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5화 <흔들리는 대륙>
“오빠의 능력을 평가절하하지 마세요. 뭐든 원하시는 대로 다 할 수 있어요.”
“혹시 에바의 조언 기능을 없앴어?”
“그렇진 않아요. 다만 전과는 달리 그 폭을 조금 제한했을 뿐이에요.”
하긴 이제 엘라가 있는데 굳이 에바에게 중요한 결정을 내리게 할 필요는 없었다.
“그럼 엘라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결정하기 전에는 신중해야겠지만 결정을 하셨다면 거침없이 밀고 나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녀의 대답에 대한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에바가 하는 조언과는 그 질이 달랐다.
상대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부드럽게 핵심을 찌르는 엘라의 조언!
그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엘라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를 했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에바를 쳐다봤다.
“김정은과 주전파를 실각시키고 온건파가 북한의 정권을 잡도록 유도해!”
“김정은은 제거할까요?”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어. 잠시 의식을 잃어버리는 정도로만 해도 자연스럽게 새로운 세력에 의해 숙청될 거야.”
“네, 알겠습니다. 즉시 시작하겠습니다.”
에바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홀로그램에서 보이는 북한의 주석궁에서 난리가 났다.
돌연 김정은이 쓰러져 의식을 잃어버린 것이다.
이미 온갖 성인병을 달고 사는 이였다.
조금 빨리 쓰러진다고 누가 의심할 사람은 없었다.
뒤이어 남북의 평화통일을 반대하고,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친중 공산당 고위간부들과 군부의 실세들이 하나씩 제거됐다.
일부는 사고로 쓰러지고 일부는 반대파에게 숙청당하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엄청난 일이 일어났는데도 불구하고 북한의 군부는 크게 요동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저 대가리만 잘리거나 빠르게 교체되어갈 뿐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도 은밀히 북한의 정권교체를 측면지원하기로 약속했다.
그들과 핫라인을 통해 직접 소통하기도 하고 1 국가 2 체제로 통합한 뒤.
점진적으로 통일이 되는 방안을 모색했다.
이 모든 일의 배후에는 당연히 대한과 에바가 있었다.
특히 그동안 회유하거나 포섭한 자들이 가장 활약을 하며 크게 약진했다.
그들은 에바의 보이지 않는 도움으로 쉽게 북한 정권의 실세로 등극할 수 있었다.
이렇게 북한의 정권이 소리소문없이 빠르게 교체되어갔다.
“요새 중국과 일본은 좀 어때?”
그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옆 나라로 이동했다.
“양쪽 모두 정권에 큰 위기를 맞았어요. 그래서인지 대한민국에 아주 강경한 자세를 취하고 있어요.”
“내부의 불만을 외부로 돌리는 전형적인 수법이지.”
대한은 중국공산당과 일본 자민당의 전략을 바로 파악해버렸다.
중국이나 일본이나 만만한 대한민국을 때리는 게 이젠 버릇이 되어버렸다.
중국은 사드를 핑계로 무역을 제한했었고, 일본도 말이 안 되는 이유로 경제보복을 단행했었다.
두 가지 다 크게 실효가 없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용두사미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 기업들이 전혀 손해를 보지 않는 것은 아니다.
대기업을 비롯해 많은 중소기업이 이로 인해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로 인해 중국에선 우리 기업들의 대탈출이 일어났고, 일본은 소재와 부품 등 그동안 의존도가 높았던 물품의 국산화와 수입 다변화가 이뤄졌다.
“소프트한 방법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럼 하드한 방법으로 가야지.”
에바의 조언에 대한이 강경하게 대꾸했다.
“현재 중국은 사사건건 트집을 잡아 대한민국과 분란을 유도하고 있어요. 전쟁까지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멈추지 않고 도발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홀로그램을 보자 대한민국의 방공식별구역을 넘나드는 중국과 러시아의 군용기가 보였다.
대한은 잠시 생각하다가 바로 명령했다.
“정부를 움직여서 중국과 러시아에 최후통첩하라고 해.”
“앞으로 대한민국의 방공식별구역을 넘는 군용기는 경고 후 바로 추락시키겠다고 말이죠?”
“응, 그래.”
에바는 그의 생각을 바로 이해했다.
전에도 한번 전투기에서 군용기를 향해 기관포를 쏴서 강력하게 대응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놈들이 아직 정신을 못 차렸는지 자꾸만 도발을 감행해왔다.
“동해에서도 일본의 함대가 독도 영해를 고의로 침범하는 등 각종 도발을 해오고 있습니다.”
“그것도 이번 기회에 같이 해결하자.”
“일본의 구축함을 침몰시킬까요?”
“아니. 그보다는 먼저 그들이 미사일을 쏘게 만들어봐!”
“아! 그것참 좋은 방법이네요.”
에바가 신난다는 표정을 지으며 여러 방안을 홀로그램에 띄웠다.
대한은 그중 하나를 선택해 빠르게 결정을 내렸다.
옆에서 엘라가 조용히 그의 어깨를 주물러주며 힘을 실어줬다.
왠지 하나가 둘로 나뉜 것 같은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굳이 자기 생각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걸로는 아마 많이 부족할 거야.”
