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5화 <통곡>
“어머니!”
“대한아!”
“으흐흑!”
“크흑!”
모자는 서로를 애타게 부르며 부둥켜안았다.
대한은 어머니의 품에서 목놓아 엉엉 울었다.
김혜영의 눈에서도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어지간해서는 눈물을 보이시는 분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은 마치 고장이 난 수도꼭지처럼 하염없이 울고 계셨다.
“어휴!”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태산도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손에 들린 손수건도 이미 눈물로 푹 젖은 상태였다.
셋은 그렇게 한참 동안 말없이 울고만 있었다.
그러다가 김혜영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이러다가 자칫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한 아들을 잡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아들!”
“네, 어머니.”
“인제 그만 울자.”
“네.”
“우리 딸 그만 보내줘야겠다.”
“어머니!”
대한은 어머니의 그 한마디에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김혜영이 누운 침대 옆에서 그는 도무지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렇게 울었는데도 눈에서 눈물이 펑펑 쏟아져 나왔다.
햇빛 한번 보지 못하고 너무나도 허무하게 가버린 자신의 여동생.
속으로 나름 큰 기대를 하며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제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내 잘못이야. 내 책임이야.’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그렇게 설쳐댔다.
그런데 가장 사랑하는 가족의 불행조차 막지 못했다.
아니 당연히 지켜야 할 이를 지키지 못했다.
자신이 조금만 더 조심했더라면.
아니 조금만 더 독하게 마음을 먹었더라면.
아마 이런 일은 애초에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는 속으로 이를 바드득 갈았다.
그렇다고 당장은 이빨을 드러낼 수 없었다.
큰 충격을 받고 절망에 빠진 어머니!
다른 무엇보다 이런 어머니를 먼저 위로해드리는 게 급선무다.
문제는 도무지 어떻게 위로를 해드려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당장 수천억 원을 동원할 수 있고.
세상을 마음껏 주물럭거릴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데.
눈앞에 울고 계신 어머니의 마음조차 위로해드리지 못한다.
이게 차가운 현실이다.
대한은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눈물을 떨구는 것 외에는 없었다.
“아들! 그만 울어. 나 괜찮아.”
“끄윽! 죄송해요.”
“무슨 소리야? 우리 자랑스러운 아들이 왜 죄송해야 해?”
“제가 조금 더 신경을 썼어야 했는데…….”
김혜영은 눈물을 훔치면서 말했다.
“그런 소리 하지 마. 지금도 우리 아들 덕분에 나와 네 아버지가 얼마나 떵떵거리며 잘살고 있는데.”
대한은 어머니의 말에 다시 목이 메어왔다.
하지만 억지로 참고 간신히 한마디 했다.
“여기 계시지 마시고 잠시 별장으로 옮기세요.”
“별장?”
“네, 파주에 온천이 나오는 별장이 있어요.”
대한의 제안에 김혜영은 대답 대신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러자 이태산이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참에 나도 휴가를 내고 온천이나 다녀와야겠다.”
“그렇게 하세요.”
“으음.”
두 남자가 대동단결해서 적극적으로 나오자 김혜영도 귀가 솔깃해졌다.
솔직히 지금 당장은 강남, 아니 청담동이 끔찍하게 싫었다.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자꾸 그 일본 남자가 생각났다.
머릿속에 화인처럼 새겨진 그자의 소름 끼치는 미소가 꿈에 나타날까 두려웠다.
“그래. 그렇게 하자. 여보! 그래도 되죠?”
“당연하지. 이러지 말고 당장 몸이 좀 괜찮아지면 바로 뜹시다.”
“네, 그렇게 해요.”
어머니가 마음을 먹는 순간.
이미 결정은 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대한은 눈물을 닦으며 배시시 웃었다.
“잘 생각하셨어요. 파주 별장 가서 온천도 하시고 숲속으로 산책 다니면 좋을 거예요.”
“별장이 자연경관이 좋은 곳에 있나 보다.”
“위치는 끝내주게 좋은 곳이에요.”
“어떻게 그런 곳을 다 구했니?”
“어떻게 하다 보니 제 손에 들어오게 됐어요.”
솔직히 그는 파주 별장을 어떻게 소유하게 됐는지 모르고 있었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얘긴데.
전 세계에 얼마나 많은 성(castle)과 별장을 소유하고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때, 이태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한아!”
“네, 아버지.”
“혹시 로터리 그룹과 한양그룹, 네가 인수한 거냐?”
“아! 네. 코레그룹이 인수해서 합병할 거예요.”
“응, 그렇구나.”
대한은 아버지가 갑자기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궁금했다.
“그런 소리는 어디서 들으셨어요?”
“네가 로터리 그룹과 한양그룹을 인수했다는 소문이야 이미 회사에서도 파다하지.”
“그래요?”
“어째 너만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제 앞에서 그런 질문을 한 사람은 아버지가 처음이에요.”
“그렇구나.”
이태산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다시 물었다.
