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8화 <불행은 절대 혼자 오지 않는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그들이 얻은 디럭스룸이 스위트룸으로 전격 교체가 됐다는 점이다.
가격 대비 3배나 비싼 스위트룸은 나름대로 대로 그 가치를 했다.
“이야아!”
“야호!”
스위트룸에 들어온 하루코와 쥰페이가 좋다고 환호성을 질렀다.
조금 전, 승강기에 갇혀 비명을 질렀던 기억은 벌써 다 잊었나 보다.
그 모습에 모모에가 엷은 미소를 지었다.
아키라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당분간 아이들 데리고 친정에 가 있을게요.”
“삿포로로 가겠다고?”
“네, 그럼 어떻게 해요. 옆집에 불이 났는데.”
“으음. 할 수 없군. 그렇게 해.”
모모에의 제안에 그는 어쩔 수 없이 동의하고 말았다.
내일 가봐야 알겠지만.
아마 당분간 집에서 사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아키라와 모모에, 하루코와 쥰페이는 그렇게 하룻밤을 특급호텔 스위트룸에서 지냈다.
다음날.
호텔에서 무료로 제공한 아침을 먹고 나왔다.
그들은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참담한 사태에 직면했다.
“이게 뭐야?”
“우리 집 어디 갔어?”
털썩!
놀란 하루코와 쥰페이는 소리를 질렀다.
모모에는 다리에 힘이 빠져 그만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았다.
아키라도 너무 황당한 사태에 그저 입만 딱 벌리고 말았다.
그들의 눈앞에는 자신들이 살던 집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다 타서 무너진 새까만 잿더미뿐이었다.
“어머! 어떻게 해!”
“안 됐다. 옆집에서 난 불이 옮겨붙어서 다 타버렸어.”
“아키라 상은 이제 어떻게 사냐?”
“불쌍하다.”
그들의 주위로 동네 사람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다들 안타까움에 혀를 찼다.
하지만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누구 하나 그들을 향해 가까이 다가오려고 하지 않았다.
“으앙!”
“우리 집이 다 타버렸어. 흑흑!”
그제야 현실을 인식한 쥰페이와 하루코가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모모에도 손으로 땅을 치며 눈물을 뿌렸다.
얼마나 애지중지하며 정성을 들이고 아꼈던 집인가!
그런데 평생의 기억과 함께 소중한 집이 한 줌의 재로 사라지고 말았다.
아키라도 감히 모모에나 아이들을 위로하려 들지 못했다.
다만 이를 바드득 갈더니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문자를 쳤다.
―좀 만나자.
띠링!
문자를 보낸 지 채 1분도 되지 않아 답장이 왔다.
―위험하다고 연락하지 말라던 녀석이 먼저 연락했네.
―닥치고 좀 만나자고.
―알았어. 오후 6시에 같은 장소에서 보자.
―그래.
표정을 잃은 아키라가 휴대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어떤 새끼인지는 모르지만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 감히 내 가족을 건드려! 갈가리 찢어버릴 테다.’
가슴 저 아래 깊은 속에서…….
뜨거운 노화가 부글부글 마그마처럼 끓어 올라왔다.
아키라는 두 주먹을 꼭 쥐었다가 폈다.
그리고는 주변을 날카롭게 한번 살폈다.
하지만 괜히 이웃 주민들만 놀라게 했을 뿐.
전혀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렇게 아키라와 그의 가족의 도쿄 집!
아니 스위트홈은 잿더미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 * *
“크크크크크!”
“웃지 마! 쇼타(翔太).”
“미안, 미안!”
쇼타는 급히 두 손을 들더니 합장하듯 하나로 붙였다.
그 모습에 아키라는 인상을 팍 쓰고 말았다.
“웃지 않으려고 했는데, 나도 모르게 자꾸 웃음이 나온다.”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뜻이야?”
“그럴 리가 있나. 하지만 정말 재수가 없다. 어떻게 그런 일이 연이어 일어날 수 있지?”
사각형의 얼굴을 가진 쇼타는 급히 얼굴에 웃음기를 지우고 말했다.
“내가 이런 일로 농담할 사람으로 보여?”
“물론 아니겠지. 우리 육상자위대 특수작전군의 보물, 아키라 중사의 입은 무겁기로 소문이 났잖아.”
“그 얘기는 왜 갑자기 꺼내고 그래?”
“아차! 너 밖에서 자위대 얘기하는 거 싫어했지.”
쇼타는 재빨리 한 손을 들어 자신의 입을 막았다.
하지만 눈을 보니 웃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아키라는 쇼타의 장난기 가득한 행동에 슬슬 짜증이 났다.
그러자 자신도 모르게 눈빛이 서늘해졌다.
