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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재능(Feat. 대한 TV)-294화 (292/331)

294화 <제국과 왕국의 비기>

적도(위도 0°) 36,086km 상공.

지구에서 봤을 때 언제나 같은 위치에 있기에 정지궤도라 불리는 지구의 원형 궤도!

우주탐사선 히릭스는 바로 이 정지궤도에 모습을 감춘 채 떠 있었다.

중갑판 메인 시뮬레이션 돔(Dome).

농구장 몇 배 크기의 넓은 공간이다.

바닥을 제외한 사방이 뻥 뚫린 듯 투명하다.

그래서인지 마치 우주 한복판에 나와 있는 듯하다.

팡팡 펑펑!

하지만 서로를 향해 매섭게 공격을 퍼붓고 있는 대한과 엘라에겐 그걸 만끽할 여유가 없었다.

퍼퍼펑 퍼퍼펑 팡팡팡!

두 사람이 공수를 교환할 때마다.

가죽 북이 터지는 강렬한 파열음이 일어났다.

몸에 딱 붙는 하얀 전투복을 입은 엘라!

시종일관 아크로바틱하고 다이내믹한 동작으로 공세를 주도했다.

이에 맞선 대한은 검은 전투복을 입고 철통같은 수비로 맞섰다.

간간이 날카로운 기습을 통해 반전을 꾀하기도 했다.

쾅!

두 사람의 발차기가 허공에서 정면으로 부딪쳤다.

그러자 무슨 폭발이라도 난 것처럼 폭발음이 터졌다.

그 반동으로 둘은 잠시 서로에게서 떨어졌다.

“오빠! 어때요? 이제 좀 할 만하죠?”

자랑하듯 말하는 의기양양한 엘라의 모습이 귀엽기만 하다.

“처음엔 내가 좀 방심했어.”

“그래서 저한테 맞은 거예요?”

“그렇다고 내가 여자를 팰 수는 없잖아.”

도발적인 그녀의 말에 대한은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럼 지금까지 저한테 했던 그 치명적인 공격들은 다 뭔가요?”

“난 전적으로 방어를 한 거야. 그렇다고 너무 방어만 하면 엘라가 방심할까 봐 긴장을 유지하려고 살짝 힘을 쓴 거라고.”

“정말요?”

엘라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한도 덩달아 썩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방금 전 한 말은 궁색한 변명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패배를 인정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았다.

물론 절대 지고 있는 상황은 아니다.

정말 죽기 살기로 싸운다면 어렵지 않게 이길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엘라와 그렇게 싸울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은 오늘 꽤 놀랐다.

전혀 예상치 못한 그녀의 뛰어난 실력 때문이었다.

역시 직접 뇌로 비전의 무예를 다운로드를 받아서 그런지.

보통 실력이 아니었다.

“대련을 입으로만 할 거야?”

“흥! 그건 아니죠.”

“그럼 뭐 하고 있어? 어서 드루와!”

대한은 입꼬리 한쪽만 살짝 끌어 올리며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대놓고 도발하는 그의 모습에 분개한 엘라가 순간 힘차게 바닥을 박찼다.

쩡!

얼마나 세게 바닥을 쳤는지 그녀의 몸보다 충격파가 먼저 느껴졌다.

하지만 그건 종잇장 한 장에도 미치지 못하는 찰나의 순간에 불과했다.

펑 펑 퍼펑 퍼퍼펑!

어느새 바로 앞까지 파고 들어온 엘라!

은은한 녹색의 마력이 서린 그녀의 작고 매서운 주먹이 폭풍처럼 몰아닥쳤다.

대한은 급히 손바닥에 마력을 집중시켜 엘라의 철권폭풍을 막아냈다.

그 충격으로 몸이 뒤로 조금씩 밀리고 있었다.

그 사실이 그의 자존심을 자극했다.

‘에잇!’

대한은 마지막 주먹을 막는 척하다가 고개를 숙여 아래로 슬쩍 피했다.

