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만재능(Feat. 대한 TV)-236화 (235/331)

236화 <귀여운 염산마>

“에바! 저놈들 저녁에 진짜 미군 군용수송기를 타고 대한민국을 뜨는 거야?”

“네, 랭글리(CIA 본부)에서 이미 협조공문까지 보내왔습니다.”

“아니 미국에서 왜 저놈들을 감싸고 도는 거지?”

“그거야 당연히 뭔가 뽑아먹을 정보가 있기 때문이죠. 그렇지 않다면 숨기고 싶은 정보가 있다던가.”

“아!”

“어떻게 할까요?”

에바의 말에 대한은 순간 말문이 꽉 막혔다.

청와대를 시작으로 여당과 야당, 국방부와 방사청, 대법원과 대검찰청 등

대한민국 정부의 주요기관들이 온 힘을 다해 첩자들을 색출해내고 있었다.

하지만 청와대처럼 성공한 작전이 있는가 하면 국정원처럼 실패한 작전도 있었다.

수치로 비교해보면 대략 80%가 잡혔다.

나머지 20%는 도주 중이거나 탈출한 상태였다.

“태평양 상공에서 떨어뜨려 버리자.”

“네?”

“놈들이 미군의 군용수송기를 타고 도망치면 수송기를 추락시키란 말이야.”

“C-17 글로브마스터 III 전략·전술 수송기를 말입니까?”

“응. 그래.”

“저 수송기 한 대가 얼마인지 아십니까?”

“얼마나 하는데?”

“기체 가격만 2억1800만 달러입니다.”

“그으래? 그럼 더 잘 됐군.”

에바는 대한의 반응에 놀라 눈을 깜빡거렸다.

보통 이런 상황이 되면 그는 얼른 대안을 찾아냈다.

그런데 오늘은 뭔가 행동이 좀 달랐다.

“김상태와 그 일당을 제거하는데 굳이 저 비싼 군용수송기까지 떨어뜨릴 필요가 있어요?”

“설마 저 세 놈의 목숨보다 군용수송기가 더 중요하다는 말은 아니겠지?”

“물론 아닙니다. 그런 뜻의 질문이 아니에요.”

“그럼 됐어. 저 더럽게 비싼 C―17 글로브마스터 III 전략·전술 수송기가 내 것이라면 모르지만, 간첩질하게 만든 미국의 소유잖아. 그러니 추락하든 말든 내가 신경 쓸 일이 아니지.”

“그럼 군용수송기에 타고 있는 조종사들은요?”

“낙하산 메고 잘 뛰어내릴 수 있게 에바가 도와주든가.”

“아! 네!”

역시 귀찮은 일은 에바의 몫이었다.

대한은 더 이상 피해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미세한 차이지만 에바는 절대 이걸 간과하지 않았다.

“기왕 이렇게 된 것! 우리 끝까지 좀 도와주도록 하자.”

“뭘 어떻게요?”

“도망가는 놈들 정보를 국정원에 넘겨주거나 아니면 살짝 개입해서 못 도망치게 만들어버려!”

“네, 알겠습니다.”

에바는 대한의 명령에 살짝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리고 허공에 둥실 떠 있는 홀로그램을 노려봤다.

그런데 대한은 진짜 몰랐다.

지금 자신이 누구의 고삐를 풀어줘 버렸는지 말이다.

이날부터 대한민국 곳곳에 ‘염산마’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

뿌우웅!

멀리 기적이 울리는 대합실.

일본 후쿠오카로 가는 페리를 타려고 제법 사람들로 붐볐다.

불매운동의 여파로 일본으로 여행가는 한국인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보단 한국을 거쳐서 일본으로 들어가는 일본인을 포함한 외국인들이 더 많아 보였다.

웃고 떠들며 여행에 대한 기대와 귀향의 기쁨이 버무려진 그때!

갑자기 귀청을 지르는 참혹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으아아악!”

정장을 입은 중년 남자가 끔찍한 비명을 질러댔다.

그는 어디에선가 쏟아진 염산을 맞고는 기겁을 하고 말았다.

그런데 당한 위치가 절묘하게도 사타구니 사이였다.

사내의 주요부위가 타들어 가며 극심한 통증이 일어났다.

치이익!

급히 벨트를 풀고 바지를 벗었다.

팬티까지 내리고 나자…….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며 속살이 타들어 가는 끔찍한 모습이 보였다.

“꺄악!”

“끼야악!”

“변태다!”

사정을 모르는 여자들이 놀라서 비명을 질러댔다.

복실 한 털로 뒤덮인 남성의 흉물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

한마디로 아주 그로테스크했다.

여자들은 목청이 찢어지라고 비명을 지르면서도 손가락 사이로 남자의 사타구니 사이를 훔쳐봤다.

“크으윽! 살려주세요! 제발 도와주세요!”

두 손으로 사타구니를 감싸며 어쩔 줄 모르는 남자!

그는 마구 소리를 지르며 주변에 도움을 청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청년들이 용감하게 나섰다.

“킁킁! 어! 이거 염산이다.”

