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만재능(Feat. 대한 TV)-301화 (299/331)

301화 <쫓기는 자와 쫓는 자>

변장을 한 채, 당당히 신치토세 공항을 통해 홋카이도를 탈출할 때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어떻게 알았는지 도쿄 나리타 공항에 경시청에서 급파한 경찰들이 아키라를 기다리고 있었다.

순간적인 기지로 공항직원들이 드나드는 통로를 이용해 빠져나가지 못했다면.

아마 그는 경찰에게 붙들려, 지금쯤 테러범의 죄목을 몽땅 뒤집어썼을 것이다.

아키라는 서둘러 산자락을 타고 걸어갔다.

후지산에 오르기 전.

남의 집에 들어가서 훔친 등산복과 등산화가 아니었다면.

아마 이렇게 대담하게 산을 오를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미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사흘 동안 거의 한숨도 잠을 자지 못하고 도망만 다녔다.

몇 번이나 변장하고 위장을 해보았지만 그때마다 이상하게 경찰에게 걸려버리고 말았다.

마치 누군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신고라도 하는 것만 같았다.

그래도 지금 TV에서 나오는 것처럼 진짜 테러범으로 몰려 인생을 종칠 수는 없었다.

다행히 후지산은 육상자위대 특수작전군 시절에 수도 없이 오르내리던 곳이다.

아마 그 누구도 자신이 후지산을 가로질러 서쪽의 나고야시로 갈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할 것이다.

저벅저벅!

후지산 남동쪽 고텐바시에서 시작된 추격전!

점차 규모가 커지더니 이제는 경찰뿐만 아니라 육상자위대까지 동원됐다.

작전지역도 후지산 일부에서 전체로 확대됐다.

경찰과 육상자위대가 개미 떼처럼 새까맣게 몰려 후지산을 이 잡듯이 수색했다.

하지만 이미 후지산을 가로질러 서쪽으로 빠져나간 아키라를 잡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추격은 멈추지 않고 계속됐다.

푸타타타타타! 푸타타타타타!

어느새 하늘엔 수십 대의 헬기들이 돌아다녔다.

육상자위대에선 특수작전군 최정예 대원들까지 투입했다.

거기에다 특수작전군의 교관 중 추격의 전문가가 나섰다.

그러자 아키라의 미세한 흔적이 발각당해 행적이 노출됐다.

그때부터 그에겐 다시 지옥이 시작됐다.

그나마 미리 토굴에서 쪽잠이라도 자뒀던 게 불행 중 다행이었다.

타타탕! 타타타탕!

“저깄다.”

총소리와 함께 특수작전군 대원들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아키라는 자신의 주위에 쏟아지는 총탄에 기겁을 했다.

이미 놈들은 자신을 살려둘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그걸 깨닫자 더욱 살아야겠다는 생존본능이 솟구쳐올랐다.

급히 몸을 바짝 숙이고 우거진 수풀로 미친 듯이 뛰어 들어갔다.

‘내가 여기 있는 것은 또 어떻게 알았지?’

그는 강한 의문이 일었다.

후지산을 가로질러 나고야시와 중간쯤에 있는 데카리(光岳)산까지 넘어왔다.

그런데 이들은 어떻게 알았는지 정확히 자신이 있는 곳을 찾아왔다.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아키라는 어쩔 수 없이 더욱 험준하고 깊은 계곡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그에 비례해 이루 말할 수 없이 피곤하고 힘이 들었다.

그의 모습은 이미 거지꼴이 다 되어있었다.

그래도 당장은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아키라에겐 무엇보다 무사히 도망치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사삭 사사삭!

탕 탕 타타탕 타타탕!

그는 노루처럼 재빠르게 산비탈을 타고 내려갔다.

간간이 총성이 들리고 빗발치듯 총알이 쏟아졌다.

하지만 정확히 목표를 겨냥하고 쏘는 게 아니었다.

그저 한쪽으로 몰아가며 위협하는 것에 불과했다.

“허억 허억 허억!”

그는 서서히 달리는 것을 멈췄다.

숨이 가빠도 너무 가빴다.

물이야 샘을 찾아 수통에 채워가면서 보충했다.

하지만 산속이라 먹을 것이 부족했다.

그래서 닥치는 대로 산딸기와 버섯을 비롯해.

먹을 수 있는 것은 다 입에 집어넣고 씹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낙 열량을 많이 소모하는 산속이라 항상 배가 고팠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뭔가 특단의 대책이 필요해.’

아키라는 결단을 내렸다.

도망치는 것보다 숨는 게 좋을 것 같다는 판단이 선 것이다.

다행히 저들은 군견을 데려오지 않았다.

그래서 일말의 희망을 거기에 걸었다.

그는 특수작전군 훈련 때 수도 없이 만들어본 비트를 몇 개 팠다.

당연히 사방으로 자신의 흔적을 남겨서 혼란을 유도했다.

