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화 <휴가>
“이렇게 승전보를 전할 수 있게 돼서 참 기쁩니다.”
“이 새벽, 7골을 선물해준 이대한 선수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네요.”
“오늘 중계방송은 여기서 마쳐야겠습니다.”
“프리미어리그의 새로운 시즌, 맨시티에서 뛸 이대한 선수를 기대해봅시다.”
“새벽까지 방송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중계방송에 장수원.”
“남희진이었습니다.”
“시청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단잠 주무세요.”
장수원 아나운서와 남희진 해설위원은 정중히 머리를 숙였다.
둘의 인사를 끝으로 프리미어리그 TV 중계방송이 모두 끝났다.
그렇지만 현지의 상황을 전하는 방송은 아직 꽤 남아있었다.
특히 대한TV는 대한이 라커룸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무려 한 시간 동안이나 계속해서 그의 얼굴과 행동을 잘 찍어 생방송으로 전했다.
그때까지도 비커리지 경기장을 찾은 대부분의 왓포드 팬들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은 뉴스가 되어 전 세계를 강타했다.
[왓포드, 아스날을 7:0으로 무너뜨리다!]
[이대한! 가공할 골 결정력을 뽐내다.]
[더블 해트트릭을 달성하고도 모자라 다시 골을 넣는 선수!]
[왓포드 대승! 하지만 이대한 임대는 치명적인 실수!]
[맨시티 갓 클래스를 임대!]
[아스날 산산조각! 결과는 왓포드에 0:7]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고? NO! 이미 다들 예상했었다.]
[코리언 초특급 공격수! 이제 맨시티의 품으로!]
[이대한! 7골 터트리며 프리미어리그의 득점왕으로]
[언빌리버블! 프리미어리그 12경기 36골, FA컵 포함 14경기 38골!]
[기록이 말해준다. 이대한은 갓 클래스다.]
[월드클래스 공격수 이대한! 맨시티가 품다.]
[이대한의 임대 소식에 프리미어리그 빅식스 초긴장!]
[펠레, 마라도나, 메시에 이은 월드클래스! 이대한!]
[쏘니에 이어 대한민국에 또다시 월드클래스 공격수 등장.]
[한 경기 7골 넣는 선수의 나라! 아시아의 축구 강국!]
[아무도 그를 막지 못했다. 아스날 7골!]
자극적인 머리기사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았다.
아스날을 상대로 7골을 홀로 터트린 공격수!
이런 대한을 향한 언론의 반응은 그야말로 찬양 일색이었다.
더구나 대한이 임대 가기로 한 팀은 무려 맨시티다.
현재 프리미어리그 2위를 달리고 있는 빅마켓, 일명 빅식스 중 하나로 불리는 잉글랜드 프로축구의 최고 명문 중 하나다.
왓포드 FC에게는 참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프리미어리그를 좋아하는 축구팬들 입장에서는 아주 좋은 호재가 아닐 수 없었다.
이번 여름 시즌!
벌써 뜨거운 폭풍이 예고되어 있다.
* * *
“인제 그만 일어나세요.”
“으응.”
에바의 상냥한 목소리가 귓전을 간지럽혔다.
그래도 대한은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
“내가 얼마나 잤지?”
“10시간도 넘게 잤어요. 이미 해가 중천에 떴다고요.”
“그런데 왜 이렇게 피곤하지.”
“그럴 리가 없습니다. 마스터의 신체 리듬은 최상인걸요. 아무래도 정신적인 것 같아요.”
그는 분명히 피곤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에바의 냉정한 팩트 공격에 금세 주장하던 바를 포기하고 말았다.
“그렇게 말하니까 내가 무지하게 게으른 놈인 것 같잖아.”
“게으르다고 말하지는 않았어요. 마스터는 하루, 온종일 주무셔도 됩니다. 다만 건강을 위해서 식사는 꼭 하고 주무시란 말이에요.”
듣고 보니 그녀의 말이 하나도 틀린 게 없었다.
그래도 대한은 괜히 어리광을 부려댔다.
“아! 일어나기 귀찮아. 그냥 먹여줘!”
“원하시면 그렇게 해드릴게요.”
“마사지도 좀 해주고.”
“예.”
에바는 대답하고 바로 그의 방을 나섰다.
얼마 후 L1 리사와 L2 틸란이 들어왔다.
“마스터! 마사지하러 왔어요.”
“응, 잘 왔어.”
대한은 돌아보기도 귀찮아서 그냥 눈을 감은 채 대답했다.
그러자 리사와 틸란은 좋다고 침대 위로 올라와 그의 등과 어깨 등
구석구석 마사지를 시작했다.
“그런데 왜 너희들이 들어와? 제니와 야엘은 뭐하고?”
보통 마사지는 가사전문인 H1 제니와 H2 야엘이 한다.
레저전용인 리사와 틸란은 같은 마사지라도 종류가 좀 달랐다.
“이제 저희도 제니와 야엘처럼 마사지 잘해요. 벌써 업데이트 받았다고요.”
“아! 그으래?”
정식 마사지보다 야리꾸리한 마사지에 정통한 둘이다.
