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만재능(Feat. 대한 TV)-233화 (232/331)

233화 <청와대>

청와대 여민관 대통령집무실.

고재현 대통령은 크게 숨을 들이켰다 내뱉었다.

하지만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노화를 삭힐 수 없었다.

탁자 위에 놓인 주전자와 컵이 보였다.

그는 컵에 냉수를 한가득 따라서 벌컥벌컥 마셨다.

탁!

소리 나게 탁자에 컵을 내려놓은 대통령!

그의 눈에서 어느새 차갑고 단호한 결의가 내비쳤다.

“청와대부터 정리합시다.”

“네, 대통령님.”

고재현 대통령의 말에 옆에 자리한 네 명의 사내가 일제히 일어났다.

그들은 대통령을 향해 90도 각도로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하고 송구스러운 마음 때문에 다들 몸 둘 바를 몰라했다.

나민영 대통령 비서실장

조금상 정책실장

용정의 국가안보실장

정훈서 국정원장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하며 국정을 운영하는 데 큰 역할을 하는 현 정권의 실세들!

그들은 모두 마음속에 한 단어를 떠올렸다.

읍참마속(泣斬馬謖).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울면서 마속(馬謖)의 목을 자른다는 뜻이다.

촉(蜀)의 제갈량(諸葛亮)은 유비(劉備)의 유언을 저버리면서까지 마속의 재능을 아껴 중용했다. 그런데 마속은 제갈량의 제1차 북벌 때 위(魏)의 장합과 벌인 가정전투에서 제갈량의 지시를 어기고 자기 멋대로 부대를 움직였다가 대패해버렸다.

이에 제갈량은 마속을 아끼던 마음을 짓누르고…….

눈물을 삼키며 군율에 따라 그의 목을 베고, 군율의 지엄함을 내보였다.

대통령을 비롯한 대통령 비서실장, 국가안보실장, 정책실장 그리고 국가정보원장 모두 지금 심정이 아마 제갈량과 비슷할 것이다.

권상로 민정비서관(2급), 홍진기 경제수석 선임행정관(2급), 김경천 국가안보실 국방개혁비서관(1급) 등

쳐내야 할 자 중에는 아끼던 부하들이 하나둘씩 섞여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거짓말이 아니냐며 전부 부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눈앞에 드러난 이들의 간첩행위와 국가반역에 대한 증거가 너무도 확실했다.

아니 어떻게 코레디펜스에서 이런 고급정보와 증거들을 다 모아놨는지 놀랍기만 했다.

자연스럽게 그들의 시선이 건너편 탁자에 홀로 앉아있는 한 사내에게 향했다.

코레디펜스 사장 오세종

오늘 이 모든 사단의 시작점이었다.

다부진 체격에 근엄한 얼굴을 한 중년의 사내!

그는 쏟아지는 시선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바라보는 대통령과 현 정권의 실세들을 당당히 마주 봤다.

마치 이렇게 되도록 너희는 그동안 뭐 하고 있었냐는 식이었다.

그러자 제일 먼저 고재현 대통령이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한쪽 벽을 가득 채운 초대형 벽걸이 LED TV.

화면에서는 아직도 오세종이 가져온 현장 증거와 사진 및 동영상이 무한 반복으로 열심히 돌아가고 있었다.

“조영호 경호처장 좀 불러주세요!”

“네.”

고재현 대통령의 말에 나민영 대통령 비서실장이 즉시 대통령집무실 밖으로 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으로 건장한 체격의 조영호 대통령경호처장이 들어왔다.

나민영으로부터 이미 상황을 들었는지 얼굴이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조 처장!”

“네, 대통령님.”

“이번 기회에 청와대 대청소 한번 합시다.”

“네? 아! 네.”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했다.

하지만 조영호는 금세 대통령의 의중을 알아차렸다.

“박쥐, 아니 쥐새끼들을 이번 기회에 깨끗이 박멸하세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혹시라도 반항하거나 도주하면 어떻게 합니까?”

“체포에 불응하면 무력을 써서라도 모조리 잡아들이세요. 최악의 경우 사살해도 무방합니다.”

“사, 사살이요?”

대통령의 과격한 말에 조영호 경호처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설마 자신이 모시는 대통령의 입에서 사살이라는 단어가 나올 줄은 몰랐다.

고재현 대통령은 더 이상 조영호의 얼굴을 쳐다보지 않았다.

대신 정훈서 국정원장을 바라봤다.

“국정원은 어떻게 할 겁니까?”

“즉시 요원들을 보내 김상태 해외정보국장(1급)을 비롯한 간첩들을 전부 잡아들이겠습니다.”

“청와대와 국정원이 정리되면 곧바로 국방부와 방사청을 시작으로 여당과 야당의 국회의원, 대법원과 대검찰청의 법관과 검찰들까지……. 국가반역자들을 은밀하게 전부 잡아들이세요.”

“알겠습니다. 국정원의 모든 힘을 기울여 빠르고 조용하게 처리하겠습니다.”

