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화 <방송 출연>
“한새롬 씨가 회사 자랑을 아주 많이 했어요. 그건 대한TV 사장이신 이대한 선수의 방침입니까?”
―대한TV는 제 개인방송 채널입니다. 지금은 모두 코레 엔터로 보내서 통합됐어요. 전문경영인이 요새 열심히 일을 잘하나 봐요. 전 코레 엔터에 투자한 투자자이거든요.
대한은 사실을 마치 사실이 아닌 것처럼 교묘하게 말했다.
코레 엔터는 코레 그룹의 자회사다.
그리고 코레 그룹의 지주회사 ‘코레’는 대한의 소유다.
결국, 코레 그룹은 100% 대한의 것이란 말이다.
하지만 방송에다 그걸 대놓고 얘기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 마치 자신은 코레 엔터에 돈을 좀 투자한 투자자 정도로 비춰지길 바라며 얘기했다.
다행히 그 작전은 잘 먹힌 모양이었다.
유희락은 여기서 더 질문하면 대화가 이상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깊이 파고들지 않았다.
경험 많은 방송인답게 그는 역시 맺고 끊을 줄을 아는 것이다.
“궁금한 게 있는데 좀 물어봐도 될까요?”
―네, 시원하게 물어보세요. 괜히 가슴에 담아두면 병납니다.
“하하하! 감사합니다. 듣기로는 한새롬 씨에게 음원을 내라고 했다는데 사실입니까?”
―네, 제가 한번 내보라고 했어요. 다행히 새롬이 누나가 워낙 노래를 잘해서 좋은 결과를 얻게 됐네요.
“역시 그랬군요. 제가 알기로는 이대한 선수도 전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인터넷 가수죠. 디지털 음반을 수천만 장을 파셨다고 들었는데, 언제 한번 저희 프로그램에 참여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좋습니다. 한번 꼭 찾아뵐게요.
“네에? 정말입니까? 언제요? PD! 이거 지금 녹음되고 있는 거 맞죠?”
대한의 긍정적인 반응에 놀란 유희락이 진담 반 농담 반을 섞어 말하며 호들갑을 떨어댔다.
―선배님이 나오라고 하시니 제가 꼭 한번 찾아뵐게요. 안 그래도 오늘 저도 새로운 음원을 냈습니다.
“아니 이런 경사스러울 때가 있나! 어떤 곡이죠? 한번 들어봐도 될까요?”
―전화로요?
“아! 그건 좀 곤란하신가요?”
유희락은 자신이 좀 너무했나 싶었다.
하지만 웬걸!
대한은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나왔다.
―좋습니다. 그럼 한번 불러보죠. 대신 잘못한다고 해도 널리 이해 부탁드립니다.
“아! 고맙습니다. 그럴 리가 없다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설사 그런 일이 생긴다고 해도 이대한 선수를 원망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렇죠? 여러분!”
네에!
유희락의 유도에 방청객들은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윽고 자연스럽게 공개홀에 아름다운 멜로디가 흐르기 시작했다.
이에 유희락은 살짝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PD가 빠르게 음원을 내려받았나보다고 생각했다.
♬당신을 이전부터 좋아한다고 말을 해야 했어.♩
그런데 첫 소절부터 KBC 신관 공개홀은 난리가 나고 말았다.
굵고 부드러우면서도 감미로운 목소리가 스마트폰에서 울리는 것이 아니었다.
바로 현장의 스피커에서 나고 있었다.
와아아아!
일순 뜨거운 함성이 공개홀을 뒤흔들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노랫소리에 다들 급히 입을 다물고 귀를 기울였다.
♭덧없는 세월을 강물처럼 그냥 아쉽게 흘려보내고 ♪
♪이제 깨달았어. 네가 아니면 안 된다는 걸! 바로 이 순간 ♬
하지만 그들은 도저히 함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가사에 ‘이 순간!’이라고 말을 하는 순간!
정장을 깔끔하게 빼입은 대한의 모습이 무대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와아아아!
방청객들은 모두 벌떡 일어나 두 손을 마구 흔들었다.
그들은 도저히 흥분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보고 싶던 스포츠 스타다.
좀처럼 방송이나 매스컴에 등장하지 않은 이대한 선수!
축구선수이자 세계적인 (인터넷) 가수를 이렇게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게 되다니!
공개홀은 일시에 사람들의 함성으로 뒤흔들렸다.
그런데 공개홀의 스피커는 위대했다.
그 거친 함성에도 대한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가 귀에 쏙쏙 틀어박히고 있었다.
그제야 방청객들은 지금 자신이 누구의 노래를 듣고 있는지를 깨달았다.
다들 입을 조개처럼 꾹 다물고 급히 자리에 앉아 감상 모드로 들어갔다.
멜로디는 감미로웠다.
목소리는 굵고 묵직하면서도 귀에 착착 감겨왔다.
