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만재능(Feat. 대한 TV)-274화 (273/331)

274화 <영화 한 편>

“모니카!”

“사랑해!”

“헉!”

“사랑한다고.”

“이러는 게 어딨어?”

“헤헤!”

대한은 똑같이 실없는 소리를 하려다가 일격을 당하고 말았다.

쪽!

그는 대신 마음을 담아 그녀의 혈색 좋은 입술에 키스했다.

그 작은 행위 하나만으로도 모니카의 눈빛은 다시 촉촉하게 젖어 들었다.

잠시 그렇게 꽁냥꽁냥 소소한 몸짓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둘은 거의 동시에 몸을 일으켰다.

탁자 위에 물을 나눠 마신 그들!

테이블 위에서 리사가 가져다 놓은 금빛 관(冠) 두 개를 발견했다.

“아차! 우리 영화 보려고 했었지.”

“맞다. 이게 볼트 행성에서 보는 영화관인가?”

“영화관이라기보다는 영화를 관람하는 기계나 무슨 가상현실 접속기가 아닐까?”

“뭐가 됐든 일단 한번 써보자.”

“응.”

대한과 모니카는 소파에 몸을 기대고 나란히 앉았다.

그들은 용감하게 금빛 관을 각각 머리에 썼다.

그러자 허공에서 에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스터! 영화관람을 시작하시겠습니까?

“응.”

―모니카도 준비됐어?

“네.”

―좋아요. 그럼 볼트 행성 역사상 최고의 흥행기록을 세운 영화 ‘레전드 오브 포르낙스’를 시작하겠습니다.

웅!

에바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묘한 공명음이 울렸다.

순간 대한과 모니카의 몸이 축 늘어졌다.

스르륵!

동시에 그들이 기대어 앉은 소파가 두 개로 분리됐다.

분리된 소파는 빠르게 모양이 변해 각각 독립된 두 개의 침대처럼 바뀌었다.

그러곤 그 위에 투명한 보호막이 씌워졌다.

겉모습만 보면 영락없이 SF영화나 판타지 소설에 자주 나오는 무슨 가상현실게임 접속기, 일명 캡슐 같은 모양이었다.

대한과 모니카의 표정은 마치 숙면이라도 취하는 것처럼 아주 편해 보였다.

고른 숨소리와 함께 거실의 조명이 천천히 어두워졌다.

그리고 두 사람의 본격적인 어드벤처가 시작됐다.

* * *

“우와!”

대한은 깜짝 놀라서 외쳤다.

시야가 암전되더니 마치 영혼이 어디론가 훅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아주 기묘한 감각이 느껴졌다.

쿵!

전신에 느껴지는 강한 진동!

그는 침을 꿀꺽 삼켰다.

서서히 시야가 밝아지며 주변 상황이 드러났다.

“여긴?”

말을 하다말고 그는 급히 고개를 숙였다.

쌩!

느닷없이 화살 하나가 날아왔다.

아슬아슬하게 정수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대한은 그 살벌함에 온몸에 소름이 쫙 돋는 게 느껴졌다.

창 차차창!

창창창!

그런데 멍하니 엉거주춤 서 있을 시간도 없었다.

사방에 수많은 사람이 서로를 향해 창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무슨 전쟁의 한복판에 끌려온 것 같았다.

“대한!”

그때 귀에 익은 비명 같은 외침이 들렸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멀지 않은 거리에 모니카가 우뚝 서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손에는 무시무시한 칼이 들려져 있었다.

그것도 벌써 뭔가를 베었는지 칼끝에 시뻘건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빨리 이리 와요!”

대한은 모니카의 말에 얼른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다행히 다들 서로 싸우느라 그들에게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에잇! 죽어라!”

그때였다.

갑자기 그들을 향해 험상궂게 생긴 전사 하나가 칼을 들고 달려들었다.

모니카는 즉시 들고 있는 칼을 앞으로 쭉 내밀어 막았다.

창!

하지만 얼굴에 하얀 회칠을 한 전사는 너무도 쉽게 그녀의 칼을 막았다.

아니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모니카의 칼을 옆으로 강하게 밀어젖혔다.

그녀가 중심을 잃고 휘청하는 순간!

두 사람에게 절체절명의 위기가 찾아왔다.

퍽!

그런데 전혀 의외의 상황이 발생했다.

회칠한 전사가 달려온 것보다 더 빠르게 뒤로 훨훨 날아가 버렸다.

모니카는 이게 어찌 된 일인가 하고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러자 바로 옆에서 대한이 천천히 다리를 내리고 있었다.

“설마! 대한이 저놈을 찬 거야?”

“응.”

그녀의 질문에 그는 별거 아니라는 듯 말했다.

“어떻게 발로 사람을 찼는데 저렇게 공중을 훨훨 날아가?”

“이것 좀 봐!”

