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7화 <극악무도>
“으음.”
입에서 절로 무거운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살려달라고 눈물을 흘리는 멀쩡한 사람들을 좀비가 있는 우리로 몰아넣는 연구원들.
좀비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며 성공했다고 손뼉을 치는 놈도 있었다.
일부는 실험 상대가 얼마나 오래 좀비 바이러스를 견디는지 내기를 하는 자도 있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어린아이들까지 좀비에게 던져주는 이도 있었다.
특히 만삭의 임신부를 좀비에게 일부러 물리게 하는 장면은 아주 끔찍했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정부의 고위층이 시찰을 나오자, 그들에게 온갖 아부를 해대며 영원한 영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설레발을 치는 연구소장의 모습이었다.
‘에바! 그만 보자.’
―왜 좀 더 보시지 않고요? 괜히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지금 확실하게 봐두세요.
‘아니야. 이미 충분해. 이놈들을 살려두면 분명히 또다시 좀비 바이러스를 연구하겠다고 애먼 사람들 여럿 잡을 거야.’
―마스터께서 정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그렇게 하세요.
에바의 대답을 한쪽 귀로 들으며 대한은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세상에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이 있다.
이 비밀연구소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각종 실험!
절대 같은 인간에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에바! 그런데 좀비 바이러스는 어디서 난 거야?’
―실험일지를 보면 죽은 외계인의 시체에서 표본을 추출하고 그걸 변종 바이러스와 섞어서 배양한 모양입니다.
‘그럼 여길 소각시킨다고 해도 이미 다른 곳으로 샘플이 나갔다면 아무 소용없는 짓이 되는 거잖아?’
―다행히 저들도 세상이 좀비 천지로 변해버리는 것을 원하지는 않았어요.
‘그런 놈들이 저런 끔찍한 실험을 자행하며 좀비 바이러스를 연구해?’
―의학의 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인간이 때론 악마보다 더한 괴물이 되기도 하죠.
그녀의 말이 백번 옳다.
대한은 잠시 사방을 꼼꼼히 둘러보다가 이내 몸을 돌렸다.
솔직히 괜히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예 몰랐다면 차라리 이렇게 기분이 더러워지지 않았을 것이다.
‘여길 소각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겠지?’
―물론이죠. 이곳을 만들고 운영하고 지휘한 모든 관련자에게 철저히 책임을 물을 생각이에요.
‘만약 미국 정부에서 모른 척 그냥 묻으려고 한다면?’
―그럼 저라도 나서서 지옥을 보여줄 거예요. 물론 마스터의 허락하에 말이죠.
‘끄응. 정말 그건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장면이겠군.’
대한의 뇌리에 상상하고 싶지 않은 어떤 장면이 그려지고 있었다.
범죄자들을 쫓아다니며 염산을 마구 부어대는 금발의 여자!
그는 자기가 당한 것도 아닌데 괜히 오금이 저려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마침내 대한은 염산마의 정체를 알아차리고야 말았다.
우연한 기회에 혹시나 해서 물어보자 에바는 그냥 순순히 시인을 해버렸다.
‘에바가 염산마라니…….’
정확히 말하면 에바가 염산마는 아니다.
다만 그녀가 움직이는 안드로이드와 에어볼이 염산을 뿌려댄 것이다.
하지만 에바의 명령을 받고 하는 것이니 어차피 그게 그거다.
대한에겐 이미 에바가 염산마라는 공식이 성립되어 있었다.
차라리 깔끔하게 죽는 게 낫지.
염산마에게 당해 평생을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건 오히려 죽느니만 못한 일이었다.
그래도 에바는 마스터의 뜻을 따라 결코 사람의 목숨을 함부로 거두지 않기 위해 나름 노력한 것이다.
그리고 원하기만 하면 염산마에게 응징을 당한 놈들도 얼마든지 정상인으로 환원시킬 수 있었다.
어떻게?
간단하다.
그냥 나노 시술을 받으면 된다.
재생에 탁월한 효능을 가진 나노셀!
주사 한 방이면 며칠 만에 피부와 근육이 멀쩡하게 재생된다.
어떻게 보면 만능치료제에 가까운 게 나노셀이었다.
대한이 괜히 나노셀을 양산하고 있는 게 아니다.
물론 극악무도한 놈들에게까지 나노셀의 혜택을 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아마 놈들은 평생 나노셀은 구경도 하지 못할 것이다.
동티모르의 코레 병원에는 이미 블랙리스트가 내려가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치료를 해서는 안 될 명단이 메인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었다.
저벅저벅!
대한은 에바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걸어 나왔다.
승강기를 타고 버튼을 누르자 빠르게 위로 올라갔다.
위이이잉!
거대한 공동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그의 눈에 담았다.
그러면서 동시에 대한은 주먹을 꽉 쥐었다.
