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2화 <괌으로>
만약 대한이 광고를 찍으면서 얼마를 버는 줄 알았다면!
유희락은 아마 기절초풍을 했을 것이다.
“공항에서 이미 밝혔듯이……. 3개월 동안 집에서 그냥 푹 쉴 생각이에요. 그런 다음 다시 영국으로 날아갈 겁니다.”
“그럼 영국의 있는 집은 어떻게 합니까?”
“왓포드에 있던 집은 제 에이전트가 이미 다 정리했어요.”
“그럼 앞으로 맨시티에서 사시겠네요.”
“그렇죠. 맨시티 구단에서 주거를 책임지기로 했으니 머물 집을 걱정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방송이라서 말은 이렇게 했다.
하지만 사실은 에바가 나서서 직접 살 저택을 사들였다.
맨시티 구단에서는 대한에게 주택을 제공하고 싶다고 했었다.
그러나 정중하게 거절했다.
대신 그 돈을 저택의 경비로 지원해달라고 했다.
어쨌든 맨시티에 구해놓은 집은 저택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로 규모가 크고 넓었다.
이걸 전혀 모르고 있는 유희락!
그러면서도 그는 연신 대한의 말에 부럽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난 뼈 빠지게 일해서 겨우 집을 구했는데, 누군 그냥 공짜로 집을 받는군요.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축구선수 하는 건데.”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프로선수들이 돈을 참 쉽게 버는 것처럼 느껴지네요. 하지만 축구선수로 뛰는 기간이 그렇게 길지 않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 그게 있었군요.”
“남들은 60세나 65세가 정년이라면, 저희는 30대가 넘어가면 바로 은퇴를 생각해야 하거든요.”
듣고 보니 축구선수들이 참 안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분위기는 방청석에서도 은근하게 흘러나왔다.
“제가 전에 얼마 받고 뛴 줄 아시죠?”
“네, 워낙 유명한 얘기라 모를 수가 없죠. 만 파운드 받고 뛰셨죠?”
“그걸 받고 뛰는 제 심정이 오죽했겠습니까?”
“그렇겠군요. 그런데 만 파운드면 얼마죠?”
“오늘 외환시세로 약 1,580만 원입니다.”
“한 달에 그 정도면 생활이 충분한가요?”
대한은 유희락이 뭔가 단단히 오해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월급이 아니라 주급입니다.”
“엥! 그럼 한주에 만 파운드씩, 한 달에 네 번을 받는다는 말입니까?”
“예, 맞아요.”
“1,580만 원을 네 번 더하면?”
“6,320만 원이네요.”
“적은 돈은 아니었군요.”
유희락의 눈이 슬쩍 뱀눈으로 변해갔다.
얼핏 들으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한이 언급했듯이 축구선수들의 선수 생명은 무척 짧다.
메뚜기도 한철이라고, 그래서 젊고 잘나가고 있을 때 부지런히 벌어놓아야 한다.
“제가 말씀드렸죠? 축구선수는 오래 못 뛴다고요. 그리고 영국의 미친 물가를 생각할 때, 그건 절대 많이 받는 게 아니에요. 세금이다 뭐다 다 떼고 나면 손에 남는 게 거의 없어요.”
“그런 사정이 있었군요.”
“세계 최고의 프로축구리그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소속팀의 공격수가 주급을 만 파운드 받고 있다면 다들 농담인 줄 알고 그냥 웃습니다.”
“이제야 좀 알 것 같네요. 어쨌든 이번에 일이 잘돼서 옮기는 맨시티에서는 40만 파운드를 받는다고 들었습니다.”
“네, 주급 40만 파운드 플러스알파입니다. 그리고 이적이 아니라 임대로 가는 겁니다.”
대한은 그의 말에 일단 긍정을 하면서도 깨알 정보수정을 놓치지 않았다.
그가 임대되는 조건은 이미 세상에 대부분 공개되어 있었다.
그래서 굳이 뭘 숨길 것도 없어 그냥 대놓고 방송에 다 말해버렸다.
“40만 파운드면 대체 그게 얼마에요?”
“6억 3,200만 원 정도에요.”
“헉! 그걸 매주 받는다고요?”
“넵.”
“오마이갓!”
유희락의 얼굴은 큰 충격이라도 받은 모습이었다.
하긴 주급이 6억 3,200만 원이라면 놀라지 않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매주 아파트 한 채가 생기는 셈이로군요.”
유희락의 말은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슴에 와 닿을만한 비유였다.
대한도 그 누구보다 그의 이런 심정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자신도 반지하 방에 살았을 때, 아파트에서 살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비단 둘뿐만이 아니었다.
[부산갈매기: 우와! 진짜 이럴 때는 위화감이 팍팍 느껴지네.]
