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5화 <생체실험>
사실 그동안 뉴스를 통해 전해 들은 고국 소식에 많이 열 받았던 모양이다.
일본의 말도 안 되는 경제제재를 비롯해 미국의 주한미군 주둔비 생트집 등.
그동안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겪은 황당하고 억울한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제는 슬슬 억울한 일들을 하나씩 풀어나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니까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고 큰소리를 뻥뻥 치고 있긴 하지만, 그들이 핵무기를 쓰면 북한에 살아남을 사람은 얼마 되지 않을 겁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쓰는 순간, 우리도 생화학무기를 쓴다는 거야?”
“북한이 핵무기를 쓰면 대한민국도 탄도탄과 생화학무기를 발사할 겁니다. 그럼 북한도 생화학무기를 쓸 것이고, 한반도는 그냥 죽음의 땅으로 변하게 되는 거죠.”
“그럼 안 되는데.”
“당연히 안 되지요.”
대한의 말에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흔들었다.
“그럼 뭐야? 결론은 전쟁은 절대 일어나면 안 되겠네.”
“맞습니다.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면 절대 안 됩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중국과 일본만 좋은 일 시키는 겁니다. 아니 전쟁 복구비용과 이권이 생기게 되는 미국도 좋아할 수 있겠군요.”
“설마?”
“어쨌든 그래서 북한과 대화를 계속해나가야 하는 겁니다. 손에 총을 든 우는 아이에게 화를 내거나 윽박지르는 것은 바보짓입니다. 일단은 어르고 달래서 어떻게든 친구를 만들고 사람들 사이에 살게 해야 합니다.”
“북한을 개방시켜야 한다는 거네.”
“네, 그러려면 먼저 북한에 체제보장을 해줘야 합니다. 그런데 미국은 주는 없이 전부 말로 날로 먹으려고 하고 있죠. 사실 근본적으로 미국은 북한의 핵무기를 해결할 능력이 없습니다.”
“정말?”
“네, 정말입니다.”
대한은 에바의 말에 이해가 가지 않았다.
“미국이 그냥 체제보장을 해주면 되는 거 아냐?”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는 자들이 뒤에 있지 않습니까?”
그녀의 말을 듣고 나서야 그는 깨달았다.
“미국의 군산복합업체!”
“딩 동 댕! 정답입니다.”
에바는 활짝 미소를 지으며 상황을 설명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기 전이라면 모를까…….
이미 최소 20기가 넘는 핵무기를 보유한 상태다.
그러니 미국이 주는 거 없이 핵무기를 그냥 넘겨달라고 하면 주겠는가!
아마 북한은 절대로 핵무기를 내어주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미국은 아시아의 국가가 아니다.
태평양 넘어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다.
북한이 아무리 난리를 쳐도 자국에 위협이 되지 않는 것쯤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왜 미국은 북한의 핵 위협을 저렇게 과대하게 포장하고 있을까?
당연히 뒤에 있는 군산복합업체가 대한민국에 막대한 양의 무기를 팔아먹게 하기 위해서였다.
국방기술품질원이 발간한 ‘2019 세계 방산시장 연감’에 따르면.
2009년에서 2018년까지, 한국이 미국에서 사들인 무기의 총액은 62억7,900만 달러다.
오늘 환율로 따지면 7조3479억 원이다.
미국은 같은 기간 총 931억4,600만 달러(약 110조)어치 무기를 팔았고, 일본은 이 중에서 36억4,000만 달러 규모의 무기를 사들여 한국의 절반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한국 무기 수입비용 중 미국이 차지하는 비율은 50%가 넘는다.
우리나라 한해 국방예산 중 약 15%에 해당하는 비율이다.
이러니 미국의 군산복합업체들이 자신들의 화수분을 쉽게 놓아줄 리 없었다.
“정말 피를 먹고 사는 놈들이군.”
“그게 군산복합업체의 생리입니다. 전쟁이 없는 평화가 오면 망하게 되니까요.”
대한은 그들을 향해 강한 반감을 느꼈다.
하지만 이내 자신들이 왜 이런 얘기를 하게 됐는지 깨달았다.
“그건 그렇다고 치고. 우리 무슨 얘기 하다가 여기까지 왔지?”
“변종 바이러스입니다.”
“아! 그 얘기였지.”
삼천포로 빠졌던 얘기가 정상궤도로 돌아왔다.
에바는 홀로그램을 열고 변종 바이러스 얘기를 다시 시작했다.
“세계 10개국 24개의 비밀연구소 중 일부는 인류를 치명적인 재앙으로 몰고 갈 아주 위험한 생화학무기를 배양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게 어느 정도야?”
“인류의 멸망까지 예측해볼 수 있습니다.”
“설마 영화에 나왔던 좀비가 되는 것은 아니겠지?”