정훈서 국정원장은 고재현 대통령을 바라보며 의지를 불태웠다.

그러자 대통령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손짓했다.

“다들 잠시 나가서 급한 일부터 처리하고 오세요.”

“네, 대통령님.”

네 명의 사내는 한목소리로 대답을 하곤 밖으로 나갔다.

이제 대통령집무실에 있는 자는 고재현 대통령과 오세종 코레디펜스 사장밖에 없었다.

“어쨌든 고맙습니다.”

“천만에요.”

대통령의 감사에도 오세종 사장은 근엄한 표정을 풀지 않았다.

고재현은 잠시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은근하게 물었다.

“오세종 사장!”

“네, 대통령님.”

“코레 그룹의 회장이 누굽니까?”

“그건 회사 기밀이라 당장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외국인입니까?”

“아닙니다. 한국인입니다. 그것도 나라를 사랑하고 애국심으로 똘똘 뭉친 진정한 사내입니다.”

“음,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알고 있어야겠지요.”

마음 같아서는 국정원을 동원해서 코레 그룹의 회장이 누군지 밝혀내고 싶었다.

하지만 고재현은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인 자신이 먼저 법을 지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 떳떳해질 수가 없다.

물론 마음속으로 짐작이 가는 사람이 몇 있었다.

문제는 코레 그룹의 회장이 누구인지 알게 된다면 그 비밀을 지켜줄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당장 미국과 일본의 사주를 받은 간첩들이 청와대까지 침범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놈들의 주구를 잡아들이고 정리해야 할지 막막한 심정이었다.

“대통령님!”

“말씀하세요.”

“그동안 저희 코레디펜스가 보여준 선의와 배려가 부족했습니까?”

“아닙니다. 이미 차고 넘칠 정도로 충분합니다.”

고재현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오세종의 굵고 무거운 목소리!

나약해지려는 자신의 마음에 무섭게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코레디펜스는 대한민국에 은인이나 마찬가지였다.

고고도 드론, 정찰위성, 각종 미사일, 터보팬 엔진, 능동전자주사식(ASEA) 레이더, 초공동어뢰, 한국형 레이저 방공체계(KALD), 한국형 전투기 개발사업(KFX) 등

그동안 수많은 연구진과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어도 만들 수 없었던 각종 첨단무기와 장비들이 코레디펜스에서 제공해준 기술과 자문 덕분에 순조롭게 개발되었다.

특히 코레디펜스가 이전해준 첨단기술과 자료는 돈을 준다고 해서 살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물론 공짜로 받은 것은 아니다.

당연히 코레디펜스는 정당한 대가를 꼬박꼬박 챙겨갔다.

그래도 국방연구소를 비롯한 방산업체 연구소의 연구원들은 누구 하나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다.

그만큼 구하기 힘들고 완성도 높은 첨단기술을 아낌없이 전수해줬기 때문이다.

고재현 대통령도 이런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러니 코레디펜스가 얼마나 국익에 이바지하는 회사인지 익히 인지하고 있었다.

“직접 손발을 잘라야하는 고통 때문에 잠시 힘들겠지만,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는 꼭 해결하셔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오 사장의 말이 맞습니다. 나도 전적으로 동의해요. 하지만 사안이 워낙 중대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볼멘소리가 나왔습니다. 양해해주세요.”

“천만에요. 대통령님의 어려운 심정이 어느 정도 이해는 갑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오세종 사장의 목소리는 지극히 담담했다.

고재현은 어쩐지 그의 그런 모습이 무척 든든하게만 보였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요새 좀 힘드시다고요?”

“힘들다기보다는 귀찮다고 해야 맞을 것입니다.”

“각국에서 꿀을 빨려고 벌떼처럼 몰려들었다는 얘기는 정 원장을 통해 들었어요.”

“사태가 심상치 않아서 국정원에 도움과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잘하셨어요. 코레디펜스는 엄연히 정부에 등록된 우리나라의 방산업체입니다. 당연히 기밀을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가 경호를 도와야지요.”

고재현 대통령은 간만에 미소를 지었다.

그동안 받기만 하고 줄 게 없어서 곤란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생색을 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오세종 사장의 다음 말에 고재현은 다시 안색을 굳히고야 말았다.

“동티모르에 진출한 코레에너지에서 유전을 발견했다는 소식은 들으셨습니까?”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급히 만나려고 했습니다. 동티모르 유전개발을 우리 대한민국 한국석유공사에서 맡았으면 하는데 혹시 가능하겠습니까?”

“물론이죠. 팔은 안으로 굽는 법입니다. 한국석유공사에서 무리한 요구만 하지 않는다면 적당한 가격에 유전개발, 시추, 정제, 비축, 유통, 판매 등 전 과정을 맡기겠습니다.”

“아!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정말 고마운 일입니다.”

“한반도에서 석유가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동티모르 유전개발은 엄연히 코레에너지와 한국석유공사가 하게 될 테니 우리도 이제 산유국이라 부를 수 있겠네요.”