[나라사랑: 대한이 처음에 방송할 때가 생각난다. 그땐 정말 쩌리였는데.]
[박학다식: 대한이 정말 노력 많이 했다. 방송 보면 다 나온다.]
[달기: 맞아. 우리 대한이도 이제는 돈 많이 벌고 떵떵거리면 살아야 해! 그동안 고생한 게 있으니까 배로 벌어야 한다고.]
[마하라자: 이게 배로 버는 거냐? 주급이 무려 6억 3,200만 원이다.]
[문석봉: 히야아! 주급 만 파운드 받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40배가 뛰어서 40만 파운드를 받는구나. 잘 됐다. 그리고 좀 부럽다.]
[정의사회구현: 잘됐다. 대한이 그동안 고생한 거 이렇게 보상받아야지.]
[국방개혁:대한이 주급 가지고 뭐라고 하지 마라! 메시나 날강두가 돈 벌면 당연한 거고, 우리 대한이 주급 많이 벌면 그건 위화감 조성이냐? 경기마다 이렇게 골 많이 넣는데 당연히 그 정도는 받아야지.]
[유희왕: 맞는 말이긴 한데 대한이는 군대 안 가냐?]
[부자되자: 야! 이 개XX야! 갑자기 군대 얘기는 왜 해?]
[푸른잎: 무슨 저런 미친놈이 다 있지? 지금 우리 대한이보고 군대나 가라는 거야?]
[테니스공: 대한이 군대 보내지 말고 그냥 계속 EPL 뛰게 해라! 그게 군대 가는 것보다 더 국익에 도움이 된다.]
[끝없는대한사랑: 맞아요. 그게 국위 선양하는 거예요.]
[축알못남자: 핵공감! 차라리 내가 대신 군대 갈게. 날 보내줘! 대한이는 절대 군대 가지 말고 그냥 지금처럼 계속 골 넣자!]
역시 키보드 워리어들이 모여있으니 오만 잡동사니 생각들이 다 배설됐다.
군대 얘기가 나온 게 좀 황당하긴 했다.
하지만 대한이 받게 되는 40만 파운드에 관해서는 정당한 대우라는 반응이 대세를 이루고 있었다.
“앞으로 목표는 뭡니까? 발롱도르입니까?”
“그게 세계적인 상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걸 받아서 뭐하게요? 특별히 돈을 엄청나게 주는 것도 아니고. 전 상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축구를 시작하는 사람에게나 발롱도르가 대단해 보이는 거다.
진정한 전설은 상 따위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래요? 그럼 뭐가 목표에요?”
“그냥 제가 할 수 있는 거 다할 거예요. 프리미어리그 우승, 챔피언스리그 우승, 득점왕, 대한민국 월드컵 우승 같은 거요.”
“아!”
유희락은 대한의 말을 듣고는 입을 쩍 벌렸다.
프리미어리그 우승!
챔피언스리그 우승!
득점왕!
대한민국 월드컵 우승!
대한이 하는 말을 들으면 마치 전부 쉽게 해낼 수 있을 것처럼 느껴졌다.
만일 다른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면 아마 쉽게 공감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걸 생각하자 과연 대한은 대한이었다.
“반드시 소원하는 모든 것들 꼭 이루시기 바랍니다.”
“네, 고맙습니다.”
“오늘 유희락의 스케치 노트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 오늘 특별히 이 자리를 찾아와준 세계적인 축구스타 이대한 선수였습니다.”
와아아아!
짝짝짝짝짝!
대한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청석을 향해 인사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무대로 이동해 두 번째 노래를 불렀다.
이번에는 한새롬도 같이 불렀다.
비록 그가 부른 곡이 듀엣곡은 아니지만
한새롬은 그냥 옆에 서 있기만 해도 좋은 그림이 됐다.
이 모습이 대한TV를 통해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아니 인터넷을 타고 전 세계로 빠르게 퍼졌다.
* * *
태평양 상공.
고오오오!
전용기는 창공을 가르며 동쪽으로 날았다.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봤다.
푸른 물감이라도 풀어 놓은 듯한 파란 하늘!
그곳을 하얀 뭉게구름이 배처럼 자유롭게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옆으로 폭신해 보이는 구름이 하나둘 흘러 지나갔다.
손대면 당장 손에 묻어나올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딩동댕!
그때 안내방송이 시작됐다.
―저희 코레 1호기를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항공기는 곧 괌(Guam)의 Antonio B. Won Pat 국제공항에 도착하겠습니다. 착륙을 위해 안전벨트를 꼭 매주시기 바랍니다.
방송을 듣자 대한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자신만 탔다면 아마 이런 방송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덜컹! 뚜벅뚜벅!
뒤쪽에서 문이 열리고 누군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에바는 앞쪽에 타고 있으니 그녀는 아니었다.
고개를 돌리려고 하는데…….
쪽!