“당연히 좀비 바이러스도 있습니다. 인간이 영생을 원하는 욕구는 지구만의 일이 아니니까요.”
“그럼 볼트 행성에서도?”
“네, 볼트 행성의 스파이럴 제국에도 비슷한 일이 있어서 반물질 폭탄에 의해 일대가 깔끔하게 소멸한 적이 있었습니다.”
“반물질 폭탄? 소멸?”
반물질 폭탄과 소멸이라는 말이 대한에게는 섬뜩하게 다가왔다.
그러고 보니 정말 그런 폭탄을 만들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어쨌든 이건 마스터가 결정해야 할 문제입니다.”
“내가 뭘 어떻게 결정하라는 말이야?”
“그냥 이대로 두고 보실 건지 아니면 적극적으로 대처하실 건지 결정해주세요.”
“아!”
에바의 말에 대한은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이건 필연적으로 누군가 피를 봐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결정하기가 절대 쉽지 않았다.
“가장 위험한 비밀연구소가 어디야?”
“미국에 3곳입니다. 방금 언급한 좀비 바이러스도 그중 한 곳에서 배양하고 있습니다.”
“좀비 바이러스라는 것은 어떻게 알았어?”
“당연히 좀비 바이러스를 비밀리에 실험하고 있는 것을 보고 알았죠.”
“뭐야? 그럼 생체실험을 하고 있다는 말 아냐?”
“맞아요. 노숙자를 비밀리에 납치해서 좀비 바이러스를 실험하고 있어요.”
“헐! 영화가 영화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군.”
대한은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위험한 비밀연구소라는 곳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봐!”
“네, 마스터.”
에바는 그가 나름대로 결심을 내렸다고 보고.
조금 더 자세한 내용을 공개했다.
“현재 가장 시급히 정리해야 할 곳은 미국의 비밀연구소들입니다.”
“역시 천조국 미국이 제일 문제로군.”
무기에 관한 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곳이 바로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미국이었다.
“그곳엔 좀비 바이러스만 있는 게 아닙니다. 만에 하나라도 유출되면 인류의 반은 몰살될 정도의 생화학무기들이 존재합니다. 특히 생화학 무기화된 변종 바이러스는 자칫 잘못되면 인류라는 종이 멸망할 정도로 가공할 위력을 지녔습니다.”
“아니 왜 그 정도로 위험한 무기를 만드는 건데? 미국을 위협할 나라가 누가 있다고.”
대한의 목소리에 짜증이 어리기 시작했다.
“미국은 일단 러시아와 중국을 주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러시아인과 중국인을 깔끔하게 날려버릴 수 있는 DNA 유전자 조작기술을 사용했습니다.”
“뭐야? 인종청소라도 하겠다는 거야?”
“사실 세상에 중국인이 살지 않는 곳은 없습니다. 그래서 러시아인은 몰라도 중국인을 없애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중국인에게 순종이 어디 있습니까? 이미 수백, 수천 개의 소수민족의 피가 뒤섞여있는데요.”
“결국, 인류를 멸망시킬 변종 바이러스로도 중국인을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얘기네.”
“그런 셈이죠. 인류가 멸망하면 모를까 그전에는 아마 힘들 겁니다.”
“듣고 보니 중국인, 아니 중국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세상에 참 많이 살고 있네.”
그는 갑자기 중국이 참 크게 느껴졌다.
위대하다는 뜻이 아니라 인구가 너무 많아서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이 좀 놀라웠다.
“다음은 어디야?”
“중국과 일본의 비밀연구소입니다.”
“거기에서 뭐를 만들고 있어?”
“중국의 비밀연구소에서는 온갖 극악무도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파룬궁 수련자들과 독립을 주장하는 위구르(신장)인들을 납치해 장기를 떼서 몰래 팔고 생체실험도 하고 있습니다.”
위구르인 얘기가 나오자 대한의 뇌리에는 리나가 떠올랐다.
“아! 그 얘기는 나도 들어본 것 같아. 뉴스로 나오기도 했잖아.”
“중국공산당이 적극적으로 부인하고 있지만, 사실은 오히려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있기도 합니다.”
대한은 에바의 말에 침을 꿀꺽 삼켰다.
중국이 공산국가라는 사실을 잊고 사는 사람들이 의외로 꽤 많다.
그래서 중국에 진출한 사업가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게 되면 크게 분노한다.
뭐 그래봤자 해결되는 일은 없다.
꽌시로 대변되는 부정부패를 이용하지 않는다면…….
해결은커녕 항의조차 해볼 수 없는 나라가 바로 중국인 것이다.
“일본은?”
“원래 생체실험의 원조는 일본이죠.”
“일제의 731부대를 말하는 거야?”
“네, 마루타를 만들어낸 그들은 미국에 의해 처벌받지 않고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 정부와 자위대에 의해 비밀연구소를 돌리는 핵심이 됐습니다.”
