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만재능(Feat. 대한 TV)-258화 (257/331)

258화 <소각>

“각국 주재 대사관과 영사관을 한번 날 잡아서 털어봐야겠군.”

“아마 먼지가 많이 나올 거예요.”

에바는 비리와 부정이 많다는 뜻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굳이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아도 제대로 일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쯤은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한 해 수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실종되는 사태가 매년 반복되지는 않을 것이다.

외무부는 그 정도로 일이 심각한지 아직 전혀 모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경찰에 실종신고를 하지 않은 실종자들은 아예 통계에서 빠져있었다.

당연히 대사관이나 영사관 직원들이 실종자들을 일부러 찾아보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마스터! 지금부터 동시다발적으로 남은 23개의 비밀연구소를 한꺼번에 처리할 생각입니다.”

“나 신경 쓰지 말고 알아서 진행해!”

“네, 그럼 바로 시작할게요.”

대한이 허락하자 에바는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런 다음 허공에 51구역을 포함한 24개의 비밀연구소의 모습을 홀로그램으로 띄웠다.

그는 느긋하게 소파에 앉아 그걸 쳐다봤다.

쾅 쾅 콰콰쾅! 콰광!

각각의 홀로그램에서 폭음이 터지기 시작했다.

일부는 벌써 거대한 화염에 휩싸여 불타고 있었다.

지하에 세워진 비밀연구소들은 전부 초고열 폭탄에 의해 깔끔하게 소각됐다.

지상에 건설된 비밀연구소들은 대부분 화재로 불타올랐다.

어느 쪽이든 보유하고 있는 치명적인 생화학무기와 바이러스 및 병원체들은 깡그리 타버렸다.

특히 다시는 이런 끔찍한 생화학무기를 만들지 못하게 모든 자료를 완벽히 날려버리는 데 신경을 썼다.

“잘 탄다.”

대한은 마치 24개의 홀로그램이 뜨겁게 불타오르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저 정도면 아마 그 어떤 바이러스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아니, 이미 비밀연구소는 멜트다운이 시작되어 마그마처럼 변해갔다.

“이로써 지구에서 가장 위험하고 치명적인 생화학무기와 바이러스 및 병원체를 보유하고 있는 각국의 비밀연구소가 완전히 사라졌어요.”

“이러다가 설마 외부로 유출이 되지는 않겠지?”

“물론이죠. 그럴 걱정이 있는 것들은 미리 다 빼돌려놨어요.”

“잘했어.”

에바의 말을 들으니 그제야 좀 안심이 됐다.

대한은 그녀가 빼돌려놨다는 말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 넘어갔다.

“그리고 이게 끝이 아니에요. 비밀연구소에서 연구·개발한 생화학무기의 각종 연구자료와 실험 데이터들까지 모두 추적해서 없애는 중이에요.”

24개의 홀로그램이 일시에 사라지고 대신 그곳을 수십 개의 작은 홀로그램들이 채워갔다.

하나같이 각국 정부와 국방부의 비밀 데이터센터나 은밀한 장소에 보관된 자료와 데이터들이었다.

에바는 그걸 절대 복구하지 못하도록 깔끔하게 없애는 장면을 보여줬다.

대부분 에어볼을 이용해 자료와 데이터를 영구삭제했다.

하드카피가 있으면 불을 질러 태워버리는 방법을 썼다.

지구의 과학기술로 에어볼의 침입을 막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래서 에바에겐 각국 정부와 국방부 및 정보부에서 어떻게든 숨기려고 하는 것들을 찾아 없애는 게 전혀 어렵지 않았다.

“이러면 지구가 좀 더 안전해지겠지?”

“물론이죠. 그리고 지구가 아니라 인류예요.”

“무슨 차이지?”

“사실 지구가 오염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인간들 때문이라는 뜻이에요.”

“으음. 그건 지구환경보존을 위해 우리가 좀 더 노력하는 걸로.”

“네, 마스터!”

대한의 말에 그녀는 쉽게 수긍하고 넘어갔다.

당장 그는 지구환경보존 문제까지 꺼내고 싶진 않았다.

각국이 비밀리에 운영하고 있던 24개의 비밀연구소를 없애는 것만 해도 대한에겐 너무 벅찬 일이었다.

“희생자는 얼마나 나왔지?”

“관련자가 죽은 일은 있어도 희생자는 전혀 없어요. 물론 본의 아니게 몇 사람이 다치긴 했지만, 생명이 위독할 정도는 아니에요.”

“그럼 비밀연구소와 직접 관련된 사람은 얼마나 죽었지?”

“총 698명이에요.”

“으음.”

에바의 말을 듣자 대한은 큰 충격을 받았다.

가슴이 답답하고 속이 꽉 막힌 느낌이 들었다.

그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단 하루 만에 내가 698명을 죽였구나.’

