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화 <프리미어리그의 폭군>
“스포츠티비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장수원 아나운서입니다.”
“안녕하세요! 남희진 해설위원입니다.”
두 사람은 카메라를 보면서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지금부터 프리미어리그 왓포드 대 맨체스터시티의 경기를 중계방송해드리겠습니다. 오늘 경기는 왓포드의 홈구장 비커리지 로드에서 열립니다. 경기장 안은 이미 빈자리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관중으로 꽉 찼습니다.”
장수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남희진이 초반부터 강수를 썼다.
“이건 무조건 이대한 선수 때문이에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이대한 선수가 없었다면 리그 꼴찌로 강등권에서 헤매던 왓포드가 상위권에 오를 일은 아마 없었을 겁니다.”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이대한 선수로 인해 왓포드 팬들의 기대감이 한층 고조됐습니다.”
장수원 아나운서와 남희진 해설위원은 오늘도 대놓고 편파방송을 이어갔다.
“그런데 우리 이대한 선수는 오늘도 선발 명단에서 제외됐습니다. 남희진 해설위원! 이걸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한마디로 배은망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네에?”
남희진 해설위원의 과격한 발언에 장수원 아나운서는 깜짝 놀랐다.
그러나 남희진은 장수원이 놀라든 말든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대한 선수가 선발에서 제외된 게 벌써 몇 경기째입니까? 현재 리그 9경기에서 21골을 넣었어요. FA컵까지 합치면 11경기 23골입니다. 이런 가공할 공격력을 가진 선수를 선발에서 제외하고 있다는 건 상식 이하의 선수운영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보십니까?”
“왓포드 구단에서 이대한 선수를 길들이려고 하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재계약 소식이 없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왓포드와 이대한 선수의 관계가 이미 틀어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보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특별한 이유까지 찾을 필요도 없습니다. 이렇게 팀의 승리를 위해 절대적인 기여를 하고 있는 선수를, 그 어떤 구단이 잡으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현실을 보십시오. 벌써 12번째 경기를 치르고 있는 상황에서 아직도 이대한 선수는 주급 1만 파운드를 받고 뛰고 있습니다. 이건 그냥 무료로 봉사를 뛰고 있는 겁니다.”
남희진의 목소리에는 분노와 짜증이 노골적으로 배어있었다.
이 문제에 관한 한, 장수원 아나운서도 크게 다른 입장은 아니었다.
“요새 이대한 선수의 임대 협상 소식이 들려오고 있던데 아무래도 이적할 것 같지 않습니까?”
“당연히 이적해야지요. 왓포드는 이대한 선수를 품을 만한 빅마켓이 아닙니다. 리그 꼴찌의 왓포드의 멱살을 잡고 상위권으로 캐리한 것은 전적으로 이대한 선수의 능력과 공로입니다. 이건 기록만 찾아봐도 누구나 알 수 일이에요. 그런데 선발 제외 같은 치졸한 방식으로 계속 이대한 선수를 길들이려고 하고 그의 앞길에 고춧가루를 뿌려대고 있습니다.”
“듣고 보니 이대한 선수의 입장으로는 화가 날만도 하겠군요.”
장수원은 어떻게 하든 방송정지를 먹지 않도록 언어를 순화했다.
그러자 남희진 해설위원이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듣기론 이대한 선수는 이적보다는 임대를 선호한다고 합니다. 이걸 거꾸로 말하면 왓포드와 한 1년 계약이 끝나면 바로 이적하겠다는 말입니다.”
“계약이 끝나면 이대한 선수는 자유계약선수가 되는 거 아닙니까? 그럼 왓포드는 단 1파운드의 이적료도 받을 수 없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사람은 양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왓포드는 지금 너무 욕심을 부리고 있어요.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잘 대해줄 생각은 하지 않고 오히려 배를 가르려고 하니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남희진은 적절한 비유를 들며 왓포드를 맹비난하고 있었다.
장수원 아나운서도 옆에서 은근히 돌려까기를 했다.
“갑자기 토트넘의 에렉센 선수가 생각나네요.”
“그 경우와 아주 비슷합니다. 짠돌이 구단주에게 엿을 먹이는 아주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직접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당한 대가를 주지 않고 부려먹으면 반드시 탈이 나게 마련이네요.”
그때 카메라 화면이 구장의 한쪽을 비췄다.
축구공을 가지고 온갖 묘기를 부려대고 있는 한 선수!
오늘 경기 최대의 관심사인 대한이었다.
통통통 사악!
그는 만면에 미소를 지은 채 열심히 축구공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이런 대한의 뇌리로 익숙한 공명음이 계속 울려대고 있었다.