“이 남자 염산 테러를 당했어.”

“당장 구급차를 부르자!”

청년들은 즉시 119에 신고를 했다.

그런 다음 남자의 주변을 감싸고 어떻게 도와야 할지 의논했다.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 관계자들도 사태를 파악하자마자 바로 달려왔다.

급한 마음에 사람들은 남자의 사타구니 사이로 생수를 부어댔다.

이게 얼마나 위험한 행동인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다만 당장 고통스러워하는 남자를 도와주려는 마음이 컸다.

그래도 아주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닌지 더는 연기가 피어오르지는 않았다.

부와아아앙!

그때,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 안쪽 깊숙이 SUV 한 대가 거칠게 달려오다가 멈췄다.

끼이익!

차 문이 열리고 동시에 4명의 건장한 정장 차림의 사내들이 몰려나왔다.

그들은 급히 쓰러진 남자에게 다가갔다.

한 명이 남자의 양복저고리 안쪽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빠르게 신원을 확인했다.

“찾았습니다.”

“진향하 맞아?”

“네.”

“빨리 체포해!”

“저 그런데 사람들이 이놈 염산 테러를 당했다는데요?”

“그럼 일단 병원으로 데려가자.”

“네.”

그들은 염산 테러를 당한 사내.

아니 간첩죄를 저지른 대검찰청 수사기획관 진향하를 차에 실었다.

그리곤 빠르게 차를 몰아 사라져갔다.

뒤늦게 구급차가 나타났지만 이미 환자는 사라지고 없었다.

비슷한 일이 대한민국 곳곳에서 일어났다.

공통점은 모두 정장 차림의 사내들이 나타나 사람을 차에 태우고 갔다는 것이다.

마침 대한은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런 긴박한 현장을 살피지 못했다.

하지만 염산 테러라는 말이 워낙 자극적이라서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 금세 누구의 소행인지 깨달았다.

“에바!”

“네, 마스터.”

“네가 그런 거야?”

“뭘요?”

대한의 질문에 에바는 일단 모르쇠로 일관했다.

“염산 네가 뿌렸냐고?”

“제가 염산을 어디에다 뿌렸다고 그러세요.”

“대검찰청 기획수사관 진향하, 법원행정처 차장 권상로, 경찰청 정보2과장 김극일, 감사원 감사위원 주요한…….”

에바를 쳐다보며 대한은 줄줄이 명단을 불러댔다.

그제야 에바는 알겠다는 듯 겸연쩍은 미소를 지었다.

“아! 난 또 누구라고. 그놈들 전부 간첩들이에요. 미국과 일본에 국가의 기밀을 팔아먹은 놈들이라고요.”

“그럼 그냥 때려잡아서 국정원과 정부에 넘기면 되지. 왜 염산을 뿌려대?”

“마스터! 모르셨어요? 그 새끼들 하나 같이 변태에다 아동성범죄자들이라고요. 거기에다 자기 아내 몰래 딴 살림을 차리지를 않나 밤마다 룸살롱에 가서 기밀을 팔아넘기고 향락을 일삼는다고요.”

아동성범죄자라는 말에 그는 기세가 한풀 꺾였다.

사람마다 성 취향 다른 것은 존중해줄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좀 아니올시다였다.

“그래서 염산을 뿌려서 고자를 만들어버린 거야?”

“고자라니요. 수술하면 다 나을 거예요. 주변 사람들이 자꾸 도와줘서 전부 녹여버리질 못했어요.”

에바의 섬뜩한 말에 대한은 절로 움찔했다.

자신도 모르게 두 손이 사타구니 사이로 가서 소중한 녀석을 보호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그녀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도 대한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뒤로 한발 물러났다.

“마스터! 장난 그만 치세요.”

“넌 내가 지금 장난치는 거로 보여?”

“네.”

“크흠.”

에바의 한 치도 흐트러지지 않은 태도에 그는 살짝 뻘쭘해졌다.

어색한 기침으로 위기를 모면하려고 하자 그녀도 슬쩍 화제를 돌렸다.

“그보다 지금 중동이 심상치 않아요.”

“중동이 왜?”

“미국이 이란군 실세인 가셈 솔레이마니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을 살해하면서 중동 지역에 전운이 고조됐었잖아요?”

“그렇지. 그 후유증이 본격적으로 일어나려고 해요.”

“설마 이란이 호르무즈해협이라도 봉쇄하겠다는 거야?”

“네, 이걸 한번 보시죠.”

에바는 허공에 홀로그램을 하나를 띄웠다.

크고 넓고 깨끗한 이슬람 사원 안.

백여 명에 달하는 사내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었다.

그들 중 가장 상석에 앉아있는 팔순의 노인.

안경을 쓴 그는 아직도 허리가 꼿꼿한 상태였다.

“누구야?”

“이란의 최고지도자(Supreme leader) 알리 하메네이입니다. 그 옆에 앉아있는 자가 이란의 대통령인 하산 로하니입니다.”

에바의 설명을 들으며 대한은 두 사람을 찬찬히 살펴봤다.