그러면서 부드럽게 손을 뻗어 그녀의 팔목을 잡아챘다.

엘라는 몇 번 당한 게 있어서 급히 팔을 빼고 뒤로 물러나려고 했다.

하지만 이번 공격은 속임수였다.

대한은 그녀의 팔목을 놓고는 벼락같이 로우킥을 날렸다.

퍽!

바닥을 짚으려던 한쪽 발이 그의 킥에 맞고 옆으로 밀렸다.

그러자 균형을 잃은 엘라의 몸이 기우뚱했다.

대한은 넘어질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바로 태클(charge)을 했다.

쿵!

어깨로 명치를 들이받자 중심을 잃은 그녀가 차에 치인 듯 허공으로 날아갔다.

하지만 엘라는 급히 허공에서 공중제비를 돌며 몸의 균형을 회복했다.

누가 봐도 입이 쩍 벌어질 것 같은 기가 막힌 모습이었다.

대한은 이런 그녀가 멀쩡히 전열을 정비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다시 달려들어 떨어져 내리는 엘라의 발목을 붙잡아 흔들었다.

“꺄악!”

만약 이대로 힘을 줘서 상대를 바닥에 내리꽂는다면.

아마 엘라의 머리는 단박에 수박처럼 깨져버릴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대한은 슬쩍 손에 힘을 풀고 발을 쭉 뻗었다.

바닥에 떨어져 내리는 엘라의 머리를 그는 발등으로 살짝 받아냈다.

그 짧은 시간!

그녀는 대한의 발등을 이용해 몸을 뒤틀었다.

팽이처럼 그녀의 몸이 허공을 빠르게 몇 번 회전했다.

그러더니 마치 고양이처럼 바닥에 납작하게 내려섰다.

척!

대한은 엘라의 유연성에 적이 감탄했다.

나중에 저걸 이용해 새로운 즐거움을 누려 보리라 다짐했다.

물론 속으로만.

팡!

그런데 대련은 이대로 끝날 것 같지 않았다.

포기를 모르는 그녀가 다시 정면으로 달려든 것이다.

이번에는 주먹이 아니라 발차기였다.

그것도 무협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원앙각(鴛鴦脚)!

영화로 찍는다면 아마 엄청 돌려보기를 했을 만큼 멋진 모습이었다.

허공에 늘씬한 두 다리가 빠르게 교차하며 가위차기를 했다.

한 번만 걸리면 반동을 이용해 수십 번의 연타를 날릴 수 있는 비기였다.

엘라는 이것으로 조금 전 당한 것을 만회하려고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한에겐 이게 처음 당하는 공격이 아니었다.

이미 한번 그녀가 써먹었던 공격이라 더는 그에게 통하지 않았다.

퍼퍼펑 퍼퍼펑!

그는 두 손을 빠르게 교차해 엘라의 원앙각을 막았다.

그러다가 득달같이 몸을 숙이며 아래로 들어가 발로 그녀를 걷어찼다.

뻥!

발등에 착 달라붙는 실한 감촉이 느껴졌다.

대부분의 충격이 그녀의 풍만한 엉덩이 살에 눌려 해소된 느낌이 들었다.

엘라는 터져 나오려는 비명을 간신히 참고 뒤로 빠르게 물러났다.

이상하게도 처음같이 쉽게 공격을 성공시킬 수 없었다.

더 이상 기습은 안 먹히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정공으로 부딪치자니…….

아직 힘이나 기술 면에서 부족한 점이 많았다.

엘라는 한 손으로 걷어차인 엉덩이를 쓱쓱 문질렀다.

죽으라고 찬 게 아니라서 살짝 얼얼한 느낌만 들었다.

문제는 기분이었다.

사랑하는 남자에게 엉덩이를 걷어차인 그녀!

절로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자신이 그동안 정신없이 공격을 퍼부었던 것은 전부 잊어버렸다.

그리곤 오직 엉덩이를 걷어차인 기억만 남았다.

이런 심리는 아마 절대 남자들이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아직 완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한 방은 제대로 먹여줘야지.’

