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9화 <자랑스러운 대한의 건아>
왓포드와 아스날의 경기가 다시 시작됐다.
이미 6:0으로 대패를 당하고 있는 상황.
아스날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처참했다.
그렇지만 한 골도 못 넣고 0패를 당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오바메양을 비롯한 아스날의 공격수들은 열심히 뛰어다니며 기회를 엿봤다.
하지만 상대가 너무 강했다.
아니, 그들을 막아서는 대한이 그들보다 더 열심히 뛰어다녔다.
아스날 선수들은 도대체 왜 대한이 이처럼 헌신적으로 뛰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 봐야 겨우 1만 파운드의 주급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렇다고 상대 팀 선수에게 ‘제발 인제 그만 좀 설쳐대라!’라고 볼멘소리를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오늘 경기가 다 끝나간다는 것이다.
후반전 45분이 다 지나갔다.
이제 인저리 타임 3분만을 남겨놓은 상태!
“공격!”
“달려!”
아스날 진형에서 볼을 낚아채자 오바메양이 재빠르게 앞으로 달려갔다.
사카와 페페 그리고 세발로스가 그 뒤를 이었다.
소크라티스가 빠르게 볼을 배급했다.
미드필더 귀엥두지가 그걸 받아 전방을 향해 패스로 연결했다.
페페는 가볍게 볼을 터치해 사카에게 밀어줬고, 사카는 오프사이드 트랩을 넘어가는 오바메양에게 회심의 킬패스를 날렸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아스날 특유의 느낌이 살아있는 빠른 템포의 속공 플레이였다.
오바메양은 이 순간 경기중 최고조로 집중했다.
기다리는 자에게 기회는 찾아온다고 했다.
결국, 한 골을 만회할 기회가 눈앞에 다가오고 말았다.
그는 기쁜 마음으로 볼을 받자마자 슬쩍 앞을 내다봤다.
눈앞에 왓포드의 포스터 골키퍼밖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오바메양은 볼을 골대 구석으로 침착하게 밀어 넣었다.
차는 순간, 이대로 가면 무조건 골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퉁! 툭!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의 발이 앞으로 툭 튀어나왔다.
그리곤 골문을 향해 날아가는 볼을 사정없이 옆으로 쳐내 버렸다.
와아아아!
그 장면을 본 관중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터트렸다.
이젠 다들 이 소리가 누구를 응원하고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 보지 않고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오바메양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굳이 대한의 거친 숨소리를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슛이 실패했다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볼 수 있었으니까.
‘도대체 이 선수는 언제 여기까지 내려온 걸까?’
분명히 자신보다 뒤쪽에 있는 것을 본 것 같았다.
그런데 순간이동이라도 했는지 어느새 달려와 결정적인 슛을 막아버렸다.
화가 나는 것보다 아예 기가 막혔다.
더욱 황당한 것은 이게 아니었다.
대한이 쳐낸 볼을 왓포드의 수비수가 간신히 살려냈다.
그리고 그 볼은 지금 빠르게 아스날의 진형을 향해 되돌아가고 있었다.
기습이 실패하자 빠른 역습이 시작된 것이다.
“대한!”
“달려!”
이번에는 왓포드의 공격수 삼인방이 달리기 시작했다.
대한과 데울로페우 그리고 그레이가 마치 경쟁을 하듯 뛰어갔다.
하지만 누가 봐도 대한의 속도가 제일 빨랐다.
왓포드 골키퍼가 있는 골문 가까이 내려왔다가 결정적인 슛을 막아냈다.
그런 다음, 바로 아스날을 골문을 향해 전력 질주하는 대한!
경기를 보고 있던 관중들이 이 모습에 뜨겁게 함성을 지르며 열광했다.
아니 왓포드의 팬들은 그의 이런 헌신적인 노력에 그만 감동하고 말았다.
그래서인지 그들도 목이 다 쉬도록 고함을 지르고 또 질러댔다.
와아아아!
시간을 볼 때 이게 왓포드의 마지막 공격이다.
그런데 볼을 받은 두쿠레가 문제였다.
