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9화 <미리 해놓는 투자계획>
“좋아. 한번 멋지게 성공시켜봐!”
“네, 마스터.”
일단 대한은 에바를 격려했다.
앞으로 돌아가는 상황을 봐서 자신도 방향과 행동을 결정할 생각이다.
그런데 그녀의 말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여기까지가 이번에 투자하기 전까지의 얘기입니다.”
“어떤 투자를 말하는 거야? 미국과 중국의 무역협정 타결 얘기야? 아니면 호르무즈해협 봉쇄 얘기야?”
“중국의 무역협정 타결 소식까지가 전(前) 얘기입니다. 앞으로의 얘기는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야기되는 국제유가급등 시나리오로 벌어들일 막대한 수익금의 활용법입니다.”
“도대체 얼마나 벌겠다고 벌써 이러는 거야?”
대한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런데 에바는 뭔가 생각이 아주 확고부동한 것 같았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협정 타결 소식으로 적게는 2배, 많게는 5배까지 이득을 봤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투자했던 자금이 천억 달러에 달합니다. 그러니 지금 투자금이 얼마로 불어났을지 한번 생각해보세요.”
쿵!
머릿속에서 마치 에밀레종 소리가 울리는 것 같았다.
“세상에! 이번에 번 돈을 다시 투자금으로 호르무즈해협봉쇄로 야기되는 국제유가급등에 베팅하겠다는 거였구나.”
“맞아요. 투자에 성공한다면 천문학적인 자금이 우리 손에 들어오게 될 거예요.”
대한은 그제야 에바의 행동이 이해가 갔다.
이젠 정말 너무 많아서 주체할 수 없는 이 막대한 투자금을 어떻게든 정리해야 한다.
아니 최소한 어떻게 쓸지 미리 교통정리라도 해놓지 않는다면 나중에 두고두고 문제가 불거질 것이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450여 개의 글로벌 유니콘 기업 투자계획입니다.”
“유니콘 기업(Unicorn)이라면 기업 가치가 10억 달러 이상인 비상장 스타트업 기업을 말하는 거 아냐?”
“맞아요. 신화나 상상 속에서 등장하는, 이마에 뿔이 달린 말인 유니콘을 빗대서 부르고 있죠. 기업 가치가 유니콘의 10배인 100억 달러 이상이면 데카콘(Decacorn), 100배인 1,000억 달러 이상이면 헥토콘(hectocorn) 기업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데카콘까지는 이해가 가는데 헥토콘은 좀 오버다.”
“그렇죠. 확실히 오버죠. 그런데 우리에게 중요한 건 그게 아닙니다. 유니콘이 됐든 데카콘이 됐든, 투자할 가치가 있다면 얼마든지 투자하면 되는 겁니다.”
“유니콘 기업에 투자만 한다고 해서 무조건 성공하는 건 아닐 텐데?”
“바로 보셨어요.”
에바는 손뼉을 치더니 허공에 홀로그램을 마구 만들어냈다.
얼핏 숫자를 세어보니 450개가 넘었다.
“이건 현재 존재하는 글로벌 유니콘 기업들입니다. 하지만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죠.”
그녀의 말에 따라 450개 중 150개가 날아갔다.
에바가 볼 때 성공할 가능성이 적다고 판단한 유니콘 기업들이다.
그런데 그 숫자가 무려 전체의 3분의 1이나 됐다.
“이미 투자를 넉넉하게 받아서 더는 투자금을 유치하지 않아도 되는 유니콘 기업들도 빼야죠.”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시 100여 개의 홀로그램이 꺼지듯 사라졌다.
이제 남은 것은 대략 200개 정도.
“이 중에서 당장 투자할 수 있거나 투자했을 때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것만 추려봤습니다.”
대한을 바라보며 그녀의 손이 또다시 허공을 휘저었다.
그러자 절반이 사라지고 100개 정도만 남았다.
“100개의 유니콘 기업이 아직도 투자금을 받고 있구나.”
“그렇습니다. 여기서 7할은 투자의 대가로 지분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3할은 회사채를 사달라고 하더군요.”
“아무리 그래도 회사채는 좀…….”
“아니죠. 마스터의 말이 맞습니다. 그래서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가 담긴 전환사채(convertible bond)나 해당 회사의 주식을 미리 정해놓은 가격에 살 수 있는 권리(Warrant)가 주어진 채권(Bond)인 신주인수권부사채(Bond with Warrant)에 투자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까지 투자해야 할 정도로 이들 기업의 성공 가능성이 크다는 거겠지?”
“예.”
에바는 딱 부러지게 긍정했다.
“투자금은 얼마나 쓸 예정이야?”
“일단 천억 달러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10억 달러씩만 투자해도 100개의 유니콘 기업이면 금방 쓰겠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요. 정 모자라면 그냥 더 투자하면 됩니다.”