이미 몇 번 당한 적(?)이 있어서 어째 크게 믿음이 가진 않았다.
그래도 이미 맡겨놓았으니 당장 그만두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일단은 그냥 한번 두고 보기로 했다.
그런데 웬걸!
“아이고, 시원하다.”
이거 생각보다 아주 시원했다.
더구나 둘 다 안드로이드라서 몇 시간을 마사지해도 지치지 않는다.
대한은 그렇게 아침부터 몸이 녹아내릴 듯한 기분 좋은 마사지를 받았다.
그러다가 나긋나긋한 리사와 틸란의 손길에 보고 싶은 얼굴들이 떠올랐다.
모니카, 고리나, 류연, 하이스, 나나 그리고 한새롬?
다들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는 마시지를 받고 난 후!
한번 전화를 걸어볼까 생각했다.
어제 경기를 끝으로 자신은 왓포드 FC를 떠나 맨시티로 임대 가게 됐다.
그러나 프리미어리그의 새로운 시즌은 8월 초에 시작이다.
자연스럽게 대한에게 3달이란 긴 휴가가 생겨버렸다.
매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평균 나흘이나 닷새 간격으로 리그 경기를 계속 뛰었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다가 갑자기 3달을 놀아야 하니 좀 당혹스러웠다.
물론 긴 휴가가 절대 싫다는 뜻은 아니다.
‘황금같이 귀한 휴가, 아니 봄방학을 맞았는데 맛도 더럽게 없는 영국 음식이나 먹고 집에서 죽치고 있을 수는 없지. 어차피 맨체스터 시티로 이사도 가야 하고.’
그는 속으로 강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데 막상 뭘 하고 놀까 생각해보니 딱히 뭘 해야 좋을지 몰랐다.
대한은 잠시 고민해보다가 속 편하게 머릿속으로 에바를 불렀다.
‘에바!’
―네, 마스터.
‘지금 뭐 해?’
―마스터 드리려고 부엌에서 죽 끓이고 있습니다.
역시 뭐든지 자신을 위해 아름답게 노력하는 에바다.
그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8월 초까지 3달이나 남았는데 나 뭐할까?’
―설마 3달 동안 그냥 계속, 쭉, 연이어 놀겠다고 생각하고 계신 건 아니시죠?
‘우잉? 나 노는 거 아니었어?’
―지금 벌려놓은 사업이 얼마나 많은데 놀려고 하십니까? 밀린 결제만 하더라도 1년 365일 일해도 부족하다고요.
‘아! 그으래!’
대한은 괜히 에바에게 물어봤다고 후회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자신이 거의 상관하지 않았는데도 코레 그룹을 비롯한 모든 사업이 잘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상기했다.
그러자 에바가 괜한 소리를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난 무조건 3달 동안 놀러 다닐 거야. 그러니까 결제가 필요하면 일주일에 한 시간, 싹 몰아서 가져와. 그렇게 알고 준비 좀 해줘!’
―네, 마스터.
‘크크.’
―왜 웃으세요?
‘아니야. 그냥 내 곁에 에바가 있다는 게 참 좋아서.’
―아! 눼에에!
에바가 뭔가 눈치챈 것 같았다.
하지만 그가 명령하면 들어야 하는 게 그녀의 숙명이다.
절대로 대한의 말에 거역할 수 없다는 게 이럴 땐 참 좋았다.
속으로 그는 진작 이렇게 얘기해놓을 걸 그랬다며 자신의 결정에 크게 만족해했다.
‘그런데 뭘 하고 놀아야 잘 놀았다는 소문이 들을까?’
―일도 좀 하고 놀면 좋지요.
‘일은 일이고 노는 거는 노는 거지. 어떻게 일을 하면서 놀아?’
―아니에요. 일도 하고 놀러 다닐 수도 있어요.
‘그게 무슨 소리야?’
대한은 자신도 모르게 에바의 말에 끌려 들어갔다.
‘일단 한국에 가셔서 부모님은 만나보셔야죠.’
―그거야 당연하지.
‘다음은 대인관계가 협소한 마스터께서 지인들과 만나시겠죠?’
―내가 대인관계가 협소하다고?
‘친구도 별로 없으시잖아요.’
―으음.
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하지만 기분이 좀 나빴다.
그런데 강하게 반박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더 짜증 났다.
―지금 속으로 모니카, 고리나, 류연 등을 생각하고 계시죠?
‘그, 그래.’
에바의 말에 대한은 속으로 뜨끔했다.
그러나 리사와 틸란이 더욱 강하게 근육을 마사지하자 금세 마음이 눈 녹듯 풀어 헤쳐져 버렸다.
“어휴! 시원하다. 그렇지 거기야 거기. 조금만 더 강하게 해봐!”
“네, 마스터.”
“예, 마스터.”
대한은 리사와 틸란에게 정확한 마사지 포인트를 알려줬다.
그러다가 다시 에바와 대화를 재개했다.
‘모니카는 가끔 찾아오지만, 리나나 류연은 바빠서 자주 못 오잖아. 그러니까 이번 기회에 내가 한번 찾아가야지.’
