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9화 <잇단 참사>
―소식은 들었는가?
“네? 무슨 소식 말씀입니까?”
―모르고 있었군. 방금 장생회의 본당 건물이 무너졌어.
“예에?”
아키라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그러나 자신의 목소리가 너무 컸다는 것을 깨닫자 급히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놀라서.”
―괜찮네. 나도 소식을 듣자마자 자네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어.
“혹시 다친 사람이 있습니까?”
―응. 이토 교주와 나카가와 총무가 그 자리에서 즉사했어. 장생회 본당 건물에서 중요한 회의가 있었다더군.
“아!”
아키라의 얼굴이 하얗게 탈색됐다.
그의 탄식은 100%의 진심을 담고 있었다.
몇 분 전, 나카가와 총무가 자신에게 새집을 구해주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런데 이제 그게 훨훨 날아가 버렸으니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실망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말이야. 오늘 교통사고가 나서 죽은 쇼타 군이나 나카가와 총무나 모두 자네와 만나거나 연락한 후에 사고를 당했다는 거야.
“네에? 그, 그건 오해십니다. 정말 저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입니다.”
―그건 두고 보면 알겠지.
꿀꺽!
무시무시한 소리였다.
아키라는 이대로 자신이 버려지는 게 아닐까 걱정됐다.
하지만 그렇다고 직접 대놓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아무것도 하지 마. 그냥 조용히 있어. 쥐죽은 듯이 말이야.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 길로 삿포로에 가서 조용히 살겠습니다.”
―그래 준다면야 고맙지. 필요한 것이 있으면 뭐든 좋으니 이메일로 요청하게.
“하이!”
아키라는 전화를 끊고 나서 한참 동안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사람들이 무수하게 그를 스치고 지나쳤지만.
아예 인식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길게 한숨을 쉬며 깨어났다.
‘도대체 넌 누구냐? 누군데 이런 짓을 벌이는 거야?’
아키라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어댔다.
전기나 도시가스, 수도를 끊어버리는 정도는 자신도 할 수 있다.
교통사고를 빙자해 적을 암살하고 제거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건물을 무너뜨려 사람을 몰살시키는 건 차원이 달랐다.
그는 이런 무식한 방법을 써서 암살한다는 것은 듣도 보도 못했다.
다이너마이트나 무인 공격기에서 미사일을 날린다면 또 모를까!
이건 상당한 조직력과 자금을 가지고 있는 단체에서 벌인 일이다.
그것도 혼자가 아닌 여럿이 한꺼번에 움직여야만 가능했다.
그런데 나카가와 상은 만나지도 않고 그저 전화통화만 했을 뿐이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아키라는 몸에 소름이 돋았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존재가 자신을 서서히 옥죄어 오는 게 느껴졌다.
“아! 모모에!”
그러다 아내가 생각났다.
갑자기 비명을 지르고 전화가 끊긴 아내의 절규가 아직도 귓전에 생생하게 맴도는 듯했다.
“쥰페이! 하루코!”
아이들도 생각났다.
그는 도저히 멍하니 서 있을 수 없었다.
계속 터지는 사고들!
이젠 그저 바라만 보고 있지 않을 생각이다.
무엇보다 사고 여부는 물론이고.
생사조차 불분명한 가족의 안부 때문에 조바심이 생겼다.
“안 돼! 아내와 아이들만은 안 돼! 제발 그러지 마!”
아키라는 허공에 대고 강하게 소리쳤다.
길을 걷는 사람들이 그런 그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아키라는 그러거나 말거나,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큰길로 나가 택시를 잡고 바로 공항으로 향했다.
홋카이도 삿포로행 비행기를 타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머릿속은 팽팽 돌았다.
‘혹시 이게 내가 반도에서 벌인 일 때문에 생긴 거라면? 앞으로 나와 관계된 자들이 결코 좋은 꼴을 보지는 못할 거야. 그게 설사 자민당 간사장인 사카모토(坂本) 군이라고 해도 말이야.’
그는 자신도 모르게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어느새 뒤에 붙이는 ‘사마(様)’는 떼버린 지 오래였다.
오히려 아랫사람을 부를 때 쓰는 군이라는 호칭까지 집어넣었다.
놈이 자신을 토사구팽할 의사를 드러낸 이상.
아키라의 충성대상에서 그의 이름은 이미 지워져 있었다.
‘반도의 일에 관련된 자와 단체가 어디 어디지?’
막상 따지고 보니 의외로 연결된 곳이 많았다.
