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7화 <군산복합체의 개>
―마스터! 놈이 현장을 벗어났습니다.
‘그걸로 충분하겠어? 어떻게 하든 당장 한국으로 돌려보내!’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에바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괌 경찰서 마약반에 제보했다.
당연히 상대에게 뜨는 자신의 번호는 가리고, 목소리는 가냘프게 변조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여보세요! 괌 경찰서 마약반 패트릭입니다.
“마약을 운반하는 사람에 대해 제보를 하려고 합니다.”
―아! 잘 생각하셨어요. 이름과 나이, 장소와 연관 관계를 설명해주세요. 혹시라도 신변에 위협을 느끼시면 저희가 최대한 도와드리겠습니다.
“네. 그럼 믿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받는 마약반 직원은 이게 웬 횡재냐 하고 속으로 좋아했다.
그때부터 에바는 마약반 직원에게 JJ엔터 이종욱 이사에 관해 꼼꼼하게 설명했다.
얼마 후!
배가 아파서 호텔로 돌아간 이종욱은 호텔 로비에서 마약반에 의해 전격 체포됐다.
죄명은 당연히 마약운반 및 소지 혐의였다.
“당신 이종욱 씨 맞죠?”
“그런데요?”
“당신을 마약운반 및 소지 혐의로 체포합니다.”
“뭐야? 너희들 뭐야? 누가 시켰어? 내가 누군지 알아! 이거 놔!”
이종욱은 화가 치민 듯 거칠게 반항했다.
하지만 마약반 요원들에게는 씨도 먹히지 않을 가벼운 앙탈에 불과했다.
몇 번 주먹으로 배를 때리고 힘으로 짓누르자 이종욱은 금세 조용해졌다.
대들어봤자 매만 번다는 것을 몸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프런트에 가서 키 받아와!”
“제가 가서 이놈의 방을 뒤져보겠습니다.”
“볼 것도 없어. 이놈 눈을 봐! 딱 마약 하는 놈이잖아.”
“그렇네요. 정키(junky)가 맞네요.”
정식으로 제보가 들어왔기 때문인지.
마약반 요원들의 행사는 거침이 없었다.
그들은 이종욱을 보자 확신을 하고 움직였다.
이윽고 이종욱의 호텔 방을 샅샅이 뒤져 마약을 찾아냈다.
안타깝게도 이종욱은 국내에서 구하기 힘든 온갖 종류의 마약들을 전부 가지고 있었다.
그동안 국내에서 못다 한 마약을 마음껏 즐기려고 욕심껏 미리 사놓은 것이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지…….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어이없이 마약 혐의로 체포되고 말았다.
“양 비서! 뭐 하고 있어. 당장 아빠한테 연락해야지.”
“아! 알겠습니다. 즉시 국제전화를 하겠습니다.”
그때부터 양 비서는 부리나케 움직였다.
본국에 전화해서 JJ그룹 비서실에 현재 상황을 자세히 보고했다.
다행히 JJ그룹 자회사 중 하나가 괌에 지사를 운영 중이었다.
괌 지사장은 영문도 모른 채 새벽같이 경찰서를 찾았다.
그때부터 지사장은 괌에서 가장 유능한 변호사를 섭외하기 위해 애썼다.
다행히 거액을 주고 변호사를 선임해 괌 검찰과 빅딜을 걸었다.
그래서 시키는 대로 유죄를 인정하고 막대한 벌금을 내기로 했다.
대신 다시는 괌에 들어오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써야 했다.
그런 다음, 거액의 보석금을 내고 풀려나자마자 한국으로 바로 추방됐다.
이렇게 하는데 들어간 돈이 이미 수억 원이나 됐다.
한국에 도착한 이종욱!
공항을 나오기가 무섭게 JJ그룹 비서실 직원들에 의해 모처로 끌려갔다.
거기서 하루를 묵고 곧바로 비행기에 태워졌다.
“당분간 현지 지사에서 말단직원으로 조용히 일하고 지내세요. 그렇지 않으면 카드를 비롯한 모든 지원이 끊길 겁니다.”
오정천 JJ그룹 비서실장에 말에 이종욱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 어디로 보내는 거예요?”
“그건 도착해보면 압니다.”
“양 비서는 같이 안 가나요?”
“양 비서는 오늘 날짜로 해고됐습니다.”
“음.”
양 비서가 잘렸다는 말에 이종욱은 살짝 양심에 가책이 생겼다.
하지만 그건 정말 1초도 넘지 않았다.
그보다는 지금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게 더 궁금했다.
고오오오!
그를 태운 비행기는 푸른 하늘로 힘차게 날아올랐다.
이종욱은 주위를 살피다가 JJ그룹에서 보낸 감시자가 없는 것을 확신했다.
그래서 당당하게 스튜어디스를 불렀다.
