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3화 <뒤통수>
“맞아. 바로 그거야. 지금 당장 반대 포지션에서 거액을 베팅하고 있는 놈들을 한번 추적해봐! 잘하면 그동안 뒤에 숨어서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던 놈들의 실체를 알아낼 수 있을지 몰라.”
“알겠어요.”
에바는 그가 방향을 잡아주자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보유한 가용자원을 마음껏 사용했다.
대한이 투자한 천문학적인 자금을 노린 반대 포지션 투자자들의 배후를 캐냈다.
그런데 얼마나 철저하게 신분을 숨겼는지 쉽게 정체가 드러나지 않았다.
이들도 대한과 에바처럼 조세회피처와 역외펀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어쨌든 상황은 그가 언급했던 것과 비슷하게 맞아떨어졌다.
“확실히 마스터의 말이 옳아요. 만약 이대로 대한민국의 민항기가 이란의 지대공미사일에 격추됐다면 우리가 투자한 거액의 투자금을 모두 날릴 수도 있었을 거예요.”
말은 심각하게 했지만, 그녀의 표정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모르긴 해도, 아마 진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에바는 급히 헷지를 하거나 무서운 속도로 움직여서 피해를 최소화했을 것이다.
아니면 전 세계의 전산망을 마비시켜 실제로 손해를 보지 않도록 깽판을 쳤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에바가 열심히 배후를 캐는 사이!
대한도 부지런히 머리를 굴리며 생각했다.
그러다가 어떤 결론에 다다르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어떤 놈들인지 모르지만, 분명히 우리 뒤통수를 치려고 했어. 그러니까 우리도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해줘야 해!”
“무슨 뜻인지 알았어요. 당장 정보 교란을 시작하겠습니다.”
그의 한마디 말에 그녀는 대뜸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해했다.
에바는 즉시 이스라엘의 정찰기 격추 소식을 전 세계로 퍼뜨렸다.
이란의 영공을 몰래 넘어와 정찰을 벌이던 이스라엘의 정찰기가 이란의 지대공미사일에 맞아 격추됐다는 따끈따끈한 뉴스였다.
세계는 발칵 뒤집혔다.
안 그래도 지구의 화약고라고 불리는 중동이다.
별것 아닌 일로도 얼마든지 전면전이 일어날 수 있는 위험한 지역이었다.
그런데 중동에서 가장 군사력이 뛰어난…….
두 패자가 정식으로 반목할 이유가 생겼으니 시끄럽지 않을 수 없었다.
‘이란의 영공을 무도하게 침범한 이스라엘을 규탄한다. 국제법상 자국의 영토를 침범한 군용기는 격추당해도 할 말이 없다. 이스라엘 정찰기는 자랑스러운 우리 이란군의 지대공미사일에 의해 격추당했다. 알라 악바르!’
시작은 이란군 대변인이 거창하게 장식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스라엘은 조개처럼 입을 꾹 다물었다.
이스라엘이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자 오히려 전면에 나선 것은 미국이었다.
미국 정부의 대변인은 이스라엘이 그럴 리 없다는 투로 말했다.
하지만 미국의 정보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보도에선 이스라엘 정찰기가 이란의 국경 지역에서 격추당했다는 사실을 확인해줬다.
그렇게 되자 이스라엘은 아예 오리발 작전으로 나왔다.
‘우리 이스라엘군의 정찰기는 결코 이란의 영공을 넘지 않았다. 이란이 지대공미사일을 발사한 것은 이스라엘을 의도적으로 도발하는 천인공노할 만행이다.’
이스라엘에서 이렇게 뻔뻔하게 나오자 이란은 발끈했다.
그리곤 자국의 영공을 침범한 이스라엘 정찰기에 대한 정보를 공개해버렸다.
이란의 이런 화끈한 태도에 이스라엘은 깜짝 놀랐다.
그러나 처음에 아니라고 했던 말 때문에 당장 시인할 수는 없었다.
이스라엘 정부는 특유의 ‘나 몰라요’ 전법을 쓰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런데 엉뚱한 곳에서 갑자기 증거가 툭 튀어나왔다.
이번 기사의 소스도 미국이었다.
미국의 유수 언론사들은 미국 정보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이란의 정보가 사실임을 확인시켜줬다.
이렇게 되자 상황이 급변했다.
이란은 원수처럼 여기는 미국의 기대하지 않은 도움으로 힘을 얻었다.
반대로 이스라엘은 모든 명분을 잃어버렸다.
거기에다 이스라엘 정보부 모사드의 비밀공작에 관한 극비내용까지 터져 나왔다.
이번에도 미국의 유명일간지에서 이를 특종으로 실었다.