대한은 합리적인 의심을 하는 모니카의 질문에 대답 대신 손가락을 들어 허공을 가리켰다.

그제야 그녀는 허공에 둥둥 떠 있는 글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당신은 무적의 용사입니다. 크라켄 계곡 전투에 참여하시겠습니까?

그녀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가상현실이라더니 정말 그런가 봐!”

“어때? 한번 참가해볼래?”

“좋아. 그러자.”

둘은 거의 동시에 허공에 뜬 글자를 건드렸다.

그러자 글자가 산산조각이 나며 눈 부신 빛이 폭포수처럼 터져 나왔다.

화악!

차랑 차라라랑!

대한과 모니터는 서로를 바라보며 깜짝 놀랐다.

그들이 입고 있던 옷이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대신 한눈에 봐도 간지폭풍을 일으키는 끝내주게 멋진 금빛과 은빛의 풀 플레이트 아머가 자동으로 착용 되고 있었다.

로봇 합체나 트랜스포머의 변신도 이 정도로 환상적이진 않을 것 같았다.

촤라라락 철컥 철컹!

마지막으로 강한 금속음이 일며 완전무장이 끝났다.

“와우!”

“우와!”

둘은 서로의 모습을 바라보며 적이 감탄했다.

대한은 금빛, 모니카는 은빛!

두 사람은 사이좋게 풀 플레이트 아머로 무장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이 걸치고 있는 갑옷은 그냥 갑옷이 아니었다.

얼마나 정교하고 아름다운지 무슨 예술품이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너무나도 멋진 디자인에 그저 감탄이 나왔다.

특히 모니카가 입고 있는 전신 갑주는 상당히 야했다.

“모니카! 정말 야……. 크흠, 멋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게 무척 보기가 좋았다.

그제야 대한은 게임 개발자들이 왜 그렇게 욕을 처먹어 가면서.

여자 갑옷의 노출을 극대화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는지 이해가 됐다.

직접 눈으로 보지 않고는 말을 할 수 없을 만큼.

사내들에게는 아주 바람직한 방향으로, 눈이 호강하고 있었다.

“대한도 장난 아니야.”

모니카도 가만히 있지 않고 그의 갑옷을 칭찬했다.

아니 두 사람은 서로의 갑옷이 멋있다고 놀라기 바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확실히 모니카의 갑옷은 좀 과했다.

갑옷을 입은 건지 그냥 갑옷 쪼가리를 걸쳐놓은 건지 모를.

그래도 모니카는 좋다고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자신의 과한 노출형(?) 갑옷이 상당히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하긴 본인이 좋다는 데 그걸 문제 삼는 것도 이상한 짓이다.

대한은 이것을 통해 잠시 동서양의 문화의 차이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붕붕!

모니카는 허리에 걸린 롱소드를 꺼내 휘둘러봤다.

왼팔에 달린 원형의 방패도 살펴봤다.

그 모습에 대한도 급히 자신의 무장을 챙겼다.

두 사람이 잠시 현장과 동떨어져 있는 사이!

적의 숫자는 두 배로 늘어났다.

그리고 아군은 여지없이 뒤로 밀리고 있었다.

쿵!

그때, 대한과 모니카 앞에 기사들이 나타나 한쪽 무릎을 꿇었다.

“마스터 대한! 적이 증원군을 보냈습니다.”

“레이디 모니카! 전투를 계속할지 아니면 후퇴를 할지 결정해주십시오.”

이들도 풀 플레이트 아머로 무장한 것을 기사 같았다.

대한과 모니카는 잠시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리고는 위아래로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마음을 정하자 허공에 새로운 글자가 떠올랐다.

[용사의 선택 1. 전투에 참여해서 적을 물리친다. 2. 후퇴해서 전열을 정비한다.]

실제상황도 아니고 가상현실 게임 같은 영화다.

당연히 이럴 때는 직진이 최고다.

대한과 모니카는 거의 동시에 1번을 누르면서 말했다.

“내가 나서서 적을 물리치겠다.”

“전투에 참여해서 적을 물리치겠어.”

그러자 한쪽 무릎을 꿇은 기사들은 감동한 표정을 하며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힘차게 소리를 질렀다.

“마스터 대한과 레이디 모니카께서 전투에 참여하신다. 이제 승리는 우리 것이다.”

와아아아!

손발이 오그라드는 외침!

신기하게도 겨우 대한과 모니카가 전투에 참여한다는 사실 만으로.

아군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

아무래도 이게 초반 도입 부분의 메인 설정인 모양이다.

“무적의 용사가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용사들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 승리의 함성을 질러라!”

우와아아아!

이번에도 전장이 떠나갈 정도로 큰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런데 또 적군은 대한과 모니카를 보고는 마치 겁에 질린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모니카! 정면돌파다.”

“좋아. 가자.”