“물론이죠. 이제는 중국공산당을 응징해야 합니다.”
“중국공산당은 부정부패로 만연된 조직이야. 그러니 거기서부터 시작하면 되겠다.”
“네, 당장 중국공산당 간부들이 저지른 온갖 부정부패와 비리를 폭로하겠습니다. 아울러 그동안 저질렀던 수많은 살인과 고문, 납치와 인체실험 등의 만행을 전부 까발리겠습니다.”
“그래. 융단폭격하듯이 일시에 중국 전역에 동시다발로 뿌려버려!”
“네, 마스터! 놈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도록 하겠어요.”
“특히 소수 민족말살정책의 민낯이 드러나게 해줘!”
“당연하죠. 그래야 소수민족 독립의 열망에 기름이 부어질 테니까요.”
그동안의 온건한 방법은 다 잊었는지.
대한은 빠르게 대응 수위를 끌어올렸다.
당장 중국 전역에 중국공산당의 부정부패 및 비리 사실이 폭로됐다.
뉴스는 물론이고 SNS와 인터넷에서도 폭넓게 그 증거가 뿌려지고 있었다.
중국공산당 당국은 어떻게든 뉴스와 SNS 및 인터넷을 차단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불길처럼 번져가는 사태에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
거기에다 에바가 중국공산당의 인터넷 검열시스템을 해킹했다.
대신 서버를 바이러스처럼 중국 전체로 소문을 퍼트리는 데 십분 활용했다.
“잘했어. 그런데 중국공산당이 가지고 있는 안면인식 시스템도 문제야. 그걸 통해 중국인들의 민주화 열망이 사전에 봉쇄당하고 있어.”
“당장 CCTV를 통해 얼굴을 인식하는 프로그램과 서버 및 시스템 일체를 영원히 사용할 수 없도록 망가뜨리겠습니다.”
에바는 말을 하면서 바로 그의 명령을 실행했다.
중화인민공화국 국가안전부 (Ministry of State Security, MSS)와 공안 당국은 갑작스러운 검열시스템과 안면인식 시스템 마비에 크게 당황했다.
이 소식을 접한 중국의 시 주석이 크게 화를 내는 모습이 보였다.
―당장 인터넷을 끊어버려!
―예, 알겠습니다.
주석의 초강경 지시에 비서들은 다급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던 대한이 결국 칼을 빼 들고야 말았다.
“정치 감각이 아주 무뎌졌군. 아주 똥오줌을 못 가리네.”
“어떻게 할까요?”
“퇴출해야지. 계속 가만히 내버려 뒀다간 더욱 큰 사달을 일으키겠어.”
“예, 마스터.”
대한의 한마디 말에 에바는 당장 중국의 절대권력자 시 주석을 노렸다.
방법은 상당히 많았다.
하지만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결정했다.
쿵!
시 주석이 계단에서 미끄러졌다.
넘어지면서 바닥에 크게 머리를 부딪쳤다.
기절한 시 주석에 다가간 에어볼이 순식간에 나노셀을 투여했다.
놀란 비서진이 달려와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이미 전신이 마비된 시 주석은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주석궁에 상시 대기 중인 의사들이 달려왔다.
그들은 시 주석을 응급실로 데려가 살펴봤다.
그러나 그 어떤 약과 시술로도 시 주석은 깨어날 줄 몰랐다.
이 소식은 빠르게 주석궁을 퍼져나갔다.
“좋은 소식은 서로 나누는 게 맛이지.”
“즉시 이 기쁜 소식을 전 세계에 타전하겠습니다.”
에바는 대한의 말을 바로 받아먹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 세계는 경악했다.
중국의 절대권력자가 쓰러져 의식불명이 됐다는 소식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각국은 이 사태를 어떻게 이용할지.
그리고 사실인지 알아내려고 백방으로 날뛰었다.
하지만 이 사태를 제일 먼저 알고 활용한 것은 역시 중국공산당이었다.
그동안 숨을 죽이고 있던 각지의 잠룡들이 일제히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그들은 하나 같이 무주공산이 되어버린 중국의 권력을 잡으려고 치열한 물밑 작업을 벌였다.
그 와중에 모종의 세력이 개입해 서로 간에 극심한 불화를 일으켰다.
덕분에 중국은 권력투쟁의 전장으로 변해갔다.
“앞으로 계속, 그리고 꾸준하게 중국공산당의 부정부패와 비리를 터트려!”
“네, 마스터.”
대한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이건 에바에게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효과가 아주 직빵이었다.
중국공산당에 대한 실망감이 중국 전역의 인민들에게 빠르게 퍼져나갔다.
이와 동시에 신장 위구르와 티베트의 무장독립단체들도 일제히 봉기했다.
그동안 에바는 이들에게 꾸준히 독립자금과 무기 및 고급정보를 제공해왔다.
그로 인해 예상보다 빠르게 이들의 세력은 무서운 속도로 불어났다.
그걸 눈치챈 현지 공안들이 급히 중국공산당 중앙당에 보고서를 올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깜깜무소식이었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정보를 차단하지 않고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당연히 그 주범은 바로 에바였다.