기사에는 모사드가 어떻게 이란의 방공망을 해킹하고 무력화하려고 했는지 계획과 일정표까지 다 나왔다.
누가 봐도 이건 모사드의 계획이라는 것이 꽤 신빙성 있게 담겨있었다.
문제는 기사 끝에 달아놓은 대한민국 민항기의 격추 가능성이었다.
이 기사를 접한 대한민국은 격분했다.
정부에선 이스라엘 대사를 불러 공식적으로 항의했다.
아니 그보다 먼저 대한민국 전역이 반이스라엘 정서로 들끓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이야말로 악의 축이다.’
‘남의 민항기가 격추될 걸 뻔히 알고도 무시하고 작전을 강행한 이스라엘은 고개를 처박고 사죄하라!’
‘이스라엘은 당장 모든 사실은 밝히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라!’
‘모사드를 해체하고 이스라엘과 단교하자.’
온갖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주장이 온라인을 통해 거침없이 쏟아져나왔다.
이스라엘 정부, 특히 모사드는 이 사태에 심히 곤혹스러웠다.
그들은 회의 끝에 대한민국의 정부에 특사를 보냈다.
더 일이 커지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서둘러 봉합하려는 것이다.
덕분에 대한민국은 이스라엘의 뛰어난 군용 드론 제작 및 운용기술을 공짜로 기술이전 받을 수 있게 됐다.
또한, 이스라엘 정부는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을 통해 대한민국 시민들의 반이스라엘 정서를 적극적으로 그리고 시급히 다독였다.
그런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스라엘의 이런 노력에는 행운이 뒤따랐다.
‘이스라엘의 영공침입에 대한 보복으로 우리는 호르무즈해협을 봉쇄할 것이다.’
이스라엘의 자국 영공 침범 사건을 계기로 이란은 호르무즈해협 봉쇄를 천명했다.
뉴스가 나가자 전 세계가 깜짝 놀랐다.
호르무즈해협이 막히면 그곳을 통해 드나드는 많은 석유 운반선과 상선들은 꼼짝달싹할 수 없게 된다.
그럼 당장 세계의 경제는 동맥 경화현상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현대의 경제는 석유라는 피를 공급해줘야만 잘 돌아갈 수 있다.
이건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상식이다.
이란의 이런 자극적인 행동은 당연히 미국의 개입을 불러들였다.
‘만약 이란이 호르무즈해협을 봉쇄한다면 미국은 절대로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낸 백악관 대변인이 강한 어조로 선언하듯 말했다.
물론 그렇다고 겁먹은 개가 꼬리를 말듯 이란은 물러나지 않았다.
실제로 이란은 자국의 해군을 동원해 호르무즈해협을 틀어막고 있는 상태였다.
해안가는 이동식 대함미사일까지 속속 배치됐다.
그리고 그런 모습이 실시간으로 전파를 타고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페르시아만으로 항공모함 함대를 급파했다. 이란은 너무 늦기 전에 호르무즈해협의 봉쇄를 풀어야만 할 것이다.
미국의 입장은 아주 단호했다.
그래서인지 즉각적으로 무력을 동원했다.
사태가 점차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번져나갔다.
이렇게 되자 전 세계의 유가가 일제히 급등, 아니 폭등했다.
그리고, 이를 누구보다도 반긴 것은 다름 아닌 대한과 에바였다.
“됐다.”
“마스터! 성공했습니다.”
대한과 에바는 서로 손바닥을 마주치며 좋아했다.
그럴 만도 한 게 허공에 떠 있는 홀로그램 그래프들이 일제히 녹색 불빛을 일으키며 위로 치솟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에바가 설정해놓은 투자 세팅이었다.
투자가 성공해서 이익을 얻으면 녹색.
반대로 실패해서 손해를 보면 적색으로 맞춰놓았다.
“그래프가 무섭게 올라가네.”
“그만큼 이익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어요.”
둘은 홀로그램을 바라보면서, 주거니 받거니 하듯 대화를 나눴다.
대한은 홀로그램 그래프를 통해 전 세계 증권시장과 선물시장, 상품거래소와 상업거래소 등
에바가 투자해놓은 것들을 일목요연하게 한 눈으로 볼 수 있었다.
그 덕에 지금 그는 실시간으로 얼마를 벌어들이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물론 나중에 정산할 때 세금도 내고 수수료도 지급해야 한다.
그럼 액수도 많이 달라질 것이다.
그래도 지금 벌어들이고 있는 전체 수익금에 비교하면 그 정도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정도로 미미한 양이었다.
“우리 어머니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셨는데…….”
“맞아요. 그렇게 생각하고 사시는 게 정신건강에 이롭습니다.”
대한의 말에 에바가 적극적으로 동감했다.