‘직접 사주를 한 일본회의는 빠질 수 없을 거야. 자금을 댄 장생회는 이미 피를 봤고, 측면지원을 한 넷토우요쿠와 재특회의 간부들도 무사하지는 못할 것이다. 설마 정보를 제공한 내각정보조사실과 장비를 지원한 육상자위대 특수작전군까지 해를 입는 것은 아니겠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나리타 공항에 도착해있었다.
그는 택시비를 내고 공항 안으로 들어갔다.
제일 빠른 삿포로행 비행기 표를 끊고 대기실에 앉았다.
바로 앞에 대형 LED TV가 놓여있었다.
그는 머리를 좀 식힐 겸 TV를 시청했다.
마침 공영 TV가 방송되고 있었다.
―먼저 안 좋은 소식부터 전하게 됐습니다.
잘생긴 아나운서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자민당의 사카모토 간사장이 조금 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쿵!
아키라는 뉴스를 보자마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입이 딱 벌어지고 두 눈을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주먹을 꽉 쥔 두 손은 충격으로 인해 사시나무 떨리듯 떨리고 있었다.
‘이럴 수가!’
그는 경악해 마지않았다.
이제야 확실해졌다.
그동안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들은 절대 우연이 아니었다.
누군가 계획적으로, 고의로 일으킨 사고였다.
털썩!
다리에 힘이 빠진 아키라는 의자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그사이!
뉴스에선 사고장면이 여과 없이 방송되고 있었다.
사카모토 간사장이 탄 고급승용차가 갑자기 급발진했다.
차선을 넘어가자마자 반대쪽에서 달려오던 트럭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자동차는 거칠게 튕겨 날아갔다.
아스팔트에 떨어진 차는 마치 찰흙 장난감처럼 구겨지고 뭉개져 있었다.
당연히 안에 탄 사람은 절대 무사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윙윙윙윙!
아키라는 아무런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그저 귓속에서 나는 이상한 이명만 반복되고 있을 뿐이었다.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종종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하지만 이런 것은 더 큰 스트레스가 오면 바로 사라지기도 했다.
지금이 바로 그때였다.
―긴급뉴스 속보입니다.
갑자기 TV에서 준비된 뉴스를 잠시 멈추고 속보를 내보냈다.
―방금 총리관저에서 테러가 일어났습니다.
테러라는 말에 아키라의 가출한 정신이 빠르게 돌아왔다.
―마베(眞部) 총리대신은 현재 사린 가스에 노출되어 병원으로 급하게 호송되었다고 합니다.
일본 역사상 초유의 사건이 터졌다.
그동안 일본 총리나 장관을 향해 테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1932년 5.15 사건 때.
이누카이 쓰요시 총리를 비롯해 여러 명이 피살당한 전례가 있었다.
하지만 이처럼 총리관저 안까지 침입해 사린 가스를 터트린 것은 전대미문의 일이었다.
―총리관저에 모여 담화를 나누고 있던 스무 명의 장관들도 함께 테러를 당했다고 하는데 현재까지 확인된 사람은…….
아나운서의 말과 함께 한쪽에 변을 당한 장관들의 얼굴과 이름이 줄줄이 내려오고 있었다.
스가타 내각관방장관.
아소다 부총리 겸 재무대신.
다카기 총무대신.
모리노 법무대신.
모타이 외무대신.
하기노 문부과학대신.
사토 후생노동대신.
이토 농림수산대신.
카지야 경제산업대신.
아케미 국토교통대신.
코즈미 환경대신.
고미 방위대신.
총리를 비롯해 내로라하는 일본 내각의 핵심 장관들이 줄줄이 쓰러졌다.
당장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될 정도였다.
―범인은 장생회의 신도로 아직 구체적인 범행동기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사린 가스를 살포할 당시, 방독면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같이 의식을 잃고 쓰러져있다가 현장에서 현행범으로 체포됐습니다. 하지만 생명이 위독해 바로 응급실로 이송됐다고 합니다.
아키라는 뉴스를 듣자 오히려 정신이 맑아졌다.
이제 확실해졌다.
범인은 무소불위의 능력을 갖춘 인물이다.
아니 그런 자들이 포진된 무서운 조직이다.
장생회 건물을 무너뜨린 것까지는 그럭저럭 이해했다.
하지만 총리관저를 무인지경으로 뚫고 들어가 사린 가스를 뿌리게 한 것은 아마 미국의 CIA나 이스라엘의 모사드도 하기 힘든 일일 것이다.
게다가 범인 스스로 사린 가스에 노출돼 목숨이 오락가락한 상태!
이거야말로 완전범죄나 다름없었다.
‘놀랍군. 일본회의의 뿌리이자 자금줄인 장생회를 무너뜨리고 장생회의 신도를 이용해서 머리를 쳐버렸어. 누군지 모르지만 정말 비상한 두뇌와 대담한 담력을 가진 자야.’
