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화 <성(城)을 사다>
카모라 마피아 최대조직인 카셀레시 패밀리의 보스 마르첼로.
그의 죽음으로 시작된 피의 복수와 응징은 근 한 달 만에 끝이 났다.
그 결과로 카모라 마피아의 12개 조직은 통일됐다.
하나가 된 카모라 마피아는 만장일치로 새로운 보스를 추대했다.
그것도 전(前) 카셀레시 패밀리 보스의 미망인이었다.
로사 네라(Rosa nera: 흑장미).
카모라 조직원들은 그들의 보스를 ‘로사 네라’라고 불렀다.
그들에게 보스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은 절대 금기사항이 됐다.
이유는 알지 못했다.
다만 모두가 그것을 불문율로 이해했다.
카모라의 새로운 보스, 로사 네라!
그녀는 카모라의 보스가 되자마자 곧바로 대형사고를 쳐버렸다.
카모라 마피아의 영역 안에서 마약을 하거나 파는 것을 금지했다.
또한, 상인에게 피조를 걷거나 인신매매를 엄금했다.
만약 이 규정을 어기면 누구도 죽음의 형벌을 피해갈 수 없다고 강하게 못 박았다.
실제로 카모라의 영역인 나폴리와 인근 도시에서는 마약 판매상이 자취를 감췄다.
죽었는지 떠났는지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순식간에 마약이 사라졌다.
대신 정체불명의 마약중독 치료제가 대량으로 풀렸다.
신기하게도 이 마약중독 치료제의 효과가 대단했다.
그래서 나폴리와 인근 도시!
그러니까 카모라 마피아의 구역은 마약 청정지대가 되어버렸다.
“로사 네라! 만세!”
나폴리와 인근 도시의 상인들은 이 소식에 일제히 거리로 뛰어나왔다.
그들은 카모라의 보스, 로사 네라의 이름을 연호하며 그녀를 칭송했다.
마약을 없앤 것만 해도 정말 놀라운 일이다.
그런데 제2의 세금이라는 ‘피조’가 단박에 사라져버렸다.
시민들은 모두 광장에 모여 큰 축제를 벌였다.
그들은 이날을 ‘해방의 날’이라며 기뻐했다.
그렇다고 카모라 마피아 조직원들이 배를 곪지는 않았다.
카모라의 보스, 로사 네라는 조직이 보유한 자금을 과감하게 풀었다.
3만이 넘는 카모라 조직원들에게 매달 3,000유로씩 월급으로 주기로 약속했다.
당연히 이건 말단 조직원들이 받는 월급이었다.
조장은 6,000유로, 팀장은 12,000유로, 중간보스는 24,000유로!
보스인 로사 네라는 48,000유로의 월급을 받기로 했다.
물론 여기에 성과급은 빠져있었다.
일을 잘하거나 실적이 좋은 조직원에게는 월급보다 훨씬 많은 성과급이 나간다.
이를테면 마약 중독자들에게 마약중독 치료제를 많이 판매하면 그만큼 성과급이 나가는 것이다.
이 놀라운 결정에 카모라 조직원들은 환호했다.
그동안 불규칙한 수입으로 인해 알게 모르게 생활에 어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생활고를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다.
누구든지 조직에서 시키는 일만 잘하면 충분한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4대 마피아 중 카모라를 뺀 사크라 코로나 우니타, 은드란게타, 코사 노스트라는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그런데도 카모라 마피아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내 구역에서 내가 결정한 일을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내정간섭이라고 오히려 화를 내며 경고했다.
사람의 목을 잘라 거리에 걸어두는 잔인한 카모라 내전!
한 달 동안의 피의 내전을 치르면서 통일되고 정예화된 카모라 조직원들!
이를 지켜본 다른 마피아들은 그저 입을 꾹 다물고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괜히 섣불리 건드렸다가 전쟁을 하자고 달려들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카모라의 행동은 그만큼 다른 마피아들에게 여러모로 충격을 줬다.
문제는 이탈리아 시민들이었다.
카모라의 결정에 쌍수를 들고 환영한 자들이 은근히 남은 마피아들을 압박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아직은 그 영향력이 미미했다.
하지만 마약중독 치료제가 엄청난 효능이 있다는 소문이 돌자 서서히 이들 조직에도 균열이 가기 시작됐다.
어쨌든 이탈리아 정부나 시민들은 카모라의 행동에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들에게는 손해는커녕 더 나은 미래와 희망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대제국 로마를 건설했던 후예의 나라!
이탈리아는 서서히 잠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 * *
이탈리아 나폴리 카스텔 카모라(Castle Camorra).
“대한!”
“모니카!”
모니카는 수영하다가 대한의 이름을 불렀다.
그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봤다.
손을 한번 흔들어주자 미소를 짓더니 물속으로 쏙 들어갔다.
