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화 <전 세계의 정보조직>
대한의 엉뚱한 질문에 김혜영은 도리질했다.
그러자 옆에 있는 에바가 소리를 내지 않고 입 모양으로 ‘딸’이라는 것을 가르쳐줬다.
일단 그는 이 사실을 혼자만 알고 있기로 했다.
예쁜 여동생이 생겼으니 앞으로 할 일이 많아졌다.
물론 진짜 일을 하는 것은 에바와 안드로이드가 되겠지만.
“두 분 모두 건강하시죠?”
―응, 그런데 네 엄마가 갈수록 예뻐져서 고민이다.
“왜요? 어머니가 예쁘면 좋은 거 아니에요?”
―내 얼굴을 좀 봐라! 네 엄마와 비교하면 어떠니? 꼭 내가 아저씨 같잖아.
“아아!”
대한은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정말 아버지 이태산의 얼굴이 아저씨처럼 보였다.
사실 이태산의 얼굴이 잘못된 건 없었다.
그는 자신의 나이에 맞게, 아니 몇 년은 더 젊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피부도 깨끗해서 같은 나이에서 동안이라는 소리도 들었다.
문제는 어머니 김혜영이었다.
아버지의 눈을 돌리기 위해 예쁘게 만들어 드린다는 것이 좀 과하게 손을 댄 모양이다.
‘에바! 이거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이런 부작용이 있네.’
―나노셀을 투여해서 조금 더 젊어 보이게 만들어 드려야겠어요.
‘응, 이번에는 실수하지 말고 적당한 선에서 잘 맞춰!’
―네, 마스터.
대한은 당장 뭐라고 대답하지는 않았다.
다만 에바를 통해 아버지 이태산의 얼굴과 피부를 살짝 젊게 만들어 드리기로 했다.
“아버지! 하시는 일은 좀 어떠세요?”
―뭐 일이라고까지 할 게 있냐? 그냥 대한타워 빌딩을 관리하는 것뿐인데.
“그게 얼마나 큰일인데 그러세요.”
―난 그저 네가 붙여준 빌딩관리 전문가의 얘기를 듣고 서류에 서명하는 것밖에는 없어. 다행히 이번에 대한타워에 입주하고 있던 회사들이 전부 나가서 한숨 덜었다.
아버지의 눈치를 보아하니 나름대로 만족하고 계신 듯했다.
전문가를 붙여드렸으니 일이 어려울 것은 없었다.
당장은 좀 벅찰지 몰라도 시간이 가면 금세 익숙해지실 것이다.
“이제 곧 입이 하나 더 늘게 생겼는데 아버지가 열심히 해주셔야죠.”
―알았다. 내 최선을 다하마. 네가 어렵게 가져온 일인데 내가 허투루 할 수는 없지.
“아버지는 지금도 잘하고 계세요. 성실하면 또 우리 아버지 아닙니까!”
―크크, 그거야 그렇지. 내가 좀 성실하게 일을 잘하지.
대한은 아버지 이태산을 살살 띄워주면서 비위를 맞춰드렸다.
그는 부모님과 함께 한동안 즐거운 대화를 나눴다.
새로운 식구가 생긴다니 참 놀랍다.
대한은 기분이 좀 묘해졌다.
아니, 상당히 이상한 감정이었다.
솔직히 자신에게 여동생이 생긴다는 사실이 아직도 잘 믿어지지 않았다.
어쨌든 부모님과의 통화는 그렇게 기분 좋게 끝났다.
대한은 다시 식사를 계속했다.
에바는 그에게 온갖 맛있는 음식을 열심히 먹였다.
이런 게 처음에는 좀 어색했다.
하지만 이 짓도 자꾸 하다 보니 금세 적응이 됐다.
대한은 식사하면서 허공에 홀로그램을 차례로 띄웠다.
영국, 한국, 중국, 일본 등 세계의 반응을 살피며 홀로 킥킥댔다.
누군가 그런 모습을 봤다면 참 부끄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 집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매번 이렇게 바보 같은 표정도 지을 수 있었다.
가끔은 그가 듣기에도 기괴한 웃음소리를 냈다.
“마스터! 식사 다하셨으면 차를 가져올까요?”
“응.”
“어떤 차로 하실래요?”
“둥글레차!”
“네.”
에바가 차를 타오자 그는 홀로그램을 닫았다.
차를 홀짝이자 이번에는 그녀가 허공에 홀로그램을 띄웠다.
“뭐 보고할 게 있나 보지?”
“보고할 일이 어디 한두 가지겠어요?”
“그럼. 어서 해봐!”
기분이 좋아서 그런지, 대한은 너그럽게 허락했다.
에바도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바로 보고에 들어갔다.
“미국에 이어 중국에도 코레디펜스에 관한 정보가 들어갔어요. 그들은 더욱 정확하고 자세한 정보를 얻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습니다.”