오늘 이후!
아마 자신은 달라질 것이다.
그동안은 아무리 나쁜 놈이라고 해도 직접 손을 쓰지 않았다.
전부 에바나 다른 이의 손을 빌려 해결해왔다.
하지만 이번은 전과 달랐다.
이 비밀연구소를 소각하는 일은 분명한 그의 의지가 서려 있었다.
그래서 이후에 일어날 필연적인 인명 살상은 전적으로 자신의 책임이다.
대한은 이제 더는 에바의 치맛자락 뒤에 숨는 어린아이가 아니다.
더더구나 생명의 무게와 책임을 회피할 생각 따윈 아예 없었다.
그게 설사 아무도 그에게 묻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휴우!”
지상으로 올라오자 대한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바깥의 신선한 공기가 폐로 들어오자 답답한 속이 좀 풀리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 한쪽은 무겁기 그지없었다.
―마스터! 이제 이동하셔야 합니다. 여긴 지진과 충격파 그리고 폭발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알았어.’
대한은 스텔스 모드로 소리 없이 다가온 우주셔틀에 올라탔다.
뒤따라 사방으로 흩어졌던 전투로봇과 안드로이드들이 돌아왔다.
그들 중 일부는 등에 무거운 배낭과 양손에 묵직한 가방을 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것을 끝으로 그는 커넥터의 동기화를 해제했다.
스팟!
눈을 떠보니 전용기 안이었다.
한순간에 지구 반대편에서 이곳으로 점프한 기분이었다.
일어나려고 하자 살짝 현기증이 일었다.
“나 왜 이러지?”
“일어나지 말고 잠시 그래도 계세요.”
“으음.”
“이동용 커넥터를 이용해 장거리 동기화를 하신 게 처음이라서 그래요. 몇 번 하시다 보면 금세 적응하실 거예요.”
대한은 몸에 힘을 빼고 그대로 소파에 누웠다.
그러다가 배틀푸르나(SSS)를 운용했다.
정수리에서 꼬리뼈까지 진자운동이 시작되자 마력이 활성화됐다.
당장 현기증이 사라지고 머리가 시원해졌다.
몸은 날아갈 듯 가벼워지고 전신에 힘이 용솟음쳤다.
과연 스파이럴 제국의 기사들이 익힌다는 전투용 마력운용법다웠다.
벌떡!
대한은 망설이지 않고 소파에서 일어났다.
팔다리를 휘돌리며 목을 이리저리 꺾어봤다.
몸이 어느새 깃털처럼 가벼워져 있었다.
“괜찮으세요?”
“응. 이제 좀 적응이 되는군.”
그가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에바의 안색도 환하게 밝아졌다.
“언제 시작이지?”
“이제 곧 시작합니다.”
“홀로그램 띄워봐!”
“네, 마스터!”
대한은 그녀에게 명령을 내리고 다시 소파에 앉았다.
허공에 홀로그램이 몇 개 떠올랐다.
낯익은 모습은 한눈에 봐도 51구역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특히 지하의 거대한 공동을 보자 절로 마음이 무거워졌다.
하지만 그는 이내 중심을 잡고 눈에 힘을 줬다.
‘독하지 않으면 장부가 아니라고 했다. 내가 아니면 당장 저들의 극악무도한 좀비 바이러스 생체실험을 막을 수가 없어. 저곳을 소각시키는 일은 앞으로 희생당할 무고한 피해자를 막기 위해서야. 그리고 만에 하나, 좀비 바이러스가 밖으로 유출된다면 인류는 멸망각이다.’
대한은 그렇게 애써 스스로 자위를 했다.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정당성과 당위성으로 자신의 멘탈을 무장시켰다.
무의식적으로, 그래야만 견딜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에바가 냉정하게 카운트다운에 돌입했다.
“마스터, 초읽기에 들어갑니다.”
“그래.”
“다섯, 넷, 셋, 둘, 하나!”
쿵!
그녀가 마지막 숫자를 세고 나자 넓은 51구역 전체를 강타하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대한은 홀로그램을 통해 공동을 쳐다봤다.
거대한 공동안은 이미 커다란 화염으로 뒤덮여있었다.
붉은 화마가 삽시간에 미니 콜로세움을 집어삼켰다.
열을 세기도 전에 뜨거운 초고열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멀쩡한 건물과 실험실에 불이 붙고 각종 시설이 여름에 아이스크림 녹듯 녹아내렸다.
치짓!
얼마나 공동 안이 뜨거웠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CCTV 카메라까지 녹아버렸다.
“저 공동 안의 온도가 얼마나 올라갈까?”
“태양의 표면과 비슷한, 수천 도는 가볍게 넘어갈 겁니다.”
