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화 <가수 한새롬>
대한민국에서는 양다리를 걸치는 것도 욕을 많이 얻어먹는다.
하물며 그 이상 얻게 되면 무슨 소리를 듣겠는가!
그렇지만 에바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대한 가(家)의 번영을 위해 리나와 류연은 물론이고 모니카, 나나 심지어는 한새롬까지 전부 들일 방법을 궁리하고 있었다.
일단 그녀의 말을 진지하게 듣는 것은 무리였다.
당장 류연과 리나의 어려움부터 도와주는 게 급선무였다.
“리나와 류연의 가족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줘!”
“알겠습니다. 아무런 어려움 없이 싱가포르와 제주도에 각각 잘 정착해 살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응, 고마워!”
이것으로 리나와 류연에게 주는 선물은 집으로 정해졌다.
싱가포르와 제주도에 각각 보유한 저택을 넘겨주면 아마 무척 좋아할 것이 틀림없었다.
대한은 기뻐할 그녀들의 얼굴을 상상하며 헤벌쭉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에바는 그 모습이 꽤 보기 싫었는지 새초롬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옆으로 홱 돌렸다.
부아앙! 부아앙!
대한과 에바를 태운 방탄차는 빠르게 고속도로를 질주했다.
어느새 옆으로 한강의 그립던 모습이 넓게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는 괜히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다.
자주 뵙지 못했던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이 자신을 보고 기뻐할 일을 생각하자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오늘따라 올림픽대로가 차도 밀리지 않고 시원하게 뻥 뚫렸다.
마치 그가 고국에 돌아온 것을 반기기라도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 * *
KBC 신관 공개홀.
짝짝짝짝짝!
넓은 공개홀이 힘찬 박수 소리로 물들어갔다.
“와아! 정말 대단합니다.”
유희락도 아낌없이 손뼉을 치며 혀를 내둘렀다.
한새롬은 방청석을 향해 정중히 인사를 하고는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그리곤 유희락이 서 있는 자리로 모델처럼 당당히 걸어서 돌아왔다.
하얀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었을 뿐인데 워낙 얼굴이 예쁘고 몸매가 착해서 보는 이로 하여금 눈을 빛나게 만들고 있었다.
둘은 적당히 떨어진 소파에 서로 마주 보고 앉았다.
“한새롬 씨!”
“네?”
“정말 노래 잘하시네요.”
“고맙습니다.”
유희락은 놀란 표정을 조금도 숨기지 않았다.
그 모습에 한새롬은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발갛게 익어갔다.
“이 노래가 이번에 낸 싱글 앨범 맞죠?”
“뭐 앨범이라고 할 것도 없어요. 그냥 음원 한 곡 냈을 뿐이에요.”
한새롬이 겸손하게 말했다.
하지만 유희락은 조금도 그녀의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고개를 좌우로 마구 흔들며 앙탈을 부리듯 얘기했다.
“아잉! 무슨 소리예요? 현재 이 곡이 음원 순위 10위에 올랐다는데요!”
“네에? 정말요?”
그녀는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놀라는 모습도 토끼처럼 참 귀여운 한새롬이다.
“제목이 ‘그를 바라며’였죠?”
“네, 맞아요.”
“요새 무척 바쁘시겠네요. 드라마 찍어야지, 영화 촬영해야지, 거기에다 이젠 노래까지 불러야 하니 말이에요.”
“좀 그렇게 됐네요.”
바쁜 건 사실이기에 그녀도 약간 힘든 표정을 지었다.
사실 그녀는 유희락이 얘기하는 것보다 훨씬 더 바빴다.
최근에 물이 오를 대로 오른 미모와 연기력!
거기에다 출연한 드라마 시리즈와 영화 모두 잘 되고 있었다.
물론 아직 주연급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가 나오냐 마냐에 따라 시청률이 마구 오락가락했다.
특히 조연으로 출연한, 이번에 개봉된 영화가 대박을 터트리는 바람에 그녀의 주가는 매일 상한가를 치고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지상파 방송으로 유일하게 남아있는 정통 음악프로그램.
뮤지션을 초대해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라이브 뮤직 토크쇼인 ‘유희락의 스케치 노트’에 이렇게 초대받지 못했을 것이다.
“원래 그렇겐 노래를 잘했나요?”
“사실 전 제가 노래를 잘하는지 전혀 몰랐어요.”
한새롬은 하얗고 가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얌전하게 말했다.
유희락은 전혀 아니라는 표정을 지었다.
“에이! 설마! 그럼 오늘 여기 어떻게 나오신 거예요? 자기가 노래를 잘하는지도 모르는데.”
“그건 모두 이대한 덕분이에요.”