차악 차악 차악!
모니카는 빠르게 물살을 갈랐다.
원래부터 수영에는 재능이 있었는지 보통 솜씨가 아니었다.
“에바!”
“네, 마스터.”
대한이 부르자 비치의자에 앉아있던 에바가 즉시 고개를 돌렸다.
그는 선글라스를 살짝 내리며 에바를 쳐다봤다.
“모니카 원래 저렇게 수영 잘했어?”
“수영을 잘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럼 원래 타고난 건가?”
대한은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에바의 대답은 의외였다.
“뇌 속에 박아놓은 바이오칩 때문이 아닐까요?”
“그건 모니카의 멘탈이 붕괴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나노셀을 이용해 만들어놓았다고 했잖아!”
“물론 그렇습니다. 하지만 히릭스에 보관해놓은 지구의 재능과 기술은 얼마든지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혹시 에바가 그걸 허락했어?”
“마스터에게 위해가 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허용했습니다.”
그는 무척 궁금했다.
모니카가 어떤 재능과 기술을 내려받았는지 말이다.
“무슨 재능과 기술을 인가해줬는데?”
“각종 스포츠와 격투기 및 컴퓨터 관련 기술들입니다.”
“컴퓨터? 그럼 나도 그런 거 내려받을 수 있는 거야?”
“물론이죠. 하지만 마스터께서는 굳이 그러실 필요가 없습니다. 재능을 흡수하는 게 훨씬 빠르고 효율도 좋습니다.”
생각해보니 에바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자신은 아직 컴퓨터 관련 재능이나 기술은 전혀 없었다.
만능의 치트키 에바가 옆에 있으니 굳이 얻으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만약을 대비해 적당히 배워둬야 할 것 같았다.
촤악!
그때, 모니카가 대한의 앞에서 불쑥 나타났다.
그녀는 사방으로 물을 튀기며 올라왔다.
그러더니 바로 그를 덮쳤다.
“어이쿠!”
대한은 모니카의 몸을 받으며, 일부러 소리를 내어 엄살을 떨었다.
그래야 그녀가 더 좋아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후훗! 무슨 얘기하고 있었어?”
“모니카가 재능과 기술을 내려받았다는 얘기.”
“아! 그거? 상당히 괜찮은 것 같아. 일주일 정도만 노력하면 남들이 한 달 동안 노력한 만큼 효과를 볼 수 있어.”
“그렇구나. 그럼 요새 뭘 내려받았어?”
“종합격투기! 대한이 벨라토르 FC 라이트헤비급 챔피언인데 나도 기본은 알아야지.”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데.”
“아니야. 사격과 종합격투기는 필수야.”
대한은 단호한 모니카의 말에 그만 입을 딱 다물고 말았다.
더 이상 말해봐야 입만 아프다.
그녀가 선택한 길이니 그냥 존중해주기로 했다.
“영국은 언제 돌아갈 거야?”
“오늘 저녁에 가야지. 내일 경기가 있으니까.”
“나도 같이 갈까?”
“그러던지.”
“근데 대한이 사는 집 너무 좁은 거 아니야? 부하들도 이렇게 많은데.”
“좁게 느껴져?”
“응, 너무 좁아. 내가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가 없어.”
대한은 모니카의 말에 눈을 깜빡거렸다.
그는 자동으로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에바! 영국의 집이 좁다고 하네. 어떡하지?”
“새로운 저택을 구매할까요?”
에바의 말에 모니카가 끼어들었다.
“에바! 기왕이면 카모라 성을 같은 것을 사는 것은 어떨까요?”
“좋은 생각이에요. 안 그래도 영국과 프랑스, 스페인과 이탈리아에 고성(古城)들이 싸게 매물로 나왔어요.”
“고성? 너무 낡고 관리비 많이 들어가는 거 아니야?”
대한의 말에 에바는 고개를 저었다.
“꼭 그렇지도 않아요. 적당한 것을 싸게 사서 수리하면 되요. 그리고 관리비의 대부분이 인건비와 난방비에요. 마스터도 아시다시피 그런 것은 우리에게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잖아요.”
“하긴 그것도 그렇군.”
에바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고성을 사서 수리하거나 개조해서 호텔로 쓰는 곳도 많았다.
대한도 고성을 사서 전체를 쓰려는 생각은 없었다.
반은 호텔로, 반은 개인 공간으로 쓰면 좋을 것이다.
“한번 추진해볼까요?”
“좋은 매물이 있어?”
“예를 들어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 지방에 12세기에 지어진 중세의 성이 3327만 유로에 매물로 나왔어요. 115개의 침실에 100개의 욕실, 다수의 풀장이 딸린 성이자 초호화 저택이에요.”
“3327만 유로면 오늘 환율로 436억 원이네.”
“한번 보시겠어요?”
“그래.”
