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3화 <테러(?)>
“무슨 일로 오셨죠?”
“관광하러 왔스무니다.”
“대한민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미스터 아키라!”
“감사하무니다.”
“좋은 추억 만들고 가세요.”
“네!”
쾅!
입국 심사관이 여권에 도장을 찍자 아키라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여권을 챙긴 그는 짐 찾는 곳에서 자신의 여행용 가방을 찾았다.
그런 후 입국장을 나와 택시를 잡아탔다.
“어디 가세요?”
“강남에 있는 리베로 호텔로 가무니다.”
“아! 일본 분이셨구나. 청담동에 있는 특급호텔 맞죠?”
“하이!”
택시기사는 백미러를 통해 슬쩍 뒤를 쳐다봤다.
마침 아키라도 앞을 보고 있어서 둘은 서로 눈이 마주쳤다.
그는 예의 그 환한 미소를 보여줬다.
얼굴도, 키도, 행동도 평범한 중년 남자.
누가 봐도 아키라는 관광을 하러 입국한 일본인이었다.
부우웅!
택시는 고속도로를 타고 빠르게 질주했다.
아직 러시아워 전이라서 그런지 고속도로는 그다지 밀리지 않았다.
올림픽 대로를 타고 순항한 택시는 생각보다 빠르게 목적지에 도착했다.
“리베로 호텔에 도착했습니다.”
“수고하셨스므니다.”
인사성 밝은 일본인답게.
아키라는 돈을 내고 택시 기사에게 깍듯하게 인사를 했다.
그 모습에 택시기사는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아키라는 택시에서 내려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호텔 프런트로 가서 체크인하자 카드키를 내줬다.
그는 승강기를 타고 10층으로 올라갔다.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가 제일 먼저 커튼부터 활짝 열었다.
그러자 다들 그렇게 보고 싶어 하던 한강이 눈앞에 가득 펼쳐졌다.
넓은 강폭을 가진 한강을 사이로.
양쪽 강가에 세워진 아파트와 주택들이 끝이 보이지 않고 늘어서 있었다.
그런데 그는 전혀 한강을 쳐다보지 않았다.
날카로운 눈빛으로 한강 변에 세워진 최고급 빌라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위치가 참 좋군.”
아키라는 알아들을 수 없는 혼잣말을 내뱉으며 미소를 지었다.
그건 일종에 자신감의 발로였다.
깊게 심호흡을 하면서 그는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그런 다음, 욕실 겸 화장실로 들어가 경건하게 샤워를 했다.
정갈하게 몸을 씻고 깨끗한 새 옷으로 갈아입은 아키라!
그는 여행용 가방에서 보디백(슬링백)을 꺼내 지갑과 스마트폰을 집어넣었다.
하얀 수건에 싸인 손바닥만 한 물건도, 잊지 않고 잘 챙겼다.
겉으로는 관광할 만반의 준비를 마친 아키라는 기분 좋게 바로 호텔을 나섰다.
띠링!
마침 가방 안에서 진동과 함께 알림음이 울렸다.
아키라는 슬쩍 좌우를 한번 살피곤 스마트폰을 꺼냈다.
펠레그램을 열자 아이디 ‘711’이 문자를 하나 보내왔다.
거기에는 단 하나의 숫자.
‘6’이 찍혀있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시선을 스마트폰의 모서리로 향했다.
5:32 pm.
걸어서 15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다.
그러니 아직 시간은 넉넉했다.
아키라는 느긋하게 도산대로를 타고 걸어갔다.
좌우로 늘어선 건물과 매장들을 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목적지로 가는 골목이 나오자 방향을 북쪽으로 꺾어 올라갔다.
멀지 않은 곳에 ‘로터리 푸드마켓’ 청담점의 간판이 보였다.
그걸 본 순간 아키라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하지만 그런 표정은 언제 나타났는지 모르게 빠르게 사라졌다.
흥얼흥얼!
그는 기미가요를 흥얼거리며 산책을 하듯 걸어갔다.
그러다가 뭔가 생각난 것 같은 표정을 짓더니.
곧바로 ‘로터리 푸드마켓’ 청담점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부유한 동네답게 안에 진열된 것들은 전부 최상품이었다.
대신 가격은 다른 곳에 비해 3배나 비쌌다.
그런데도 안에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이렇게 해도 장사가 잘된다는 게 그로서는 참 신기한 일이었다.
아키라는 속으로 욕을 했다.
하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도 꼼꼼히 진열장에 있는 상품을 살피는 척 했다.
띠링!
그때 그의 스마트폰에 다시 문자가 들어왔다.
아키라는 재빨리 눈으로 문자를 훑었다.
아이디는 ‘711’, 내용은 아까처럼 숫자 ‘44’가 찍혀있었다.
그걸 확인하자 그의 눈에 서늘한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런 기운은 곧 나타난 것보다 더 빠르게 사라졌다.
