야?”

“네, 오빠의 진정한 정체를 밝히고 그래도 같이 하겠다면 받아줄 거예요.”

“만약 싫다고 하거나 거절하면?”

“당연히 기억을 지우고 남은 잔상은 꿈으로 처리할 거예요.”

정말 기가 막힌 방법이었다.

대한은 자신도 모르게 슬쩍 미소를 지었다.

이건 솔직히 무조건 ‘고(go)’ 해야 한다.

앞으로 있을지도 모를, 아니 반드시 있게 될!

여자들의 시기와 질투를 미리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엘라가 이렇게 위계질서를 잡는 게 좋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나중에 골치 아플 사람은 바로 대한이다.

그래도 한 가지 걱정이 계속 남았다.

“음, 그러다가 전부 다 떠나면 어떡하지?”

“어휴! 진짜. 오빠는 욕심쟁이예요. 나 하나로 만족 못 하겠어요?”

“무슨 소리야? 나한테 엘라면 감지덕지하지. 다만 그동안 든 정이 있는데……. 단칼에 쳐내는 건 좀 안타까워서 그렇지.”

“흥, 말이라도 못하면 밉지나 않지.”

엘라는 팔짱을 끼면서 토라진 듯 몸을 옆으로 돌렸다.

대한은 슬쩍 그녀에게 다가가 꼭 안아줬다.

“엘라가 최고라는 것은 절대 변함이 없을 거야.”

“그 약속 반드시 지켜야 해요.”

“물론이지.”

그는 진심을 담아 대답했다.

솔직히 엘라가 여자들을 다스리는 게 대한에겐 아주 이로운 일이었다.

직접 위계질서를 잡으려고 든다면 예상치 못한 암초에 부딪힐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복잡하고 피곤한 작업을 그녀는 자기가 알아서 미리 해결하려고 들었다.

그러니 어찌 예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이스 때문에 충격을 좀 받으셨나 보네요.”

“나도 전혀 아니라고는 말 못 하겠다.”

엘라가 하이스를 언급하자 대한의 안색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하지만 떠나가는 하이스를 붙잡지 못했다.

그녀의 결정을 존중한 점도 있지만 자신에게 일언반구도 없이 먼저 다른 남자를 사귀었다는 사실을 용납할 수 없었다.

물론 아직 어린 하이스라서 호기심도 많고 유혹에 약했다.

대한이 단단히 잘 붙잡아줬다면!

아마 그녀도 쉽게 한눈을 팔지 않았을 것이다.

“하이스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아요?”

“전혀.”

엘라는 그의 대답을 듣고도 알 수 없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하이스가 좋다고 만났던 남자는 사실 바람둥이였어요.”

“듣고 싶지 않다니까 그러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대한의 귀는 이미 쫑긋거리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둘은 크게 싸우고 헤어졌어요. 몇 번이나 대한에게 돌아오고 싶다며 에바에게 연락을 해왔어요.”

“음.”

그는 무겁게 신음을 흘렸다.

그러나 살짝 입꼬리가 위로 올라가는 것까지는 막지 못했다.

그걸 보면서도 엘라는 계속 말을 이었다.

“하지만 한번 배반한 여자는 두 번, 세 번 배반할 수 있어요. 그래서 정중하게 거절했어요. 물론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오빠가 하이스의 이름조차 듣고 싶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겠죠.”

“지금은?”

“뉴욕에서 활약하는 꽤 유명한 사진작가와 만나고 있어요.”

“헐!”

결론은 다른 남자와 사귄다는 것이었다.

괜히 좋다가 말았다.

엘라는 그 누구보다 대한의 이런 심리상태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었다.

“자! 떠난 여자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앞으로 같이 지낼 여자들에게 좀 더 관심을 두는 게 좋겠어요.”

“그, 그래.”

냉정하게 잘라 말하는 그녀의 태도에 대한은 급히 표정 관리에 들어갔다.

물론 이미 엘라에게 다 들켜버린 이후긴 하지만.

“그동안의 행동과 언행, 행적과 성격을 통해 유추해본 결과! 모니카가 통과할 가능성이 제일 커요.”

“모니카는 이미 다 알고 있으니까 그런 거 아니야?”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럼 누가 제일 위험하지?”

“아무래도 보수적인 분위기가 강한 나라에서 사는 한새롬이 아닐까 생각돼요.”

“아! 그렇구나.”

사실 대한도 의문이었다.

한새롬은 이미 리나와 류연과의 관계를 눈치채고 있었다.

그런데도 헤어지자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참 이상했다.

“리나와 류연은 어때?”

“반반이에요.”

“으음.”

이건 좀 심각했다.

솔직히 리나와 류연을 잃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나나는 리나와 류연보다 가능성이 커요.”

“프랑스와 일본의 피가 흘러서 그런가?”

“나나는 꽤 독특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어요.”

“독특한 사고방식?”

“자유분방하면서도 아주 순종적이죠.”

“그건 그래.”

대한은 말을 하면서도 솔직히 좀 어색했다.

에바와 얘기할 때는 안드로이드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별로 부담스럽지 않았다.

그런데 엘라와 이렇게 자신의 여자 얘기를 나누니까 좀 민망스러웠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대한보다는 그녀가 훨씬 더 적극적인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건 전부 예상일뿐이에요. 가상현실을 통해 직접 테스트를 해보면 또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몰라요.”