에바는 허공에 홀로그램을 띄웠다.
당연히 모니카는 볼 수 없는 대한 전용의 홀로그램이었다.
이탈리아식 정원과 대리석이 깔린 바닥!
고풍스러운 종탑과 그림으로 장식된 천장!
중세의 향기와 낭만적인 분위기로 인해 결혼식 장소로 대여하기도 한다는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좋네.”
“인근 농가와 농지가 한데 묶여 매물로 나와서 무척 넓은 편이에요.”
“마음에 든다.”
그 사이!
모니카는 리사가 가져온 태블릿을 통해 매물을 확인했다.
“나도 마음에 들어.”
“그래? 그럼 사자.”
“즉시 사람을 보내 사들이겠습니다.”
“응.”
대한이 결정하자 에바는 곧바로 매매를 추진했다.
그는 436억 원을 한방에 써버렸다.
“이게 다야?”
“그럴 리가요. 새로운 매물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에바는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그러자 홀로그램이 하나 더 떠올랐다.
“프랑스 파리근교 베르농에 있는 사브레 고성입니다.”
“이번에는 프랑스 성이군.”
“17세기의 성으로 면적이 4천 제곱미터입니다. 정원과 딸린 숲까지 합치면 18헥타르, 55,000평 정도가 되겠군요.”
“그런데 이건 무슨 호텔 같은데?”
“맞습니다. 호텔로 개조해서 영업하다가 몇 년 전에 적자로 문을 닫았습니다.”
“이건 얼마야?”
“534만 유로입니다. 원화로 70억 정도 됩니다.”
“그것밖에 안 해?”
대한은 말을 하면서도 격세지감을 느꼈다.
자신의 입에서 70억 원밖에 안 하냐는 말이 나오다니!
“프랑스의 문화재로 등록이 되어있고 개조와 보수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사게 되면 그 정도야 우습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렇겠지. 이것도 사자.”
“네, 마스터.”
대한은 프랑스의 성 하나를 바로 질러버렸다.
“영국의 성도 하나 사자.”
“그건 조금 있다가 사는 게 어떨까요?”
“왜?”
그는 에바의 반론에 의문을 가졌다.
“아무래도 이적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적? 왓포드와 협상이 잘 안 됐나 보지?”
“그렇습니다. 이번에 왓포드 구단과 협상해본 결과, 그들은 주급 20만 파운드 이상을 줄 능력이 없었습니다.”
“능력이 안 되는 거야? 아니면 줄 마음이 없는 거야?”
“둘 다입니다.”
“그런데도 이적을 하자고?”
대한은 왓포드의 태도에 맘이 상했다.
에릭센이 왜 토트넘과 재계약이나 이적을 안 하고 끝까지 버티다가 자유계약으로 풀려나려고 했는지 조금은 이해가 갔다.
주급 1만 파운드를 받으며 그동안 뼈가 빠지게 왓포드를 위해 뛰어줬건만.
겨우 주급 20만 파운드도 줄 생각이 없다니!
그런데도 이적을 얘기하는 것을 보면 이번에 자신을 팔아서 이적료를 단단히 챙기려는 속셈이었다.
“왓포드에게 이적료를 한 푼도 줄 생각이 없어. 그들은 그걸 받을 자격이 없어.”
“그럼 1년 동안 매주 1만 파운드씩만 받고 버틸 생각입니까?”
“왜 내가 매주 1만 파운드를 받아? 1골당 1만 파운드 받기로 계약했던 거 잊었어?”
“성과급은 성과급이고 주급은 주급이지요.”
“어쨌든 이적료를 줄 바에야 차라리 임대를 가겠다.”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계약서에 임대 요청 시 무조건 응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습니다.”
에바는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그녀도 속으로는 왓포드의 행태가 심히 마음에 안 들었었나 보다.
“바로 그거야. 지금부터 임대 협상을 벌여봐!”
“기간은 어떻게 할까요?”
“1년은 힘들 것 같고, 3달도 좋고 한 달도 괜찮아.”
“주급은 얼마나 받을 생각입니까?”
“당연히 최대한 많이 받아야지. 그리고 왓포드와 계약한 그대로 임대계약도 진행해! 주급과 기간은 말고.”
“알겠습니다. 즉시 일을 진행하겠습니다.”
대한의 한마디에 이적에서 임대로 급선회했다.
왓포드 구단이 치사하게 나오자 그도 강수를 두기로 한 것이다.
나중에 이를 알게 되면 아마 땅을 치고 후회하게 될 것이 틀림없었다.
“어쨌든 임대로 가게 되는 구단 근처에 있는 성을 사자는 말이지?”
“네, 그렇습니다.”
“알았어. 그럼 일단 영국의 성을 구매하는 것은 에바에게 맡길게!”
“실망하지 않도록 제가 잘하겠습니다.”
“그래.”