둘은 합심해서 적의 정면으로 달려갔다.

이들의 뒤를 기사들과 전사들이 따르고 있었다.

우두두두두!

말이 달리는 듯한 진동이 전장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대한과 모니카가 가는 곳은 이내 피와 살이 튀었다.

창 창 차창 창창창!

창칼이 부딪치고 비명과 악다구니가 교차했다.

생명이 덧없이 스러지고 붉은 피보라가 허공에 분수처럼 뿜어졌다.

대한이 롱소드를 휘두르자 검날에서 황금빛 검광이 번뜩였다.

모니카도 검날에서 은빛의 검광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두 사람이 만들어낸 검광에 닿은 모든 것들이 우수수 잘려나갔다.

“오오! 마스터와 레이디의 오러 블레이드다.”

“용사의 오러 블레이드다.”

와아아아!

대한은 그제야 이게 어떤 시스템인지 이해했다.

볼트 행성의 영화는 그저 가만히 앉아서 보는 게 아니다.

직접 개입할 수 있고, 같이 참여해서 적극적으로 스토리를 진행해 나갈 수 있었다.

이건 마치 SF 영화나 판타지 소설에서 나오는 가상현실 게임 같았다.

“나의 오러 블레이드를 받아랏!”

촤아아악!

“으악!”

“아악!”

그런데 모니카의 행동이 시작부터 독특했다.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금세 설정에 몰입했다.

용사이자 레이디의 역할에 충실해진 것이다.

대한은 모니카의 오글거리는 소리에 순간 닭살이 돋았다.

하지만 이내 자신도 그 분위기에 휩쓸렸다.

아니, 일부러 빠져들었다.

이게 볼트 행성에서 최고의 흥행을 일으켰다는 영화의 실체다.

그러니 한번 푹 빠져서 경험해 볼 생각이다.

그래서 대한은 이게 일종의 가상현실 게임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상황극에 자신을 맞춰나갔다.

“적의 기병이 몰려온다.”

“모두 뒤로 물러나라.”

“전열을 세우고 용사를 지켜라!”

그렇다고 적이 수수깡처럼 마냥 무너지는 것은 아니었다.

너무 쉬우면 재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적들은 빠르게 전열을 가다듬고 그들의 비장의 카드를 선보였다.

기치 창검을 들고 무섭게 달려오는 기병들의 물결!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두 다리가 덜덜 떨릴 만큼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대한과 모니카는 눈에 힘을 주고 입술을 꼭 깨물었다.

둘은 순간적으로 눈빛을 교환하고 정면을 향해 달려갔다.

“모두 나를 따르라!”

와아아아!

대한은 일부러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는 달려오는 기마대의 정면으로 돌진했다.

속으로는 이게 가능할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바로 고개를 흔들어 잡념을 털어냈다.

자신은 여기서 오러 블레이드를 쓰는 마스터급 용사다.

당연히 이 정도는 해야 말이 된다.

머리로는 이해가 가는데 가슴으로는 살이 떨려오고 있었다.

너무나 뛰어난 현실감이 이럴 땐 그의 결정에 발을 잡았다.

그래도 그는 과감히 두려움을 떨쳐냈다.

대신 힘차게 공중으로 떠올랐다.

타앗!

휘리릭!

대한은 하늘 높이 솟구쳐 올라 다가오는 적을 향해 롱소드를 휘둘렀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일자로 그어진 그의 검날!

놀랍게도 찬란한 금광이 뿌려지며 아군을 향해 무섭게 달려드는 수백의 기마대를 단번에 양단했다.

카가가가가가각!

쾅! 우르릉 쿵 쾅!

땅이 뒤집히고 하늘이 무너져내렸다.

대지는 거친 금광의 물결에 진흙처럼 짓이겨졌다.

당연히 그 여파에 수백의 기병과 전마(戰馬)들이 잘려나갔다.

당장 피가 폭포수처럼 터져 나왔다.

땅은 붉은 물감을 도배한 것처럼 붉게 물들었다.

시체가 산처럼 쌓이고 피가 강물처럼 흘렀다.

정말 눈으로 보고도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만큼.

어마어마한 위력이었다.

와아아아!

아군은 대한의 놀라운 무용에 일제히 환호성을 터트렸다.

그러나 공포에 질린 적들은 돌격을 멈추고 자신도 모르게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이놈들!”

그 순간 모니카가 달려나갔다.

그녀는 몸을 빠르게 회전시키며 적진의 한복판을 가로질렀다.

휘리리링!

빠르게 회전하는 모니카의 칼날에 부딪히는 모든 것이 잘려나갔다.

아니 분쇄되고 짓이겨졌다.

그런데 그 모습이 어딘가 무척 낯이 익었다.

‘저거 혹시 디아블로에서 나왔던 휠 윈드 아냐?’

추억의 감성마저 느껴지는 모습에 대한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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