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화 <프라우 마리아호>
대한은 입술을 꼭 깨물었다.
하지만 묘하게 설득력이 있는 놈들의 말에 그저 얼굴만 붉히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런 인간들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데.
―일본에서는 이 나라의 절반이 친일파라고 주장하고 있어.
―설마?
―나도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 많아 봤자 30% 내외일 거야.
―30%도 엄청 많은 거 아니야?
―많은 거지. 그런데 그들이 가지고 있는 기득권이 더 엄청나.
―하긴 일본이 뒤에서 계속 금전적으로 지원해줬다면 아마 뿌리가 보통 깊지 않겠다.
그는 에이든과 메이슨의 말을 듣자 소름이 끼쳤다.
아니 정신이 번쩍 났다.
“이거 내가 너무 만만하게 생각했어. 나라를 좀먹고 있는 쥐새끼들부터 빨리 처리했어야 했는데.”
대한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에바는 그 모습에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그의 주먹에서 마력이 유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새 대한의 마력은 그의 뜻과 의지에 자동으로 반응을 하는 정도가 됐다.
에이든과 메이슨은 그 뒤로도 대한민국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그리고 신나게 까댔다.
하지만 대한은 이들에게 별로 화가 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부끄러웠다.
한류다 뭐다 해서 세계에서 제일 잘 나가는 민족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나라 안은 이렇게 썩어들어가고 있었다.
이 상태로 가만히 내버려 둬도 과연 괜찮을까?
정치이념이 서로 달라 싸우는 것은 둘째치고.
나라의 비밀을 다른 나라에 팔아넘기는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매국이자 국가반역죄에 해당한다.
개인적으로 일본을 좋아하는 것까지는 어쩔 수 있다.
그것은 개인의 생각과 자유이니 그것까지고 뭐라고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일본을 위해 국내에서 활동하면서 정보를 수집하고, 기밀을 팔아넘기고, 반국가적인 행위를 하는 것은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특히 청와대와 국정원, 국방부와 방사청, 여당과 야당에 암약하고 있는 외국의 간첩들과 그들을 돕는 첩자들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다.
―에이든, 오늘 저녁 어디로 갈까?
―이태원으로 가자. 내가 좋은 클럽 알고 있어.
―오늘도 한국 미녀들의 속살 좀 맛 보자.
―좋아.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오케이. 하하하!
에이든과 메이슨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들은 늘 그랬던 것처럼…….
오늘도 이 나라의 미녀들과 불타는 밤을 보내게 될 것이다.
금발의 푸른 눈을 좋아하는 것은 일본 여자나 한국 여자나 다를 바가 없었다.
조금만 관심을 줘도 금방 가랑이를 벌린다.
백인인 그들에게 이 나라는 그야말로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공작금도 충분했고, 어떨 때는 여자들이 먼저 온갖 비싼 선물까지 사주면서 옷을 벗어댔다.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를 풀기에 아마 이 나라만큼 좋은 곳도 드물 것이다.
대한이 본격적으로 참견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에바!”
“네, 마스터.”
“이놈들부터 작업하자.”
“어떻게 할까요?”
에바가 정색하고 그를 쳐다봤다.
대한은 서늘한 눈빛으로 그녀에게 명령했다.
“잡아들여! 그리고 저놈들이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탈탈 털어내. 아니 이놈들이 만들어놓은 셀인가 뭔가 하는 조직망 자체를 일망타진하자.”
“차라리 미국 정보기관을 손보는 게 어떨까요?”
“필요하다면 그것도 진행해야지.”
“정확히 뭘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일단 미국의 간첩과 첩자들을 솎아내려고.”
“그런 다음에는요?”
“그들의 정보원과 협조자들까지 전부 찾아내서 강력하게 응징해야지.”
“알겠습니다.”
에바는 그가 확실히 마음을 먹은 것을 알자 더는 물어보지 않았다.
다만 그녀는 가동할 수 있는 자원을 분배하기 시작했다.
먼저 미국의 정보기관에 심어놓은 에어볼을 움직였다.
그러자 막대한 양의 정보와 기밀이 히릭스로 차곡차곡 업로드되기 시작했다.
이전과는 달리, 이번에 업로드되는 것은 이들의 구체적인 정보망과 정보요원들의 신상명세 등 극비에 해당하는 자료들이었다.
“에바!”
“네, 마스터.”
“이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일본도 국내에 많은 간첩과 첩자 그리고 그들의 정보원들을 심어뒀겠지?”
“그렇죠. 정부와 국회는 물론이고 사법부와 검찰 및 재계에도 상당히 많은 일본의 첩자와 정보원들이 활동하고 있어요.”
