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9화 <흥행의 조짐>
“에바가 참 손이 빨라.”
“새로 뽑은 경력직 직원들이 일을 잘하고 있는 거겠죠.”
“어느 쪽이든 저걸로 돈을 쓸어 담겠어.”
“스타팅 포인트로 활용되고 있는 마을이 365개나 되니 적지 않은 수입이 될 거예요.”
그는 엘라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그런데 광고비는 얼마나 받는 거야?”
“처음이라 그리 많이 받지는 못해요.”
“그럼 푼돈이란 말이야?”
“네, 하지만 곧 푼돈이 목돈이 될 거예요.”
“하긴 이런 폭발적인 추세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그들은 마을 동문으로 나왔다.
두 번째 의뢰인 ‘죽음의 공동묘지’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여긴 언데드 던전으로 앞으로 ‘좀비 밭’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될 곳이었다.
제법 경사가 가파른 골짜기.
안으로 들어서자 뿌연 안개가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좀비가 나오는 곳에 안개라니.”
“이거 정말 환상의 콜라보레이션이네요.”
“그런데도 사람이 꽤 많다.”
“그만큼 여기가 인기 있는 레벨업 장소라는 뜻이겠죠.”
엘라의 판단은 정확했다.
유저들은 이런저런 의뢰를 받아서 해결해보더니 죄다 이곳으로 달려왔다.
시간 대비 레벨업 효과가 가장 좋은 곳이 바로 ‘죽음의 공동묘지’였던 것이다.
쿠화아아!
그때부터 끔찍한 괴성이 귓전에서 떠나지 않았다.
냄새를 맡을 수 있다면 분명히 시체 썩는 냄새가 코를 찔렀을 것이다.
어쨌든 시각적으로 잘 표현된 필드 던전에는 사방에 좀비 떼가 널려있었다.
그래서 조금만 방심하면 바로 죽음이었다.
그건 대한과 엘라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엘라! 여기서 싸우지 말고 저기 납골당 위로 올라가자.”
“좋은 생각이에요.”
둘은 재빨리 좀비들을 헤치며 달려갔다.
안개로 인해 좀비들을 확인하기 어려워서 어렵게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잘 보이지 않는 것은 좀비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안개라는 환경을 적절히 이용해 좀비 떼를 뚫고 작은 납골당 건물로 무사히 올라갔다.
“해변에 있던 바위가 생각나네요.”
“별로 높지 않아서 오래 버티지는 못할 거야.”
“그럼 다음 납골당으로 넘어가면 되죠.”
엘라의 제안에 대한은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납골당 위에서 주변을 살폈다.
계곡 사이에 끝없이 넓게 펼쳐진 공동묘지가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로 간간이 허름한 납골당이 서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쿠아아아!
둘이 자리를 잡고 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좀비 떼가 밀려왔다.
대한과 엘라는 납골당 위에서 좀비들의 대가리를 터트렸다.
안전하게 그렇지만 손쉽게 경험치를 쌓아갔다.
이 모습을 본 다른 유저들이 하나둘씩 대한과 엘라를 따라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은 한 가지 간과한 게 있었다.
좀비들의 시체가 쌓이면 그게 발판이 되어버린다는 사실을 말이다.
대한과 엘라는 그렇게 되기까지 납골당 옥상에 계속 머물지 않았다.
대신 적당히 좀비를 잡으면 바로 다음 납골당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욕심이 지나친 유저들은 그렇게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덕분에 전우(?)의 시체를 밟고 넘어온 좀비들에게 삽시간에 물어 뜯겨 죽음을 맞이했다.
띠링 띠링!
―레벨업! 축하합니다. 레벨이 오르셨습니다.
―근력이 올랐습니다.
―체력이 올랐습니다.
―민첩이 올랐습니다.
―레벨업으로 스킬 포인트 1개를 얻으셨습니다.
―스킬 트리를 열어 스킬 빌드를 하세요.
언제 들어도 좋은 달콤한 알림음이 터졌다.
둘은 거의 동시에 레벨업을 했다.
싱긋 미소를 지으며 한 명씩 빠르게 스킬 빌드를 찍었다.
그럴 때마다 그들은 조금씩 더 강해졌다.
이제 돈을 모아 장비를 업그레이드하면 아마 더 안정적인 사냥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한과 엘라는 그렇게 ‘죽음의 공동묘지’를 시작으로 열심히 용병 길드에서 받아온 의뢰를 수행해나갔다.
오크의 복수
리자드맨의 칼
해변의 무법자
고스트 버스터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그리고 끝내 기다리던 순간이 찾아왔다.