“그런데 그건 왜 물으셨어요?”
“사실은 내 아는 친구 아들이 지금 집에서 놀고 있는데, 로터리 그룹에서 하는 유통회사에 취직하고 싶은가 봐.”
“아아! 취직을 부탁하셨구나.”
이태산은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대한의 눈치를 살살 봤다.
그는 그 모습에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좋게 말했다.
“아버지, 친구분에게 아들 이력서나 한번 가져와 보라고 하세요. 특채는 몰라도 공채라면 면접까지는 프리패스로 보내 드릴게요.”
“정말이냐?”
“그럼요. 안 그래도 로터리 그룹과 한양그룹의 실사가 끝나면 대규모로 신입사원을 모집하려고 했어요.”
대한의 말에 이태산은 깜짝 놀랐다.
“인수합병을 했으면 직원을 줄여야지. 더 늘릴 거야?”
“당연히 위에서 줄이고 아래에서 늘릴 생각이에요.”
“그게 무슨 소리냐?”
“부정과 비리, 사내정치에 물든 무능한 임원들은 이번 기회에 다 쳐낼 거예요. 대신 그 돈으로 현장에서 일할 사원들을 10배로 뽑아서 서비스를 대폭 보강할 생각이에요.”
“아! 그게 그런 뜻이었구나.”
이태산은 아들의 설명에 한결 마음이 놓인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자식이라도 취업청탁을 하는 것은 상당히 모양이 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다행히 이번에 회사에서 많은 신입사원을 모집한다니.
어떻게 친구 아들 한 명 정도는 잘 끼어 들어갈 수 있을 듯싶었다.
“어머니, 몸은 좀 어떠세요?”
“아까 의사가 와서 주사를 맞았더니 괜찮아졌어.”
김혜영이 의사라고 생각한 사람은 사실 에바가 보낸 안드로이드다.
주사로 알고 있는 것도 실제로는 나노셀을 투여한 것이다.
이미 몇 시간이 지난 상황이었다.
그러니 유산으로 인한 몸의 충격은 전부 해소됐다.
속에 남아있던 것들까지 깨끗하게 다 빠져서 내려갔다.
당장 샤워를 해도 몸에 전혀 무리가 가지 않을 만큼.
그녀의 몸 상태는 온전히 돌아와 있었다.
그래도 아직은 무리하지 않는 것이 좋다.
유산은 몸에만 큰 무리가 가는 게 아니라 정신적인 데미지도 적지 않았다.
“어머니, 한숨 주무시는 게 어때요?”
“그럴까?”
“자고 나면 기분이 좀 나아질 거예요.”
“응.”
별장에 가려고 해도 당장 움직이는 것은 곤란했다.
그보다는 차라리 푹 자는 게 심신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대한은 어머니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그럼 편하게 누워서 눈을 감으세요. 제가 잠드실 때까지 옆에 있을게요.”
“정말?”
“그럼요.”
“아이고, 우리 아들 이제 다 컸네. 엄마 생각도 할 줄 알고.”
“하하하! 제가 좀 빨리 철들었죠.”
“그래 조금만, 아주 잠시만 자고 일어날게.”
“네.”
대한이 대답을 하는 순간.
김혜영은 이미 눈을 감은 상태였다.
그리고 빠르게 잠에 빠져들었다.
그녀의 몸에 있는 나노셀이 대한의 의지에 제대로 반응을 해주고 있었다.
숨소리가 고르게 나자 이태산이 그의 어깨를 살짝 쳤다.
대한은 아버지를 쳐다보더니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스럽게 어머니의 손을 놓았다.
새근새근 주무시는 모습이 천사처럼 아름다웠다.
그는 어머니의 이마에 살짝 키스를 하고 일어났다.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고 침실 밖으로 나갔다.
궁!
마지막으로 천천히 문을 닫고 나자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식탁에 가서 차나 한잔하자.”
“예.”
이태산의 말에 대한은 두말하지 않고 따라갔다.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손수 전통차를 끓였다.
은은한 녹차의 향기가 진하게 느껴지는 것을 보니 보성 녹차가 틀림없었다.
“마셔라!”
“고맙습니다.”
아들과 아버지는 식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홀짝거리며 차를 마셨지만, 누구 하나 말을 꺼내는 법이 없다.
사실 사내 둘이 차를 마시면서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래도 이렇게 계속 앉아있을 수는 없어서 아들인 대한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 축구 그만둘까요?”
“아니 왜?”
대한의 말에 이태산은 깜짝 놀라 물었다.
“자꾸 밖으로 나도는 거 같아서요.”
“무슨 소리야? 네 어머니가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공격수라고 널 얼마나 자랑스러워하는데.”
“정말요?”
“그럼. 축구경기가 있는 날은 친구와 이웃들을 불러다 거의 잔치를 하곤 했지.”
“요새는 그렇게 못하시나 봐요?”
“음, 아무래도 친구들이 예전만 같지 않아서 그렇지.”
