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8화 <새로운 수익모델>
“우와! 이거 굉장한데.”
“역시 잘하시네요.”
에바는 옆에서 손뼉을 치며 응원을 보냈다.
대한은 연신 달려드는 괴물들을 물리치며 계속 던전을 돌파해나갔다.
파티원들이 다들 제 몫을 해주고 있어서 클리어하는 데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는 날아드는 괴물들에게 활을 쏘면서 계속 감탄했다.
“에바! 이건 무조건 하자.”
“던전 클리어가 얼마 남지 않았어요.”
“그런 말이 아니라, 이 게임을 꼭 출시하자는 뜻이야.”
에바는 그제야 대한의 말을 알아듣고는 미소를 지었다.
“게임이 마음에 드시는 모양이네요.”
“내가 장담하는데 이거 출시하면 아마 난리가 날 거야.”
“그 정도로 재미있어요?”
그녀에게는 단순한 양자의 얽힘에 불과한 프로그램일 뿐이다.
아니 이제는 0과1로 이루어진 비트가 되려나!
“물론이지. 스타드래프트의 전략과 다이아블로의 스토리, 와우의 개방성과 베그의 스릴이 모조리 한 게임에 들어있어. 거기에다 라네지의 중독성과 롤의 재미까지 섞여 있으니…….”
그는 말을 하다가 말고 혀를 내둘렀다.
잠시 사행성 게임에 관한 우려가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건 얼마든지 에바가 조절할 수 있으니 우려할 바가 아니었다.
“아직 게임의 1%도 해보지 않고 어떻게 확신하세요?”
“벌써 열 시간이 넘도록 게임을 했어. 그 정도면 성공할지 실패할지 충분히 알 수 있어.”
“컴퓨터로 게임을 할 수 있게 다운그레이드를 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대한은 활을 옆으로 내던지고 이번에는 거대한 대검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던전의 보스인 커다란 뱀, ‘무라밤바’를 향해 달려들었다.
“게임 전체를 바꾸려면 적어도 2주는 주셔야 해요.”
“우와! 엄청 빠르네.”
“하지만 방대한 세계관과 모든 컨텐츠를 전부 넣지 않는다면 1주면 가능할 거예요.”
그는 파안대소를 터트리며 미친 듯이 대검을 휘둘렀다.
던전 보스 무라밤바는 대한의 칼질에 큰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위축되기는커녕 더욱 더 독기를 내뿜었다.
상처 입은 맹수가 무섭다는 말이 사실처럼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캬아아아!
귀청이 터질 것 같은 무라밤바의 포효에 대한은 급히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지금 던전 보스를 상대하는 것은 그 혼자가 아니었다.
게임에서 만난 동료들이 사방에서 무라밤바를 일제히 공격했다.
놀란 무라밤바가 고개를 이리저리 휘두르며 그들을 상대했다.
덕분에 정신이 분산되자 자연스럽게 대한에게 기회가 왔다.
“이번에 얻은 유니크 검을 시험해봐야겠군.”
“그거 어렵게 얻은 건데 지금 쓰려고요?”
“물론이지. 원래 아이템은 바로 써줘야 맛이야. 아끼다 똥 되는 수가 있어.”
“에이. 더러워요.”
똥이란 말에 에바가 인상을 쓰면서 손짓을 했다.
하지만 그 모습까지 귀여운 그녀의 모습이었다.
고오오오!
인벤토리에서 꺼낸 유니크 검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마력을 쏟아붓자 당장 어마어마한 우윳빛 성스러운 광채를 폭사했다.
“받아랏!”
중2병 같은 멘트를 치며 대한은 힘차게 검을 휘둘렀다.
그제야 위기를 직감한 무라밤바가 입에서 ‘독의 정화’가 쏘아져 나왔다.
허공에서 대한이 쏘아낸 성광(聖光)과 무라밤바의 ‘독의 정화’가 정면으로 충돌했다.
하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울 정도였다.
유니크 검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무라밤바의 ‘독의 정화’가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반으로 갈라져 버렸다는 뜻이다.
쿠히이이이익!
끔찍한 비명이 주변의 대기를 마구 흔들어댔다.
무라밤바는 자신의 평생 모아 온 필생의 정화를 뚫고 날아오는 성광에 정통으로 맞고 쓰러졌다.
이에 동료들이 환호하며 급히 무라밤바의 급소를 공격했다.
거대한 도끼를 든 파티원 하나가 기어코 무라밤바의 목을 잘라내는 데 성공했다.
“이겼다.”
“승리했다.”
파티원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터트리며 좋아했다.
대한은 온몸이 뱀의 피로 더럽혀진 사내가 뭔가를 줍고 좋아하는 것을 보자 절로 미소를 지었다.
던전 보스를 잡았으니 당연히 뒤에 따른 보상을 챙기는 것이 순서다.
그도 얼른 무라밤바의 시체로 다가가 땅에 떨어진 아이템들을 챙겼다.
레어 아이템은 물론이고 유니크 아이템까지 하나 섞여 있었다.
