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만재능(Feat. 대한 TV)-240화 (239/331)

240화 <역전의 명수>

“그동안 내가 누누이 강조했지?”

“네? 아, 아닙니다.”

시게루 내각정보관이 사토 2팀장의 얼굴을 노려봤다.

“내각정보조사실의 무능은 곧 우리 대일본의 무능이 된다고 말했어, 안 했어?”

“하셨습니다.”

나란히 서 있는 네 명의 팀장이 거의 동시에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왜 내가 그런 말을 했을 것 같아?”

“정보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이번에는 구로야마 3팀장이 자신 있게 대답했다.

다행히 그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시게루가 처음으로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래. 맞아. 내각정보조사실은 우리 열도의 눈이자 귀야. 그런데 들어오는 정보가 정확하지 않으면 그걸 가지고 어떻게 가공해서 어떻게 활용한다는 말이야. 제발 책상 앞에 앉아있지만 말고 현장을 좀 돌아봐!”

역시나 마무리는 호통이었다.

그러나 네 명의 팀장!

그러니까 정확히 말해서 네 명의 국장들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만약 여기서 빈틈을 보이면 앞으로 두고두고 갈굼을 받기 때문이었다.

“사토!”

“하이!”

“아까 말했던 거 상황설명이 필요하다.”

“정전이 일어나기 직전에 경고가 들어왔었습니다.”

“경고라니?”

시게루는 경고라는 말에 눈에 의혹의 빛을 띄웠다.

사토 2팀장은 지금이 아주 중요한 때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제대로 설명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와타루 1팀장이 훅 치고 들어왔다.

“더 이상 선을 넘지 말라는 경고였습니다. 저희 모두 그 경고를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그 경고를 누가 보냈는데?”

“알 수 없습니다.”

“알 수 없다고?”

시게루의 미간이 서서히 팔자로 일그러졌다.

그러자 아오키 4팀장이 재빨리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보낸 주체가 없어서 누군지 알 수는 없지만, 저희 네 명을 포함해 내각정보조사실의 주요 핵심간부들은 전부 같은 경고를 받았습니다. ‘더 이상 선을 넘지 말아라. 만약 선을 넘는다면 강력히 보복할 것이다.’라고 말이죠.”

“보낸 주체가 없다?”

아오키의 말에 시게루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가능한 건가? 해킹을 당하더라도 들어오고 나간 흔적은 남는 거 아냐?”

“맞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해커라도 로그(log)는 남게 됩니다. 그런데 귀신이 와서 타자라도 한 것처럼 전혀 흔적이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당한 사람의 측면에서 보면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시게루를 제외한 나머지 팀장들은 모두 아오키 4팀장의 말에 동감하는 표정들이었다.

혹시나 했던 시게루는 급히 자신의 컴퓨터를 확인했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 자신의 컴퓨터 화면에도 예의 그 이상한 경고가 적혀있었다.

“으음, 이거 누가 보냈어?”

“확실하지는 않지만, 저희는 코레디펜스라고 보고 있습니다.”

“왜?”

“경고가 들어오기 전에 코레디펜스와 관계가 있는 작전이 발각당했기 때문입니다.”

“뭐야? 작전이 발각당해?”

시게루는 금시초문이었다.

하지만 이어진 아오키의 설명에 금세 고개를 끄덕였다.

“미국 정보부와 암묵적으로 공동작전을 벌이기로 한 거 있지 않습니까!”

“아! 그거. 미국이 코레디펜스 본사를 맡고 우리가 코레디펜스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대한 선수의 부모를 털기로 했지.”

“맞습니다. 그런데 들통이 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들통이 날 게 뭐가 있어? 반도 최고 언론의 기자들을 동원했잖아.”

“그게 탈이 났습니다.”

아오키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설마 정체가 발각된 거야?”

“네, 그렇습니다. 경찰만 와서 데려간 게 아니라 국정원 직원이 와서 안가로 끌고 갔답니다.”

“국정원이 여기서 왜 나와?”

“아쉽게도 그 이상은 모르겠습니다.”

시게루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모르겠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진짜 모르고 한 말은 아니겠지.”

“정말 모르겠다는 뜻입니다. 현재 반도에 심어놓은 협력자들과의 연락이 일제히 끊어졌습니다. 특히 국정원에 심어놓았던 1급 협력자가 실종된 상태입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 정도라면 이미 국정원이 손을 다 썼다는 말이겠군.”

정전으로 인해 서버가 날아간 일보다 이번 사건의 파장이 더 크다는 것을, 시게루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아오키의 설명이 계속 이어졌다.

