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화 <산호세호의 보물>
이렇게 세 국가는 최대 15억 유로가 될지도 모르는, 막대한 보물을 둘러싸고 수십 년 동안 치열하게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었다.
“크크크! 저들이 프라우 마리아호 안에 있던 보물들이 전부 사라진 것을 알게 되면 어떤 표정을 할지 궁금하다. 정말 볼만하겠어.”
“아마 서로를 의심해 비난하던가, 심하면 치고받고 싸울 수도 있을 거야.”
대한과 모니카는 서로의 얼굴을 맞대고 킥킥대며 웃었다.
그 모습을 쳐다보는 에바의 눈빛이 과히 곱지는 않았다.
길게 숨을 내쉬는 것을 보니 한심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에바!”
“네?”
“시간이 얼마나 걸리지?”
“한 시간 안에 모두 끝나요.”
청동 조각들과 도자기는 아무래도 손이 많이 갔다.
그래도 이 정도면 엄청나게 빠른 속도였다.
무인 잠수정 3기가 끊임없이 움직이며 보물을 옮기고 있었다.
유럽이나 미국의 난파선 인양회사가 작업했다면 아마 이렇게 빠르고 깔끔하게 보물만 싹 털어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러시아 제국 해군의 장갑 순양함 드미트리 돈스코이는 어떻게 됐어?”
“울릉도 인근 해저에 침몰한 돈스코이호로 무인 잠수정을 보내서 샅샅이 뒤져봤습니다. 하지만 배 안에서 금은보화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역시 150조 원대의 돈스코이 보물선 얘기는 개드립에 불과했군.”
그동안 돈스코이가 보물선이라며 사기를 친 놈들이 어디 한둘이 아니었다.
만일 그처럼 막대한 양의 금괴를 보관하고 있었다면 아마 무게가 엄청났을 것이다.
게다가 일제의 전함과 전투하는 중에 금괴를 옮긴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아니 그건 애초에 불가능했다.
“혹시 뭔가 돈이 될만하거나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건 없었어?”
“전혀 없었습니다. 오히려 러시아는 돈스코이호가 자국의 군함이니 인양하거나 조사하지 못하게 압력을 가하고 경고했습니다.”
“흐음! 그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쇳덩이니 그냥 해구로 밀어버리자.”
“네, 마스터.”
대한은 해구(海溝, Trench)!
즉 바닷속 매우 깊은 수심의 크고 긴 도랑에 돈스코이호를 묻어버리기로 했다.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아마 제2, 제3의 돈스코이 보물선 피해자가 나올 것이다.
해저의 무덤이라고도 불리는 해구!
그곳에 배가 빠지면 보물선 얘기는 아예 꺼내지도 못하게 될 것이다.
마리아나 해구(최대수심 11,092m)나 일본 열도 동쪽에 있는 일본 해구(최대수심 8,412m)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울릉도 해구도 꽤 깊은 편이라서 인양은 이미 물 건너간 것이다.
“마스터! 성공했습니다.”
“수고했어.”
대한은 에바가 띄워준 홀로그램을 봤다.
돈스코이호가 해구로 깊이 떨어져 내리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다.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에바가 어느덧 무인 잠수정을 회수하고 있었다.
아직 보물을 100% 전부 인양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선체를 비롯한 깨지고 부서지고 녹이 슬어 가치가 없는 물건들까지 굳이 챙기려고 하진 않았다.
이런 것들은 나중에 누군가가 인양할 때 부스러기라도 주워 먹으라고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참 관대한 대한의 지시였다.
우주셔틀 2호는 조용히 핀란드의 해저를 따라 이동했다.
얼마 가지 않아 해저에 침몰한 또 다른 난파선 한 척을 발견했다.
하지만 대한은 고개를 내저었다.
당장 이것들을 전부 인양할 필요는 없었다.
발트해의 핀란드 해역은 러시아의 차르 시기.
이 일대를 항해하다 가라앉은 배가 6,000척이나 된다고 한다.
그러니 일단 위치가 알려진 보물선부터 챙기는 게 순서다.
촤아악!
우주셔틀 2호가 바다 위로 붕 떠 올랐다.
스텔스모드라 선체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다만 허공으로 물이 떠올라 떨어지는 기괴한 현상만 남을 뿐이었다.
“일단 히릭스로 가겠습니다.”
“응.”
우주셔틀 2호는 빠르게 하늘을 날았다.
목적지는 지구 정지궤도에 대기하고 있는 히릭스!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간 우주셔틀은 천천히 속도를 줄였다.
히릭스 후면의 문이 열리자 모함으로 천천히 빨려 들어갔다.
쿵!
살짝 진동이 느껴졌다.
동시에 양쪽으로 문이 활짝 열렸다.