나름 빠르게 패스를 한다고 한 게 잘못 맞았는지 목표인 대한에게 날아가질 않고 데울로페우에게 날아가 버렸다.
그때 그는 이미 너무 깊이 내려와 있어서 설사 패스를 받는다고 해도 오프사이드가 되어버린다.
대한은 급히 달리던 것을 멈추고 몸을 돌렸다.
속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애써 달래며, 터벅터벅 되돌아 걸어 나왔다.
아스날의 레노 골키퍼가 그런 그를 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댔다.
“야! 좀 적당히 하자. 곧 맨시티로 간다면서 지금 너무 하는 거 아니야?”
“…….”
레노의 항의성 질책에 대한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굳이 열 받아 있는 놈을 상대로 대답을 해서 자극할 필요가 없었다.
솔직히 왓포드가 6:0으로 깨지고 있다면 아마 자신은 당장 욕부터 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렇게 왓포드의 마지막 골 찬스는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듯했다.
역시 그의 생각대로 데울로페우가 어떻게 할지 망설이는 그 짧은 사이!
아스날 수비진이 금세 들어와 자리를 잡아버렸다.
하지만 데울로페우는 그냥 이대로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어떻게든 알아서 해주겠지!’ 하는 막연한 희망을 걸고.
대한을 향해 갑자기 빠르게 볼을 차버렸다.
뻥!
이게 슛인지 패스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정체불명의 어중간한, 최악의 볼 연결이었다.
‘아오! 이 새끼가!’
대한은 터벅터벅 걸어 나오다가 속으로 욕을 했다.
갑자기 날아오는 축구공을 보곤 도무지 황당한 마음을 금치 못했다.
그렇다고 자신에게 날아오는 볼을 그냥 이대로 날아가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뒷발을 쭉 내밀며 대충 골문이라고 생각하는 쪽을 향해 쳐서 방향만 바꿔놓았다.
퉁!
그런 다음, 대한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계속 걸어나왔다.
들어가지도 않겠지만!
설사 들어간다고 해도 자신의 위치가 오프사이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행운의 여신은 오늘 대한을 무지하게 편애하고 있었다.
와아아아!
돌연 비커리지 경기장이 큰 함성으로 휩싸였다.
관중들이 좋다고 방방 뛰고 난리가 났다.
그제야 대한은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급히 고개를 돌려 골문을 살폈다.
신기하게도 볼이 골문 안에 얌전히 들어가 있었다.
바닥에 주저앉아 자신을 노려보는 아스날 골키퍼 레노!
그의 원망하는 눈빛이 아주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어라! 이게 들어가 버렸네!’
대한은 솔직히 황당했다.
설마 이게 들어갈 것이라곤 전혀 생각도 하지 못했다.
더구나 부심은 오프사이드라고 깃발도 들어 올리지 않은 상태!
다행히 오프사이드에 걸리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개꿀이네.’
그는 오늘 인생의 큰 진리 하나를 깨달았다.
정말 되는 날은 어떻게 해도 다 된다는 것을 말이다.
“대한! 축하해!”
“기가 막힌 골이었어.”
“이제는 뒷발로도 슛하냐!”
“오늘 몇 골을 넣는 거야? 정말 괴물이 따로 없어.”
“잘했다. 그런데 나중에 우리 보면 살살하자!”
“기상천외한 골을 넣었어. 축하해!”
왓포드 선수들이 일제히 대한을 향해 우르르 몰려들었다.
서로 축하를 하고 포옹을 하고 하이파이브를 했다.
이런저런 농담을 하고 웃고 떠들고 나자 그는 관중석을 향해 잊지 않고 손을 들어 흔들어줬다.
그때까지도 대한은 자신이 골을 넣었다는 게 잘 실감나지 않았다.
눈치 빠른 에바가 무딘 그를 위해 골이 들어가는 장면을 슬쩍 보여줬다.
‘오우야! 이건 너무 했다. 행운의 뒷발 차기로군!’
대한은 자신이 봐도 황당하게 들어간 골이라 생각했다.
그래도 분명한 사실은 그의 뒷발에 맞아 볼의 방향이 틀어지고 골문 안으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한TV 채널의 구독자와 시청자들은 그저 마냥 좋아하기만 했다.