타고난 성대와 잘 훈련된 발성은 지금 완벽한 하모니를 이루고 있었다.
무엇보다 심금을 울리는 절절한 노래 가사는 이들의 감성을 마구 자극하고 있었다.
♬나는 당신 곁에 있어. 다신 떠나가지 않아. 언제나 그렇게, 언제나 그렇게, 그대만을 바라보고 있을게.♩
대한은 노래하면서 이동해 한새롬에게 다가갔다.
♭두려워하지 마! 놀라지도 마! 너의 뒤엔 항상 내가 널 안고 있을 거야.♪
‘널 안고 있을 거야’라는 가사에 맞춰 대한은 한새롬을 뒤에서 포근하게 감싸 안았다.
한새롬은 당황하면서도 그게 그리 좋은지 눈을 꼭 감았다.
그녀의 입가에는 어느새 포근한 미소가 띠어있었다.
이게 찍혀서 나중에 짤로 돌아다니며 두 사람의 스캔들을 부추기는데 크게 한몫을 하게 된다.
물론 지금이 아닌 나중에 일어날 일이었다.
어찌 됐든, 방청객들은 대한의 퍼포먼스에 감정이입을 하면서 ‘오우야!’를 난발했다.
특히 젊은 여성들은 두 손으로 자신의 몸을 감싸며 대놓고 한새롬이 부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아름다운 멜로디와 멋진 목소리의 노래가 클라이맥스를 넘어 끝을 향해 달렸다.
와아아아!
짝짝짝짝짝!
대한의 노래가 끝나자 방청석에서는 함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한새롬이 노래를 끝내고 들어올 때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소리였다.
유희락은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손뼉을 쳤다.
자신의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자신의 귀로 직접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도저히 대한이 이렇게 멋지게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반갑습니다. 선배님!”
“어서 오세요. 이대한 선수!”
대한과 유희락은 반갑게 서로 악수를 나눴다.
그의 손을 꼭 잡는 유희락은 기쁨과 팬심으로 가득했다.
잠시 몇 마디 인사를 나누고.
대한은 한새롬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그녀가 몸을 던졌다.
둘은 아주 격하게 포옹을 했다.
누가 보면 몇 년은 떨어졌다가 다시 만나는 연인인 줄 알 것이다.
그런데도 대한은 사람들의 눈초리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한새롬의 몸을 꼭 끌어안아 줄 뿐이었다.
정말 따지고 보니 몇 달 만에 그녀를 만나는 건지 몰랐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한새롬이 지금 방송 중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는 것이다.
둘은 서로 반갑게 포옹하고 아주 쿨하게 떨어졌다.
한 소파에 사이좋게 나란히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런데 대한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서는 꿀이 흘렀다.
아니, 흐르다 못해 그냥 뚝뚝 떨어져 내렸다.
대한은 이걸 누나와 동생 사이!
즉 의남매의 정 같은 것으로 묘사해버렸다.
“세상에! 정말 믿기지 않습니다. 제 뮤직쇼에 이대한 선수가 나오다니요.”
“저 지금 축구선수로 나온 겁니까?”
“아차! 이대한 선수가 아니라 가수 이대한 씨라고 해야겠군요.”
“하하하! 농담한 겁니다. 그냥 편하게 대한이라고 부르세요.”
“정말? 그래도 될까요?”
“물론이죠.”
“그래. 대한아!”
유희락은 대한의 제의를 냉큼 받아먹었다.
그러자 오히려 분위기가 아주 화기애애해졌다.
“두 분도 오랜만에 만나시는 거죠?”
“네, 몇 달 됐어요.”
대한이 나오자 한새롬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곤 그저 그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너무 대놓고 쳐다보자 좀 불편해진 대한이 살짝 눈치를 줬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한새롬은 여우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듯 연기했다.
하지만 유희락이나 방청객이나 이미 그들의 안중에 한새롬은 없었다.
자타공인 세계 최고의 프로축구리그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그걸 아작아작 씹어먹고 있는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
전 세계에 수백만의 구독자를 가지고 있다는 개인방송 스타이자 가수!
이런 대한이 방송에 나왔으니…….
인기로 보나 인지도로 보나, 전혀 상대되지 않는 한새롬은 붕 떠버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천하의 절색인 한새롬이라도 동성인 여자에게 어필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하지만 대한은 얘기가 전혀 달랐다.
할리우드 미남 배우 뺨치게 잘생긴 얼굴!
젊고 튼튼한 멋진 근육질의 몸!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스타!
매주 40만 파운드(오늘 시세로 6억3,170만 원)를 버는 부자!
여자라면 누구나 대한과 로맨스를 꿈꿔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남자들이 질투하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아무리 축알못이라고 해도, 프리미어리그를 펄펄 날아다니는 대한을 모를 수 없다.
그의 경기를 아예 보지 않았으면 모를까!