대한은 심한 죄책감이 쓰나미처럼 밀려드는 것을 막지 못했다.

심장이 막 뛰고 두 손이 심하게 떨려왔다.

이건 공황장애나 일종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같은 것이었다.

에바는 옆에서 그를 위로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내 입을 꾹 다물고 그냥 가만히 서서 지켜봤다.

이건 대한이 반드시 꼭 한번은 거쳐 가야 할 관문이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 스스로 해결하고 정리해야 할 일이란 뜻이다.

사실 사람을 죽이는 일이 절대 유쾌할 리 없었다.

그 대상이 설사 천하에 때려죽일 극악무도한 악인이라고 해도 말이다.

처음은 아주 힘들었다.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자책감!

정말 가슴이 무너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시간이 좀 지나자 대한의 무의식 속에서 자기방어 기재가 작동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배틀푸르나(SSS)’를 운용하고 있었다.

머리가 맑아지고 가슴이 시원해졌다.

전신이 가벼워지고 몸에 힘이 불끈 솟았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대한은 금세 자신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냉정하게 이번 일에 대해 심사숙고했다.

‘정말 이게 내가 잘못한 일인가?’

‘꼭 이렇게 했어야만 했나?’

‘앞으로 또 이런 일이 생기면 그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내가 가야 할 방향과 목적은 무엇이지?’

‘굳이 내가 최종결정을 내려야만 하는가?’

‘누구를 위해 나는 지금 내 손에 피를 묻히고 있는 거지?’

그의 머릿속으로 온갖 의문과 해답, 사고(思考)와 관념들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하지만 대한도 그동안 그냥 놀고먹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에바와 같이 많은 일을 함께 했다.

그가 상상하는 것보다 대한의 정신력은 훨씬 뛰어났다.

에바를 통해 결정하는 크고 작은 일들!

이게 수많은 간접경험과 합쳐지며 그의 사고와 의식의 발전에 큰 밑거름으로 작용했다.

시간은 소리 없이 흘러갔다.

마침내 대한은 장고 끝에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기준을 세우고 움직인다. 결정하면 망설이지 말고, 후회할 일은 아예 하지도 말자. 독하지 않으면 안 된다. 피를 보는 걸 두려워하지 말자. 평화를 위해 전쟁을 준비하자.’

그는 앞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과 하게 될 일들을 구분하고 정리했다.

역시 제일 중요한 것은 자신과 가족 그리고 친구들의 안전이었다.

만일 누군가 이걸 건드리려고 한다면 결단코 용서치 않겠다고 결심했다.

다음은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이다.

이게 개인적인 부분이라면 공적인 부분도 있었다.

에바를 통해 가지게 된 무소불위의 권능!

이것을 지구와 인류의 번영을 위해 사용하기로 했다.

그것이 어떤 방식이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렇게 결정을 내리고 나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에바!”

“네, 마스터.”

대한이 부르자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에바의 눈에선 벌써부터 별빛 같은 기대감이 솟구치고 있었다.

“그동안 고생 많았어.”

“네에?”

그의 뜬금없는 말에 그녀는 당장 어떻게 대답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

“아! 네.”

그래도 좋았다.

에바는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녀는 대한이 알을 깨고 나왔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동안 갇혀있던 성장과 의식의 막이 깨진 것이다.

소년은 한순간에 훌쩍 커서 어엿한 사내대장부가 되어버렸다.

대한의 존재감이 갑자기 몇 배나 커져 보이자.

에바는 금세 눈물이라도 흘릴 것처럼 감격스러웠다.

‘이제야 보모(babysitter)에서 벗어나는구나.’

그렇다.

더는 대한을 아기처럼 돌보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에바는 자신도 모르게 기대감에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그러면서도 앞으로 최선을 다해 마스터를 도와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게 설사 수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극단적인 일이 될지라도 말이다.

고오오오!

전용기는 12,000m의 고도로 빠르게 동쪽을 향해 날아갔다.

멀리서 미명과 함께 한반도의 모습이 아른대기 시작했다.

* * *

와아아아!

우렁찬 함성이 인천국제공항을 뒤덮었다.

수많은 인파가 입국장을 가득 메운 채 환호성을 터트렸다.

기자들의 카메라 삼각대를 시작으로 방송국의 방송용 카메라까지.

사방에 국내외의 언론사들 장비가 포진하고 있었다.

“대한! 대한! 대한! 대한…….”

언제부터인가, 대한의 이름을 부르는 함성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걸 들으며 에바가 그의 얼굴을 쳐다봤다.

“마스터!”

“어휴! 이놈의 인기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

에바는 그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뻑도 이 정도면 병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막상 입국장을 진동시키는 소리를 들어보면 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기도 했다.

“어떻게 하실 거예요?”

“뭘 어떻게 해? 저렇게 내 팬들이 모여있는데……. 나보고 그냥 가라고?”