대한의 말에도 그녀는 아주 쉽게 얘기했다.
사실 이런 일은 돈으로 해결하는 것이 제일 쉬운 방법이기도 했다.
“이게 전부야?”
“당연히 아니죠. 이미 저희가 투자한 유망한 중소기업들과 앞으로 투자할 유니콘 기업들을 연결해서 시너지 효과를 노릴 겁니다.”
“그거 좋은 생각이네.”
“여기에다 현재 대체할 수 없는 첨단기술을 가진 회사와 유니콘까지는 아니더라도 꽤 유망한 스타트업 기업들에도 투자할 생각입니다.”
듣고 보니 이런 투자라면 얼마든지 환영이었다.
문제는 엄청나게 일이 커지고 손이 많이 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다.
“좋은 생각이야. 그런데 이 많은 일을 누가 다 하지?”
“미국에는 이런 일만 전문적으로 하는 벤처캐피털 회사가 많습니다. 그중에서 마침 적당한 크기의 매물이 하나 나왔습니다.”
“아하! 벤처캐피털이나 창업 투자금융회사를 인수해서 문제를 해결할 생각이었구나.”
아무리 에바가 만능이라고 해도 혼자서 모든 일을 할 수는 없다.
특히 아기를 돌보듯 잔손이 많이 가는 이런 종류의 일은 특히 전문적인 인력이 많이 필요했다.
“당연하죠. 벤처기업 관리는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저희는 뒤에서 투자만 하는 게 좋습니다.”
“맞는 말이야. 그런데 규모가 얼마나 큰 회사야?”
“굳이 순위로 말하자면 미국에서 20위권 안에는 들어가는 회사에요. 부채가 좀 많긴 하지만 능력은 발군입니다.”
“능력이 발군인 회사가 왜 시장에 매물로 나왔지?”
“그거야 창업주나 사장이 뻘짓을 했기 때문이지요.”
당연한 얘기지만 이런 회사가 세상에 은근히 많다.
직원들은 능력이 있고 일도 매우 열심히 잘한다.
그런데 창업주가 문어발식 확장을 하거나 쓸데없이 엄한 회사를 인수·합병하느라 돈을 써대서 회사의 재정을 어렵게 만들어놓는다.
정말 이런 인간은 답도 없고 구제 불능이다.
모르긴 해도, 에바가 언급한 벤처캐피털도 아마 이런 종류의 사건이 일어났던 것 같다.
“또 다른 곳은 투자 안 해?”
“요새 시장에 꽤 규모가 큰 민간군사기업(PMC)들이 제법 매물로 많이 나왔어요.”
“설마 민간군사기업을 또 인수하려고?”
에바의 말에 대한은 깜짝 놀랐다.
지금 코레디펜스의 자회사인 코레실드도 결코 작은 규모가 아니다.
그런데 그녀는 만족할 모르는 이처럼 계속해서 확장해나가고 있었다.
“네, 인수·합병을 통해 코레실드의 규모를 더욱 늘려갈 겁입니다.”
“일거리는 있고?”
“크게 돈 남길 생각만 버리면 일거리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세계는 넓고 위험은 산재해있으니까요.”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이었다.
묘하게 뒤가 좀 다르긴 하지만.
어쨌든 떼돈 벌 생각만 아니라면 민간군사기업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특히 치안이 불안한 남미와 아프리카 그리고 중동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수요가 많다.
“앞으로 누가 마스터의 안전을 위협할지 모릅니다. 그들에게 경종을 울려주기 위해서라도 코레실드만큼은 업계 제일, 아니 세계 제일의 특수전 능력을 배양해놓아야 합니다.”
“누가 들으면 전쟁이라도 준비하는 줄 알겠다.”
“평화를 원하는 자 전쟁을 준비해라!”
“하긴 그런 말이 있긴 하지.”
“제가 자주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이미 마스터를 중심으로 세계 정보기관의 치열한 암투가 벌어지고 있어요.”
“하아!”
가끔 에바가 던지는 팩트는 뼈를 때린다.
그렇다고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 노력하는데 뭐라고 따지기도 그랬다.
“알았어. 코레실드 확장은 알아서 하도록 해!”
“고맙습니다.”
대한의 포기 같은 선언에 그녀는 미소와 함께 살짝 고개를 숙였다.
“이제 다른 투자계획은 없는 거지?”
“마지막으로 국내 대기업집단에 대규모 투자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재벌에 투자를?”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적대적 인수합병을 목적으로 대기업집단의 주식을 은밀히 사들이고 있어요.”
“아니 무슨 재벌해체이라도 하려고 그래?”
무소불위의 권능을 가진 재벌!
그는 굳이 이들과 척을 지고 싶지 않았다.
천상 서민인 대한은 재벌과 아무런 대척점도 없었다.