“이거 이미 알고 있는 정보였던 거야?”
“물론입니다. 전부 파악해서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젠장!”
대한은 저 양키 두 놈이 지껄여대는 말이 사실이 아니길 바랬다.
그런데 에바에 의해 이 모든 말이 진짜로 드러났다.
그는 입술을 꼭 깨물다가 이내 차갑게 말했다.
“같은 방식으로 일본도 털어내자.”
“네, 마스터.”
“기왕 하는 거 중국과 러시아 정보기관들의 정보와 기밀을 빼내서 분석해놔!”
“알겠습니다.”
그녀는 대한을 향해 자신 있게 대답했다.
양이 좀 많긴 하지만 그렇다고 처리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에바의 정보처리 능력은 엄청났다.
그리고 우주탐사선 히릭스가 보유한 능력도 어마어마했다.
“나 잘게.”
“네, 마스터.”
대한은 마치 토라진 아이처럼 2층으로 올라갔다.
에바는 그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아마 크게 배신을 당한 기분일 것이다.
아무리 머리가 좋아지고 똑똑해졌어도…….
대한의 나이는 이제 겨우 만19세에 불과했다.
세상의 더러움과 사회의 부조리!
어른들의 이기심과 이중적인 잣대!
이 모든 것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는 아마 쉽지 않을 것이다.
에바는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정신적으로 더욱 성숙해지면!
멀지 않아 그는 진정한 기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정말 그렇게만 된다면!
언젠가 그토록 소원하던 고향에 돌아갈 기회가 생길지도 모른다.
쏴아아아!
갑자기 비가 쏟아져 내렸다.
에바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쳐다봤다.
주변을 단숨에 빗물로 채워버리는 대자연!
경이롭기도 하고 시원하기도 했다.
“조금만, 그래 조금만 더…….”
에바는 알 수 없는 독백을 남기며 멍하니 창밖을 쳐다봤다.
비는 그치지 않고, 밤새도록 지독하게 쏟아져 내렸다.
마치 온 세상을 더러움에서 씻어내리기라도 하듯 말이다.
* * *
핀란드 투르쿠 남서쪽 80km 해저.
“이야! 이거 정말 장관인데!”
“멋지다. 그리고 예쁘다.”
대한과 모니카는 경쟁하듯 서로 감탄사를 발했다.
그들이 앉아있는 조종석의 전면!
투명금속으로 만든 창을 통해 바라보는 해저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무엇보다 그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난파선의 정경은 아주 근사했다.
프라우 마리아(Frau Maria)호.
이 배는 1771년 유럽 곳곳을 돌며 예술작품과 공예품을 모아 싣고 러시아로 돌아가던 로마노프 왕실의 배로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서 출발해 핀란드 부근에 이르러 폭풍우를 만나 안타깝게도 침몰하고 말았다.
“에바! 이제 슬슬 시작하자.”
“네, 무인 잠수정을 내보내겠습니다.”
대한의 말에 에바는 버튼을 꾹 눌렀다.
우주셔틀 2호기 아래쪽에 문이 소리 없이 열었다.
로봇팔이 달린 소형 무인 잠수정 3기가 그곳을 통해 천천히 빠져나갔다.
“저 난파선에 보물이 있는 거 확실해?”
“물론이지. 그건 이미 온 세상에 다 알려진 사실이야.”
모니카는 대한의 말을 들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왜 저 배는 보물들을 싣고 있는 거야?”
“그건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
그녀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그는 자신이 아는 얘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당시 예카테리나 2세는 러시아 황실의 위엄을 보여주고 싶어했어. 그래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예르미타주 박물관을 세워놓고 전시할 작품들을 모아 오도록 신하들을 각지로 보냈지.”
“아! 그래서 저 배에 보물이 가득 실린 거구나.”
“맞아. 예카테리나 여제는 걸작을 가져오는 유럽의 예술상들에 아끼지 않고 돈을 풀었어. 프라우 마리아호도 그런 이유로 렘브란트와 반 고엔, 페르메이르와 프란스 할스의 명화, 청동 조각, 도자기, 막대한 양의 금화와 은화가 실리게 된 거야.”
모니카는 고개를 끄덕이며 난파선을 계속 바라봤다.
대한은 팔을 들고 손가락을 한번 튕겼다.
딱!
그러자 허공에 홀로그램이 하나 떠올랐다.
“이건 프라우 마리아호 내부를 스캔한 거야.”
“아!”
“보물은 바로 저곳에 있어.”
모니카는 대한이 보여주는 홀로그램을 통해 무인 잠수정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다.
“어! 저기 커다란 상자들이 보인다.”