한번 보기 시작하면, 마치 끊을 수 없는 마약과도 같은 중독성 넘치는 시원한 골과 미친 듯한 드리블 그리고 가공할 골 결정력에 매료되고야 만다.
쉽게 말해서 그냥 축구 하나로 남자들은 다들 대동단결해서 대한의 팬이 되고 말았다는 소리다.
이렇게 대한민국에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전국적인 인기를 끌었던 스타가 얼마나 될까?
그리고 대한이 누리고 있는 인기는 사실 전무후무했다.
“앞으로도 계속 방송 출연하실 건가요?”
“아닙니다. 전 그냥 개인방송만 할 거예요.”
그는 말을 하면서 바로 앞에 설치되어 돌아가고 있는 카메라를 가리켰다.
그러자 카메라로 촬영을 하는 대한TV의 카메라맨이 손가락을 들어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 모습에 대한TV 채널의 구독자와 시청자들이 일제히 반응했다.
[대한바라기: 봤냐? 봤어? 대한은 만능 엔터테인먼트다.]
[누구를위해종쳤냐: 봤다. 축구만 잘하는 게 아니라 말도 핵잘한다.]
[가오리소녀: 미친 얼굴! 미친 실력! 미친 인기! 미치게 부러운 여복!]
[긴자의그녀: 대한아! 오랜만이다. 개인방송 자주 좀 해라!]
[말콤X: 한새롬 좀 봐라! 아주 뻑이 갔다.]
[사랑이: 저 여시가 옛날부터 우리 대한이를 노리고 있던데……. 대한아! 조심해라. 너와 6년 차이야. 아줌마라고.]
[저녁노을: 6년이면 준수하지. ㅋㅋ]
[분홍양말: 그게 연하라면 그렇지. 연상으로 6년이면 엄청난 거 아니야?]
[네크로멘서: 그래봤자. 한새롬 이제 겨우 25살이다. 한창때라고.]
[단세포소녀: 대한과 6살 차이면 아줌마지. 어디 한새롬을 들이대!]
[완포세대: 오늘 분위기 살벌하구먼.]
[재미니: 노래 정말 잘 부른다.]
[행복수저순: 난 벌써 저 음원 샀다.]
[조명아래선: 난 이미 음원으로 나온 12곡 다 샀음. 정말 노래 개좋아.]
[자주국방: 아오! 우리 대한이 말도 참 잘하네. 흥해라 흥!]
대한이 갑자기 대한TV 방송을 하자 다들 이게 뭔가 했다.
하지만 에바가 대충 돌아가는 상황을 자막을 통해 알려줬다.
그제야 상황을 알아챈 시청자들은 다들 인터넷을 통해 음원을 내려받았다.
“그럼 오늘은 어떻게 나오신 거예요?”
“그거야 당연히 한새롬 누나, 아니 한새롬 씨를 위해 오늘만 특별히 나온 거죠.”
“아! 그러시구나. 자주 보면 좋은데.”
유희락은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걸 대한은 애써 위로한다고 한마디 했다.
“앞으로 보기 싫어도 스포츠 채널에서 축구경기를 계속 볼 텐데요. 뭘!”
“보기 싫다니요? 우리나라에서 이대한 선수가 나오는 경기를 보기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자신감이라는 쿨 한 향기를 풀풀 내는 대한!
그의 이런 모습에 유희락은 절로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모름지기 젊을 때는 대한처럼 자신감으로 살아야 한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열심히 이것저것 부딪쳐보는 게 좋다.
그래야 자신이 뭘 잘하고 뭘 좋아하는지 알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앞으로 일정은 어떻게 되나요?”
“국내요? 아니면 프리미어리그요?”
“국내에서 쉬는 동안 뭘 하실 거냐고요?”
“저 광고 찍어야 해요.”
“아하! 그럼 좀 짭짤하시겠네요.”
“아무래도 그렇겠죠.”
유희락은 대놓고 저렴한 미소를 지었다.
대한도 그에 못지않게 음흉한 웃음을 날렸다.
사실 방송하는 사람이면 누구나가 인정하는 것이 하나 있다.
광고야말로 방송인들의 영원한 로망이라는 것이다.
광고만큼 쉽고 빠르게 현찰을 만질 수 있는 게 없다.
그래서 방송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광고 모델이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광고를 내보내는 기업으로선 개나 소나 다 내보낼 수가 없다.
모델의 이미지는 그대로 기업의 이미지가 된다.
그러니 좋은 이미지를 가진 유명한 스타들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대한이야말로 유리천장을 뚫고 나가 어느새 안드로메다를 홀로 날아가고 있었다.
계약 때 얼마 받았는지는 공개하지 않기로 서로 약속했다.
그래서 액수는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특급 연예인의 몇 배!
아니 많게는 몇십 배에 달하는 광고비를 짭짤하게 챙기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