[층간소음: 될놈될! 기막히게 감각적인 골이다!]
[아버지의아들: 아싸! 또 골 들어갔다.]
[설산: 헐! 저게 들어가네.]
[푸른바다: 개지림! 남씨의 예언이 현실이 됐다.]
[필드의귀재: 같은 발이라고 인제 모든 부위를 골고루 다 쓰는구나. ㅋㅋ]
[축알못형: 야호! 대한이 만세! 무려 7골. ㅎㄷㄷ]
[오래살자아프지말고: 세상에 이렇게 골이 쉬운 것이었다니. 그래도 너무 좋다!]
[너희가축구를알아: 대한아! 사랑한다. 계속 이렇게 골을 넣어다오!]
[꽃잎한장: 미친 골이다. 말도 안 되는 골이야! 흐흐! 그래도 우리 대한이 넣은 골이라 참 좋다. ㅋㅋ]
[대륙소심: 골 결정력이 있는 공격수가 이렇게 무섭구나. 넣을 때는 정말 확실히 넣어줘야 해! 그게 뭐가 됐든.]
[망한PC방: 꺄악! 골이다. 대한 오빠! 사랑해!]
[파파힘내셈: 대한이 만세! 대한민국 만세!]
[갓구운빵: 우리 대한이가 확실하게 피날레를 장식하는구나.]
[검경사법개혁가즈아: 이제 남희진 해설위원 지갑 좀 얇아지겠네.]
[부러워서짐: 이야아아! 그러고 보니 7골 공약 걸린 거 막 쏟아지겠구나.]
공약 얘기가 나오기 무섭게 대한TV 채널과 연결된 모든 플랫폼이 터져 나갔다.
공약을 걸었던 구독자와 시청자들이 바로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덕분에 채팅창에는 달풍선과 비트 그리고 후원금이 폭포수처럼.
아니 융단폭격처럼 쏟아져 내렸다.
이 모습에 전 세계에서 시청하는 수백 만의 대한TV 시청자들이 감탄과 부러움을 샀다.
삐이익!
경기가 다시 시작됐다.
하지만 주심은 금세 휘슬을 다시 불었다.
삐이이익!
경기종료를 알리는 주심의 휘슬!
아스날에게는 유난히도 길게 느껴지는 반갑고도 안타까운 소리였다.
와아아아!
비커리지 경기장을 꽉 채운 관중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누구 하나 빠지지 않고 크게 승리의 환호성을 터트렸다.
7:0
프리미어리그에서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대승이었다.
더구나 리그 꼴찌로 강등권을 헤매던 왓포드가 명문 아스날을 상대로 수확한 골이라는 것이 왓포드 선수들이나 팬들이나 잘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엄청난 실점에다 한 골도 넣지 못해 영패를 당한 아스날 선수들!
멘탈이 박살 난 그들은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다들 그대로 잔디 위에 주저앉고 말았다.
이와는 반대로 왓포드 선수들에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특히 대한에게는 카카 감독을 비롯한 코치진.
이어 후보선수들까지 모조리 몰려왔다.
그래도 그는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은 채!
한 사람씩 포옹하면서 오늘 승리한 기쁨을 함께 나눠 가졌다.
고개를 들어 관중석을 쳐다봤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무도 밖으로 나가는 사람이 없었다.
이게 무슨 축제도 아닌데 왓포드 팬들은 모두 끝까지 남아서 대한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장수원 아나운서와 남희진 해설위원도 이 장면을 보면서 이번 리그 마지막 왓포드 FC 중계방송을 정리했다.
“여러분! 드디어 경기가 끝났습니다.”
“왓포드와 아스날의 프리미어리그 경기는 결국 왓포드가 7:0이란 큰 점수 차이로 이기고 말았습니다.”
“왓포드가 대승한 것은 맞는 말이지만, 사실 이건 우리 이대한 선수의 승리라고 봐도 전혀 틀리지 않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해트트릭을 넘어서 7골이라는 가공할 골 결정력을 보여준 자랑스러운 우리 대한민국의 이대한 선수의 원맨쇼였습니다.”