“이봐요!”
“네, 손님.”
무례한 이종욱의 태도에도 젊고 예쁜 스튜어디스는 친절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이종욱의 눈에 순간적으로 진한 욕망의 빛이 스쳤다.
하지만 바로 정신을 차리고 궁금한 것부터 물어봤다.
“이 비행기 지금 어디로 가는 거야?”
“네에?”
스튜어디스는 이종욱의 질문의 뜻을 몰라 순간적으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그는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물었다.
“비행기 도착 장소가 어디냐고 묻잖아.”
“아프리카 탄자니아로 가는데요.”
이종욱의 거친 태도에 살짝 위축된 스튜어디스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뭐라고? 타, 탄자니아?”
하지만 그녀의 대답은 이종욱의 귀에는 천둥과도 같은 소리였다.
그는 순간, 마치 얼음이라도 되어버린 것처럼 몸이 딱 굳었다.
스튜어디스는 이종욱이 말을 하지 않자,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재빨리 자리를 피해버렸다.
그리고 몇 초 후!
비행기를 뒤흔드는 거친 고함이 터져 나왔다.
“안 돼!”
학질이라도 걸린 듯한 이종욱의 애타는 비명.
비행기에 탄 승객들과 스튜어디스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래도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이때부터 JJ엔터의 이사였던 이종욱의 화려한(?) 아프리카 (탄자니아) 일대기가 시작됐을 뿐이다.
* * *
대한은 새끼손가락을 귓구멍에 푹 쑤셔 넣었다.
그리고는 한 바퀴 빙글 돌려 빼냈다.
새끼손가락을 들어 살펴봤다.
다행히 귀지는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습관적으로 훅하고 바람을 한번 불어줬다.
그 모습에 에바가 가까이 다가왔다.
“왜 그러세요?”
“누가 내 욕을 하나? 귀가 엄청 간지럽네.”
“제가 귀 파드릴까요?”
그녀는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는 순간 그렇게 하겠다고 말할뻔했다.
하지만 다음 일정을 생각하자 절로 고개를 흔들었다.
“됐어. 곧 손님 오잖아.”
“손님은 무슨! 군산복합체의 개들이죠.”
“그래도 10만 파운드 가져온다며.”
“맞아요.”
“한 시간 앉아서 10만 파운드 벌면 나쁜 시급은 아니지.”
대한은 지극히 현실적인 발언을 했다.
그의 이런 생각에 에바도 슬쩍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이유가 어떻게 됐건, 한 시간에 10만 파운드다.
그 정도면 절대 나쁜 시급이 아닌 건 확실했다.
똑똑똑!
마침 그들이 도착했는지 노크 소리가 들렸다.
대한이 에바를 쳐다보자 에바는 그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몸을 움직이지는 않았다.
이들이 예약해놓은 힐튼 호텔 미팅룸 밖.
그의 경호원들이 이미 철통같은 경비를 서고 있었다.
덜컹!
최강철이 문을 열었다.
그러자 예상대로 존 러시 국무부 차관과 NSA요원 넷이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존 러시가 밝은 미소와 함께 인사를 했다.
대한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한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소파로 가서 앉았다.
에바도 존 러시와 악수를 한 후 대한의 옆으로 와서 앉았다.
“예상보다 손님이 많이 오셨네요.”
“아무래도 전문가들이 옆에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그래서 NSA요원들을 데리고 왔습니까?”
“네?”
존 러시 차관은 깜짝 놀랐다.
자신이 데려온 요원들이 NSA 요원들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
그런데도 에바는 이미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자신의 뒤에 서 있는 NSA 요원들 배후에 대한의 경호원들이 하나씩 서 있었다.
마치 언제든지 명령만 내리면 바로 제압해버리겠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으음.”
존은 짧게 신음을 흘렸다.
그러다가 이내 결심했는지 뒤를 보고 눈짓을 했다.
NSA 요원들이 강하게 거부하는 듯한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존도 만만치 않았다.
그는 조용히 그들을 쳐다보며 다시 눈짓했다.
그러자 할 수 없다는 듯, NSA 요원들이 차례로 방을 나갔다.
최강철을 비롯한 경호원들도 그제야 같이 밖으로 나가더니 조용히 문을 닫았다.
“훨씬 단출하고 좋네요.”
“그러네요. 진작 이렇게 할 걸 그랬습니다.”
“돈은 가져오셨죠?”
“아! 네.”
존이 너스레를 떠는 순간!
에바가 바로 돈 얘기를 했다.
그러자 대화의 맥이 뚝 끊기며 얼어붙었다.
속으로 욕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웃음을 잃지 않는 존.
하지만 이번에는 그의 가면에도 살짝 금이 가고 있었다.
툭!
존이 안주머니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 내려놓았다.