“어쨌든 반도에서 실행한 작전이 실패로 돌아가고 나자마자 경고가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코레디펜스가 개입했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한 것입니다.”

“코레디펜스라…….”

시게루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차라리 국정원을 상대하는 게 낫지 코레디펜스는 영 불편했다.

“아무래도 코레디펜스와 관련된 작전은 당분간 멈추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상대의 정체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상태라면 그냥 탐문 정도로 한발 물러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와타루 1팀장의 말에 3팀장 구로야마가 얼른 거들었다.

두 사람은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나 반도의 방산업체들과 함께 승승장구하는 코레디펜스가 무척 수상했다.

그렇다고 함부로 건들기도 뭐 했다.

코레디펜스가 보유한 자회사 코레실드!

다국적 민간군사기업인 코레실드는 반도에서 무장경비업체까지 운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상대하기가 무척 껄끄러웠다.

민간군사기업뿐만 아니라 코레디펜스를 경비하는 무장경비업체까지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특수부대 출신 대원들이 포진해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등급이 모두 1급 이상이었다.

특히 코레디펜스 임원들과 이대한 선수 가족에게는 특급이 배정되어있었다.

그래서 무력을 동원할 생각은 애초에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따위 나약한 정신상태로 일하니까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이 된 게 아니야?”

“네?”

갑작스러운 시게루의 호통에 순간적으로 와타루 1팀장의 영혼이 가출해버렸다.

“탐문 따위나 하라고 나라에서 자네들에게 거액의 연봉을 주는 게 아니잖아. 대일본제국의 영광과 부활을 위해 모두 목숨을 걸고 코레디펜스의 정체를 파악하는 게 우리의 의무다.”

“아!”

와타루는 물론이고 4명의 팀장은 모두 입을 딱 벌렸다.

잠시 잊고 있었다.

이 인간이 누구인지를 말이다.

총리의 개!

내각의 딸랑이!

출세를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하고 만다는 출세지상주의자!

와타루 1팀장과 구로야마 3팀장은 슬쩍 서로의 눈을 마주쳤다.

하지만 서로 미미하게 고개를 숙이는 걸로 의사를 대변했다.

맞선다면 당장 사표를 내야한다.

그렇다고 그냥 이대로 지켜보자니 정말 일본의 미래가 걱정됐다.

그러나 눈앞의 시게루는 오히려 그 누구보다 일본을 위한다고 자부하는 인간이었다.

그리고 와타루와 구로야마 말고도 이 방안에 팀장은 둘이나 더 있었다.

“아무래도 와타루 1팀장과 구로야마 3팀장은 잠시 홋카이도로 휴가를 다녀와야할 것 같군.”

“하이!”

“하이!”

시게루의 말이 명령이라는 것을 알아 들은 와타루 1팀장과 구로야마 3팀장은 즉시 자세를 바로하고 크게 대답했다.

“좋아. 이번 일은 사토 2팀장이 맡아. 전권을 줄테니까 한번 마음껏 해보라고. 어때? 잘할 자신 있지?”

“하! 신명을 바쳐서 반드시 임무를 완수하겠습니다.”

“무하하하! 좋아.”

파안대소를 터트리는 시게루.

그의 얼굴을 보며 아오키 4팀장은 급히 표정 관리에 들어갔다.

열심히 노력했는데도 불구하고 결국 달콤한 과실은 사토가 차지했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왔지만 당장 아오키는 꾹 참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때는 다들 몰랐다.

앞으로 내각정보조사실에 어떤 바람이 불어올지를 말이다.

정전으로 인한 화재로 내각정보조사실 서버가 날아간 사건은 어느새 불문에 부쳤다.

정보기관이라서 그런지 이런 일은 일사불란하게 단합이 잘 되어 금세 은폐작업에 들어갔다.

세상에 비밀은 없다는 진리를 지금은 다들 애써 돌아보지 않았다.

* * *

“와아아아!”

스탬퍼드 브리지(Stamford Bridge) 경기장을 달구는 뜨거운 함성이 일었다.

“골!”

“골입니다.”

“이대한 선수! 해트트릭입니다!”

“와! 끝내 해트트릭을 해버리네요.”

“놀랍습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장수원 아나운서와 남희진 해설위원은 터져 나오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역시 이대한 선수입니다.”

“맞습니다. 우리 이대한 선수가 없었다면 왓포드는 이대로 주저앉았을 겁니다.”

“카카 감독의 결단도 주효했어요.”

“네, 그렇습니다. 구단과의 마찰을 각오하고 전반 이른 시간에 이대한 선수를 투입한 것은 신의 한 수였습니다.”