그리고는 전혀 엉뚱한 나무 밑에 비트를 파고 들어가 숨었다.

나뭇잎을 모아 깔고 그 위에 누워 수건으로 얼굴까지 완벽하게 덮었다.

그러자 너무 피곤했던지 바로 잠이 들어버렸다.

‘아! 자면 안 되는데.’

아키라는 자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세상에서 제일 무겁다는 눈꺼풀에 그만 짓눌리고 말았다.

수마는 거미줄처럼 자신을 묶고 깊은 잠의 늪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헉!’

어느 순간!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잠에서 깨어났다.

몇 시간이나 잤을까?

아니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얼굴을 덮은 수건을 치웠다.

그러자 차가운 바깥의 공기가 폐부를 시원하게 만들었다.

아키라는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그러다가 덜컥하고 몸의 움직임을 딱 멈췄다.

쿨쿨!

세상에!

자신이 만든 비트 바로 앞에서 누군가 잠을 자고 있었다.

그는 정신을 집중해 밖의 상황을 알아내려고 노력했다.

특히 소리에 온 신경을 기울였다.

그러자 어렴풋이 밖의 상황이 느껴졌다.

바로 앞에 한 명.

4, 5미터쯤, 적당히 떨어진 곳에 최소한 한 명 이상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 밖의 상황을 알아내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했다.

‘둘, 아니면 셋이다.’

아키라는 그 정도면 한번 모험을 걸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조용히 비트를 나와 살펴봤다.

바로 앞에 침낭을 깔고 자는 육상자위대 특수작전군 대원이 보였다.

건너편에는 경계를 서는 놈이 있었는데 경계는 고사하고 나무에 기대 정신없이 잠을 자고 있었다.

예로부터 전쟁에 지는 자는 용납해도 경계에 실패한 자는 용서 없이 참형으로 다스린다고 했다.

‘쯧쯧!’

아키라는 그 모습에 속으로 혀를 찼다.

하지만 그래도 그에겐 참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일단 바로 앞에서 자는 녀석의 소총을 챙겼다.

그런 후, 경계 대신 잠에 빠진 녀석을 향해 조용히 다가갔다.

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개머리판으로 뒤통수를 세게 후려쳤다.

퍽!

잠을 자던 녀석은 그대로 정신을 잃고 기절하고 말았다.

잠에서 기절로 옮겨간 것이니 그렇게 불행하다고는 볼 수 없었다.

문제는 그 소리에 깨어난 침낭의 대원이 어느새 권총을 꺼내 들었다는 점이다.

“넌 누구냐?”

“쉿! 조용히 해! 그리고 벌집 되고 싶지 않으면 당장 권총 내려놔!”

아키라가 억눌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제야 어둠 속의 불청객이 자신들이 쫓고 있는 테러범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테, 테러범이구나.”

“후후후! 누가 그래? 네 상관이 그래?”

아키라는 기가 막혀 실소를 터트렸다.

그의 말에 앳된 얼굴을 한 대원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자수해라! 그럼 정상참작이 될 거야.”

하지만 아키라는 코웃음을 쳤다.

“너 이름이 뭐야?”

“니카이다. 헉!”

육상자위대 특수작전군 육사장(陸士長: 상등병) 니카이!

그는 아무 생각도 없이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는 사실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만큼 놀라고 두렵고 패닉 상태에 빠졌다는 방증이었다.

“나도 육상자위대 특수작전군 출신이다. 일등육조(1等陸曹: 상사)로 전역했지.”

“에에?”

니카이는 아키라의 말에 깜짝 놀랐다.

“그동안 정부가 원하는 작전에 수도 없이 동원됐지. 전역하고 나서도 온 힘을 다해 일했어. 그런데 이렇게 쓸모가 없어지니 바로 테러범이라고 몰아서 제거하려고 드네.”

“서, 설마.”

“설마가 아니야. 내 이름은 아키라다. 나중에 조사해보면 내 말이 전부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될 거야.”

꿀꺽!

니카이는 아키라의 말에 점차 빠져들었다.

“정말 장생회의 건물을 폭파하지 않았단 말이냐?”

“그렇다.”

“사린 가스를 유출하지도 않았고?”

“내가 왜 그런 짓을 해야 하는데? 나한테는 그럴만한 동기가 없잖아. 가족들과 잘 먹고 잘살고 있는데 내가 미쳤다고 총리관저에 가서 사린 가스를 뿌리는 놈에게 그걸 주겠어?”

“으음.”

아키라의 말을 듣자 니카이의 손에 절로 힘이 빠져나갔다.

“일단 선배한테 총구를 들이대는 것은 좋지 못해.”

“아!”

니카이는 급히 권총에 힘을 줬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웃는 아키라의 손에 들린 것을 보자.

자신도 모르게 손을 아래로 내리고 말았다.