―재능 흡수대상자 케빈 데 브라위너의 재능 ‘크로스(SSS)’를 흡수했습니다. 재능 ‘크로스(SS)’를 획득하셨습니다.
―재능 흡수대상자 카림 마레즈의 재능 ‘완급조절(SSS)’를 흡수했습니다. 재능 ‘완급조절(SS)’를 획득하셨습니다.
―재능 흡수대상자 세르히오 아구에로의 재능 ‘밸런스(SSS)’를 흡수했습니다. 재능 ‘밸런스(SS)’를 획득하셨습니다.
―재능 흡수대상자 다비드 실바의 재능 ‘킬패스(SSS)’를 흡수했습니다. 재능 ‘킬패스(SS)’를 획득하셨습니다.
―재능 흡수대상자 라임 스털링의 재능 ‘트래핑(SSS)’를 흡수했습니다. 재능 트래핑(SS)’를 획득하셨습니다.
정말 신나는 일이었다.
리버풀 경기 때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재능 대박이 터졌다.
비록 선발 출전명단에선 제외됐지만.
경기장에 들어오기 직전!
맨체스터시티의 선수들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특히 맨체스터시티의 선발선수들과는 빼놓지 않고 악수를 했다.
덕분에 선발출전보다 더 값진 선물을 얻을 수 있었다.
삐익!
주심의 휘슬로 경기가 시작됐다.
왓포드와 맨체스터시티는 똑같은 4―3―3 포메이션을 들고 나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맨체스터시티의 볼 점유율이 급격히 올라가면서 경기를 주도했다.
그러자 왓포드는 급히 4―5―1 포메이션으로 바꾸고 수비에 주력했다.
“와아아아!”
하지만 왓포드가 맨체스터시티의 화력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스털링의 빠른 돌파에 이은 패스!
볼을 받은 아구에로의 깔끔한 퍼스트터치와 감각적인 슈팅!
그것으로 왓포드의 골망을 깨끗이 갈라버렸다.
“와아아아!”
“골이다.”
맨체스터시티 원정 팬들은 전반 15분 만에 얻은 선취점에 열광했다.
이어진 경기도 맨체스터시티의 화력과 왓포드 수비력의 대결이었다.
맨체스터시티는 파상공세를 펼치며 왓포드를 압박했다.
왓포드 선수들은 온몸을 내던지며 육탄방어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마치 그들의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또다시 골이 터졌다.
“와아아아!”
이번에도 시작은 스털링이었다.
빠른 돌파에 이은 컷백!
멋진 퍼스트 터치로 볼을 돌려놓고 바로 볼을 때려 넣은 마레즈!
가히 환상의 합작품이 아닐 수 없었다.
공격력에 포텐이 터진 스털링!
제2의 전성기를 맞은 아구에로!
뛰어난 드리블 능력과 퍼스트터치가 강점인 마레즈!
맨체스터시티의 공격의 핵심 삼인방의 조합은 강력했다.
이미 물이 오를 대로 올라있어 누구도 막을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마스터! 카카 감독이 자꾸 쳐다봅니다.
―어쩌라고? 아쉬우면 날 경기에 집어넣겠지.
대한은 에바의 말에도 시크하게 답했다.
그는 크로스, 완급조절, 밸런스, 킬패스, 트래핑의 재능을 받고는 무척 기뻤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맨체스터시티 선수들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다.
헤더, 볼커팅, 슬라이딩 태클, 오프더볼무브먼트, 퍼스트, 터치 등
그동안 장착하지 못했던 절정의 축구 재능들을 무더기로 퍼주었다.
특히 개인기와 슈팅·킥의 하위목록이 열리면서 좀 더 디테일한 개인기와 슈팅·킥 재능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그래서 굳이 오늘 경기에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그것보다는 지금 획득한 축구 재능들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직접 볼을 가지고 시험해봤다.
그렇게 할 수 없는 것들은 이미지 트레이닝으로 대신했다.
그러자 자신의 축구 실력이 눈부시게 발전하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역시 재능은 등급이 깡패야. 높을수록 무조건 좋은 거야!’
대한은 점점 완성되어가는 자신의 축구 재능에 기분이 좋아졌다.
물론 이것은 그가 초인의 근력을 시작으로 인간의 한계를 넘은 마스터 급 스탯을 보유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탄탄한 몸과 빠른 스피드, 거기에다 강인한 육체와 월드클래스 급의 재능!
이제 대한은 그라운드에서 무서울 것이 없어졌다.
그러나 실실 쪼개면서 축구공을 가지고 노는 대한을 바라보는 카카 감독의 마음은 새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왓포드 구단주의 지시와 프런트의 압박!
거기에다 대한의 눈치까지 봐야 하는 카카는 지금 죽을 맛이었다.