누렇게 빛을 내는 금화 상자는 보너스에 가까웠다.
“이게 아직 1%도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라니 참 놀랍군.”
“제 말은 그동안 마스터가 타고 다닌 포탈의 숫자만 따진 것입니다. 콘텐츠로 말하자면 0.0001%도 겪어보지 못했어요.”
“하하하! 이 방대한 세계관과 셀 수 없이 많은 이 콘텐츠들 다 어떻게 할 거야!”
기분 좋은 웃음을 터트리며 대한이 물었다.
그러자 에바는 바로 정답을 얘기했다.
“앞으로 확장팩이란 이름으로 조금씩 나눠서 내놓겠습니다.”
“이 게임이 출시되면 당분간 사람들이 모두 일찍 귀가하겠군.”
“설마 그 정도는 아니겠죠.”
“글쎄. 그건 두고 봐야 알겠지.”
그의 의미심장한 말에 에바는 그저 눈만 말똥거렸다.
“그럼 영화보다 게임을 먼저 출시할까요?”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레전드 오브 포르낙스’가 먼저 나오는 게 좋아. 영화가 나오고 히트를 하면 그 유명세를 이용해 게임을 광고하는 거야. 그렇게 단계별로 밟아나가면서 사람들의 호기심을 최대한 자극하는 거야.”
“알았어요. 그렇게 해볼게요.”
사실 대한이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다.
에바에게는 얼마든지 대한이 나오는 영화와 게임을 홍보할 수단이 있었다.
최소한 인터넷 세상에선 그녀는 전능에 가까운 존재였기 때문이다.
“이제 그만해야겠다.”
“좀 쉬세요.”
“응, 많이 놀았어. 배도 좀 고프고.”
그러고 보니 정말 밥도 안 먹고 게임에 푹 빠져있었다.
대한이 손을 들어 허공의 한 점을 꾹 눌렀다.
스팟!
그러자 주변 환경이 즉시 변했다.
눈 한번 깜빡이는 짧은 순간!
그는 ‘포르낙스’라는 방대한 가상의 세계에서 대한타워 펜트하우스 거실로 돌아왔다.
“식사부터 하시겠어요?”
에바만 게임에서 보던 그 모습 그대로 옆에 서서 물었다.
“응.”
배가 고팠던 대한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부엌으로 가시죠. 식사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올! 나 배고플 줄 알고 미리 준비한 거야?”
“네, 제니와 야엘에게 마스터의 식사를 준비하라고 말해뒀어요.”
“잘했어.”
대한은 손으로 에바의 엉덩이를 토닥거렸다.
재빠르게 걸어서 부엌으로 들어가자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야! 이게 다 뭐야?”
“마스터를 위해 저희가 한식 특선요리를 준비했어요.”
“철저히 마스터의 입맛에 맞게 요리했으니 아마 마음에 드실 거예요.”
제니와 야엘이 대한을 보면서 환한 얼굴로 말했다.
그는 제니와 야엘에게 엄지를 척 들어 올렸다.
“수고했어. 그냥 냄새만 맡아도 엄청 맛있네.”
“마스터, 이리 앉으세요.”
에바가 얼른 그에게 다가와 앞의 의자를 빼줬다.
원래는 보통 여자를 위해 남자가 해주는 것인데.
어째 대한은 항상 그 반대였다.
그는 조금도 미안한 생각을 하지 않고 기꺼이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는 수저와 젓가락을 들었다.
갈비, 불고기, 파전, 냉면, 게장, 갈치 조림, 해물전골, 보쌈김치 등
보기만 해도 입에서 절로 침이 고여 나왔다.
“잘 먹겠습니다.”
대한은 웃으며 인사를 하고 본격적인 식사를 시작했다.
그동안 최상의 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과식을 자제했던 것과는 달리.
오늘은 아낌없이 음식을 먹었다.
다행히 그의 몸은 이제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다.
설사 살이 좀 찐다고 해도 대한의 몸에는 피코셀이 있다.
아니 그보다 먼저 매일 꾸준히 운용하고 있는 배틀푸르나, 탄탈러스, 크루세이더로 인해 몸의 지방이 남아나질 않았다.
덕분에 대한의 몸은 항상 멋진 근육질, 특히 명품 복근을 유지할 수 있었다.
“식사하면서 보세요.”
“응.”
에바는 막간을 이용해 그의 앞에 홀로그램을 하나 띄웠다.
“이건 앞으로 출시될 게임 ‘포르낙스’를 위해 제가 미리 만들어본 홈페이지에요.”
“굿!”
입에 음식이 가득 있어서 대한은 엄지를 들고 한마디를 하는 것으로 의사를 대변했다.
정말 누가 봐도 멋지고 심플 한 웹디자인이었다.
그녀의 미소와 함께 계속 말이 이어졌다.
“포르낙스 게임은 홈페이지를 통해 등록하고 다운을 받게 할 거예요.”
“유료로 할 거야? 무료로 할 거야?”