대기하고 있던 안드로이드와 로봇이 다가와 우주셔틀 2호의 창고에 실린 보물들을 옮겼다.
대한은 상품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이곳에서 보물의 때와 녹을 벗기고 멋지게 포장을 할 생각이다.
10분도 지나지 않아 우주셔틀 2호의 창고는 텅 비었다.
그러자 에바는 문을 닫고 다시 우주셔틀을 출발시켰다.
히릭스를 빠져나와 지상으로 빠르게 내려갔다.
거대한 태평양을 가로질러 동쪽을 향했다.
“대한! 지금 우리 어디로 가는 거야?”
“콜롬비아 북부해안!”
“거기에도 보물선이 있나 보지?”
모니카의 말에 대한은 그녀의 볼을 잡고 흔들었다.
쫀득한 볼살이 늘어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그는 절로 미소를 지었다.
“응, 1708년 콜롬비아 북부해안에서 영국 함대 공격을 받고 침몰한 스페인 전함 산호세호(號)가 목표야. 아니 그 배에 실린 보물을 인양하려고 해.”
“아직 인양하지 않은 것을 보니 스페인과 콜롬비아가 서로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모양이지?”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모니카는 그것만으로도 거의 정확하게 현 상황을 유추해냈다.
“맞아. 스페인이 영국과 전쟁할 자금을 대려고 식민지에서 약탈한 금은보화가 최대 170억 달러 정도 산호세호에 실려 있어. 당연히 콜롬비아와 스페인 두 나라가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고 서로 자기 것이라고 분쟁 중이야.”
“안타깝네. 가난한 콜롬비아가 인양하면 나라 살림에 좀 보탬이 될 텐데.”
“그럴 리가! 그런 나라일수록 부정부패가 심해서 절대 가난한 국민에게 돈이 돌아갈 일은 없어.”
“아! 그것도 그렇겠구나.”
“그냥 우린 조용히 가서 보물만 쏙 빼 오자!”
“응, 좋아.”
모니카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아마 대한이 무슨 말을 했어도 좋다고 했을 것이다.
참지 못하고, 유혹적인 그녀의 입술에 그는 가볍게 키스했다.
그걸 바라보는 에바의 눈에 묘하게 빛났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옆으로 돌려 외면하고 말았다.
“난파선을 찾는 게 생각보다 어렵지 않나 봐!”
“전혀 어렵지 않지.”
“그럼 앞으로도 쭉 바다에서 보물을 인양하는 사업은 계속되겠네.”
“맞아. 핀란드 해역을 시작으로 남중국해, 말라카해협, 필리핀 해상, 카리브해 등을 돌아다니며 계속 보물사냥을 할 거야.”
“와아! 재미있겠다.”
“재미도 있고 실제로 돈도 많이 벌 수 있어.”
“하긴 벌써 크게 한 건 했잖아.”
“그래도 그걸 팔아서 현금화하는 일은 모니카가 한다면서!”
“맞아. 내가 잘 팔아서 현금화시킬 거야.”
대한은 모니카의 눈을 바라봤다.
전보다 많이 안정된 눈빛이다.
스스로 복수도 했고, 도저히 갱생할 수 없는 놈들은 직접 처리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분위기가 차돌처럼 단단해졌다.
모니카는 이제 과거의 나약한 여자가 아니다.
오직 그의 앞에서만 이렇게 어리광을 부리고 애교를 떨었다.
하지만 카모라 마피아들 앞에 서기만 하면 그녀는 거대 조직의 수장으로 변했다.
로사 네라(Rosa nera: 흑장미)라는 철혈(鐵血)과 죽음의 대명사가 되는 것이다.
우주셔틀 2호는 콜롬비아 북부 카르타헤나 인근 해역에 도착했다.
그러자 에바가 대한을 바라보며 말했다.
“마스터!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다이브 해!”
“넵!”
그의 허락이 떨어지자 에바는 우주셔틀을 바다로 밀어 넣었다.
가벼운 진동과 함께 우주셔틀은 빠르게 바닷속으로 내려갔다.
800km/h의 속도를 가진 독일의 바라쿠다(Barracuda) 초공동 어뢰!
그것보다 훨씬 더 빠르면서도 소음은 거의 나지 않았다.
세상의 그 어떤 잠수함도 흉내 낼 수 없는 우주셔틀의 놀라운 기동력이었다.
만약 미국이나 러시아가 우주셔틀의 이런 모습을 봤다면…….
아마 당장이라도 돈을 보따리로 싸 들고 와서 똑같이 만들어달라고 생떼를 썼을지도 모른다.
“찾았다!”
“저게 산호세호구나.”
모니카와 대한은 거의 동시에 탄성을 내뱉었다.
최대 15억 유로로 예상되는 프라우 마리아(Frau Maria)호의 보물.
하지만 산호세호는 금은보화가 170억 달러나 실려 있다고 한다.