“그럼 저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곳에 굳이 나가실 거예요?”

“나가야지. 가더라도 인사는 하고 가야지.”

“잠깐만요. 나갈 땐 나가더라도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에바는 입국장을 향하는 대한을 급히 자신의 몸으로 막아섰다.

뭉클!

볼륨 있는 그녀의 몸이 대한과 살짝 부딪쳤다.

그는 슬쩍 에바의 가슴을 한번 쳐다보곤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왜? 뭐 하려고?”

“제가 여기서 뭘 하겠어요? 마스터의 안전을 위해 당연히 보안요원을 투입해야죠.”

“오오! 그런 거야?”

기특한 그녀의 말에 그의 얼굴이 유들유들하게 변했다.

아무래도 입국장의 열기가 대한의 간을 실시간으로 부풀게 하는 모양이다.

에바는 한숨을 내쉬며 스마트폰을 들어 급히 전화를 걸었다.

B1 최강철, B2 강성한, M1 김철수, M2 이영수.

이 넷으로는 아무래도 많이 불안했던 모양이다.

그런 다음, 옆에서 아까부터 대기하고 있던 인천국제공항 보안과장에게 말했다.

“5분 뒤에 입국장으로 나갈게요.”

“알겠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도 최대한 인원을 투입하겠습니다.”

“고마워요.”

금발에 푸른 눈의 미녀가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젊은 보안과장의 얼굴은 당장 헬렐레가 되고 말았다.

옆에서 보며 인간이 어떻게 물처럼 풀어헤쳐 지는지 그 기적 같은 일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다.

대한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느긋하게 기다렸다.

잠시 후, H1 제니, H2 야엘, L1 리사, L2 틸란이 나타났다.

“너희도 같이 나갈 거야?”

“네, 에바가 불렀어요.”

“그렇구나.”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에바가 저렇게 다급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니 예상보다 인파가 많이 몰린 모양이었다.

“준비됐어요. 가시죠!”

에바가 선글라스를 꺼내 대한에게 씌워주면서 말했다.

“응.”

고개를 끄덕이자 에바를 비롯한 제니와 야엘, 리사와 틸란까지 모두 선글라스를 꺼내 썼다.

하지만 다들 워낙 독보적인 미녀들이라서 그 모습이 더 눈에 띄었다.

저벅저벅 저벅저벅!

처음부터 선글라슬 쓰고 있었던 최강철, 강성한, 김철수, 이영수는 급히 대한 앞으로 걸어가 자연스럽게 반원을 그렸다.

대한의 곁은 당연히 에바가 지켰다.

대신 그의 왼편으로 제니와 야엘이 서고, 오른편으로 리사와 틸란이 섰다.

아무리 가사전용, 레저전용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안드로이드라 사람보다는 훨씬 강하고 튼튼했다.

지이잉!

마침내 입국장의 문이 좌우로 활짝 열렸다.

순간, 카메라의 플래시가 폭포수처럼 터져 나왔다.

파파파파팟 팟팟팟팟!

그로 인해 장내는 눈이 멀어버릴 것 같이 일순 환하게 밝아졌다.

와아아아!

이어 우렁찬 함성이 일자 건물이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다.

“대한 오빠다!”

“오빠!”

“드디어 나왔다.”

“이대한 선수! 여기 좀 봐주세요.”

“와아! 이대한 선수다.”

“이대한이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사방에서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어떻게 하든 한 번이라도 눈을 마주치고 싶어서 안달이 난 모양새다.

이런 사람들의 열망은 점차 흥분과 함께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얼핏 보니 기껏 세워놓은 차단선이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 위태롭게 흔들렸다.

그때였다.

군중의 앞으로 갑자기 선글라스를 쓴 건장한 청년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그들은 곧장 차단선 앞에 서서 질서를 유지하고 안전을 확보했다.

대한은 그 청년들이 누군지 대번에 알아차렸다.

‘세상에! 아니 전투로봇을 몇이나 데려온 거야?’

―급한데 어쩔 수 없잖아요.

대한과 에바는 마음속으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급하니 히릭스에 있는 전투로봇들이라도 데려올 수밖에.

‘그럼 아까 전화한 곳이 히릭스였어?’

―그냥 전화 거는 척만 한 거죠. 제가 왜 굳이 히릭스에 전화를 하겠어요?

‘뭐 그거야 그렇지만.’

하긴 에바 자신이 히릭스의 메인 슈퍼컴이다.

그런데 굳이 따로 연락을 왜 하겠는가!

어쨌든 당장 무너질 것만 같은 차단선은 공고하게 변했다.

이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대한은 입국장을 가득 메운, 뜨거운 환영의 인파를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다.

역시 그냥 이대로 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맞았다.

그래서 그는 잠시 그 자리에 서서 두 손을 높이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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