꿀꺽!
거기까지 생각이 일자 아키라의 몸이 덜덜 떨려왔다.
바로 그자가 지금 자신을 타겟으로 수작을 부리고 있었다.
얼굴이라도 보이면 어떻게든 제거할 수 있을 텐데.
눈에는 보이지도 않고 그림자조차 찾을 수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게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와서 누가 그의 주장을 믿어 주겠는가?
오히려 그런 말을 했다가 범인으로 몰려서 사냥을 당할 가능성이 더 컸다.
시간이 되자 아키라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나리타 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1시간 20분 만에 홋카이도 신치토세 공항에 도착했다.
그는 비행기에서 내리자 바로 택시를 잡아타고 삿포로시로 향했다.
신치토세 공항에서 삿포로시까지는 50km가 넘는다.
자동차로 대략 한 시간쯤 걸리는 거리다.
하지만 마음이 조급한 아키라에게 그 한 시간은 너무도 긴 시간이었다.
“어이쿠! 이런.”
그때 택시기사가 손으로 자신의 무릎을 ‘탁’ 쳤다.
그러면서 안타까운 탄성을 발했다.
“무슨 일인데 그러세요?”
아키라는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그에게 물었다.
택시기사는 상기된 표정으로 자신의 스마트폰을 거치대에 걸었다.
“요코스카항에서 큰불이 났대요.”
“불이요?”
“네, 이것 좀 보세요.”
아키라는 이 뜬금없는 소식에 스마트폰의 화면을 쳐다봤다.
펑 퍼펑!
꽝 꽈르릉 꽈릉!
놀랍게도 요코스카항이 불타고 있었다.
연이어 폭음이 들리는 것을 보니 유폭도 일어나는 모양이었다.
“아니 어쩌다가 저렇게 큰불이 났대요?”
“그거야 저도 모르죠. 다만 해상자위대 수리병이 연료를 누출시켜 화재가 일어났다는 말도 있고, 누전으로 불이 났는데 그게 탄약창에 옮겨붙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아키라는 택시기사의 말을 그냥 흘려들었다.
도대체 어떻게 연료를 누출시켜야 저런 불이 날 수 있을까?
누전으로 난 불이 탄약창에 옮겨붙었다는 얘기는 더 신빙성이 없었다.
탄약창을 지을 때 화재의 위험도 충분히 고려해서 짓기 때문이다.
요코스카는 단순한 일개 항구가 아니다.
요코스카항은 가나가와현 요코스카시에 있는, 도쿄만에 접해 있는 군항이다.
도쿄만 남서부, 요코하마 항 남쪽, 도쿄에서 육로로 55km, 해로로 46.3km 떨어진 곳에 위치해있다.
게다가 미 해군의 항공모함과 9척의 이지스 전투함, 일본의 헬기 호위함과 이지스함 및 잠수함 등이 정박해있는 주일미군과 자위대의 기지가 있는 장소다.
일본의 수도 도쿄와 가깝다는 지리적인 요소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런 중요한 함정과 시설들이 즐비한 곳의 경비와 화재방지시설이 절대 평범할 리 없었다.
그런데도 현실은 시궁창, 아니 불바다가 됐다.
대체 일본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아키라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화재의 원인을 알 수가 없었다.
보아하니 벌써 미 해군과 일본 해상자위대의 함정 몇 척이 심한 손상을 입은 것 같았다.
그러다가 그는 몸서리를 치며 놀랐다.
“설마!”
자신이 처한 상황과 지금 스마트폰 화면에 보이는 불타는 요코스카항이 겹쳐지자.
온몸에 왕 소름이 돋았다.
‘아닐 거야. 그럴 리 없어. 써먹지도 못한 장비였지만, 그래도 그걸 빌려준 건 육상자위대 특수작전군이었어. 해상자위대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고.’
그는 애써 강하게 자기 생각을 부인했다.
하지만 자꾸 불길한 예감이 떠오르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아키라 같은 이들은 잘 몰랐다.
일본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세상 사람들은 육상자위대와 해상자위대를 굳이 구분하려 들지 않는다.
육상이건 해상이건 항공이건.
자위대는 그냥 다 자위대라고만 생각한다.
부아앙!
어쨌든 택시는 뻥 뚫린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렸다.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삿포로시로 들어왔다.
택시기사는 아키라가 알려준 주소대로 삿포로시 남서쪽 주오구로 갔다.
삿포로시립 게메이중학교를 지나 아사히야마 기념공원 근처.
한적한 골목길에 들어서자 눈에 익은 길과 집들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