“아쉽게도 이미 미국을 중심으로 한 사모펀드와 헤지펀드들이 대한민국의 대기업집단을 노리고 있어요. 10%도 넘지 않는 지분을 가지고 거대 기업집단을 마치 자기 것인 양 마음대로 좌지우지하고 있으니 한번 노려볼 만도 하죠.”
이건 처음 듣는 얘기였다.
하지만 재벌의 지배구조와 순환출자구조를 알면 국제금융시장에서는 누구나 한번 노려볼만한 먹음직한 먹이이기도 했다.
“그래서 다른 놈들이 먹어치우기 전에 우리가 미리 먹어치우자고?”
표현이 좀 거칠긴 했지만, 핵심을 찌르는 질문이었다.
에바는 그의 물음에 순순히 대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그러다가 개미들만 다치게 되는 거 아니야?”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해야죠. 그리고 저희가 전면에 나서지도 않을 겁니다.”
“누굴 앞세우던지 조심히 접근해. 괜히 애먼 놈 다치게 하지 말고.”
“알겠습니다.”
굳이 에바가 언급하지 않아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돈이 많아지고 힘이 생기면 당연히 주변에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다.
지금까진 코레투자와 코레디펜스 등
코레 그룹을 통해서 제한적인 힘만 행사해왔다.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식이 될 거란 보장은 없었다.
차고 넘치는 힘과 영향력을 더 이상 이대로 흘려보낼 수 없게 됐다.
이젠 나아가야 할 방향과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움직여야 할 때다.
쏴아아아!
어느새 밖은 시원하게 소나기가 내리고 있다.
대한의 눈빛이 한층 깊어지는 시간이었다.
* * *
쾅!
불끈 쥔 주먹이 책상 위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책상 앞에 선 내각정보조사실 팀장들이 더욱 몸을 꼿꼿이 세웠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건가?”
“스미마셍!”
“죄송합니다.”
유구무언이라고…….
입이 있어도 정말 할 말이 없었다.
그저 고양이 앞에 쥐처럼, 팀장들은 모두 고개만 조아릴 뿐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눈앞의 상사의 화가 풀리는 것은 아니었다.
“도대체 보안을 어떻게 했길래 이렇게 시스템이 뻥뻥 뚫려?”
“…….”
“이게 대일본제국의 부활을 꿈꾸는 우리 내각정보조사실의 현실인가!”
“…….”
“정전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그럼 당연히 백업시스템이 돌아가야 하잖아! 그런데 뭐? 불이 나서 서버를 다 태워 먹었다고! 그럼 그렇게 될 때까지 너희들은 전부 뭐 하고 있었어?”
“…….”
“서버가 다 같은 서버야? 내각정보조사실의 서버가 AV나 담아놓는 시중의 그냥 그런 서버냐고? 우리 일본 정부에서 수십 년 동안 온갖 노력을 다 기울여서 모아놓은 세계의 각종 기밀과 고급정보 및 자료들을 모아놓은 곳이잖아.”
“…….”
일본 내각정보조사실의 수장인 시게루 내각정보관의 폭언은 끝이 없었다.
그런데 듣고 보면 하나 같이 다 맞는 말이었다.
그래서 당하는 처지의 팀장들은 더욱 할 말이 없었다.
“그런데 그 귀중한 서버를 홀라당 태워 먹어? 그것도 백업데이터까지 같이 불타버렸다면서?”
“전부는 아닙니다. 일부는 남겨놓았습니다.”
와타루 1팀장이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순간 시게루 내각정보관의 날카로운 시선이 그에게 꽂혔다.
아뿔사!
와타루 1팀장은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아니나 다를까!
자신을 바라보는 시게루의 눈빛은 포식자의 그것처럼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남아있다는 백업자료들이 몇 년 전의 것이라고 했지?”
“5년 전의 것입니다.”
“하루만 지나도 확확 달라지는 것이 요즘 세상이야. 그런데 5년 전의 자료를 가지고 뭘 하겠다는 거야? 당장 한국과 북조선에 침투시킨 요원들과 포섭한 첩자들은 이제 어떻게 관리할 건데?”
“죄송합니다.”
와타루 1팀장은 그저 하염없이 허리를 90도 각도로 숙이며 사과를 해야 했다.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났다.
그러자 시게루도 지쳤는지 털썩 의자에 주저앉았다.
“누가 이딴 짓을 했는지 알아냈어?”
드디어 질문다운 질문이 나왔다.
와타루 1팀장은 얼른 입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사토 2팀장이 그보다 한 발 더 빨랐다.
“코레디펜스를 의심하고 있습니다.”
“코레디펜스? 그리고 확정된 게 아니라 의심을 하고 있다고! 무슨 말이 그래?”
안 그래도 울화통이 터져 죽겠는데 팀장들까지 하나같이 어리바리하게 굴었다.
시게루는 짜증이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것을 막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