그렇다고 자기 마음대로 대한을 선발로 출전시킨다면…….
아마 당장 해임을 당하고 말 것이다.
그런데 하늘이 카카의 이런 마음을 헤아렸던 것일까?
“와아아아!”
“골!”
왓포드의 홈구장 비커리지 로드가 갑자기 함성으로 뒤덮였다.
그동안 절치부심 칼을 갈아왔던 그레이가 원더골을 터트린 것이다.
기습적인 그레이의 중거리 슛 한 방!
답답한 왓포드 팬들의 속을 시원하게 풀어줬다.
“와우! 나이스 샷!”
대한도 그레이의 멋진 골에는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왓포드 벤치도 뜨거운 환호성으로 이 기쁨을 함께 나눴다.
하지만 정신을 차린 카카는 묘한 눈빛으로 대한을 쳐다보다가 길게 한숨만 내쉬었다.
삐익!
전반전이 끝났다.
스코어는 1:2.
비록 왓포드가 지고 있지만 1골 차이는 언제든지 뒤집을 수 있다.
라커룸으로 들어가는 선수들을 따라 대한도 쭐레쭐레 그들을 뒤를 쫓아갔다.
선수들은 물을 마시고 바나나로 체력을 채웠다.
그러면서 카카 감독의 말을 들었다.
작전은 바뀌지 않았다.
선 수비 후 역습!
그는 카카의 말을 듣고는 살짝 고개를 가로저었다.
후반전도 무척 지루하게 흘러갈 게 틀림없었다.
지금 왓포드가 앞서는 상황이라면 모를까…….
이렇게 안정을 추구하는 수비 지향적인 작전으로는 결코 경기에서 승리할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맨체스터시티는 수비가 약한 팀도 아니었다.
대한은 쉰내가 풀풀 나는 라커룸을 빠져나왔다.
그는 휴식시간을 이용해 텅 빈 필드에서 이리저리 볼을 차며 개인기를 연마했다.
하위목록이 활짝 개방된 개인기와 슈팅·킥!
보다 디테일하게 하나씩 꺼내서 완성도를 높여갔다.
헛다리 짚기, 팬텀 드리블, 마르세유 턴, 스쿱 턴, 플립플랩, 맥기디스핀, 호커스포커스, 백숏, 라보나킥, 사포, 크루이프턴, 솜브레로, 드래그 백…….
그가 축구공을 가지고 놀 듯 여러 가지 개인기를 펼칠 때마다!
그걸 지켜보는 관중들의 박수갈채와 환호성이 이어졌다.
왓포드 팬들은 눈을 반짝이며 대한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했다.
뻥 뻥 뻥 뻥!
개인기 다음은 슛을 연습했다.
슈팅·킥의 하위목록에 나온 다양한 슈팅과 킥!
인스텝 킥, 인프런트 킥, 인사이드 킥, 아웃사이드 킥, 토 킥, 힐킥, 중거리 슛, 롱슛, 터닝슛, 발리킥, 칩샷, 오버헤드킥, 시저스 킥, 무회전 킥, 바나나킥…….
텅 비어있는 골대를 향해!
맞고 뒈지라는 식으로 시원하게 차버렸다.
그럴 때마다 대한의 답답한 가슴도 조금씩 풀려나갔다.
―마스터! 열 받는데 그냥 왓포드 구단 인수해버릴까요?
‘이런 구단을 인수해서 뭐하게?’
―마스터 마음대로 한번 잘 키워보시라고요.
‘호오! 그것도 나쁘지 않네.’
―그럼 한번 알아볼까요?
‘왓포드 말고 다른 구단으로 알아봐!’
그는 굳이 왓포드와 더는 엮이고 싶지 않았다.
잉글랜드에 구단이 왓포드만 있는 것도 아니고 잘 찾아보면 발전 가능성이 있는 구단을 헐값에 사들일 수도 있었다.
삐익!
주심의 휘슬로 후반전이 시작됐다.
대한은 여전히 한쪽에서 볼을 가지고 놀았다.
이제 그의 마음속에 경기는 사라졌다.
그보다는 오늘 얻은 재능들을 제대로 몸에 장착하려고 골몰했다.
문제는 그런 대한의 모습이 시시때때로 카메라를 통해 전 세계에 방송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는 당연히 왓포드 구단에게 항의와 원망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무슨 심사인지 왓포드 구단주와 프런트는 조금도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삐익!
그때 주심이 날카롭게 휘슬을 불었다.
맨체스터시티의 페널티 에어리어 중앙!
그레이가 발목을 잡고 나동그라져 있었다.
주심은 반칙을 한 맨체스터시티 수비수 오타멘디에게 옐로카드를 꺼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