엘라는 그렇게 생각하며 의욕을 불태웠다.

그녀는 당장 배틀푸르나를 운용했다.

정수리에서 시작된 진자운동이 빠르게 꼬리뼈를 치고 올라갔다.

동시에 전신으로 마력이 확 퍼지면서 온몸이 시원해졌다.

‘검이 없으니 사이러스의 비기를 푸는 건 힘들 것이고, 대신 나이로비의 비기를 써야겠다.’

엘라는 그렇게 결정을 내리고 힘차게 허공을 향해 몸을 뽑아 올렸다.

그녀의 전신에서 은은한 녹색의 빛이 흘러나왔다.

꿀꺽!

대한은 그 모습에 정신을 바짝 차렸다.

사실 다치지 말라고 그나마 제일 무난한 엉덩이를 찬 것이다.

그런데 이게 아무래도 엘라의 자존심을 제대로 건드린 모양이었다.

범상치 않은 그녀의 모습!

그도 급히 배틀푸르나를 운용해 마력을 폭발적으로 끌어냈다.

엘라의 몸이 허공에서 용틀임하듯 한 바퀴 돌았다.

그에 따라 녹색의 마력이 빠르게 회전을 하며 다가왔다.

그런데 그 모습이 마치 회전하는 드릴처럼 보였다.

대한도 이에 맞춰 탄탈러스(SSS)의 비기를 끌어냈다.

허공에 순식간에 8자 모양의 수인을 그렸다.

그러자 푸른 마력이 버섯의 모양으로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쾅! 꽈르릉 꽝!

순간!

두 사람의 사이에서 강한 폭발이 일어났다.

수십억, 아니 수백억 광년의 공간을 넘어…….

제국과 왕국의 명운을 걸었던 그때의 한판 싸움이 지금 지구 상공에서 재현됐다.

스파이럴 제국을 뿌리째 흔들 만큼 강력했던 옛 왕국의 비전 무공!

나이로비의 비전절예, 사이클론 드릴은 정말 강력했다.

하지만 볼트 행성을 일통한 스파이럴 제국기사단의 비전 무공!

탄탈러스(SS)의 비기, 파운틴 실드도 그에 못지않게 단단했다.

덕분에 서로 다른 마력과 비기의 강력한 충돌은 강한 폭발과 반발력의 형태로 이어졌다.

대한이 뒤로 주르륵 밀려나고 엘라가 허공으로 훨훨 날아올랐다.

휘르륵 척!

하지만 엘라는 허공에서 한번 몸을 뒤집는 것으로 바닥에 멋지게 착지했다.

그도 강한 충격에 뒤로 주르륵 밀렸을 뿐, 다치지는 않았다.

“괜찮아?”

“네, 오빠는요.”

“당연히 나도 괜찮지.”

“우씨! 한 방 먹여주려고 했는데…….”

“제발 다음에 그 기술 쓸 때는 미리 얘기 좀 해줘!”

“네에?”

“나 죽을 뻔한 거 몰라?”

대한은 그녀의 자존심을 세워주려고 일부러 과장된 몸짓을 보였다.

“설마?”

“정말이야. 그거 함부로 쓸 기술은 아닌 것 같아. 여기 봐 손바닥이 다 부었다고.”

“어머! 어떻게?”

엘라는 대한의 손이 부었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

그녀는 쏜살같이 달려와 그의 두 손을 잡고 뒤집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손바닥은 멀쩡했다.

“잡았다.”

“꺄악!”

대신 엘라는 대한에게 잡혀 두 팔이 뒤로 꺾였다.

팔딱대는 대어라도 잡은 것 같은 대한의 표정!

자연스럽게 그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이 곱지 못했다.

하지만 이내 엘라의 눈이 스르르 감기고 표정이 확 풀렸다.

대한이 기습적으로 그녀의 입에 입술을 맞춘 것이다.

사랑과 애정이 가득한 프렌치 키스!

