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6화 <비밀연구소>
미국 네바다주 남부사막.
긴 활주로에 차례로 조명이 들어왔다.
한쪽에 세워진 크고 작은 건물에도 어둠을 밝히는 불이 밝혀졌다.
주변 사막이 어둠의 장막에 휩싸인 것과는 달리 제1급 군사구역은 쏟아지는 별빛처럼 불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제51구역(Area 51).
온갖 음모론과 SF 영화들의 모태와도 같은 곳이다.
대표적으로 유명한 것이 외계인과 UFO에 대한 연구설.
지구에 추락한 UFO 잔해를 회수해서 보관 중이라던가!
심지어는 외계인과 공동 연구가 진행 중이라는 음모론이 아직도 끊이질 않고 있었다.
군사시설이라는 것을 고려하더라도 지나치게 경비가 삼엄하다는 점.
미 정부가 작성한 지도에는 이곳이 표기되어 있지 않다는 것.
구글 위성사진에서 미스터리 서클 같은 기묘한 구조물이 발견된 일.
이 지역 주변 주민들이 밤에 UFO가 지나가는 듯한 소리나 모습을 봤다는 증언.
정체불명의 발광물체가 출몰하거나 의문의 굉음이 심심치 않게 울린다는 말 등
51구역을 의심해볼 만한 요소는 셀 수도 없이 많다.
물론 기밀이 해제된 미 국방성 1급 기밀문서를 보면.
이곳에서 스텔스기를 비롯한 미 공군의 각종 최첨단기체와 실험기들을 테스트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모든 정보가 공개된 것이 아니다.
또한, 처음부터 이곳은 국방부의 군사기지가 아니라 중앙정보국의 구역이었다는 점이 아주 수상하다.
확실히 뭔가 있다고 의심하기에는 아주 좋은 떡밥들이 즐비했다.
일례로 51구역에서 근무했었다는 일부 폭로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미 해군이 4지구를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거기에다 외계인의 비행접시가 국제 순수 및 응용화학 연맹(IUPAC)이 2016년 11월 28일에 115번 원소로 주기율표에 넣은 모스코븀(Mc)을 원료로 중력파 증폭 엔진을 가동하고 중력 에너지를 만들어서 이를 파도 타듯 시간과 공간을 마음대로 구부려서 날아다닌다고 한다.
당연히 미국은 반물질 반응로와 중력파 증폭 엔진을 복제하려고 리버스 엔지니어링(Reverse engineering)을 이용해 여러 번 시도를 했다.
하지만 모조리 실패했다고 했다.
이처럼 음모와 폭로가 이어지는 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51구역에 소리소문없이 불청객이 스며들었다.
고오오오오!
긴 활주로에 삼각형과 원형이 섞인, 미래형 디자인의 기체가 내려앉았다.
이것만 봐도 미국이 보유한 항공기술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있다.
희한하게 생긴 기체가 착륙에 성공하고 격납고로 들어온 순간!
긴 활주로를 밝히던 조명이 일제히 꺼졌다.
웅!
그런데 같은 시각.
묘한 파장이 51구역 전체를 강타했다.
활주로의 조명이 꺼지는 것과 동시에 여러 건물을 밝히던 전구와 조명들이 일제히 나가버린 것이다.
아니 전기를 공급하는 발전소 자체가 작동이 중단되고 예비로 사용하는 비상발전시설까지 몽땅 한순간에 먹통이 되어버렸다.
발전과 전원을 담당하는 지원부서는 이 갑작스러운 사태에 크게 당황했다.
그들이 이렇게 헤매고 있는 사이!
스르륵!
하늘에서 지상을 향해 수십 개의 줄이 내려왔다.
그 줄을 타고 뭔가가 아래로 빠르게 내려오더니 바닥에 조용히 내려섰다.
척!
―마스터! 어때요?
‘아주 좋아.’
눈에 보이지 않는 수십 개의 존재가 뒤를 이어 바닥에 내려섰다.
그러나 한순간, 그들은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져갔다.
다만 제일 먼저 바닥에 내려선 존재만이 그 자리에 서서 가만히 주변을 살펴보고 있었다.
‘막상 겪어보니 참 신박하네.’
―스텔스 기능 중 투명 모드(Invisible mode)를 켜서 그래요.
‘전용기에서 커넥터를 이용해 지구 반대편에서 작전 중인 안드로이드를 움직일 수 있다는 게 더 신기해!’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이에요.
에바는 대한이 좋아하자 목소리에 활기가 넘쳤다.
대한은 지금 정신은 51구역에, 몸은 전용기 안에 있었다.
소파에 앉아 홀로그램만 들여다보는 것이 좀 지겹다는 말에 에바는 이렇게 자신의 머리에 커넥터를 씌워줬다.
그러자 마치 가상현실처럼!
그는 지구 반대편에 작전 중인 안드로이드의 몸 안으로 쏙 들어와 버렸다.
―그런데 언제까지 거기 그렇게 망부석처럼 서 있을 거예요.
‘아! 나 어떻게 하면 되지?’