아키라는 포도주 진열장에서 한참 동안 서 있었다.
그러다가 슬쩍 청과물 코너로 방향을 꺾었다.
전방에 웃음꽃이 만발한 중년 부부의 모습이 보였다.
뭐가 그렇게 좋은지 두 사람의 얼굴에는 웃음과 미소가 꺼질 틈이 없었다.
그 모습에 아키라는 살짝 이를 물었다.
이것저것 구경을 하면서 옆으로 이동했다.
최대한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하지만 좀처럼 마주칠 절호의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근접 경호원이 무려 넷이나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칙쇼! 매장 안까지 경호원을 데리고 들어오다니.’
아키라는 속으로 이를 갈았다.
그렇다고 이대로 포기하기는 너무 아까웠다.
잠시 생각을 하던 그는 곧바로 작전을 바꿨다.
보디백에 손을 넣은 그는 수건으로 쌓인 물건을 꺼내 들었다.
그리곤 대뜸 몸을 돌려 중년 부부를 향해 겨눴다.
“건담!”
“꺄아악!”
탕!
커다란 총소리가 매장 안을 울렸다.
놀란 중년 부부가 쓰러지고 경호원들이 두 사람을 빠르게 감쌌다.
아키라는 순간 깜짝 놀랐다.
경호원 중 둘이나 그의 총구와 직선이 되는 동선을 몸으로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훈련을 잘 받아도 이런 상황에서 육탄방어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경호원 둘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몸을 움직였다.
“꺄아악!”
“뭐야 이거?”
“어디서 총소리가 났어.”
매장 안은 순식간에 난리가 났다.
직원들이 뛰어다니며 상황을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성질 급한 사람들은 벌써 경찰서에 신고까지 했다.
아키라는 재빨리 손에 든 권총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리고는 슬그머니 현장에서 뒷걸음질했다.
덥석!
그렇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중년 부부의 경호원 중 하나가 어느새 다가와 그의 뒷덜미를 단단히 부여잡고 있었다.
“오해이무니다. 저건 진짜 총 아니무니다. 장난감 총이무니다.”
아키라는 급히 두 손을 위로 들고는 변명을 해댔다.
그런데 건장한 남자 경호원의 행동이 참 이상했다.
마치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가 가지고 온 장난감 총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다만 시선을 아키라의 얼굴에 집중시키고 있을 따름이었다.
“아니, 이거 뭐야?”
“어! 장난감 총이네.”
“그런데 어디서 총소리가 났어.”
“여기서 난 건가?”
때마침 매장의 매니저와 직원들이 달려왔다.
그들은 바닥에 떨어진 장난감 총을 집어 들고는 별거 아니라는 듯 떠들어댔다.
그때였다.
“여보! 여보!”
“구급차! 구급차를 불러줘요.”
바닥에 쓰러져있던 중년 부부의 다급한 목소리가 매장을 울렸다.
그제야 그들을 발견한 매니저와 직원들이 부랴부랴 손님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이들의 행동은 애초에 경호원들에 의해 제지당했다.
끼이익!
밖에서 급하게 정차하는 소리가 나더니.
안으로 경호원들과 같은 복장을 한 여자 둘이 득달같이 들어왔다.
그들은 주변의 그 어떤 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오직 쓰러져 있는 중년 부부에게만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아키라는 자신의 뒷덜미를 잡은 경호원 겨드랑이 사이로 그 현장을 똑똑히 눈으로 지켜봤다.
“사모님, 진정하세요.”
“저희가 왔어요.”
“아기가, 아기가! 배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밝게 웃던 중년 부인!
그녀의 얼굴은 어느새 하얗게 질린 채 사색이 다 되어버렸다.
두 여자는 조심스럽게 중년 부인을 부축해 밖으로 옮겼다.
그런데 그녀의 다리 사이로 붉은 피가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키라는 그걸 목격하고는 자신도 모르게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다시 울상을 지었다.
하지만 이미 그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경호원에게 그 모습을 들킨 뒤였다.
“오해이무니다. 저를 풀어주십시오.”
“…….”
아키라는 사람들이 보라고 강하게 몸부림을 쳤다.
그런데 너무나도 쉽게 경호원은 그를 풀어줬다.
그러면서 딱 단 한마디만 했다.
“곧 찾아갈게.”
“…….”
그 말에 철면의 아키라도 순간 표정 관리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내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오해이무니다.”
로터리 푸드마켓 청담동 지점 매니저는 빠르게 사태를 파악하곤 사색이 됐다.
“좆됐다.”
“왜요? 매니저님.”
“너 금방 밖으로 나간 분이 누군지 알아?”
“누구데요?”
“이대한 부모님이야.”
“네에?”
매니저의 말에 앳된 얼굴을 한 남자 직원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설마 요새 한창 뜨고 있는 축구선수 이대한 말이에요?”