“산유국이라! 그것참 듣기만 해도 기분 좋은 단어입니다. 하하하!”

고재현 대통령은 어린아이와 같이 환한 웃음을 터트렸다.

물론 중동의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산유국은 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기존에 수입해오던 유가보다는 훨씬 저렴할 것이 분명했다.

웃음을 멈춘 고재현 대통령이 뭔가 생각이 난 듯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동티모르에 진출한 코레메디컬에서 이번에 병원을 지었다면서요?”

“아직 다 완공된 것은 아닙니다. 국내에서 개발한 조립식 건축자재를 가져가 임시로 조립한 것에 불과합니다.”

“코레메디컬에서 개발한 나노셀로 직접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다고 하던데……. 반응이 좀 어떻습니까?”

“전에도 한 번 말씀드렸다시피, 저희가 개발한 나노셀은 의학계를 발칵 뒤엎을 혁명적인 일대 쾌거입니다.”

“…….”

고재현은 대놓고 자랑하는 오세종의 말에 침을 꿀꺽 삼켰다.

“동티모르에서 고맙게 나노셀을 합법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허락해줬습니다. 그래서 임상과 동시에 환자를 치료하고 있는데 치료율이 무려 99%나 됩니다.”

“99%라고요?”

눈을 동그랗게 뜬 고재현 대통령의 동공에서 지진이 나고 있었다.

일국의 대통령인 그가 나노셀의 파급효과가 얼마나 엄청날지 모를 리 없었다.

“그것도 암 환자와 중상을 입은 환자를 포함한 수치입니다.”

“정말 놀라운 일이로군요.”

고재현 대통령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말이 99%지, 이 정도면 나노셀을 투여한 병자들이 그냥 다 낫는다고 봐야 했다.

“오경의 식품의약품안전처장과 허준 코레메디컬 사장이 전에 진솔한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일에 큰 진척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고육지책으로 코레메디컬에서 동티모르에 병원을 세운 것입니다.”

“조만간 동티모르로 세계의 수많은 환자와 그들의 가족들이 의료여행을 가겠군요.”

“그 정도가 아닙니다. 벌써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의 왕가와 세계적인 부호들의 예약이 빗발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동티모르에 국제공항을 무료로 지어주겠다고 제의까지 들어왔습니다.”

“자국에다 병원을 지어달라는 소리는 안 합니까?”

“왜 안 했겠습니까? 당연히 하고도 남았지요. 하지만 그건 거절했습니다.”

“왜죠?”

“일단 동티모르의 병원이 아니면 나노셀은 제공하지 않을 방침입니다.”

오세종은 단호한 목소리로 잘라 말했다.

그의 말을 듣고도 이상하게 고재현은 별로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이건 코레메디컬이 대한민국에 주는 일종의 선물이자 압박이었다.

나노셀을 의료기기로 허락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돌려서 표현한 것이다.

“최대한 시간을 단축할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한류로 인해 대한민국을 찾는 관광객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나노셀을 투여받기 위해 입국할 것입니다. 하루라도 빠르면 그만큼 국내에 더 많은 일자리가 창출됩니다. 그럼 국정을 운영하시는 데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무슨 뜻인지 잘 알겠습니다.”

“나노셀을 사용할 장소를 지정할 수 있는 권한도 나눠드리겠습니다. 이 정도면 일을 추진하는데 충분한 탄력을 받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배려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신중히 검토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고재현 대통령은 오세종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이런 배려는 그에게 있어서 특혜나 다름없었다.

나노셀의 효능이 지금 오세종 사장이 언급한 것의 반의반만 되더라도…….

전 세계에 당장 엄청난 센세이션이 일어날 것이다.

병만 고칠 수 있다면 돈은 얼마가 들어가더라도 괜찮은 사람이 지구상에 수백만, 아니 수천만 명은 살고 있다.

그들 중 일부만 국내에 들어온다고 하더라도 엄청난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다.

사람은 먹고, 자고, 마시고, 입고, 쇼핑하는 존재다.

나노셀을 투여받기 위해 입원할 환자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족들까지 소비하게 될 재화는 아마 천문학적인 단위가 될 것이 분명하다.

고재현 대통령과 오세종 코레디펜스 사장은 말없이 눈빛을 교환했다.

굳이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가 뭘 원하는지 잘 알 수 있었다.

잠시 후!

대통령집무실에 네 명의 사내들이 들어왔다.

나민영 대통령 비서실장, 조금상 정책실장, 용정의 국가안보실장 그리고 정훈서 국정원장이 차례로 자리에 앉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얘기를 좀 해봅시다.”

고재현의 말에 나민영 비서실장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밖에 코레메디컬 허준 사장과 코레에너지 서희 사장이 와있습니다.”

“들어오라고 하세요.”

대통령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두 사람을 안으로 불러들였다.

오세종 코레디펜스 사장을 포함해 코레 그룹에서 모두 세 명의 사장이 자리했다.

청와대 여민관 대통령집무실은 전에 없는 뜨거운 열기로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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