하긴 전과 지금의 처지는 상전벽해라고 해도 모자람이 없었다.
쫄딱 망해도 친구 만나기가 좀 그렇지만.
너무 잘 나가도 친구 부르기가 어렵다.
사는 게 어느 정도 비슷해야 하는데.
당장 청담동 집만 해도 별천지 같다고 하니 어색해지기에 십상이었다.
“아버지, 그럼 이번에 저 영국 갈 때 같이 가요.”
“영국에?”
영국에 가자는 제안에 이태산의 눈이 왕방울만 하게 커졌다.
“네, 지금 하시던 일은 아랫사람에게 넘기시고 다른 일을 한번 찾아보죠.”
“영어도 잘 못 하는 내가 영국 가서 할 일이 뭐가 있겠어?”
“할 일은 차고도 넘쳐요. 그리고 영어 잘하는 비서 많으니까 하나 데려다 쓰세요.”
“내가 네 비서를 왜 데려다 써!”
아닌 척하고 있었지만, 아버지의 귀가 팔랑이고 있었다.
대한은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조금 더 강하게 밀어붙이려고 하는데 이태산이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나 여기 보궐선거에 한 번 나가볼까?”
“예에?”
이번에는 대한의 눈이 왕방울이 됐다.
“야당의 태창호 의원이 건강문제 때문에 의원직을 내려놨어. 그래서 곧 보궐선거가 있을 예정이야.”
“정치에 뜻이 있으셨어요?”
“아니, 전혀.”
“그런데 왜 보궐선거에 나가려고 그래요?”
“내가 힘이 없으니까 자꾸 흔들리는 것 같아서.”
“무슨 소리예요. 아버지가 이렇게 떡 버티고 계시니까 제가 밖에서 마음껏 뛰는 거 아니에요.”
그는 아버지를 위해 조금 과장되게 말했다.
하지만 이태산은 넘어가지 않았다.
“내가 지금 네 덕분에 팔자가 쫙 폈다. 하지만 언제까지 네가 잘 나갈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몰라. 해가 뜨면 지게 마련이고 달이 차면 기울게 마련인 게야.”
“…….”
“이렇게 네가 돈이 있고 인기가 있고 영향력이 있을 때가 기회야. 기왕 네 덕을 보는 김에 한 번만 더 보자꾸나.”
의외로 아버지의 말은 진지했다.
이런 생각을 전부터 하고 계셨던 것 같았다.
“아버지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은 전혀 몰랐어요. 그렇게 하세요.”
“뭐? 뭐라고?”
대한은 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오히려 그 모습에 이태산이 더 놀랐다.
“저, 정말?”
“네.”
“진짜 나 보궐선거에 나가도 돼?”
“물론이죠. 제가 적극적으로 밀어드릴게요.”
솔직히 이태산은 아들이 반대할 줄 알았다.
사실 고등학교 밖에 나오지 못한 그가 언감생심 국회의원을 노리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래도 이건 죽기 전에 꼭 한번 해보고 싶은 일이었다.
물론 금배지를 달고 거들먹거리려는 목적은 아니었다.
그동안 국민을 위한다며 온갖 불법과 비리를 저지른 정치인들!
그들에게 보란 듯이 일침을 가하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나 나가면 당선될 수 있을까?”
“하하하! 갑자기 왜 그러세요. 조금 전에는 반대해도 꼭 나가실 것처럼 말씀하시더니.”
“그거야 네가 결사반대할 줄 알고 그랬지.”
“제가 왜 반대를 해요? 국회에 있는 놈들보다 우리 아버지가 훨씬 정의롭고 깨끗하고 청렴하게 살아오셨잖아요.”
“그렇지. 내가 법을 어기고 살지는 않았어.”
“그러니까요. 아버지야말로 국회의원이 될 자격이 있어요. 국회의원이 별건가요? 국민을 위해, 지역구를 위해 봉사하는 직업이잖아요. 그것도 단 몇 년에 불과한 한시적인.”
“맞아.”
대한의 말에 이태산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어렸다.
“아무 걱정하지 마시고 앞으로 어떤 정치를 할지 계획이나 잘 세워놓으세요. 나머지는 제가 다 알아서 할게요.”
“혹시 너 선거운동에 참여하려는 거야?”
“아니요. 전 능력이 안 되고요. 대신 전문가를 고용해서 선거 캠프를 차려드릴게요.”
“그럼 돈이 많이 들어갈 텐데.”
“돈 걱정하지 마시고. 나가서 마음껏 하고 싶은 얘기 다 하고 오세요.”
돈이라면 썩어 문드러질 만큼 있었다.
아버지가 국회에 나가는 게 소원이라니
밀어드리는 게 자식 된 자의 도리일 것이다.
대한은 돈 좀 버리는 셈 치고, 아버지를 보궐선거에 내보내기로 했다.
되면 좋고 안 되면 말고.
그 과정에서 아버지가 한풀이라도 하신다면 그것도 썩 나쁘지 않은 그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