―누가 뭐라고 했습니까? 당연히 마스터께서 그들을 찾아갈 걸 미리 알고 전용기까지 준비시켜놓았습니다.
‘전용기? 무슨 전용기!’
갑자기 전용기라는 말에 대한의 눈이 번쩍 뜨였다.
‘영화에 나오는, 부자들이 가지고 있는 그 전용기 말이야?’
―그래요. 거부들은 하나씩 가지고 있다는 바로 그 개인 제트기를 말하는 겁니다.
‘우리한테 전용기도 있었어?’
―물론이죠. 그것도 한 대가 아니라 여러 대입니다. 설마 축구선수들도 가지고 있는 전용기가 코레 그룹에는 없다고 생각하신 건 아니겠죠?
‘아, 아니야.’
아니긴 개뿔!
아닌 게 아닌 건 아니었다.
사실 에바가 말한 대로 설마 했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보면 요새 돈이 넘쳐나는 코레 그룹에 전용기가 없는 게 더 이상했다.
어쨌든 본심을 들키지 않았으니 됐다.
그것보다는 어떤 전용기가 있는지 대한은 그게 더 궁금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전용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다.’
―한번 보여드릴까요?
‘응.’
에바의 제안을 그는 굳이 거부하지 않았다.
대한의 눈앞에 바로 홀로그램 하나가 떠올랐다.
‘오오! 이거 보잉 747이야?’
―아닙니다. 최신형인 B787을 사서 전용기로 개조한 겁니다.
자신이 탈 전용기라는 말을 들어서 그런지.
모양이 아주 신박해 보였다.
하지만 홀로그램 안의 전용기는 하나가 아니었다.
―두 번째는 에어버스의 A350을 개조한 버전입니다.
‘에어버스사에서 만든 비행기도 있네.’
―두 기체 모두 광동체 기종이라서 넓고 편하실 겁니다.
정말 그녀의 말대로 두 대의 전용기 모두!
크고 넓고 편하고 호화롭게 안락해 보였다.
‘이거 말고 다른 전용기도 있어?’
―물론이죠. B787나 A350처럼 아주 크지 않고, 조금 작은 전용기들도 있습니다. 왼쪽이 엠브라에르의 EJet-E2(EMB-190-400)이고 오른쪽이 걸프스트림의 G600입니다.
엠브라에르의 EJet-E2가 걸프스트림의 G600보다는 훨씬 컸다.
결론적으로 가장 작은 기체는 G600이란 말이다.
‘둘 다 참 날렵하게 생겼네.’
―성능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전용기 모두 마스터의 안전을 생각해 특별히 개조해놓았습니다. 설사 전투기나 미사일이 달려든다고 해도 걱정하실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또한, 조종사와 승무원들도 모두 안드로이드를 투입해놓아서 안전사고가 날 확률은 매우 희박합니다.
‘그렇겠지.’
이런 쪽으로 에바는 아주 철저했다.
대한은 전용기를 보자 좀이 쑤셔서 더는 누워있을 수가 없었다.
유혹적인 나긋나긋한 손길을 냉정히 거절했다.
그리고 벌떡 몸을 일으켰다.
욕실로 들어가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나와서 부엌으로 갔다.
그새 마음이 변한 것을 눈치챈 에바.
어느새 식탁에는 아주 거한 점심상을 차려놓았다.
“식사하면서 말씀하세요.”
“응, 고마워!”
대한은 그녀에게 살짝 미소를 지었다.
의자에 앉아 젓가락을 집었다.
테이블 위에 놓인 보암직하고 먹음직스러운 각종 요리!
그의 손길만을 애타게 기다리는 듯했다.
천천히 젓가락을 놀리며, 대한은 일일이 하나씩 맛을 보기 시작했다.
확실히 이럴 땐 가사전문인 제니와 야엘이 있어서 참 좋았다.
언제든지 원하기만 하면 이렇게 맛있는 요리를 마음껏 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
“이 잡채 진짜 맛있다.”
“많이 드세요.”
연신 요리 맛을 칭찬하면서 그는 늦은 점심을 배불리 먹었다.
그 사이, 에바가 조심스럽게 앞으로의 일정에 관해 운을 띄웠다.
“한국은 물론이고 유럽과 미국의 다국적 스포츠업체에서 광고 요청이 쇄도하고 있습니다. 이제 슬슬 브랜드를 선별해서 광고를 찍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건 에바에게 전적으로 맡긴다고 했잖아.”
“네, 그러셨죠. 이미 잠정적으로 결정은 해놨어요. 계약서에 서명만 하시면 바로 계약금이 들어올 거예요. 물론 그에 따라 하루 시간을 내서 광고를 찍으셔야 합니다.”
“그건 좀 귀찮은데.”
당연히 무지하게 아주 귀찮았다.
하지만 국내에서 ‘날강두’라고 불리는 선수가 2019년에 7년간 맺은 광고 계약 규모가 1억 6,200만 유로(약 2,134억 원, 계약당사환율)에 달했다.
자신도 일단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프로축구선수로 등록된 이상!
세상 그 누구보다 많은, 최고의 광고 계약 규모를 가지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