벌써 단위부터가 다른, 상위체급의 보물선이었다.
그러니 둘 다 흥분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거기에다 일은 전부 무인 잠수정들이 한다.
둘은 그냥 구경만 하고 있어도 저절로 거액을 버는 것이었다.
“난파선 상태가 썩 좋지는 않구나.”
“그래서 금은보화를 찾는 일이 오히려 더 쉬워질 수도 있습니다.”
“오케이. 그럼 에바가 알아서 잘 인양해봐!”
“네, 마스터. 그런데 가까이서 스캔해보니 산호세호가 가지고 있는 금은보화의 양이 너무 많네요. 한꺼번에 전부 옮기기는 힘들겠어요.”
“그럼 금은보화에서 무게가 많이 나가는 은덩이를 빼면 되잖아. 그래도 안 된다면 어쩔 수 없이 여러 번 왔다 갔다 해야지.”
“알겠습니다.”
대한이 지침을 정확하게 내려주자 에바는 그에 맞춰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무인 잠수정 3기가 우주셔틀 2호에서 나와 산호세호에 접근했다.
일단 금괴가 가득 담긴, 금속상자가 멀쩡한 것부터 옮기기 시작했다.
사람 일은 아무도 모른다.
이렇게 미리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면서 일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우려하던 것 같은 비상사태나 돌발변수는 전혀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무거운 금은보화와 보물들이 사방으로 펼쳐져 있어 더욱 빠르게 옮길 수 있었다.
“마스터! 우주셔틀 2호의 창고가 꽉 찼습니다.”
“얼마나 옮겼지?”
“일단 가치가 높은 보석함과 금괴부터 쓸어 담았습니다. 남은 것은 부피와 무게가 많이 나가는 보물과 은 덩어리 등입니다.”
“좋아. 그럼 히릭스로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자.”
“예, 마스터.”
에바는 씩씩하게 대답을 하고 기수를 위로 들어 올렸다.
우주셔틀 2호는 금세 바다를 빠져나와 하늘 높이 날아갔다.
이렇게 히릭스로 몇 번 왕복하자 산호세호에 남은 것은 줍기 귀찮아서 남겨진 은화와 동화 같은 부스러기들뿐이었다.
“대한 축하해! 이렇게 간단하게 170억 달러를 벌었네.”
“고마워. 여기서 나온 보물 중 금괴는 제외하고 나머지는 전부 모니카에게 넘길 테니까 알아서 잘 팔아줘!”
“응. 물론이지. 최대한 많이 받아올게!”
대한과 모니카는 서로의 몸을 끌어안고 희희낙락했다.
보물선 찾기는 정말 돈 벌기 참 쉬운 비즈니스였다.
그들은 앞으로 더 얼마나 벌 수 있을지 쉽게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때, 에바가 그를 향해 다가왔다.
“마스터! 이것 좀 보세요.”
“오오! 멋진데.”
대한은 에바가 가져다준 목걸이를 살펴봤다.
검붉은 루비에 장미 문양이 정교하게 새겨진 펜던트 형 금목걸이였다.
그는 이것을 보자마자 목걸이의 주인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물론 에바가 나름 훌륭하다고 생각해서 가져온 보석 액세서리가 더 있었다.
하지만 대한은 다른 것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모니카! 이리 와봐!”
“이거 나 주는 거야?”
“응, 너한테 선물하는 거야.”
“대한! 고마워!”
검은색 원피스를 입고 있는 모니카!
그녀의 깊게 파인 계곡에 루비 목걸이가 걸리자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와! 보물에는 주인이 따로 있다더니 진짜 잘 어울린다.”
“정말? 아이 조아라!”
모니카는 너무 기뻐서 대한의 입술에 진하게 입맞춤했다.
눈물까지 글썽이는 그녀의 눈빛!
거기엔 그를 향한 사랑과 애정이 가득 담겨있었다.
대한은 모니카의 이런 눈빛을 보자 갑자기 몸이 후끈 달아올랐다.
그의 이런 변화에 그녀도 즉각 반응했다.
모니카의 깊은 눈 속에서 뜨거운 열정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둘은 누가 뭐라고 할 새도 없이!
서로의 입술을 탐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에바는 소리 나지 않게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흔들리지 않게 우주셔틀 2호를 잘 조종했다.
그리고 히릭스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우주셔틀을 착륙시키고 난 후!
에바는 조정석의 문을 열고 나와 고개를 뒤로 돌렸다.
당장 대한과 모니카가 무슨 짓을 하는지 눈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와 연결된 우주셔틀의 수십 개의 센서를 통해…….
그들의 행위가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힐 듯 느껴졌다.
에바는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서서 그들을 기다렸다.
남녀의 사랑이 뜨겁게 타오르다 못해 재가 되어버릴 때까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