“저런 환경에서도 좀비 바이러스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불가능합니다. 무엇보다 좀비 바이러스를 비롯한 각종 치명적인 바이러스와 병원체를 보관해놓은 탱크는 전투로봇과 안드로이드를 시켜서 전부 깨끗하게 제거했습니다.”
어떻게 했기에 그게 가능하냐는 질문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녀이기에 충분히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한은 에바의 단호한 말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홀로그램은 더 이상 공동을 비추지 않았다.
대신 하늘에서 51구역 전체를 내려다보는 모습을 보여줬다.
쾅 쾅 쾅 쾅 쾅 쾅!
51구역 사방에서 연쇄적으로 폭발이 일어났다.
거대한 버섯구름이 솟구치고 화염이 치솟았다.
강진이 일고 건물이 무너져 내리는 등
일대는 마치 지옥이 강림한 것처럼 난리가 났다.
51구역 관리자들은 갑작스러운 폭발과 연이은 지진 등에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어디서, 어떻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어 크게 당황했다.
일부는 패닉에 빠져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미국 정부에서 테러를 당했다고 난리를 치겠는데.”
“아마 그건 불가능할 겁니다. 외부에서 침입한 흔적이 전혀 없으니 내부 소행이나 우연이 겹쳐서 이런 폭발이 일어났다고 결론을 내릴 것입니다.”
“저렇게 난리가 났는데도 과연 그렇게 생각할까?”
“마스터께서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이곳 51구역 안은 폭발물과 인화물이 꽤 많습니다.”
“그으래?”
에바의 설명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걸리지만 않으면 그만이니 굳이 대한이 걱정할 문제는 아니었다.
“전투로봇과 안드로이드는 모두 철수했지?”
“네, 51구역을 감시하는 에어볼을 제외하곤 전부 무사히 빠져나왔습니다.”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는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허공에 떠 있는 51구역 홀로그램은 이제 옆으로 치워버렸다.
대신 다른 몇 개의 홀로그램을 각각 확대해놓았다.
“여긴 어디지? 중국인가?”
“네,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에 있는 천산 산맥입니다.”
“아! 그 공기 좋고 물 맑다는 천산에다 비밀연구소를 지어놓았군.”
“연구소장이 천산을 아주 좋아한답니다.”
사람의 각기 다른 취향은 존중해줘야 한다.
하지만 사람 같지 않은 놈들이 산을 좋아한다는 말을 들자!
괜히 속에서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홀로그램에서 보이는 것은 산기슭에 세워진 그럴듯한 연구소였다.
겉으로 보이는 것은 마치 장생불사라도 연구하는 도교의 사원같이 생겼다.
그러나 내부로 들어가자, 독립을 외치는 위구르인들을 잡아다 온갖 생체실험을 해대는 끔찍한 비밀연구소의 민낯이 드러났다.
대한은 그 모습을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끝까지 지켜봤다.
왠지 이건 외면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다.
“다음 홀로그램은 우한 남쪽에 있는 중국 인민해방군의 생화학무기 연구소입니다.”
“저게 그 문제의 연구소로군.”
“그렇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를 유출해 수많은 감염자를 양산했던 시설!
당시에도 생화학무기 실험실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다.
하지만 중국 당국은 그저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민간연구소라고만 얘기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곳은 생체실험이 없었다.
그래도 에바는 너무 위험한 바이러스들과 병원체가 많다고 반드시 없애버려야 한다고 했다.
잠시 에어볼이 보여주는 현장을 구경하다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러자 에바가 바로 설명을 이었다.
“다음은 일본입니다.”
“저긴 후지산이네.”
“맞아요. 후지산 안에 숨겨진 일본의 비밀 생화학무기 연구소입니다.”
“저기서도 생체실험을 한다는 말이지?”
“네, 특히 재일동포나 일본을 방문한 대한민국의 젊은 남녀들을 납치해서 생체실험에 이용하고 있어요.”
“아오! 정말 나쁜 놈들이네.”
대한은 대놓고 화를 내고 말았다.
그러자 에바가 타는 불에 기름을 끼얹는 말을 했다.
“납치 같은 더러운 일은 주로 야쿠자가 하고 있어요. 일본 정부는 시치미를 뚝 떼고 전혀 모르는 척하고 있죠. 그리고 이런 일은 사실 중국이 더 심해요. 한 해에 중국에서 실종된 한국인의 숫자가 몇백 명이나 돼요.”
“중국이나 일본이나 하는 짓이 전부 양아치군.”
“겉으로는 삼합회나 야쿠자가 저지른 짓이라고 발뺌하고 있죠.”
“범죄는 조직폭력배들이 저지른 것이라 정부는 책임이 없다는 건가?”
“아무래도 그게 부담이 덜하겠죠.”
에바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화가 났다.
이렇게 되도록 중국과 일본 주재 대사관과 영사관 직원들은 뭘 하고 있었던 걸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분노가 솟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