“그런데 지금 난 저게 돈으로 안 보이고 그냥 숫자에 불과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왤까!”
그제야 그녀는 이게 무슨 귀신 신나라 까먹는 소리인가 하고 쳐다봤다.
가만히 살펴보니 그의 손가락이 지금 어느 한 지점을 가리키고 있었다.
방향을 따라가자 홀로그램 한쪽 모서리에 있는 수익금 통계가 보였다.
그런데 정말 쉴새 없이 빠르게 숫자들이 올라가고 있었다.
에바는 소리 안 나게 피식 웃음을 흘렸다.
“마스터! 그럼 이것도 좀 보세요.”
왼쪽 끝에 새로운 홀로그램 하나가 떠올랐다.
거기에도 비슷하게 어떤 통계 숫자가 나와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저건 뭐야?”
“세타드가 역외펀드를 통해 투자한 원유와 관련된 선물과 옵션이에요.”
“그럼 저게 이란의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가 몰래 벌어들이고 있는 이익금이란 말야?”
“네, 맞습니다.”
세타드는 이란의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가 가지고 있는 총자산 천억 달러 규모의 비밀기업이다.
막대한 금액의 역외펀드를 조성한 세타드는 호르무즈해협을 봉쇄하기 전에 원유와 관련된 선물과 옵션에 집중투자했다.
대한은 에바의 설명에 고개를 자꾸 좌우로 왔다 갔다 했다.
세타드의 투자이익과 자신의 투자이익을 자신도 모르게 비교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도 만만치 않게 벌어가네.”
“그렇죠? 워낙 막대한 자금을 투자한 상태라 우리 못지않게 벌어들이고 있어요.”
에바의 확인사살에 그는 마음이 심히 불편했다.
하지만 대한이 미처 모르는 것이 있었다.
그는 개인적으로 투자한 것이고 상대는 한 국가가 비밀리에 전력을 기울여서 하는 투자였다.
그러니 당연히 수익금이 엄청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 좀 드시고 하세요.”
“고마워.”
에바는 어느새 그의 앞에 치즈케이크와 오렌지주스를 가져다 놓았다.
대한은 사양하지 않고 포크를 들고 치즈케이크를 찍어 먹었다.
빨대로 오렌지주스도 쪽쪽 빨아 마셨다.
달콤한 게 체내로 들어오자 금세 기분이 좋아지는 기분이었다.
“마스터! 서서히 목표치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그럼 당장 청산해버려!”
“넵.”
그녀의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대한은 바로 결단을 내렸다.
이란의 역외펀드들이 엄청난 이익을 얻는 것을 보지 않았다면 아마 좀 더 느긋하게 청산하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몰 볼 것을 본 것 같은 착잡한 상태였다.
그래서 굳이 더 붙잡고 늘어질 생각이 들지 않았다.
미리 최고의 수익금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한 목표치에 접근하자 가차 없이 들고 있는 주식과 선물 및 옵션을 팔거나 청산해버렸다.
그런데 이게 대한에게는 큰 행운이 됐다.
이란의 역외펀드들과 에바가 투자한 대한의 투자금은 교묘하게 얽혀있었다.
개중에는 헷지를 목적으로 반대 포지션으로 묶여있는 것도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옵션의 종류와 시간 차이 때문에 손해는 크게 보지 않았다.
그렇게 한창 홀로그램을 뚫어지라 바라보며 신경을 쓰고 있을 때!
에바가 그에게 밝은 미소와 함께 희소식을 전했다.
“마스터!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뭐야?”
좋은 소식이라니까 절로 기대가 됐다.
그런데 그녀가 전한 소식은 대한이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이번 작전을 주도하고 있는 세타드의 컨트롤타워를 찾았습니다.”
“아! 그래.”
반응이 시원치 않자 에바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아까 찾아보라고 하셨던 흑막의 존재도 발견했습니다.”
“찾아냈어?”
“전체를 찾지는 못했지만, 그들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곳은 확실하게 알아냈습니다.”
“그게 어딘데?”
“JP모건 체이스입니다.”
대한의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JP모건은 세계적인 투자은행이자 상업은행이다.
좋아하는 판타지 소설에서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흑막의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해서 그런지 오히려 친근감이 들었다.
“놀라지 않으시네요.”
“어쩐지 그들과 연관이 있을 것 같았어.”
미리 알고 있기라도 한 것 같은 말투에 에바는 혼란스러웠다.
마스터는 이걸 어떻게 알았을까?
그가 보고 듣고 얻는 모든 정보는 자신과 공유하고 있다.
그런데 그 어디에서도 지금 자신이 찾아낸 정보와 겹치는 게 없었다.
하지만 에바가 잘 모르는 게 있었다.
세상은 소설보다 더 소설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