그걸 깨달은 쇼타는 즉시 진지하게 말했다.
“재특회(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를 통해 한번 알아볼게.”
“너 거기서 나왔다면서.”
“응, 지금은 넷토우요쿠(ネット右翼: 넷 우익)에 있어.”
“거긴 좀 문제가 있는 곳 아니야?”
아키라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넷토우요쿠는 반도의 일베나 워마드, 서양의 대안 우파, 스킨 헤드 같은.
극단주의자들과 인터넷 꼴통들이 한데 모인 곳이다.
같은 우익단체들로부터 욕을 먹고 있는 곳이니 그 극단적인 성향을 알만했다.
“크크,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재특회나 넷토우요쿠나 일본회의에서 자금을 받는데.”
“하긴.”
쇼타의 말에 아키라는 간단히 이해해버리고 말았다.
일본 사회의 우경화를 이끄는 우익단체 일본회의(日本會議)!
300명에 가까운 국회의원들이 소속되어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도.
2019년 9월에 구성된 새 내각에서 총리를 포함, 각료 20명 중 15명이 일본회의와 관련된 게 밝혀졌다.
그들의 영향력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커지고 있었다.
거기에다 대부분의 극우, 우익단체들은 일본회의와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거액의 자금이 흘러가고 있으니…….
당연히 일본회의의 영향력 안에 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재특회의 간부 중 하나가 위쪽의 정보통과 아주 친하거든. 반도에 가서 한 네 행동을 이미 다 알고 있더라.”
“그건 비밀로 하기로 했는데…….”
“뭐가 무섭다고 비밀로 해? 그런 영웅적인 행동이야말로 훈장을 줘야지. 어휴! 나 같으면 그년의 가랑이를 발로 차버렸을 거다.”
아키라도 우익이었지만 쇼타는 극우에 가까웠다.
그래서 더 얘기를 해봐야 씨알도 먹히지도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얘기는 됐다. 별로 하고 싶지 않아.”
“그러시던가.”
아키라의 싸늘한 말에도 쇼타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대신 빨대로 오렌지주스를 소리 나게 빨아먹었다.
후루루룩!
예의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쇼타.
하지만 위쪽에서는 그를 중용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충성심 하니만큼은 알아줬기 때문이다.
쇼타가 지나가는 말투로 물었다.
“아내와 아이들은?”
“모모에는 친정으로 갔어.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이라면 삿포로던가?”
“응.”
고개를 끄덕이는 쇼타를 보며.
아키라는 궁금한 점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아까 말했던 위쪽 정보통이라면?”
“당연히 일본회의지. 가만 그런데 왜 네가 나한테 이런 아쉬운 소리를 하냐? 직접 얘기하면 되잖아.”
“그쪽에서 연락이 오기 전에는 절대 연락하지 말라고 했거든.”
“흐음, 하긴 보안이 중요하긴 하지.”
쇼타는 그제야 이해가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쨌든 일이 심상치가 않아. 그러니까 빨리 좀 알아봐 줘!”
“알았어. 네 말대로 이대한인가 뭔가 하는 자식이 저지른 짓이라면 반도로 얘들을 보내서 인대를 확 끊어버릴 거야.”
“그래도 행동하기 전에 나한테 먼저 연락해주는 거 잊지 마!”
“알았어. 그 정도는 기본이지.”
아키라와 쇼타는 대화를 마치고 일어나 악수를 했다.
“제국의 부활을 위해!”
“제국의 부활을 위하여!”
둘은 남들이 듣지 못하도록 작게 속삭이고 헤어졌다.
카페를 나가 왼쪽 길로 걸어갔다.
쇼타는 반대편에 차를 주차했다고 길을 건넜다.
끼이익 쿵!
“꺄악!”
그때 급브레이크를 밟는 소리와 함께 여자의 날카로운 비명이 울려 퍼졌다.
아키라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런데 허공에 쇼타가 훨훨 날아가고 있었다.
그것도 슬로비디오로 틀어 놓은 것처럼.
아주 느릿하게 공중을 유영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마치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만 같은 이 기묘한 현상에 놀랄 새도 없이.
급히 쇼타의 상태부터 확인했다.
하지만 이미 그의 몸 한쪽은 완전히 박살 나 있었다.
거의 피떡이 되어버린 상태!
아키라는 놀라서 찢어질 듯 눈을 크게 부릅떴다.
덩달아 그의 입도 절로 떡 벌어지고 있었다.
쿵! 데굴데굴!
단단한 아스팔트 바닥에 머리부터 떨어져 부딪쳤다.
피와 뇌수가 팍 터졌다.
몸이 장난감 인형처럼 기괴하게 접히며 굴러가다 멈췄다.