그러자 에바는 대놓고 눈앞에서 수표를 꺼내 확인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무례한 태도였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에는 조금도 부끄러움이 담겨있지 않았다.
“10만 파운드 맞네요. 그럼 지금부터 정확히 1시간 드리겠습니다.”
에바의 말에 존 러시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딱 벌렸다.
설마 저런 식으로 말을 할지는 몰랐기 때문이다.
돈을 받고 시간을 산 이상.
지금 자신은 외교관이 아니라 비즈니스맨이었다.
국무부 차관이라는 직책은 통용되지 않는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존 러시는 금세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나마 자신이 하는 일이 미국의 국익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커피 드릴까요?”
“응.”
에바의 물음에 대한이 대답했다.
“저도 한잔 부탁합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존 러시가 묻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웬걸!
에바는 대놓고 피식 웃음을 흘렸다.
“존 러시 차관은 손이 없어요? 발이 없어요? 직접 타서 드세요.”
“네에? 아! 네.”
대놓고 눈을 빤히 뜨고 노려보는 에바의 패기!
존은 그만 질려버리고 말았다.
속으로는 정말 너무한다고 구시렁댔다.
하지만 몸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테이블 한쪽에 마련된 커피포트를 들고 직접 커피를 따라 마셨다.
똑똑똑!
그러나 대한은 달랐다.
언제 연락을 받았는지 밖에서 경호원이 들어와 대한과 에바에게 유명 커피전문점의 아메리카노를 가져다줬다.
대놓고 무시를 하는 에바의 태도에 존은 살짝 울컥했다.
그런데 막상 그녀의 당당한 얼굴을 보자 자신도 모르게 주눅이 들었다.
마치 자신이 왜 이 자리에 왔는지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한 저 표정.
그것이 자꾸 그의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
“…….”
대한과 에바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존도 잠시 침묵했다.
그는 커피를 홀짝거리며 어떻게 얘기를 시작할지 생각했다.
그러다가 시계를 보게 됐다.
어영부영 벌써 10분이 지나가 있었다.
이래서는 죽도 밥도 되지 않겠다는 생각에 끝내 입을 열었다.
“먼저 이대한 선수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도 존 러시 국무부 차관을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존의 의도적인 말에 대한도 상투적인 대답으로 응수했다.
“저희는 이대한 선수와 좋은 관계를 맺고 싶습니다.”
“그건 저도 좋습니다. 그런데 저희라면 미국 정부를 말하는 거겠지요?”
“그렇습니다.”
당연하다는 존의 대답에 에바가 끼어들었다.
“그 말은 미국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이라고 생각해도 된다는 겁니까?”
“네에?”
존은 순간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가 말을 하면서 탁자 한쪽에 있는 녹음기를 가리켰기 때문이다.
“저 녹음은 좀…….”
“왜요? 곤란한가요? 미국의 공식적인 입장을 전하러 오신 게 아니었나요?”
“사실 아직 의회에 승인까지 받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 미국 정부의 입장은 확고합니다.”
“우리 이대한 선수와 좋은 관계를 맺고 싶다는 미국의 공식 입장이 의회에 승인까지 필요한 일이었던 가요?”
“네? 그, 그게.”
아니다.
당연히 그럴 필요도 이유도 없다.
그건 전적으로 존 러시 차관의 사탕발림에 불과한 발언이다.
존 러시는 에바로 인해 자꾸 말이 꼬이는 걸 느꼈다.
날카롭기는 비수와 같고 차갑기는 얼음과도 같은 그녀.
아무래도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자신의 전략은 먹히지 않을 것 같았다.
“미국 정부의 입장이라는 모호한 표현은 쓰지 마세요. 미국 정부의 어느 부처의 누가 우리와 좋은 관계를 맺고 싶은지 분명하게 말씀하세요. 그게 서로에게 오해를 주지 않고 좋습니다.”
“으음.”
에바의 말에도 존은 쉽게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는 슬쩍 녹음기를 한번 쳐다봤다.
그러자 그녀는 바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당하다면 녹음기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죠. 왜요? 지금이라도 돈 돌려드릴까요?”
존 러시는 순간 ‘예스’하고 대답을 할뻔했다.
하지만 하고 싶은 것과 해서는 안 되는 게 속에서 강하게 충돌했다.
그가 마음속으로 심하게 갈등을 느끼자 에바가 거기에다 불을 질러버렸다.
“존 러시 차관, 오늘 군산복합체의 사주를 받고 오셨죠?”
“군산복합체라뇨?”
“군산복합체라는 단어가 좀 껄끄러우시면 글로벌 방산업체라고 할까요?”
“끙.”
존은 에바의 말에 그만 얼굴을 붉히고 말았다.
그녀는 끝내 그가 가장 곤란해하는 부분을 제일 먼저 까발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