“그렇겠지.”

“그럼 허락하신 줄 알고 즉시 테스트를 진행할게요.”

“당장 하겠다고?”

“왜요?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

뾰로통한 엘라의 반응에 대한은 ‘앗 뜨거워라!’하고 놀랐다.

“아아니! 전혀어어!”

“허락한 거죠?”

“물론이지.”

그녀는 굳이 두 번씩이나 물어보면서 확실히 허락을 구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엘라가 이렇게 나오니 그는 후환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다 떠나면 어떡하지. 아! 옛날이여!’

대한은 자꾸 불길한 생각이 떠오르는 것을 막지 못했다.

하지만 엘라는 의미심장한 미소만 지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무척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그렇게 그는 화려한 여성 편력에 종지부를 찍는 결단을 내리고야 말았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간에 지금과는 판이한 상황이 될 것을 의심치 않았다.

그러는 가운데에서도 전용기는 부지런히 영국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 * *

영국 맨체스터(Manchester).

맨체스터는 노스웨스트잉글랜드(North West England)의 도시다.

리버풀 동북쪽 약 50km 지점.

머지 강의 지류인 어웰 강과 아크 강의 합류점에 있다.

50만 명이 사는 도시를 가르며 흐르는 리버 어웰.

그 옆으로 운하, 캐주얼한 강변 바, 녹지 공간이 많아 산책하기 좋은 ‘캐슬필드(Castlefiled)’가 펼쳐져 있었다.

캐슬필드 한쪽에 수풀이 우거진 넓은 대지.

중앙에 웅장한 성(castle)을 연상시키는 신축 건물이 우뚝 선 게 보인다.

높은 담으로 둘러싸인 이곳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 살고 있을까?

‘체스터 포트(Chester Port)’라는 독특한 이름을 가진 건물의 정문은 마치 성문을 방불케 했다.

첨탑처럼 생긴 옥상 꼭대기에서 바라보면.

복원된 2,000년 전의 로마 요새가 한눈에 들어왔다.

성벽, 수문, 고대 정원, 발굴터 등

서기 79년에 건설된 이 ‘마무시움(Mamucium)’에서 맨체스터라는 이름이 유래됐다.

410년에 로마인들이 요새를 버리고 떠난 후 황폐해진 구조물을 ‘들판에 있는 궁전’이라는 뜻인 ‘캐슬 인 더 필드(The Castle in the Field)’라고 불렀다.

줄여서 말하면 바로 ‘캐슬필드’가 된다.

부웅 부우웅 부우우웅!

세 대의 방탄차가 캐슬필드를 가로질러 체스터 포트를 향하고 있다.

요새의 성문 같은 체스터 포트의 정문이 그들을 향해 활짝 열렸다.

하지만 방탄차가 줄줄이 통과하자마자.

언제 열렸냐는 듯, 정문은 금세 닫히고 말았다.

끼익 끼익 끼이익!

체스터 포트 저택 현관에 방탄차가 줄줄이 멈춰 섰다.

정장을 입은 건장한 사내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주변을 경계했다.

그들의 손에는 소총과 기관단총이 들려있었다.

소화기(小火器)로 무장한 경호원들의 삼엄한 경비 사이로.

메이드 복장을 한 아름다운 여자들이 두 줄로 늘어섰다.

덜컹!

그중에 한 명이 조심스럽게 두 번째 차의 뒷문을 열었다.

안에서 선글라스를 쓴 사내 한 명이 나왔다.

뒤이어 역시 선글라스를 쓴 금발의 미녀도 차에서 내렸다.

“여기가 체스터 포트야?”

“네, 체스터 포트에 오신 마스터를 환영합니다.”

엘라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두 줄로 늘어선 메이드들이 일제히 대한을 향해 같이 고개를 숙였다.

“체스터 포트에 오신 마스터를 환영합니다.”

대한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거 의전이 너무 과한 거 아니야?”

“전혀요. 가진 것에 비하면 참 소소하다고 봅니다.”

그의 말에도 불구하고 엘라는 이게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래도 저건 좀 너무했다.”

대한이 소총과 기관단총으로 중무장한 경호원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저 대내외적인 과시일 뿐이에요. 들어오면 총 맞을 각오 정도는 하라는 거죠.”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없죠. 하지만 재미있잖아요.”

엘라의 대답이 참 의외였다.

재미있어서 이런 일을 계획하다니.

물론 100% 진심을 아닐 것이다.

“아시다시피 이들은 모두 전투로봇과 안드로이드예요. 다들 몸에 소총보다 더한 무기들을 하나둘씩 감추고 있죠. 그래도 우리를 감시하는 놈들에게 우리도 무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어요.”

“소총과 기관단총은 어지간하면 다들 쉽게 구할 수 있는 무기 아냐?”

“그렇죠. 아니면 말고요.”

하긴 굳이 상대가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했다.

“들어가시죠.”

“응.”

엘라가 다가와 그의 팔에 팔짱을 꼈다.

깊은 가슴골에 들어간 팔!

부드럽고 탄력 있는 기분 좋은 압력이 느껴졌다.

대한은 그녀와 함께 체스터 포트 안으로 들어갔다.

거대한 현관이 그를 맞이하기 위해 활짝 열려있었다.

1층은 마치 3층을 뻥 뚫어놓은 것 같이 높았다.

천정을 보니 크고 화려한 샹들리에가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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