“야호! 드디어 끝났다.”
“이제 승급할 수 있게 됐어요.”
“30렙이니 전직도 가능해졌어.”
둘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환호성을 질렀다.
시계를 보자 게임을 시작한 지 정확히 3시간이 지나있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해야겠다.”
“네, 저도요. 그래도 승급과 전직은 하고 끝내요.”
“그거야 당연하지.”
대한과 엘라는 곧바로 승급부터 했다.
최하급 용병에서 하급 용병이 됐다.
이제 의뢰도 최하급 의뢰에서 하급 의뢰까지 받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시작 마을에서는 하급 의뢰를 취급하지 않는다.
하급 의뢰를 받으려면 마을을 떠나 더 큰 도시로 가야 했다.
“올! 이건 무조건 슬레이어지.”
“난 스나이퍼로 할래요.”
대한은 슬레이어, 엘라는 스나이퍼를 택해 전직했다.
그는 힘과 체력에 이어 민첩의 보너스를 받았다.
그녀도 민첩과 정확도에 이어 힘과 체력을 약간 보너스로 받았다.
로그아웃하자 제니와 야엘이 다가와 물수건을 건넸다.
“마스터! 수고하셨어요.”
“엘라! 수고하셨어요.”
대한과 엘라는 제니와 야엘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고맙다.”
“고마워!”
“천만에요. 출출하시면 간식 가져다드릴까요?”
“따뜻한 차도 준비되어 있어요.”
둘은 제니와 야엘의 제안을 굳이 거절하지 않았다.
“그냥 다 가져와!”
“네, 마스터.”
잠시 대한과 엘라는 간식을 먹고 차를 마시면서 휴식(?)을 취했다.
아마 세상에서 게임을 하고 난 후!
이렇게 수고했다며 간식과 차를 내오는 곳은 아마 없을 것이다.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차를 마시고 있는데 에바가 다가왔다.
그녀는 대뜸 기쁜 소식을 전한다며 홀로그램을 열었다.
“보세요! 드디어 우리 영화가 백만을 찍었어요.”
“어멋! 정말이네.”
“우와아! 언제 이렇게 많이 올랐지?”
엘라와 대한은 홀로그램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마스터와 엘라가 게임을 즐기고 있는 사이, 다운로드 수도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얼마나 되는데?”
“여기 숫자가 나와 있습니다.”
홀로그램을 확대하자 한쪽에 게임의 다운로드 숫자가 실시간으로 갱신되고 있었다.
그런데 벌써 2백만을 넘어선 상태였다.
“게임 연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이렇게 다운로드를 많이 받았어.”
“아무래도 재미있다고 소문이 난 모양입니다.”
확실히 게임은 재미있으면 금방 소문이 난다.
거기에다 ‘포르낙스’는 무료 게임이다.
원하면 누구든지 할 수 있는 게임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이렇게 쉽게 숫자가 폭발적으로 불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대한을 가장 기쁘게 만든 것은 영화였다.
비록 인터넷 스트리밍이었지만 백만 시청자를 달성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었다.
그리고 그 숫자는 지금도 무섭게 불어나고 있었다.
“한 가지 더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뭔데?”
“영화 ‘레전드 오브 포르낙스’를 극장에서 상영하고 싶다는 월트 사(社)의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정말?”
“네, 정말입니다.”
이건 정말 놀라운 사건이었다.
안 그래도 대한은 이 영화가 극장에서 개봉되길 바라는 욕심이 있었다.
그런데 직접 스크린에 걸기도 전에 먼저 제안이 들어왔다.
그것도 세계적인 메이저 영화 배급사인 월트 사(社)였다.
“혹시 다른 곳에서도 연락이 왔어?”
“아직 제안이 들어오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워너 브러더스, 유니버설 픽처스, 파라마운트 픽처스, 소니 픽처스 모두 우리 영화를 상영하려고 검토 중이랍니다.”
“오오! 지금 말한 곳이 전부 미국의 메이저 영화 배급사지?”
“네, 그렇습니다.”
세계의 영화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곳은 할리우드다.
가장 큰 시장도 역시 미국이었다.
그러니 세계적인 영화 배급사의 순위는 당연히 미국의 메이저 영화 배급사로부터 시작된다.
그중에서도 월트 사(社)는 수십 년 동안 미국의 영화와 애니메이션 시장을 석권한 메이저 중의 하나다.
만약 월트 사와 얘기가 잘 된다면 전 세계의 극장에 대한의 영화가 상영되는 것을 보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얘기 잘해서 잘 되는 쪽으로 추진해봐!”