―얼굴을 가린 바이저(Visor)에 목적지와 임무가 나타나 있을 거예요. 제가 특별히 마스터만 볼 수 있게 화살표를 띄울 테니까 그걸 보고 따라가세요.
‘응, 알았어.’
에바의 말대로 바이저에 목적지와 임무가 분명히 나타나 있었다.
하지만 대한은 초행이라 어디가 어딘지 금세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다행히 그녀는 자신의 마스터를 위해 허공에 그만 볼 수 있는 화살표를 띄워줬다.
이것을 보니 대한은 자신이 마치 온라인 게임의 튜토리얼을 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사박사박!
대한은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게 조용히 화살표를 따라갔다.
그가 도착한 곳은 51구역 중에서도 가장 외딴 곳이었다.
눈앞에 거대한 격납고 같은 게 보였다.
‘에바! 여기가 바로 그 좀비 바이러스가 있다는 비밀연구소야.’
―아니에요. 연구소는 이 건물이 아니라 지하 수십 미터 아래에 있어요. 지금 전투로봇과 안드로이드들이 작전 중이니 천천히 승강기를 타고 내려가시면 될 거에요.
대한은 화살표를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철저한 경비시설을 자랑하는 특급 보안지역이었지만.
출입구는 열려있고 건물의 현관은 활짝 열린 채 어둠에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바이저를 통해 바라보는 대한의 시선은 마치 대낮을 보는 듯 환했다.
아니, 그게 아니더라도 배틀푸르나(SSS)를 운용했다면 아마 어둠을 대낮처럼 밝게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사박사박!
그는 화살표가 이끄는 데로 조용히 움직였다.
고개를 위로 들어보니 허공에 수십 개의 에어볼이 자신을 철통같이 감싸고 있었다.
만약의 사태가 터진다면 아마 상대는 순식간에 에어볼에 의해 벌집이 되어버릴 것이다.
든든한 마음에 어깨를 살짝 으쓱한 그는 몇 개의 보안검색대를 지나 승강기를 탔다.
위이잉!
방금 전까지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승강기가 움직였다.
고개를 잠깐 갸웃했지만, 에바가 어련히 알아서 잘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승강기는 빠른 속도로 내려갔다.
수십 미터를 내려가자 갑자기 시야가 확 트였다.
대한은 두 손을 승강기 방탄유리벽에 대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상상도 할 수 없는 거대한 원형의 공간.
설마 지하에 이런 장소가 있으리라곤 미처 생각지 못했다.
‘이런 곳을 도대체 어떻게 발견한 거지?’
―확실히 좀 수상하죠?
‘그러네. 진짜 외계인들이 만들어 놓은 공동이라도 되는 거야?’
―그럴 수도 있죠. 확실한 것은 지구의 과학보다는 훨씬 뛰어난 존재의 흔적이 보인다는 것이에요.
‘와우! 그 말은 외계인이 있긴 있다는 말이네.’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제가 어디서 왔는지 잊으셨어요?
‘아차! 그렇지.’
에바의 말에 대한은 자신도 모르게 손으로 머리를 한 대 툭 쳤다.
생각해보니 에바야말로 외계인이 만들어낸 문명이 틀림없었다.
매일 같이 부대끼며 살다 보니 어느새 그녀가 어디서 왔는지 인식조차 하지 못했다.
이미 그에게는 한 몸처럼 느껴졌던 모양이다.
‘내 말은 여기에 UFO가 있긴 있다는 거지?’
―정체불명의 비행접시를 얘기하는 거라면 맞습니다.
‘정말 미국이 외계인을 고문해서 첨단기술을 얻은 거구나.’
―그건 확실하지 않지만, 중급의 물질문명의 징후가 여기저기에서 감지됐어요.
‘그런데 왜 지금까지 그걸 말하지 않았어?’
―언제 저한테 물어보신 적 있으세요?
‘어? 없구나.’
대한은 에바의 질문에 오히려 깔끔하게 인정하고 말았다.
‘그런데 중급의 물질문명이라는 말을 하는 걸 보니 볼트 행성의 스파이럴 제국보다는 좀 떨어지나 보지?’
―많이 떨어집니다.
‘그럼 지구는 등급이 어느 정도나 되는 거야?’
―태양계는 물론이고 자신의 행성 밖으로도 벗어나지 못하는 문명은 말할 것도 없는 하급 문명입니다.
‘아! 그렇구나.’
말을 하는 대한의 목소리에 불만기가 감돌았다.
에바는 그의 심박 수가 변하는 것을 보고는 심기가 좀 불편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얼른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승강기가 도착했어요. 늦기 전에 어서 빨리 가보세요.
‘알았어.’
에바가 서두르자 대한은 조금 전의 생각은 홀라당 잊어버렸다.
그는 급히 화살표를 따라 뛰어갔다.
그러자 사방에 희한한 건물과 환경들이 목격됐다.
‘이건 마치 돌로 만든 미로 같네.’
―중앙을 보면 작은 원형 경기장이 나올 거예요.
‘으음, 정말 미니 콜로세움 같은 게 하나 있네.’
대한은 미로를 빠르게 통과했다.
에어볼이 미리 허공으로 올라가 출구를 찾아줬다.