그녀는 이에 그치지 않고 무장독립단체 안에 스며든 공안의 밀정들까지 모두 색출할 수 있도록 결정적인 도움을 줬다.
덕분에 그들은 빠르게 조직을 정비하고 본격적인 무장투쟁의 장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나머지는 에바가 알아서 적절하게 조치해.”
“네, 마스터! 대한민국 정부와 상의해서 잘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에바가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녀의 모습은 그대로인데 뭔가 바뀐 기분이 들었다.
아니 바뀐 것은 아마도 대한의 마음이 아닐까 싶었다.
그는 속으로 한숨을 쉬며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그러자 에바가 알아서 조용히 밖으로 물러갔다.
“오빠, 많이 불편하세요?”
“뭐 전혀 아니라고는 말 못 하겠네.”
“그럼 에바를 대외관계로 활용할게요.”
엘라의 말에 대한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깜빡였다.
“대외관계라니?”
“에바의 존재는 이미 각국의 정보망에 노출된 상태예요. 그러니 이제 오빠의 비서는 제가 맡고 대신 에바를 밖으로 돌려 대외관계를 담당하게 하려고요.”
나쁘지 않은 생각이다.
그렇다고 억지로 에바를 밖으로 돌릴 생각은 없었다.
이런 마음을 눈치챘는지, 엘라는 대한의 손을 가만히 잡았다.
“코레그룹을 위해서도 누군가는 꼭 나서야 해요. 아무래도 에바가 나서는 게 좋지 않겠어요?”
“그건 그렇지.”
에바는 가장 믿을 수 있고 가장 확실한 대한의 패였다.
그러니 당연히 이런 일을 잘 감당해낼 수 있을 것이다.
“엘라가 에바에서 나와도 인공지능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 모양이네.”
“아주 영향이 없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전보다 감정적인 반응이 좀 떨어지네요.”
“그거야 안에 엘라가 없으니까 그렇지. 아!”
그제야 대한은 자신의 머릿속에 맴도는 괴리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 영혼이었다.
에바는 뭔가 영혼 없이 떠도는 기분이었다.
대신 실체를 가진 엘라가 되어 나타났다.
그렇게 정리하니 자신의 마음이 딱 맞아떨어진 것처럼 편해졌다.
“그래. 에바를 코레그룹의 대외 홍보이사로 발령하자.”
“네, 오빠!”
대한이 결단을 내리자 엘라가 화사한 웃음으로 답했다.
하얀 치아가 드러나는 그녀의 웃음!
순간, 그동안의 걱정과 근심이 전부 허사가 되어 날아가버렸다.
아니 쓸데없는 생각에 괜히 힘을 뺀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까지 들었다.
“그래도 오늘까지는 일을 마무리하게 해줘요.”
“당연하지.”
대한의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시 에바가 들어왔다.
그 모습에 그는 살짝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엘라는 손으로 자신의 입을 가린 채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분명히 웃음을 참고 있는 게 분명했다.
“마스터의 비서에서 코레그룹 홍보이사로 승진 발령해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천만에.”
에바는 일단 예쁘게 고개를 숙였다.
그런 다음 싱긋 미소를 한번 짓고는 바로 홀로그램을 열었다.
어느새 그의 손엔 시원한 오렌지주스 잔이 들려있었다.
엘라가 쥐어 준 것이다.
그제야 두 여자에게 뭔가 당한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에바가 용건을 꺼내자 바로 집중했다.
“정부는 방사능 정화사업을 아주 적극적으로 환영하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쉽게 공감대를 형성한 모양이군.”
“필요하다면 모든 절차를 최대한 간략하게 줄여줄 용의가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준다면 우리야 고맙지.”
“대신 테스트는 한번 해보고 싶답니다.”
역시 그냥 넘어가는 법은 없었다.
하지만 이건 오히려 대한이 바라던 바였다.
대내외적으로 홍보할 수단으로 이것만 한 게 없으니까.
“대상은 당연히 국내의 원전폐기물이겠지?”
“네, 그래서 이번에 전남 영광군에 있는 한빛 원자력발전소에다 방사능 제거 및 중화시설을 짓기로 했습니다.”
“그럼 시간이 아주 많이 걸릴 텐데.”
“테스트를 위한 조립식 건물이라서 일주일이면 충분합니다.”
“그 정도면 할만하군.”
이런 일이라면 허락을 안 해줄 수 없었다.
“만약 허락하신다면 이번 시연에 일본 원자력위원회의 위원들도 초대해볼까 합니다.”
“그러니까 일주일 뒤에 열리는 방사능 제거 및 중화 시연에 일본 원자력위원회 위원들을 초청해 미리 작업을 벌이겠다는 말이지?”
“예, 그렇습니다.”
“좋은 생각이야.”
두말할 것도 없이 당연히 찬성했다.
일본에 아예 판매를 안 할 거라면 모를까!
팔 생각이라면 당연히 가장 가깝고도 먼 나라인 일본을 빼놓을 수 없었다.
그는 벌써 코레그룹이 일본의 엔화를 쓸어 담는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