“중국이라!”
“국가안전부와 공안부 및 신화사까지 나서서 코레 그룹을 전방위적으로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것은 그럭저럭 괜찮은데 대한TV가 문제입니다.”
“그게 왜?”
“마스터의 소유로 알려졌으니까요.”
“혹시 나한테 접근할지도 모른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야?”
“네, 바로 그겁니다.”
대한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자신은 이미 세계적인 유명인이다.
아무리 중국이 막무가내로 나온다고 해도 그를 함부로 어찌하긴 힘들다고 봤다.
“일본에서도 정보원을 대거 투입했습니다.”
“그렇겠지. 내각정보조사실인가?”
“공안조사청, 방위성정보본부, 국제정보통괄관조직, 방위성정책국정보부 등 일본의 정보 관련 조직이 총동원됐습니다.”
“그건 좀 문제가 있네. 국내에는 친일파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면에서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어. 아무래도 다각적으로 압력이 들어올 것 같아.”
“그걸 대비해서 청와대와 국방부, 방사청과 국정원에 도움과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여당의 실세들도 코레디펜스가 대한민국의 국방력 강화를 위해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잘 알고 있어서 어느 정도 방어할 수는 있을 겁니다.”
“으음.”
에바의 말을 들으며 대한은 잠시 생각했다.
과연 그녀의 말대로 아무런 문제 없이 지나갈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닐 것 같았다.
“혹시 다른 나라에서도 코레디펜스에 눈독을 들이고 있어?”
“물론이죠. 영국의 정보청 보안부(MI5), 독일의 연방정보부(BND), 프랑스의 대외안보총국(DGSE) 그리고 러시아의 해외정보국(SVR) 등이 이미 정보요원을 파견했습니다. 그중에서 러시아의 해외정보국은 중국이나 일본만큼 코레디펜스에 대한 정보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심각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위험할 정도는 아니었다.
문제는 이들이 잘못 오판해서 엉뚱한 사람을 잡게 될까 봐 그게 걱정이었다.
“에바! 어떤 곳이든 선을 넘으면 강력하게 경고를 해!”
“알겠습니다. 그런데 만약 경고를 듣지 않으면 어떻게 하죠?”
“말을 안 들으면 듣게 해야지. 1차 경고 후에도 계속 도발해오면 대한민국에 있는 저들의 정보요원을 전부 제거해!”
대한의 강경한 말을 듣고도 에바는 다시 물었다.
“그러고도 말을 듣지 않으면요?”
“이번 일과 관련된 저들의 정보라인을 몽땅 삭제해버려!”
“알겠습니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만약 그렇게 했는데도 계속 도발해오면 그때는 어떻게 할까요?”
“도발한 정보조직 자체를 통째로 날려버려야지.”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한은 일부러 독하게 마음을 먹었다.
이게 잘못되면 자신만 당하고 마는 게 아니다.
부모님은 물론이고 코레그룹의 죄 없는 직원들까지 연루될 수 있었다.
그래서 초장에 강력하게 경고를 하고, 말을 듣지 않으면 모조리 때려잡을 생각이었다.
적국의 정보요원이 국내에 허락 없이 들어와서 활동하다 잡히면 간첩죄로 처벌할 수 있다.
대한은 그 과정을 생략하고 직접 응징해버릴 생각이었다.
“마스터! 이미 우려하던 일은 벌어졌습니다.”
“벌써?”
그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어떻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일이 터지는가!
에바는 대한의 얼굴을 보면서 허공에 홀로그램을 조정했다.
코레디펜스가 있는 대한타워!
양복을 입은, 멀쩡하게 생긴 중년 남자가 몰래 들어와 뭔가를 열심히 설치하고 있었다.
“이건 몇 시간 전, 대한타워에 침투한 미국의 정보요원이 코레디펜스에 도청장치를 설치하는 장면입니다.”
“CIA야?”
“정확히 말하면 CIA가 양성한 국내의 첩자입니다.”
“그럼 저놈은 지금 국가반역죄를 저지르고 있군.”
“그렇습니다.”
대한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코레디펜스는 방산 업체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입주해있는 대한타워도 군사 보호시설로 지정되어있습니다.”
“군사 보호시설에 침투해서 도청장치를 달았다. 저놈 인생은 이걸로 끝났군.”
에바는 곧바로 홀로그램 하나를 더 띄웠다.
양복을 입은 중년 남자가 누군가와 만나서 밀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상대방은 금발의 푸른 눈을 하고 있었다.
“이자는 CIA 한국지부의 정보분석원 에이든입니다.”
“이놈들 하는 얘기 다 녹음됐지?”
“물론이죠. 한마디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에바가 대답하면서 홀로그램 하나를 더 띄웠다.
이번에는 두 명의 미국인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었다.