“당연히 부분 유료로 할 거예요.”
“설마 사행성을 조장하는 것은 아니겠지?”
사실 이게 제일 우려가 됐다.
게임의 성공과 실패는 얼마나 재미있느냐가 아니다.
얼마나 벌었냐이다.
하지만 다른 게임개발사와는 달리 대한에게는 에바라는 치트키가 존재했다.
그래서 굳이 돈을 벌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모두가 즐기는 게임을 만드는 게 가능했다.
그렇다고 마냥 무료로 풀 생각은 아니었다.
공짜라면 소도 잡아먹는다는 얘기가 있다.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법이다.
그래서 에바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해 머리를 썼다.
“최근 성공했던 게임들의 전략과 전술을 모두 분석했어요.”
“전부?”
“네, 몽땅 전수조사했어요.”
지금까지 나온 게임이 얼마나 되는지 아는 대한은 아예 상상하기를 포기했다.
“그래서?”
“역시 사행성 게임이 욕은 많이 얻어먹지만, 돈을 좀 벌어가더군요.”
대한은 불고기를 씹으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바로 이런 사행성 게임이다.
이건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일종의 도박이다.
재미있게 게임을 하고 싶은데 은근히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찾아보면 이런 게임 말고도 재미있는 게임이 얼마든지 있다.
에바가 그의 마음을 읽었는지 금세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하지만 그건 극히 일부에 불과해요. 정말 전 세계의 돈을 쓸어 담는 데는 따로 있어요. 그런 게임들은 아무리 유료로 내놓아도 사람들이 아낌없이 돈을 내고 잘만 사가더라고요.”
“그럼 유료로 하지 왜 부분 유료로 해?”
“돈이 없는 사람도 즐길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예요.”
“좋은 취지군.”
대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게장에 손을 댔다.
알이 통통하게 오른 게장!
한입 물고 쪽 빨아먹자 혀에서 미각의 폭풍이 일어났다.
냠냠!
입이 즐거워진 그를 향해 에바가 자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돈 한 푼 쓰지 않아도 게임을 하는 데는 전혀 지장 없게 할 거예요. 대신 캐릭터를 위해 멋지고 화려한 의상과 장비를 준비했어요. 무기와 스킬 효과도 개성 있게 만들고 다양한 각종 인벤토리와 네임테그, 소품 등을 만들었어요.”
“으음. 이제야 어떻게 수익을 내려고 하는지 알겠군.”
기본 캐릭터는 평범하다.
하지만 유료 캐릭터는 잘생기고 예뻤다.
게임을 하다 보면 캐릭터는 분신처럼 느껴진다.
당연히 게임과는 별개로 멋있고 아름답게 꾸미고 싶은 욕구가 들게 마련이다.
이건 게임의 내용과 스토리와는 전혀 무관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은 에바의 전략이 성공할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만큼 사람은 특별해지고 싶은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어때요?”
“공평하네.”
그렇다.
이 전략의 핵심은 공평이다.
공짜로 게임을 하고 싶은 사람은 그냥 편하게 즐기면 된다.
하지만 자신의 캐릭터에 애정을 가지는 유저는 적당한 가격을 내고 예쁘고 아름답게 꾸밀 수 있다.
에바는 자신을 모델로 시시각각 변하는 의상과 무기 및 스킬 효과를 펼쳐 보여줬다.
확실히 일반 캐릭터와는 차원이 다른 멋진 모습이었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의 무기나 스킬 보다 강하냐면 절대 그건 아니었다.
“너무 비싸게 받지만 않으면 괜찮겠다.”
“용돈을 쓰는 정도면 누구나 충분하게 살 수 있을 정도의 가격으로 책정할 생각이에요.”
만족한 웃음을 띠며 육회 한 접시를 꿀꺽했다.
그 사이 에바는 새로운 홀로그램을 띄웠다.
“수익을 올릴 다른 전략도 세워봤어요.”
“광고?”
“네, 게임 안에 기업의 광고와 매장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해봤어요. 필요에 따라 명품전략을 써서 돈이 많은 부자를 위한 명품 패션복도 출시할 생각이에요.”
“와우! 이건 아주 신박한 아이디어네.”
“그렇죠? 게임이 인기가 있으면 당연히 기업들도 광고하려고 할 거예요. 또한, 게임 안에 자사를 홍보하는 부스나 매장을 운영하고 싶어 하겠죠.”
“이건 돈이 좀 되겠는데.”
“전 세계에 돈 좀 있다는 부자들의 구매욕을 자극할 한정판 아이템을 판매할 거예요.”
“그건 한두 푼으로는 안 되겠네.”
“맞아요. 적게는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까지 받을 생각이에요.”
대한은 과연 그게 가능할까 생각해봤다.
하지만 시도도 해보지 않고 뭐라고 단정을 내리기는 곤란했다.
최악의 경우!
안 팔리면 그냥 슬그머니 접으면 그만이다.
그런 거 말고도 게임 안에서 수익을 창출한 방법은 무궁무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