“저 안에 렘브란트와 반 고엔 등 네덜란드의 화가들이 그린 그림들이 담겨있어.”
“오랜 세월 동안 짠 바닷물 속에 가라앉아 있으면 다 썩지 않았을까?”
“아마 그림들은 심한 손상이 없을 거야. 캔버스 천에 유화로 그려진 그림들은 납으로 된 저 상자에 담아 왁스로 밀봉됐거든.”
대한의 자세한 설명에 모니카는 쉽게 이해가 갔다.
물론 이건 잠수부들이 확인해준 얘기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진짜 그렇냐는 것인데…….
다행히 잠수부들의 말이 틀리진 않은 것 같았다.
“마스터! 상자들의 보존상태가 아주 좋습니다.”
“내가 볼 땐 난파선 전체의 보존상태가 아주 훌륭해. 뭐 그래봤자 우리에겐 별 상관없는 거지만.”
“먼저 상자들을 옮기겠습니다.”
“응.”
에바는 커다란 상자들을 목표로 무인 잠수정을 움직였다.
네덜란드 화가들의 명작들이 담긴 상자부터 옮기려는 것이다.
로봇팔이 달린 무인 잠수정은 작지만 빠르고 힘이 좋았다.
막대한 양의 금화와 은화가 담긴 철제상자들도 아주 쉽게 가져왔다.
가장 시간을 많이 잡아먹은 것은 오히려 수십 점의 청동 조각들과 수백 개의 도자기였다.
“이거 전부 내다 팔면 얼마나 할까?”
“러시아 영문 일간지 러시아투데이가 유럽의 골동품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배에 실려 있는 물건들의 가치가 5억에서 10억 유로에 이를 거라고 보도했어.”
“우와! 이제 우리 부자 됐다.”
“무슨 소리야? 너 이미 엄청난 거부야.”
“그런가? 별로 실감이 안 나네.”
“우리 모니카가 할 말이 없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네.”
대한의 말에 모니카는 그의 옆에 착 달라붙었다.
“대한! 저 보물들 다 나한테 넘겨줘! 내가 좋은 가격에 팔아줄게.”
“왜? 돈 필요해?”
“아니 카모라 마피아의 수입이 크게 줄어서 좀 불안해.”
“하긴 당장 조직원들을 해산시킬 수도 없으니 그런 고민을 할 수도 있겠구나.”
마피아 조직원들이 예뻐서가 아니다.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카모라 마피아를 해산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다고 범죄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빈 자리에 더한 놈들이 나타나 더욱 악독하게 나올 수도 있었다.
그것보다는 차라리 카모라 마피아를 현상 유지하는 게 더 낫다.
“나폴리는 좀 안정됐어?”
“일단 나폴리를 중심으로 주변 도시들과 일대를 전부 카모라의 영역으로 선포했어. 구역 내에서 마약을 만들거나 팔거나 사용하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오히려 마약중독 치료제까지 팔아주니 시민들이 아주 좋아하고 있어. 특히 상인들에게 걷는 상납금인 피조를 요구하지 않자 크고 작은 회사들이 본사를 전부 나폴리로 옮기겠다고 난리도 아니야.”
모니카가 일으킨 나비의 날갯짓이 서서히 태풍으로 변해갈 조짐이 보였다.
이게 단지 나폴리와 인근 지역에 국한될지 아니면 이탈리아 남부를 휩쓸어버릴지는 조금 더 두고 봐야 했다.
이럴 때 대한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모니카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것이다.
“알았어. 그렇게 하자. 단 너무 티가 나는 명작들은 배제하고 나머지는 전부 모니카에게 넘겨줄게.”
“고마워. 그런데 왜 그렇게 숨겨야 하는 거야?”
“아! 너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있구나.”
“뭔가 문제가 있나 보지?”
“문제라기보다는 프라우 마리아호에 대한 소유권 분쟁이지.”
“소유권 분쟁?”
“응, 현재 프라우 마리아호의 소유권을 가지고 핀란드, 러시아, 네덜란드 세 나라가 서로 자기 것이라고 다투고 있어.”
대한의 말에 모니카는 왜 티가 나는 명작을 배제한다는지 바로 이해가 갔다.
핀란드는 영해에 100년 이상 존재하는 모든 물체는 핀란드 정부에 귀속된다는 국내법을 이용해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었다.
러시아는 예카테리나 2세가 러시아의 국고를 사용해 사들인 보물이라는 것을 주장하며 소유권을 주장한다.
네덜란드는 배가 타국의 영해에 침몰하면 배의 소유권은 배가 소속된 국가에 있다는 국제해양법을 이용해 소유권을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