고새를 못 참고 뺨에 부드러운 입술이 닿았다.
“잘 잤어?”
“응. 나 너무 많이 잤지?”
“그래 봐야 겨우 3시간인데 뭘.”
대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온몸으로 뭉클한 것이 짓눌러왔다.
파자마만 입은 한새롬이 그의 무릎 위로 올라와 그를 꼭 껴안은 것이다.
“어휴! 짐승!”
“내가?”
“그럼 아니야? 날 그렇게 못살게 괴롭혀놓고.”
그녀는 말을 하면서도 살짝 삐진 것처럼 그의 귀를 가볍게 깨물었다.
“그래서 싫다는 거야?”
“아니 그건 아니지만.”
싫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너무 좋아서 오히려 견디기 힘들었을 뿐이다.
“잠깐이었는데 많이 피곤했었나 보구나?”
“헐! 대한은 한 시간이 잠깐이야?”
한새롬은 대한의 말에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사내가 강한 게 죄는 아니다.
자신도 좀 많이 흥분한 경향이 없지 않았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정말 죽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는 점이다.
매일 대한과 같이 지내는 꿈을 꿔왔다.
정말 그렇게만 된다면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매일 이렇게 사랑을 나눈다면 아마 자신은 제명에 죽지 못할 것이다.
‘내가 너무 마력을 심하게 썼나?’
대한도 그녀의 이런 반응에 살짝 자책했다.
새롬과는 처음이라서 강한 인상을 준다는 게…….
역시 조금 과했던 모양이다.
“그래도 이젠 좀 살만한가 보네.”
“자고 일어나니까 몸이 가벼워졌어.”
그건 당연하다.
그녀의 몸에 쏟아부은 대한의 마력을 생각하면 오히려 이런 반응은 약과라고 표현해야 했다.
“내가 새롬에게는 보약인가 보네.”
“정말 그런지도 몰라. 전신이 아주 개운해졌어.”
사실 새롬은 샤워하고 나오다 전신거울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얼굴이 뽀얗고 피부에서 광택이 흐르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녀가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오직 하나!
대한과의 사랑이었다.
‘대한과 난 궁합이 아주 잘 맞나보다!’
이게 새롬이 문을 열고 나오며 할 수 있는 유일한 생각이었다.
“시원한 음료수라도 한잔 마실래?”
“아니. 그냥 물 마실게.”
대한의 권유에 그녀는 고개를 흔들며 일어났다.
그렇다고 어디 다른 곳으로 가진 않았다.
그의 옆에 앉아 미니 냉장고를 열고 시원한 생수를 꺼내 마셨다.
꿀꺽꿀꺽!
목이 많이 말랐는지 새롬은 500mL짜리 생수를 그대로 원샷했다.
입가에서 흐른 물 한 방울이 그녀의 하얀 목을 따라 계곡으로 흘러내렸다.
대한은 그 모습을 홀린 듯 쳐다보다가 슬쩍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당장이라도 그녀를 들고 침실로 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하지만 전용기는 곧 괌에 착륙한다.
그러니 지금은 자제하는 게 옳다.
“아! 시원하다.”
“안내방송 들었지?”
“응, 곧 착륙한다면서.”
“옷은?”
“갈아입어야지. 그런데 굳이 풀메이크업을 해야 하나?”
“새롬이라면 그럴 필요는 없을 거야. 화장하지 말고 반바지와 티셔츠만으로도 충분해!”
“선글라스도 빼놓으면 안 되지.”
“그래. 밀짚모자하고 커다란 선글라스를 쓰면 아주 잘 어울릴 거야.”
대한의 말에 새롬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이제는 그가 남 같지 않았다.
전용기 안에서 만리장성을 쌓아서 그런지.
행동은 물론이고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전부 멋있고 좋게만 들렸다.
“이렇게 대한과 같이 괌에 가니까 참 좋다.”
“놀러 가는 거 아니라는 거 잘 알고 있지?”
“응, 그래도 광고 같이 찍기로 한 거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
“그건 나도 그래. 이렇게 전용기 타고 가니까 좋지?”
“말해 뭐해? 최고야!”
새롬은 대한의 전용기가 무척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특히 뒤쪽은 완벽한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공간이었다.
절대로 부르기 전에는 그 누구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건 에바도 마찬가지였다.
솔직히 새롬은 에바를 무척 경계했다.
어느 면으로 보나 1년 365일 하루 24시간을 같이 지내는 미모의 여비서를 도저히 고운 시선으로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좀 달랐다.
대한에게 에바는 그저 비서일 뿐이라는 것을 그제야 깨달은 것이다.
물론 이건 새롬이 살짝 오해를 한 면이 없지 않았다.
그녀가 상상하는 것보다 대한과 에바는 훨씬 밀착된 관계라는 것을 전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