“그래. 네가 좋아하는 ‘레전드 오브 포르낙스’ 영화의 주인공 이대한!”
“오마이갓!”
남자 직원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워했다.
그러다가 시선이 바닥으로 향했다.
“저, 저건?”
“하혈이야.”
“네에?”
“늦둥이를 임신하신 모양인데……. 이거 큰일 났네.”
매니저는 아주 심각한 표정을 하며 아키라를 쳐다봤다.
그제야 사태를 파악한 남자 직원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설마, 유산된 건 아니겠죠.”
“야!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정말 그렇게 되면 우린 끝이야.”
“왜요?”
“너 소문 못 들었어? 우리 로터리 그룹을 인수·합병한 게 이대한이라는 것을?”
“에이, 설마요.”
남자 직원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사이 눈치 빠른 여직원이 걸레를 가져와 바닥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매니저는 여직원의 행동에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놈이 아직 세상 무서운 줄 모르네. 로터리 그룹뿐만이 아니라 한양그룹까지 한꺼번에 먹어치운 게 이대한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어.
“아!”
매니저의 말에 매장 직원들은 다들 감탄사를 터트렸다.
동시에 조금 전에 일어난 사건이 이제 얼마나 큰 문제가 될지 상상하기 시작했다.
“경찰 오면 이 사람이 범인이라고 넘겨야겠다.”
“일본사람 같은데요.”
“아까부터 자꾸 오해라고 하는데, 아무리 봐도 오해가 아닌 것 같아.”
“왜요?”
“왜요는 일본 담요고. 우리 마켓에서는 저런 장난감 취급하지 않잖아. 그럼 저게 어디서 왔겠냐?”
“누군가 가져왔겠죠.”
“빙고.”
아키라는 순간 등이 서늘해졌다.
자신을 수상한 눈초리로 쳐다보면서 대화를 하는 두 남자.
그런데 너무나도 진실과 가까운 추측을 해대고 있었다.
그래도 아키라는 흔들리지 않았다.
자신이 반도에 넘어온 목적은 십분 달성하고도 남은 상태였다.
혹시나 하고 가져온 소품이 이런 대박을 터트릴지는 사실 그도 몰랐다.
정말 유산이라도 된다면 아마 특별 보너스까지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 왜 도망가지 않죠?”
“도망가다니.”
“보통 이런 일이 터지면 놀라서 도망가잖아요.”
“그러게. 진짜 수상하네.”
아키라는 속으로 뜨끔했다.
생각해보니 정말 그럴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움직일 수 없었다.
여기서 도망가면 진짜 문제가 커진다.
차라리 경찰에 잡힌 후!
일본 대사관 직원이 와서 자신을 풀어주는 시나리오가 더 낫다.
“야! 가서 CCTV 녹화 떠놔!”
“네에?”
“그거 경찰에만 제출할 게 아니야. 당장 본사에도 보내야 하고 이대한 부모님들 경호원들에게도 줘야 해!”
매니저가 뒷수습에 들어가자 매장 직원들도 빠릿빠릿하게 움직였다.
“아!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리고 너는 여기 서서 이 사람 도망 못 가게 잘 지켜!”
“네.”
매니저는 이미 단단히 각오한 모양이었다.
사건이 좋게 끝나면 다행이지만.
만약 잘못되면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다.
정말 그런 순간이 온다면 누구보다 떳떳했다는 것을 밝혀야만 한다.
그래야 다른 직장이라도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버벅대다가 실기하면 천하에 죽을 놈이 되는 것은 아마도 순식간의 일일 것이다.
“경찰입니다.”
“신고받고 왔습니다.”
“아! 어서 오세요. 이쪽입니다.”
마침 정복을 입은 경찰 둘이 도착해서 무슨 일인지 물었다.
매니저는 경찰에게 조금 전 일었던 사건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했다.
“네에? 이대한의 어머님이 하혈하셨다고요?”
“저 일본인이 장난감 총으로 놀라게 했다고요?”
경찰 둘은 같은 뉘앙스로 서로 다른 말을 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둘의 다음 행동은 똑같았다.
그들의 시선이 아키라를 향한 것이다.
“스미마셍!”
아키라는 썩은 미소를 지으며 급히 고개를 숙였다.
“저 사람 일본 관광객 같은데.”
“일단 서로 모시자.”
그들은 골치 아프다는 표정을 대놓고 드러냈다.
여기서 자칫 잘못하면 외교 문제로 비화될 수 있었다.
가뜩이나 최근 사이가 안 좋은 일본이라서 둘은 일단 말을 아꼈다.
경찰은 현명하게 말로 실수하지 않고 정중하게 먼저 양해를 구했다.
그리고는 경찰차에 태워 경찰서로 데려갔다.
얼핏 그걸로 일이 다 끝난 듯 보였다.
하지만 이 사건의 여파는 곧 일파만파로 퍼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