오늘도 장수원 아나운서와 남희진 해설위원의 자극적인 편파중계가 이어졌다.

두 사람은 이제 이제 왓포드 구단에 민감한 말도 서슴지 않았다.

“이러다 카카 감독이 잘리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왓포드 FC 팬들의 관점에서 카카 감독은 팀을 강등권을 탈출시킨 훌륭한 감독입니다.”

“전부 이대한 선수 덕분이었죠.”

“그렇습니다. 만약 이대한 선수가 없었다면 왓포드는 아직도 강등권에서 헤매고 있었을 겁니다.”

“그러고 보니 이대한 선수가 그동안 왓포드를 위해 무료봉사를 열심히 해줬네요.”

“맞습니다. 주급 1만 파운드면 무료봉사나 마찬가지입니다.”

대한이 맨시티로 임대 간다는 것은 이미 오피셜이 뜬 상태였다.

그래서인지 장수원 아나운서와 남희진 해설위원은 그동안 가슴에 쌓아둔 것을 마구 풀어헤쳤다.

특히 대한에게 정당한 대우를 해주지 않은 왓포드 구단주와 프런트를 마음껏 비웃어댔다.

“이제 불행 끝 행복 시작입니다.”

“맞습니다. 공식적으로 확인된 주급이 40만 파운드에요.”

“자타공인 세계 최고의 프로축구리그인 프리미어리그에서 최고의 주급을 받게 됐습니다.”

“왓포드에선 죽었다 깨어나도 받을 수 없는 주급입니다.”

“하지만 이대한 선수는 그만큼 활약을 해줬습니다.”

“주급 40만 파운드를 받아도 아깝지 않을 만큼의 활약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걸 왓포드에서는 1만 파운드만 주고 해결했습니다.”

“지금이라도 그의 활약에 맞는 정당한 대가를 지급해야 합니다.”

“짠 내 풀풀 나는 왓포드 구단주가 그렇게 할 리는 없겠지요?”

“제가 알기로 그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닙니다.”

“사실은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설사 구단주가 주고 싶어도 프런트에서 절대 동의하지 않을 겁니다.”

장수원 아나운서와 남희진 해설위원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거의 동시에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삐익!

주심의 휘슬로 다시 경기가 시작됐다.

첼시 선수들은 무리하지 않았다.

전반전 시간이 거의 다 되어가니 이대로 끝을 내려고 생각하는 듯했다.

램파드 감독도 굳이 선수들을 다그치지 않았다.

어차피 아직 전반전일 뿐이었다.

후반전도 있으니 시간은 넉넉하다.

대신 어떻게 하든 그사이에 이대한 선수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문제는 다 이겨놓은 경기를 순식간에 뒤집어놓은 월드클래스의 선수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막아내느냐였다.

대한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한 첼시!

덕분에 경기는 3:3 원점으로 돌아갔다.

깔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램파드 감독.

그는 답답한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손으로 얼굴을 비벼댔다.

그러는 사이 시간이 되어 전반전을 마치는 휘슬이 울렸다.

삐이익!

주심의 휘슬로 전반전 경기가 끝났다.

대한은 동료들과 웃으며 경기장을 나와 라커룸으로 들어갔다.

“다들 수고했어!”

라커룸을 찾은 카카 감독은 들어오자마자 선수들을 향해 엄지를 들어 올렸다.

특히 대한을 바라보는 눈빛은 마치 첫사랑을 다시 만난 연인의 그것이었다.

거북한 눈빛에 대한은 급히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마침 거기에 물과 바나나가 보였다.

그는 시원하게 물을 마시고 바나나를 까먹었다.

‘이러다가 원숭이가 되겠어.’

―바나나를 너무 자주 먹는다고 원숭이가 되지는 않습니다.

우문우답!

대한의 농담에 에바도 농담으로 응수했다.

‘사실 운이 좋았어.’

―그런 셈이지요. 첫 번째 골은 페널티 에어리어 바로 앞에서의 프리킥이었고 두 번째 골은 페널티킥을 찼으니까요. 그래도 세 번째 중거리 슛은 아주 멋졌어요.

에바의 냉정한 평가에 대한도 동의했다.

경기 초반, 왓포드 수비진이 어수선한 가운데 첼시의 폭풍 같은 공격이 있었다.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왓포드 골문에 첼시는 잔인하게도 골 소나기를 퍼부었다.

첼시의 공격수 태미가 2골, 윌리안이 1골을 넣으며 절정의 골 감각을 과시했다.

왓포드가 첼시에게 3번째 골을 먹은 시간이 겨우 전반 17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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