“호메이니가 죽고 난 후, 당시 대통령이었던 알리 하메네이가 1989년, 88명의 의원으로 구성된 이슬람 율법 전문가 회의(국민 직선, 임기 8년)에서 제2대 라흐바르로 선출되어 현재까지 이란의 국가원수이자 최고 종교지도자입니다. 하산 로하니 대통령은 그의 수족이나 마찬가지예요.”

“말만 공화제(이슬람 공화국)이지, 대통령 중심제의 껍데기를 씌운 제정일치(祭政一致) 신정제라는 거잖아.”

“맞습니다. 그래서 알리 하메네이가 결정하면 이란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이란의 정치제도를 알고 싶은 것이 아니라서 그는 에바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러자 그녀는 얼른 대한에게 또 다른 홀로그램을 보여줬다.

“이건……. 금고잖아!”

거대한 금고 안은 금은보석은 물론이고 달러와 유로 등 각종 외화가 가득 쌓여 있었다.

“독재자들이 늘 그렇듯, 알리 하메네이는 총자산 규모가 천억 달러대에 달하는 거대한 비밀기업 ‘세타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권력을 유지해올 수 있었던 근간이 바로 이것이죠.”

“천억 달러라면 100조가 넘는 돈이네.”

“한 해 이란 석유 수출액의 40%에 해당하는 엄청난 금액입니다.”

“그렇겠지. 그런데 왜 이걸 나한테 보여주는 거야?”

그제야 에바가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알리 하메네이가 세타드를 이용해 막대한 금액의 역외펀드를 조성했습니다.”

“설마 호르무즈해협을 봉쇄하기 전에 석유와 관련된 선물과 옵션에 투자하겠다는 것은 아니겠지?”

“바로 그겁니다. 이들은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 가셈 솔레이마니의 복수를 미국과 유럽의 증권거래소와 선물시장, 상품거래소 등을 통해서 하려는 것입니다.”

“솔레이마니의 피 값으로 미국과 유럽인들이 피같이 여기는 돈을 대신 받아가겠다는 거군. 그런데 이게 가능해?”

“뉴욕, 시카고, 런던, 동경 등에 세타드가 오래전부터 심어놓은 첩자들이 있습니다.”

대한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당연히 그럴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감히 이런 대범하고 거대한 계획을 함부로 추진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성공하기만 하면 아주 그냥 돈을 쓸어 담겠는데.”

“맞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얼른 뛰어들어야 합니다.”

“그야 당연하지.”

“저는 세타드가 조성한 역외펀드와 미국과 유럽의 헤지펀드 사이에서 중심을 잡고 정유, 석유화학, 조선·해운, 항공 등 다양하게 주식, 채권, 선물, 옵션, 상품 등에 투자할 생각입니다.”

중동 지역의 긴장은 국제 석유 시장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미국과 이란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면 정유업계만 타격을 받는 게 아니다.

석유화학, 조선·해운, 항공 등 관련 업계들까지 도미노처럼 연결되어 영향을 받는다.

“코레투자에서 진행할 거야?”

“워낙 덩치가 커서 비밀리에 투자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차라리 합법적인 투자는 코레투자를 통해서 하고 나중에 문제가 생길만한 것들은 비자금과 역외펀드로 조성해놓은 자금을 쓸 생각입니다.”

“호르무즈해협을 봉쇄하고 떼돈을 벌 생각에 이란이 미소를 짓겠군.”

“처음에는 미국이 울고 이란이 웃을 겁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다들 깨닫게 될 겁니다. 이 게임에서 웃을 수 있는 자는 없다는 것을요.”

에바의 차가운 목소리에 대한도 맞장구를 쳐줬다.

“우리 빼고!”

“네, 맞습니다. 우리 빼고요.”

둘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그러다가 에바는 슬그머니 몇 개의 홀로그램을 동시다발적으로 열었다.

“그것보다 먼저 빠르게 치고 빠질 곳이 있어요.”

“저곳은 상하이 증권거래소와 선물거래소, 홍콩 증권거래소와 선물거래소잖아.”

“그렇습니다. 몇 시간 뒤, 미국과 중국의 무역협상이 전격 타결됐다는 소식이 전해질 거예요.”

“아! 그러니까 그때 바짝 당겨보자고?”

“예, 그렇습니다.”

나쁜 생각은 아니었다.

호르무즈해협 봉쇄는 오늘 저녁이나 내일 아침에 시작될 전망이었다.

알리 하메네이가 세타드를 통해 조성한 막대한 액수의 비자금과 역외펀드!

이걸로 미국과 유럽의 증권거래소와 선물시장, 상품거래소 등에서 선물과 옵션 같은 파생상품에 투자하려면 얼마간 시간이 필요했다.

물론 에바는 이미 세타드의 역외펀드와 미국의 헤지펀드 양측 사이에서 선물과 옵션 등 파생상품에 투자하는 것은 물론 시간 차 헤지(hedge)까지 해놓았다.

그래서 막간을 이용해 적당히 한탕 해먹을 곳으로 상하이와 홍콩을 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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