단 한방에 통통 튀어대던 엘라의 몸이 진이 다 빠진 것처럼 축 늘어졌다.

아니 어느새 풀려난 두 팔을 그의 목에 걸고 문어처럼 달라붙었다.

둘은 격렬한 대련 뒤에 이어진 키스로 인해 순간 후끈 달아올랐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도 못한 방해, 아니 사태가 일어났다.

띠띠띠띠!

―코드 레드! 코드 레드! 코드 레드!

메인 시뮬레이션 돔 전체가 순식간에 불투명해졌다.

동시에 붉은 빛이 빠르게 깜빡이며 ‘코드 레드’를 반복해서 알려왔다.

“이거 무슨 일이야?”

놀란 대한이 고개를 뒤로 돌리고 물어봤다.

“마스터! 비상사태가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어느새 다가온 에바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비상사태라니? 혹시 전쟁이라도 났어?”

“그보다 더 심각한 일이 터졌습니다. 어머니 김혜영 여사께서 큰 충격을 받고 유산하셨습니다.”

“뭐야?”

파칭!

그때, 대한의 몸에서 강렬한 마력의 유동이 일어났다.

그 충격으로 에바가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돔 안의 공기도 크게 요동쳤다.

“오빠! 진정하세요.”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그녀에게 단 한 번도 화를 내지 않았던 대한!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는 엘라의 말에 크게 화를 냈다.

잔뜩 인상을 쓴 대한의 두 눈에는 사나운 살기가 맹렬하게 들끓고 있었다.

“제 말은 화를 내지 말라는 뜻이 아니에요.”

“그럼?”

“마력을 제어하라는 얘기에요. 그렇지 않으면 오빠를 비롯해 여럿이 다쳐요.”

“아!”

그제야 대한은 자신의 몸 상태를 깨달았다.

그동안 꾸준히 운용했던 배틀푸르나!

그로 인해 몸에 축적된 많은 양의 마력이 일제히 뿜어져 나와 사방에서 천방지축으로 요동치고 있었다.

마력의 양이 적다면 모를까!

초인이 된 몸에 쌓인 마력은 이미 주변 환경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만약 여기가 지구였다면 크게 사람들이 다칠 수도 있는 문제였다.

“휴우우!”

대한은 길게 한숨을 쉬더니 잠시 눈을 감았다.

배틀푸르나를 전력으로 운용해 들끓는 마력을 잠재웠다.

강한 의지가 서리자 마력은 금세 순한 양처럼 잠잠해졌다.

단 몇 초 만에 눈을 뜬 그의 표정은 한결 나아졌다.

이 모습에 엘라는 대한이 대련할 때!

자신을 많이 봐줬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대로 했다면 아마 얼마 견디지 못하고 박살이 났을 것이다.

대한이 진정하자 에바가 곧바로 입을 열었다.

“일단 두 분은 무사하십니다. 나머지는 함교로 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니야. 지금 당장 집으로 가야겠어. 우주셔틀을 준비해줘!”

“네, 마스터.”

강한 의지가 서린 그의 말에 에바는 즉시 고개를 숙였다.

“그래도 몸을 씻고 옷은 갈아입고 가요. 이대로 가면 두 분이 더 놀라실 거예요.”

“알았어.”

엘라의 조언에 대한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뚜벅뚜벅 뚜벅뚜벅!

그는 입을 꾹 다물고 메인 시뮬레이션 돔을 나와 함장실로 향했다.

급히 뒤따르는 엘라가 살며시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대한의 발걸음이 범상치 않았다.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는 모르지만.

앞으로 그의 행보가 피로 물들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그녀는 조용히 심호흡을 한번 한 후!

서둘러 달려가 대한의 옆으로 따라붙었다.

그래도 적당히 선을 넘지 않게 조절하려면 역시 자신이 그의 옆에 있어야 한다.

하지만 방정맞게 엘라의 머릿속에는 ‘제노사이드’, ‘대량학살’ 같은 극단적인 단어들이 자꾸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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