확실히 장수원과 남희진은 호흡이 착착 맞았다.
빨아줄 때 확실히 빨아줄줄 알았다.
“리그 12경기 36골, FA컵 포함 14경기 38골입니다.”
“이대한 선수는 이번 시즌 왓포드를 위해 신들린 것처럼 골을 집어넣었습니다.”
“누가 이렇게 할 줄 알았겠습니까? 아니 누가 이렇게 할 수 있습니까?”
“그렇죠. 그런 것에 비하면 이대한 선수의 구단 내 대우는 정말 형편없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볼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건지 장수원 아나운서와 남희진 해설위원은 전혀 왓포드를 배려하는 멘트 따윈 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느 때보다 냉정하게 왓포드의 현재와 미래를 분석했다.
“이제 그건 세상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이 됐죠”
“맞아요. 누구 덕분에 왓포드 FC는 현재 프리미어리그 5위에 올라있습니다.”
“모든 게 이대한 선수 때문이겠죠?”
“물론이죠. 두말하면 잔소리입니다. 왓포드는 우리 대한민국의 이대한 선수 덕분에 프리미어리그 5위라는 경이적인 성적을 지금 거두고 있는 것입니다.”
장수원은 일부러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전 왓포드 구단주와 프런트가 정말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예요.”
“어떻게 주급 1만 파운드에서 단 한 푼을 올려주지 않을 수가 있습니까?”
“자업자득, 자승자박이라고들 하죠. 그로 인해 왓포드는 지금 이대한 선수라는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대어를 맨시티에게 임대 해줄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선견지명이 있었던 이대한 선수가 계약할 때 임대 요청시 무조건 수용이라는 조건을 달았기 때문이죠.”
“그래서 프리미어리그 사상 최고 주급인 40만 파운드에 임대가 성립됐죠.”
장수원과 남희진은 대한의 맨시티 임대 소식을 자기 일이라도 되는 양 기뻐했다.
“다행히 맨시티는 이대한 선수의 진가를 알아봤습니다.”
“사실 맨시티뿐만이 아니라 이미 프리미어리그의 빅마켓은 모두 이대한 선수의 능력과 잠재력을 잘 알고 있어요.”
“그래도 왓포드는 그동안 이대한 선수를 싼값에 발굴해서 잘 써먹었습니다.”
“그런 셈이죠. 그래서 앞으로 떨어질 진짜 커다란 과실 맛은 볼 수 없는 겁니다.”
“왓포드에서 이적료를 한 푼도 챙기지 못한 것을 언급하시는 거죠?”
“그렇습니다. 아직 맨시티와 이적 계약을 체결한 것은 아니지만 임대 기간이 끝나면 맨시티에서는 바로 정식계약을 요청할 겁니다.”
“그때 또 한 번 프리미어리그 빅마켓들의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지겠네요.”
“지켜보는 재미가 아주 쏠쏠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남희진 해설위원은 개구쟁이 같은 표정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드러냈다.
“왓포드가 지금의 성적을 다음 시즌에도 이어갈 수 있을까요?”
“안타깝지만 전혀 그럴 가능성은 없습니다. 이대로라면 왓포드는 다시 강등권에서 살아남을 걱정을 해야 할 겁니다. 왓포드 팬들이 홈경기 때마다 가슴 조이며 지켜봐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이어질 공산이 크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런 걸까요? 여기 비커리지 경기장을 한번 보십시오. 아무도 경기장을 나가려고 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들 왓포드의 지금 이 영광스러운 순간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은 모양입니다.”
그들은 잠시 말을 끊고 주변을 둘러봤다.
“모든 관중이 우리 자랑스러운 대한의 건아! 이대한 선수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아스날을 7골이라는 경이적인 점수 차로 이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걸 누구보다 왓포드 팬들이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정말 중계석에서 지켜보는 이 장면은 장관이네요.”
“그렇습니다. 자랑스럽습니다. 저 선수가 바로 이대한입니다. 그의 국적은 대한민국입니다.”
장수원 아나운서와 남희진 해설위원도 나름 감동을 받았는지 목소리가 잠겨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