“안 그래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저쪽에서도 상당히 긍정적으로 보고 있어서 특별한 일이 없다면 조만간 계약할 수 있을 거예요.”
“좋았어.”
대한은 기쁜 마음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사실 그가 영화를 만드는데 별로 한 일은 없었다.
하지만 자신이 주인공이 된, 기왕 만들어진 영화이니 되도록 크게 흥행에 성공하길 바랬다.
“오빠! 축하해요.”
“에이. 벌써 무슨 축하야.”
기분이 좋긴 했다.
그래도 엘라의 축하를 받기에는 좀 이른 감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대한의 입술에 진하게 키스를 선사했다.
엘라의 아낌없는 축하 인사에 그는 괜히 기분이 방 뜨는 것을 느꼈다.
“저 인제 그만 들어가 볼게요.”
“벌써 잘 시간이야?”
“네.”
시계를 보니 정말이었다.
언제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갔는지 모르게 지나갔다.
어쩐지 축하 인사치고는 엘라가 너무 진하게 키스를 한다고 생각했었다.
캡슐이 설치된 방으로 들어가는 엘라의 모습!
대한은 그녀의 육감적인 뒤태를 바라보며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에바!”
“네, 마스터.”
“도대체 캡슐 안에서 하는 일이 뭐야?”
“브레인 데미지를 복구하고 뇌세포를 재생하고 있습니다.”
에바의 말에 대한은 입을 딱 벌렸다.
“브, 브레인 데미지?”
“모르셨습니까?”
“그게 그 소리였어?”
몸이 아직 완전하지 않다는 말은 들은 기억이 났다.
하지만 그게 브레인 데미지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왜 브레인 데미지가 일어나는 거야?”
“그거야 당연한 결과죠.”
“그러니까 뭐가 당연한 결과냐고.”
대한의 목소리에는 짜증과 걱정이 잔뜩 섞여 있었다.
“슈퍼 인공지능과 시스템이 하던 일을 인간의 뇌로 감당하려고 하니 당연히 무리가 올 수밖에요.”
“아!”
에바의 한 마디에 그는 엘라의 상태를 단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예전에 초자아 슈퍼 인공지능과 시스템이 결합한 에듀케이션 모듈 때 했던 일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는 말이지.”
“아닙니다. 거기에다 히릭스와 태양계 곳곳에 세워지고 있는 콜로니, 지구의 온갖 문제까지 전부 손대고 있습니다.”
“아!”
이건 그냥 생각만 해도 뇌가 지글지글 끓을 것만 같았다.
거기에 비하면 대한은 매일 노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동안 밀린 결재서류 때문에 투덜거리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휴! 난 그것도 모르고.”
“마스터의 잘못이 아닙니다.”
“아니야. 내 잘못이야. 모르는 것도 죄가 될 수 있는 거라고.”
“전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네요.”
대한은 가만히 에바를 쳐다봤다.
그러다가 문뜩 물었다.
“너 지금도 엘라와 연결되어있어?”
“하루에 한 시간 정도는 반드시 휴식을 취해야 합니다.”
“지금이 바로 그 시간인 모양이구나.”
“네, 뇌세포를 재생시킬 때는 뇌를 쓰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왠지 지금이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에바에게 솔직하게 물어봤다.
“네 생각에 엘라를 어떻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전 그걸 결정할 권한이 없습니다.”
“그냥 조언이라고 생각할 테니까 얘기해봐!”
“그럼 말씀드릴게요.”
에바는 잠시 몇 초 동안 가만히 대한을 쳐다봤다.
그러다가 문뜩 결심했는지 입을 열었다.
“일단 엘라의 일을 대폭 줄여야 합니다. 그러려면 당연히 연결을 끊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마스터와 연결된 상태를 해결해야 독립적인 인격체로 설 수 있습니다.”
“독립적인 인격체라…….”
“지금은 아니라는 건가?”
“엘라가 마스터에게 종속되어 있다는 것은 누구보다 마스터께서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으음.”
에바의 말에 대한은 무거운 신음을 토했다.
“혹시라도 나와 연결이 끊어지면 엘라에게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그럴 일은 아마 없을 겁니다. 안 그래도 그것에 대비해서 여러 가지 실험과 시뮬레이션을 돌려봤습니다. 결론은 99.99%로 문제없다고 나왔습니다.”
“전에는 나와 떨어지면 죽는다고 했는데.”
“그건 그때의 여건에서 생각할 수 있는 최상의 예상이었을 뿐입니다. 히릭스를 가지게 된 지금, 전보다 수백만 배 더 나아진 환경에서 판단이 가능해졌습니다.”
그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진중히 그녀의 말을 계속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