“어느 정도야?”
“의외로 집요한 이들의 습성 때문에 미국의 비밀연구소를 뛰어넘는 부분이 있습니다. 특히 방사능을 이용한 온갖 생체실험이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는 곳이기도 하죠.”
“하긴 나라가 이미 방사능에 물들어있으니 그럴 만도 하군.”
“이미 핵폭탄까지 비밀리에 만든 나라입니다. 자국의 시민들은 안전에도 없는 놈들이죠.”
“일본에서 이미 핵폭탄을 만들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인데 용케 그걸 또 발견했군.”
“더한 것도 알아냈습니다. 현재 납치되어 생체실험을 당하는 자 중에는 재일동포의 비율이 꽤 높습니다.”
“아니 뭐라고?”
대한은 에바의 말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자 오히려 그녀는 그의 화를 더욱 부추겼다.
“중국의 비밀연구소에는 북한에서 탈출한 탈북인들을 잡아 와서 생체실험하기도 합니다.”
“이것들이 진짜?”
“네.”
에바가 고개를 끄덕이자 대한은 자신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빠져 주저앉았다.
“젠장!”
그제야 그는 자신이 너무 세상을 모르고 살았다는 것을 알았다.
“증거자료 있겠지?”
“생생한 현장도 볼 수 있습니다.”
“끄응. 좋아. 한번 보자!”
에바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홀로그램을 열었다.
대한은 홀로그램을 보다가 10분도 견디지 못하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우웩!”
탁탁탁!
어느새 에바가 그의 뒤에 와서 등을 두드려줬다.
한동안 구역질을 하던 대한은 간신히 진정하고 물로 입을 헹궜다.
“잠시 여기 앉아서 쉬었다 나오세요.”
“응, 알았어.”
그는 얌전히 에바의 말에 따랐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충격적인 장면들!
대한은 아직도 터질 듯이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지 못했다.
잠시 그대로 화장실 앞에 놓인 의자에 홀로 앉아 숨을 돌렸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하늘이 자신에게 에바를 보낸 이유가 있는 것 같았다.
다른 것은 몰라도 생체실험은 정말 아니었다.
이건 도저히 같은 인간이 해서는 안 될 짓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는 꼭 생체실험만은 막고 싶었다.
대한은 칫솔을 들어 치약을 왕창 짰다.
시원하게 양치질을 하고 나서도 모자라.
구강청결제를 한 통이나 쓰고 나서야 밖으로 나왔다.
털썩!
그는 다시 소파로 돌아와 앉았다.
그러자 에바가 기다렸다는 듯 물었다.
“좀 괜찮으세요?”
“응, 이제 좀 좋아졌어.”
“어떻게 하실 거예요?”
대한은 그녀의 단도직입적인 질문에도 망설이지 않았다.
“막아야지. 아니 싹 없애버려야지.”
“잘 생각하셨어요. 그럼 순서를 정해보죠.”
“그러자.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힘을 동원해서 저들의 비밀연구소를 날려버리자.”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에요. 대부분의 바이러스와 병원체는 고온에 아주 약하죠. 뜨거운 물에 넣으면 바로 죽어버린답니다.”
에바의 말을 듣자 그는 갑자기 방화범이 생각났다.
“불을 지르자는 말이야?”
“그렇습니다. 겉으로는 화재로 만들고 실질적으로는 태양보다 더 뜨거운 고온을 일으켜서 깔끔하게 소멸시켜버리죠.”
“그럼 생체실험을 당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
“당연히 그들은 구출될 수 있게 소문을 내야죠. 최악의 경우에는 협박해서라도 그들이 무사히 살 수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협박이든 뭐든 한번 작전을 짜봐!”
“이미 작전은 수립되어 있어요. 마스터의 명령만 남아있을 뿐입니다.”
“좋아. 작전 시작해!”
“네, 마스터.”
에바는 즉시 허공에 홀로그램을 띄웠다.
“어? 뭐야? 지금 하는 거야?”
“물론이죠. 이미 준비를 마친 상황입니다.”
“이런!”
대한은 에바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계 각국의 비밀연구소 24곳은 이미 그녀에게 해킹당하고, 에어볼을 통해 모든 증거까지 차곡차곡 수집된 상황이었다.
오늘 그에게 이걸 물은 것은 이들 비밀연구소를 정리하기 위해 허락을 구한 것이었다.
그래도 별로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마땅히 정리해야 할 것들을 정리하려고 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이제 그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중국의 비밀연구소는 리나를 위해서라도 꼭 없애야 한다. 일본의 비밀연구소는 그럼 나나를 위해서인가? 그럼 미국의 비밀연구소들은 누구를 위해서지?’
대한은 엉뚱한 데에 의미를 부여해보며 홀로그램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