“잠깐! 이대한요? 혹시 축구선수 이대한 선수를 말하는 거예요?”
유희락은 이대한이라는 말에 펄쩍 뛰었다.
너무 놀라서 오히려 옆에서 그걸 보고 있던 한새롬이 다 민망할 지경이었다.
“네, 맞아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뛰고 있는 그 이대한 선수를 말하는 거예요.”
“와아! 대박! 나 이대한 선수 정말 좋아하는데. 완전 팬이에요.”
“우리나라에서 이대한 선수 안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
한새롬은 대한이 마치 자신의 친동생이라도 되는 것처럼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이게 또 전혀 부정할 수도 없는 팩트였다.
세계 최고의 프로축구리그에서 매 경기 멀티 골을 터트려버리니 도저히 좋아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이대한 선수는 정말 대단한 축구선수죠. 이번에 입국했다고 하던데…….”
“사흘 전에 들어왔어요.”
“아! 그렇구나. 어?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아세요? 혹시 친하세요?”
“물론이죠. 우리 사장님이신데.”
“에엑!”
유희락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녀를 쳐다봤다.
“이대한 선수는 축구선수 아니었어요?”
“네, 맞아요. 하지만 개인방송 채널인 대한TV를 가지고 있고, 코레 엔터테인먼트를 세우기도 했죠.”
“코레 엔터테인먼트라면, 코레 엔터를 말하는 거구나.”
“예.”
유희락도 코레 엔터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었다.
최근에 무섭게 몸집을 불리고 있는 신흥 엔터테인먼트 회사다.
많은 유명 연예인들을 깜짝 영입해서 뉴스에서 몇 번이나 나왔을 정도다.
특히 젊은 연예인들이 선호하는 기획사 1위라고 한다.
관리와 지원시스템이 훌륭하다고 소문도 자자했다.
“요새 거기 아주 잘나간다고 하던데.”
“회사가 일을 참 잘해요. 무리하게 일정을 짜지도 않고 참 편하게 대해주거든요.”
“혹시 코레 엔터 임원이십니까?”
“아닌데요.”
“그런데 왜 이렇게 회사 자랑을 하세요.”
유희락이 볼을 부풀리면서 말하자 한새롬이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웃었다.
“아니에요. 전 그냥 사실만 말하고 있을 뿐이에요.”
“그게 더 무섭다고요. 제 가수들이 전부 코레 엔터로 가버리면 한새롬 씨가 책임 질 거예요?”
“설마 그럴 리가 있겠어요? 유희락 대표님이 소속 가수들을 엄청나게 잘 챙긴다고 소문났던데요.”
“뭐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말을 못 하겠네요.”
그가 너스레를 떨며 말하자 그녀는 계속 유희락이 운영하는 기획사를 띄워줬다.
잠시 그의 기획사 얘기를 하다가 다시 주제를 처음으로 돌렸다.
“앗 참! 지금 우리가 왜 이런 얘기를 하고 있죠?”
“제가 노래를 하게 된 계기를 말하려다 대화가 옆길로 잠시 샜어요.”
“고맙습니다. 그럼 다시 돌아가면 되죠. 그래서 이대한 선수가 한눈에 척 알아보고 노래를 하라고 하던가요?”
“우연히 혼자 흥얼거리면서 노래 부르는 것을 듣더니, 대뜸 음원을 내보라고 하더라고요.”
“오오! 그러고 보니 이대한 선수도 음원을 낸 가수죠?”
“맞아요. TV에서 자주 나오지는 않지만 이미 전 세계적으로 수천만 장의 디지털 앨범을 판매한 인기가수예요.”
오늘 무슨 일인지, 한새롬은 대놓고 대한을 띄워줬다.
그러자 유희락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봤다.
“이대한 선수랑 친하시죠?”
“네, 뭐 좀 친한 편이죠.”
한새롬은 그가 무슨 말을 할지도 모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전화하면 받아요?”
“네에?”
“지금 전화 한번 해보시라고요. 받나 보게.”
“아!”
그제야 그녀는 유희락이 뭘 원하는지 깨달았다.
“왜요? 인맥 아니었어요?”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집에서 쉬고 있겠다고 해서 연락을 하기가 좀 망설여지네요.”
우우우우!
한새롬의 말에 방청객들이 일제히 야유를 보냈다.
그 모습에 그녀는 크게 당황하고 말았다.
다행히 유희락이 재치있게 끼어들었다.
“저뿐만 아니라 이렇게 방청객들도 이대한 선수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하니 어떻게 하죠?”
“어휴! 알았어요. 한번 전화해볼게요.”