한 명은 조금 전의 금발의 푸른 눈이었다.
나머지 한 명은 연한 갈색 머리에 녹색의 눈을 하고 있었다.
“이자는 미국 NSA에서 파견한 현장요원 메이슨입니다.”
대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에이든과 메이슨의 얘기를 들어봤다.
두 사람은 커피를 마시면서 작게 소곤거렸다.
―잘 설치했어?
―응. 코레디펜스가 입주한 층에 설치했어.
―녹음은 잘 되고 있지?
―아니, 이상하게 음성이 잘 들리지 않아.
―마이크가 고장 난 거 아니야?
―그럴 리가 있나? NSA 기술국 최고의 엔지니어가 만든 것인데.
그들은 녹음이 잘 안 되는 걸 이상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주 심각하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일이 너무 쉬웠어.
―그러게 말이야. 이렇게 되면 굳이 NSA나 CIA 상부에 지원을 요청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일이 잘 안되면 지원을 요청할 생각이었나보다.
―듣기로는 보안이 철저하다고 들었는데 전부 헛소리였던 모양이야.
―아무래도 처음에 받은 그 정보들이 중요했어. 그렇지 않았다면 대한타워로 셀들을 투입시키지 못했을 거야.
―셀들이라면 한국의 그 매국노들 말이야?
그들은 대놓고 경멸의 표정을 드러냈다.
가만히 얘기를 들어보니 셀이란 그들이 만들어 놓은 첩자들을 지칭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말하면 어떻게 해? 우리 미국을 위해서 열심히 뛰어주고 있는 놈들인데.
―크크, 네가 관리하는 셀 중엔 야당의 실세도 있다며?
―어디 야당만 있겠어? 여당에도 있고 방사청과 국방부에도 있어. 이건 극소수만 아는 비밀인데 심지어는 청와대까지 줄이 닿아있지.
메이슨은 에이든의 말을 듣고는 깜짝 놀랐다.
대통령이 있는 청와대가 뚫렸다는 말은 곧 이 나라의 정보망은 이미 전부 무너진 것이나 다름없다는 얘기였다.
―이야! 정보관리가 개판인 나라네. 어떻게 자기 나라를 이렇게 쉽게 팔아먹을 수가 있지?
―그러게 말이야. 이놈의 나라는 정치와 경제가 완전히 따로 돌아가. 그리고 국민 알기를 개돼지로 알아요. 언론도 돈만 주면 얼마든지 가짜뉴스를 만들어서 뿌려준다니까. 또 그런 헛소리를 믿고 한국인들은 상대방을 서로 열심히 물어뜯지.
―너 참 일하기 편한 나라에 사는구나.
―그렇지. 영국이나 프랑스 아니 러시아나 중국, 일본만 하더라도 아마 이런 일은 상상할 수 없을 거야. 그런데 이 나라는 전(前) 대통령이 일제의 고위 장교야. 나중에 그 딸마저 대통령이 돼서 국민 알기를 우습게 알다가 탄핵을 당하고 말았지. 아버지가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했으니 그 딸이 일본에 협력하는 것도 전혀 이상한 게 아니지. 그래서인지 국민이 원하지 않는 지소미아 협정이나 위안부협약 같은 것도 탄핵당하기 직전에 해치워버렸어.
둘은 서로 킥킥대며 재미있게 얘기를 주고받았다.
원래 남의 나라 욕을 하는 것은 두 사람이 스트레스를 푸는 도구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걸 듣는 대한은 절로 이빨이 바득바득 갈렸다.
―그런데 국정원에서 견제는 안 들어와?
―거기도 10%는 우리가 꽂아 넣은 사람들이야.
―대단하다. 하긴 그러니 우리가 이 나라를 사랑하지. 영원한 미국의 호구니까!
―크크크! 그건 약과야. 잽(Jap)들은 우리보다 더해.
―뭐가?
―예전에 이 나라가 36년 동안 일본에 잡아 먹혔었잖아.
―그렇지.
―일본이 무조건 항복하고 난 후, 이 나라를 떠나자 오랜 시간 지배를 받던 노예근성을 못 버리고 일본의 신하를 자청하는 한국인들이 있었어.
―정말?
메이슨은 믿기 힘들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대한도 아주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응, 사실 우리 미국이 남한에 군정을 하려고 일본과 협력했던 자들을 풀어주고 써먹은 잘못이 좀 있긴 하지.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 나라는 프랑스가 나치에 협력했던 매국노들을 모조리 처형한 것과는 반대로 매국노들이 정권을 잡게 허용했어.
―아! 그래서 이 나라가 일본에 그토록 협조적인 거구나.
―맞아. 친일파라고 하는 것들이 아직도 일본의 사주를 받고 이 나라의 중요한 정보와 기밀을 몰래 넘겨주고 있어. 그것에 비하면 우리는 약과라고 할 수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