소총 앞에 권총을 들이미는 행동은…….

아무래도 생각해도 좀 무리였다.

“배가 고파서 그러니까 전투식량 좀 먹자.”

“에휴!”

니카이는 아키라의 말에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손은 배낭에서 전투식량을 꺼내 그에게 던지고 있었다.

“상큐!”

아키라는 한 손으로 능숙하게 전투식량의 포장을 벗겨냈다.

메뉴는 삼각김밥이었다.

“우와! 삼각김밥이잖아!”

그는 감탄사를 터트리더니 정신없이 삼각김밥을 먹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음식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천상의 꿀맛이나 다름 없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니카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봐도 아키라가 테러범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 노리는 어떻게 한 거야? 아니 한 거예요?”

“경계를 서야 하는 놈이 잠을 자고 있길래 잠시 기절시켜뒀어. 죽은 것은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마.”

“어휴!”

니카이는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노리에게 잠들면 안 된다고 충고했는데.

결국, 수마에 못 이겨 이런 사달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밥만 먹고 갈 테니까 아침이 될 때까지 조용히 있어.”

“그럴 순 없습니다.”

“안 그러면? 소총을 들고 있는 나와 총격전이라도 벌일 거냐?”

아키라는 대놓고 비웃듯이 말했다.

같은 소총이라면 모를까!

권총을 가진 상대라면 단숨에 절명을 시킬 자신이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그는 쉬지 않고 삼각김밥을 먹는 놀라운 기술을 선보였다.

“소총을 잃어버리면 난 끝이에요.”

“걱정하지마! 소총은 두고 갈 거야. 대신 저놈의 권총은 내가 가져갈게. 몰래 사비로 채워 넣으면 아마 아마도 모를 거야. 그래도 들키면 할 수 없지. 경계에 소홀한 벌이라고 생각해야지 뭐. 어때 이 정도면 공평하지?”

“어휴! 알겠어요.”

니카이는 아키라의 제안을 차마 거부하지 못했다.

도저히 그와 총격전을 벌여서 이길 자신이 없었다.

무엇보다 둘이 잠이 든 사이!

그가 다가와 죽이지 않았다는 사실에 고마움을 느꼈다.

정말 테러범이었다면 자신과 노리는 아마 이미 죽은 목숨이었을 것이다.

“주변은 이미 포위됐는데 어떻게 빠져나가시려고요.”

“이제 좀 여유가 생긴 모양이네. 내 걱정도 다 해주고.”

“그, 그건.”

니카이는 크게 당황했다.

아키라의 말을 듣고 보니 그를 쫓아야 하는 처지에서 할 소리가 아니었다.

“너무 걱정하지마. 이 정도는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그리고 어지간하면 자위대 그만두고 다른 일 찾아라.”

“아!”

안 그래도 니카이는 요새 그것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몸이 건장해서 육상자위대 특수작전군에 뽑히긴 했지만.

전혀 만족스러운 생활은 아니었다.

사실 나라와 민족을 위한 명예스러운 군인의 삶을 기대했다.

하지만 자위대는 군대라기보다는 그냥 직장생활에 가까웠다.

출근하고 퇴근하고, 출근하고 퇴근하고.

아무런 만족감도 없고 성취감도 느끼지 못했다.

그저 무기력하게 나라에서 주는 월급에 목을 매는 세금 도둑이 된 기분이었다.

“니카이! 무운을 빈다. 건강해라!”

“센빠이(선배)도 조심하십시오.”

“응, 그래.”

아키라는 니카이에게 손을 흔들었다.

바닥에 니카이의 소총을 내려놓고 뒤로 물러났다.

그러면서도 기절한 노리에게 다가가 권총과 탄창을 챙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더불어 노리의 배낭을 가득 채우고 있는…….

초콜릿과 비스킷 그리고 전투식량을 알뜰하게 긁어갔다.

아키라는 마지막으로 니카이를 한번 쳐다보고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니카이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자신의 소총을 향해 다가갔다.

이걸 잊어버린다면 아마 크게 문책을 받을 것이다.

아니 군사재판에 회부될 지도 모른다.

군대가 아닌 자위대에 군사재판이 통용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소총을 챙기고 노리를 흔들어 깨웠다.

하지만 노리는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

기절한 상태라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니카이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대신 아키라가 다녀간 흔적을 지우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침낭 안으로 들어가 잠을 챙겼다.

테러범, 아니 적이라고 생각한 자가 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는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니카이는 속으로 다짐했다.

‘이놈의 자위대, 당장 때려치워야겠다.’

결혼을 위해서도 이게 최선이다.

일본 여자들은 자위대 다니는 남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어쨌든 그렇게 마음먹으니 기분이 훨씬 나아졌다.

몇 번 심호흡하고 나자 니카이는 스르르 잠이 들었다.

물론 아침이 되어 난리를 피우는 노리 때문에 푹 자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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