방청객을 등에 업은 유희락의 요구에 한새롬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항복하고 말았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그녀의 행동은 재빨랐다.
당장 스마트폰을 꺼내 대한에게 급하게 문자를 쳤다.
다행히 몇 초 지나지 않아 그에게 OK 사인이 떨어졌다.
“쉬고 있어서 안 받을지도 몰라요.”
“괜찮아요. 그래도 한번 전화해보세요.”
한새롬은 여우처럼 미리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았다.
사실 굳이 이런 말을 할 필요도 없었다.
이미 대한에게 전화를 받겠다고 답을 받아 놓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스마트폰에 급히 방송 장비가 연결되고 한새롬은 대한에게 즉시 전화를 걸었다.
따르르릉 따르르릉!
올드(old)한 스타일의 벨 소리!
방송홀을 여지없이 가득 울렸다.
그런데 유희락을 비롯한 모든 방청객은 또 전부 그 소리에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 모습에 한새롬은 대한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절로 실감할 수 있었다.
―여보세요?
“대한 씨!”
―응, 새롬아!
“저 지금 ‘유희락의 스케치 노트’ 방송 중이거든요.”
―어! 그래?
“유희락 선배님과 방청객들께서 잠깐 목소리 좀 듣고 싶다고 하셔서 전화했어요.”
―아아! 어쩐지. 갑자기 존댓말을 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더니만.
대한의 말에 유희락을 비롯한 방청객이 일제히 웃음을 터트렸다.
덕분에 한새롬은 얼굴이 빨간 사과처럼 변하고 말았다.
―아차! 방송 중이라고 했지. 이런 말 하면 안 되는구나. 그런데 나도 존댓말 써야 해?
“그,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네, 누나! 편하게 말씀하세요.
그녀는 대한의 이어지는 말에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방청객들은 그 모습이 아주 재미있는지, 다들 킥킥대고 있었다.
“저 소개 좀 해주세요.”
“아! 네.”
유희락이 때마침 재치있게 끼어들었다.
“대한, 여기 유희락 선배님이 인사하고 싶으시대.”
―아! 그래. 그럼 어서 바꿔 줘.
“이거 방송 장비와 연결돼서 그냥 말하면 다 들려. 아니 들려요.”
―응. 아니, 네, 알겠어요.
대한의 말이 끝나자마자 유희락이 재빨리 인사를 했다.
“이대한 선수! 안녕하세요? 저 유희락이에요.”
―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영국에서 국위 선양하느라 바쁘셨죠?”
―국위 선양이라기보다는 먹고 살려고 그냥 열심히 뛰었습니다.
와하하하!
대한의 말에 방청객들은 일제히 빵 터지고 말았다.
꾸미지 않고 시원스럽게 말하는 그의 직설화법 말투!
방청객들에게 아주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입국하신 지 며칠 됐다고 들었는데, 좀 쉬셨어요?”
―네, 집에서 사흘간 잠자고 먹고 잠자고 먹고 했습니다. 어머니도 처음에는 좋아하시더니 이제는 그만 좀 뒹굴고 밖으로 나가라고 등짝 스매시를 갈기십니다.
“하하하! 이거 듣기만 해도 화목한 가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네요.”
―유희락 선배님도 한번 맞아보시면 그딴 소리 쏙 들어갈 겁니다. 전 아직도 맞을 때마다 아파서 죽습니다.
“하하하!”
이대한의 돌직구 스타일 화법에 유희락도 그만 빵 터지고 말았다.
하지만 그래도 뮤직쇼의 호스트 입장이라서 금세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여기 옆에 계신 한새롬 씨가 그러는데, 두 분이 아주 친하시다고요?”
―네, 매우 친한 편입니다.
오오오오!
유희락의 질문에 대한이 바로 긍정을 하자 방청객들 사이에서 놀란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한새롬은 그 소리에 어깨를 으쓱하며 입가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그녀의 얼굴을 풀샷으로 잡고 있던 카메라 감독이 놀라서 입을 딱 벌렸다.
‘뭐냐? 이 미친 미모는…….’
하루에도 수십 명의 연예인을 보고 있지만.
미모는 단연 한새롬이 톱이었다.
그 사실은 대한조차 쿨 하게 인정하는 바였다.
보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절세미녀 모니카!
그녀의 미모와 비교해도 전혀 떨어지지 않고 막상막하를 이루는 게 바로 한새롬이었다.
거기에다 대한의 적극적인 마사지(?)와 자신도 모르게 투입받은 나노셀의 혜택으로 한새롬은 지금 얼굴에서 빛이 나고, 몸매는 군살 하나 없이 완벽한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런 미녀가 환하게 미소를 짓고 있으니 사내들이 침을 질질 흘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