그러니 괜히 여기서 헤맬 이유가 전혀 없었다.
출구로 나가는 순간 원형의 경기장이 눈앞에 나타났다.
자세히 살펴보니 콜로세움 겉모습만 흉내 냈을 뿐.
정말 똑같이 만든 것은 아니었다.
캬아아오!
그때 소름 끼치는 괴성이 대한의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의 비명이나 짐승의 포효가 아니었다.
정체불명의 괴성에 그의 팔다리에 소름이 돋았다.
꿀꺽!
침을 꿀꺽 삼키며 원초적인 공포감을 자아내는 괴성을 따라 대한은 빠르게 원형 경기장 안으로 들어갔다.
겉과는 달리 안은 겹겹이 차단벽이 설치되어 있었다.
혹시라도 외부로 나가는 것을 막으려고 설치해놓은 것 같았다.
그런데 높이가 3m도 넘어 보였다.
그는 잠깐 단단한 차단벽을 보고는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그냥 뛰어넘기로 했다.
다다다 쿵! 휘리릭!
대한은 차단벽을 향해 달려가 발로 벽을 차면서 훌쩍 뛰어넘었다.
생각보다 손쉽게 그는 차단벽을 통과했다.
문제는 이 차단벽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마스터! 화살표를 보세요.
‘하아!’
에바의 말이 들리자 대한은 그만 탄식을 터트리고 말았다.
차단벽 옆쪽으로 버젓이 쪽문이 열려있었기 때문이다.
괜히 차단벽을 타고 넘는다고 뻘짓을 한 셈이다.
그는 안드로이드가 자신의 몸이 아닌 것을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미 얼굴이 벌겋게 붉어져 있었을 것이다.
무안한 마음을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 내색지 않고 통로를 타고 걸어갔다.
어두운 통로가 끝나자 시야가 확 넓어지고 원형 경기장 안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으음.”
대한은 침중한 탄식을 터트렸다.
경기장 안은 그야말로 목불인견의 참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사람과 짐승들이 한 덩이가 되어서 서로를 물고 뜯고 이건 정말 난리도 보통 난리가 아니었다.
보통사람이 저렇게 짐승에게 물려 팔다리가 끊어지면 도망치거나 물러서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누구 하나 뒤로 물러나는 자가 없었다.
혹시나 해서 눈에 힘을 주고 자세히 살펴봤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저들 중 누구도 이미 정상이 아니었다.
‘벌써 사람들이 좀비 바이러스에게 먹혀버렸나 보다.’
―맞아요. 이들은 이미 좀비가 된 상태예요.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저 들개들이에요.
‘아! 그러고 보니 정말 들개들도 좀비가 됐네.’
―이건 아주 심각한 사태에요. 사람을 통해 좀비 바이러스가 전파되는 것보다 야생동물을 통해 전파되는 속도가 수십 배는 더 빠를 거예요. 치명적이기도 하고요.
‘이들은 이미 사람과 짐승을 가리지 않는 무시무시한 좀비 바이러스를 개발해냈군. 저게 세상에 퍼져나간다면 어떻게 될까?’
대한은 어쩔 수 없이 상상하고 싶지 않은 상상을 해야만 했다.
역시나 에바는 그의 기대에 한치도 어긋나지 않았다.
―넉넉잡고 3달이면 전 지구가 좀비로 들끓게 될 거예요.
‘겨우 3달 만에 인류가 멸망한다는 거야?’
―그것도 아주 느슨하게 잡은 수치에요. 냉정하게 계산하면 한 달 안에 인류의 9할이 좀비가 되거나 죽게 될 거예요.
정말 끔찍한 소리였다.
아니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대한의 눈빛이 순간 차가운 얼음처럼 변했다.
‘이건 무조건 막아야겠다.’
―물론이죠. 이미 사방에 초고열 폭탄을 설치해놓았어요. 수천 도가 넘는 고열이 터져 나오면 이 공동은 녹아서 마그마가 되어버릴 거예요.
‘구해야 할 사람들은 어디 있어?’
―안타깝게도 이곳을 비롯한 수십 개의 실험실에 멀쩡한 사람은 한 사람도 남아있지 않아요.
에바의 목소리가 갑자기 축 처졌다.
그도 그녀의 말에 괜히 힘이 쭉 빠졌다.
‘그럼 이곳 비밀연구소의 연구원들은?’
―일단 수면 가스를 이용해 전부 재워놓았어요.
‘전부? 그럼 다 죽일 생각이야?’
―사람을 좀비로 만들어 실험하는 놈들을 굳이 살려둬야 할 필요성이 있을까요?
‘그, 그건.’
대한은 에바의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전투로봇과 안드로이드들이 이곳 비밀연구소를 점령하자마자 모든 데이터를 확보해놓았어요. 그 안에는 처음 이 연구를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온갖 실험 영상이 전부 들어있어요.
‘그런데?’
―그걸 보면 절대 이놈들을 살려주자는 말은 하지 못할 거예요? 지금 한번 보시겠어요?
‘글쎄.’
아무래도 그의 대답이 조금 늦었나 보다.
대한의 바이저에 끔찍한 동영상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