목이 완전히 뒤로 젖혀지고 팔다리가 도저히 꺾이면 안 될 방향으로 꺾여있었다.
아키라는 그 모습에 더 생각해볼 것도 없이 즉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세상에! 이건 꿈이야.’
정신력이 강한 아키라도 당장은 현실부정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사고다.”
“교통사고가 났어.”
“어! 트럭이 도망간다.”
“뺑소니 트럭이다.”
그제야 귀가 열리는지.
사방에서 아우성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키라는 제자리에 서서 멍하니 사고 현장을 바라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눈앞에서 일어난 이 사고가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그러다 한참 만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때는 이미 경찰차와 응급차가 와서 교통을 통제하고 있는 상태였다.
아키라는 꿀꺽 침을 한번 삼키고는 현장을 벗어났다.
하지만 10분도 되지 않아 휴대전화로 전화가 빗발쳤다.
“모시모시!”
―아키라 군.
“아! 나카가와(中川) 상!”
아키라는 전화를 받자마자 옆 골목으로 들어가 자세를 바로 했다.
전화를 건 인물이 신흥 종교단체로 무섭게 교세를 떨치고 있는 ‘장생회’의 총무였기 때문이다.
―쇼타 군이 사망했다는 보고를 받았네. 어떻게 된 거야? 오늘 만났다면서.
“사고였습니다. 저와 헤어지고 길을 건너는데 트럭이 와서 치고 도망쳤습니다.”
―그게 전부인가?
“네, 전부입니다.”
대답하는 그의 등으로 어느새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요새 안 좋은 일이 많았다고 들었네.
“예, 좀 그렇습니다.”
―혹시 반도의 일과 연관이 있는 건가?
“확실히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위에서는 이번 일로 시끄러워지는 것을 원치 않아. 살 집은 마련해줄 테니 조용히 잘 덮고 지내게.
“하이! 감사합니다. 무덤까지 홀로 지고 가겠습니다.”
살 집을 마련해주겠다는 말에 아키라의 얼굴이 대번에 환해졌다.
―하하하! 내가 이래서 아키라 군을 좋아하지. 흐음, 그래도 쇼타 군이 비명횡사한 것은 제국의 부활을 앞둔 시점에서 일본에 크나큰 손실이야.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어쨌든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을 테니 참고 기다리게.
“하이!”
허공에 절이라도 하듯 고개를 90도 각도로 숙이는 아키라.
그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기쁨이 묻어나왔다.
조심스럽게 전화를 끊고 아키라는 주먹을 불끈 쥐고 허공에 어퍼컷을 먹였다.
“요시!”
이제 집이 불타서 잿더미가 된 것은 해결됐다.
장소가 어딘지는 몰라도 새집이 마련되면 가족이 모여 사는 것은 금방일 것이다.
그는 아내와 아이들이 생각나 급히 전화를 걸었다.
―모시모시!
“모모에!”
―아나타.
“잘 도착했어?”
―안 그래도 전화하려고 했어요. 지금 집 앞이에요.
“아이들은 좀 어때?”
―오랜만에 할머니 만난다고 아주 좋아하고 있어요.
“다행이네.”
모모에와 아이들이 그녀의 친정집에 잘 도착했다.
아키라는 희소식이라고 생각하고 얼굴에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조금 전 전우가 죽었는데도 이렇게 웃을 수 있다는 게 참 신기했다.
―당신은요?
“난 괜찮아. 그리고 조만간 집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아.”
―어머! 진짜요?
“응,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려!”
―정말 잘됐네요.
모모에는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소리에 아키라는 마음이 푸근해졌다.
그때, 갑자기 모모에가 비명을 질렀다.
―꺄악!
“모모에!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뚝!
순간 전화가 끊겼다.
아키라는 침을 삼키고 즉시 전화를 다시 걸었다.
띠이띠이띠이…….
하지만 몇 번이나 전화를 걸어도 통화가 연결되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친정집 전화번호로도 전화를 걸어봤다.
띠이띠이띠이…….
역시 연결이 되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답답한 마음에 그는 골목길에 있는 쓰레기통을 걷어찼다.
쾅!
하지만 아무리 분풀이를 해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전화가 울렸다.
“모모에?”
―모모에가 누군가? 아! 아키라 군 아내의 이름이 모모에였지.
“헉! 사카모토(坂本) 사마(様)!”
아키라는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대번에 그의 자세가 꼿꼿해졌다.
마치 앞에 상관이라도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럴 만도 한 게, 사카모토는 자민당의 간사장이었다.
현 정권의 실세이기도 한 그가 어떻게 직접 자신에게 전화 걸 생각을 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